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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살라!]
[서론]
[본론]1.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는 사람입니다.
[1] 주의하다! 라는 말은 쳐다본다! 라는 뜻을 가진 불렉포우 입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점은 이 주의함에 있습니다.
[2]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쳐다보고 주의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많은 관중들이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얼마 전 서울 어떤 곳에서 유리로 집을 짓고 안이 환이 보이는 집에서 몇 달을 실험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잠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행위를 재빠르게 기록하는 천사가 24시간 붙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 입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죄를 짓는데 담대하지 않습니다.
그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사랑하는 주님께 보여 줄 수 없습니다.
동생이 하루는 저하고 차를 타고 가는데 [동생이 저보다 운전을 두배로 잘해요 ] 그런데 차 하나가 제가 보아도 그렇게 사탄이처럼 하는거예요
동생이 참고 참으며 하는 말이 아이고 목사님 앞이라 싸울 수도 없고 아이고~
하며 참드라고요
하물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의식속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쉽게 죄를 짓 습니까?
어떻게 천사가 보고 구역질 날 죄를 거룩한 우리가 지을 수 있습니까?
에녹이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됩니까?
하나님과 늘 동행하므로 가능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섬기며 삽시다.
차를 탈 때 훌떡 타고 붕 하고 운전을 할 것이 아니라 “성령님 가시지요!
운전합니다.“
“성령님 아무개를 만납니다.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도록 도와주소서!”
성령님 전도 나가요 같이 갑시다.
이렇게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거룩한 삶을 사는 삶이 됩니다.
2. 지혜로운 삶은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하는 말을 다른 말로 한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우리가 사는 때가 마음을 하나님에게 빼앗게 하고
우리가 사는 때 나태하게 하다는 말 입니다.
요즘 세대처럼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빼앗게 하는 시대가 없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분 검색하고 나면 금 새 한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갑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연속극 보는 시간이 얼마나 잘 갑니까?
그러나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금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별로 가치도 없고 시시한 일에 시간을 보내지 맙시다.
이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시간을 함부로 쓰는 무서운 범죄 입니다.
돈은 없어져도 복구할 수 있지만 세월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급히 흐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시간은 한계가 정하여 잇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 입니다.
모세는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 시간이 한정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획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두고 중요한 것부터 합시다.
또한 짜뚜리 시간이라도 아껴 씁시다.
음악사에서 왈츠의 제왕이라고 말하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시간절약가로도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작곡에 몰두하고 음악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 살기 때문에 가정적으로도 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처럼 비엔나의 어느 좋은 식당에서 아내와 함께 밥을 먹기로 약속하고 아내와 함께 정장을 하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좋은 음식을 시켰겠지요. 그리고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에게 악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저할 것 없이 메뉴판을 뒤집어서 그 뒷면에다가 악보를 그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보니까 속이 상했겠지요. 우리 식으로 생각한다면 "여보, 밥 식기 전에 빨리 드세요, 여보 국 식어요, 아 김빠지게 왜 그러지?" 하고 불평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슈트라우스는 그 악상을 놓칠까봐 아내의 간곡한 부탁도 아랑곳없이 열심히 악보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런 대가를 지불하고 오늘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왈츠 곡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기준이 되어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신안생활도 자기 기준에 맟추어 자기 마음데로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잘못 판단 할 때가 있습니다.
공자(孔子: BC 551~BC 479)는 일생동안 무려 3천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가장 총애했던 제자는 안회(顔回 521~BC 490)이었습니다.
그는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쳤습니다.
그는 워낙 학문을 좋아해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고 하며 덕행이 뛰어나 스승인 공자도 때로는 그로부터 배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채나라로 가던 도중 양식이 떨어져 채소만 먹으며 일주일을 걷다가 어느 마을에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공자가 깜박 잠이 든 사이에 안회가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습니다. 공자가 잠에서 깨어 밖을 내다보니 안회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 먹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공자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수저도 대지 않는 안회가 몰래 밥을 먹는 그를 보고 놀랐습니다. 공자는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 지내라고 하더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이었습니다.
안회는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부끄러워하며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구
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
이 못 되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거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
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믿는 사람도 신앙에 있어서 자기가 기준이 되어 마음데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두어야 합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
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기도를 하나 드려도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뜻인지 먼저 생각하여보고 구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아내도 달라고 기도하고
로또복권 사놓고 당첨되게 하여 달라고 간구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말씀에 따라 삶을 삽니다.
주일날을 거룩하게 드려라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이성에 판단을 하여 반쪽 예배만 드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데로 사는 사람이나 단체는 절대로 손해가 없고 후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야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보화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 습니다.
하나님의 뜻 데로 사는 삶 이런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
해하라
라고 하였고
(엡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라고 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한 걸음 한걸음 주님을 따라 가는 것 이것은 후회함이 없는 삶이요 여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가득할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뜻을 주의하여 이행하는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지혜로운 삶으로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바울사도는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을 삽니다.
1. 지혜로운 삶은 술 취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지 술을 마시지 말라! 라고 하였지 않느냐 라고 반문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죄가 그러하듯
술도 술의 속성상 한잔 들어가게 되면 또 한잔을 요구하게 되고 나중에는 술독에 빠져버리기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마약도 처음에는 한대 나중에는 두 대맞다가 나중에 마약을 아무리 하여도 듣지 않는 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잠 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렇 습니다.
술은 처음에 마시게 되면 잠을 잡니다.
그러나 계속 술을 끊지 않고 마시게 되면 기분이 좋아 흥얼거립니다.
그리고 좀더 중독이 되면 울게 됩니다.
그것에서 좀더 마시게 되면 욕을 하게 되고 좀더 나가면 폭력을 행사하고 좀더 나가면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술을 마시는 소비국으로 제 1위를 달리고 있답니다.
그리고 통계에 의하면
일 년동안 우리나라에 술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이만 명입니다.
여기에 술 먹고 음주 후에 자살하는 사람이 일년에 1355명이예요.
술 먹고 헛디뎌서 죽은 사람, 술먹고 난간에 떨어져 죽은 사람,
차를 몰고 추락해서 사망한 사람이 840명,
술 먹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차를 몰고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674명,
술 먹고 불을 지르던지, 술 먹고 불에 타 죽은 사람이 382명,
술 먹고 살인으로 인하여 남을 죽이는 사람이 379명,
이 통계는 드러난 사건만 그렇다는 것 입니다.
뭐 이 자리에 술과 관계 된 분이 안계시니 이만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술 취하지 말라하는 말씀은 방탕하게 되기 때문에 술 취하지 말라 라고 합니다.
방탕하게 하는 것을 피하는 삶 이것이 지혜로운 삶 입니다.
보통 인생을 망치는 3 요소는 주, 색, 잡기 입니다.
술, 여자, 노름등은 인생을 망칩니다.
인생을 방탕하게 합니다.
쾌락추구, 텔레비전 보는 일, 고스톱,등은 사람을 그것에 취하게 합니다.
이런 것을 하지 말라 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이런 것에 너무 깊이 인박히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2. 지혜로운 삶은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님은 인격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무슨 물건 다루듯 하든 것은 신성모독 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아 예수님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시기에 우리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기에 성령님을 비유로 우리에게 소개를 합니다.
그 비유를 세세히 이 새벽에 다 말씀드리기는 시간이 짧고
간략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1] 성령의 별명으로 비둘기 같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는데 그 형상이 비둘기 같다.리고 하였습니다.
비둘기가 아닙니다.
비둘기 같다.
이는 비유 입니다.
1] 비둘기는 시각이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한 쪽만 보게 되어 있지 시각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예전에는 하나님도 봤다가 돈도 봤다가, 이성도 보다가 세상도 봤다가 하던 사람이 하나님만 보게 됩니다.
2]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노아의 홍수이후 평화를 염원하는 의식 속에는 비둘기를 공중에 날려 보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원수도 감화시키는 능력이 임합니다.
예전에는 싸움을 그렇게 잘하던 사람이 성령이 충만하면 사람을 화목하게 만드는 중재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3] 비둘기는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 유일하게 날짐승으로 드려진 제물 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산 제물이 됩니다.
순교의 제물이 어떻게 되느냐 성령이 충만하면 권능을 받고 목숨을 걸고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것 입니다.
4] 비둘기는 속된 것 썩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하면 할수록 세상 것 썩어질 것이 시시하게 보입니다.
자꾸 신령한 것만 먹고 싶어집니다.
5] 비둘기는 슬퍼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슬피 웁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애통합니다.
자기 죄를 애통해 하고 이웃의 죄를 애통해 하고
나라의 죄와 인류의 범법으로 슬퍼합니다.
[2] 성령의 별명이 불과 같다 라고도 합니다.
1] 불의 속성은 따스함 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개인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따뜻함이 잇습니다.
훈훈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곳은 냉냉합니다.
사람도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어요.
2] 불은 비취는 빛의 속성도 가지고 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경의 숨은 진리가 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보이고 신령한 세계가 보입니다.
예수님이 보입니다.
3] 불은 태우고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키는 속성이 있습니다.
씻는 것 보다 태우는 것이 깨끗하여 집니다.
성령의 불에 심령을 태워야 합니다.
더러운 죄의 습관을 태워버려야 합니다.
불은 쇠도 녹입니다.
강철 같이 굳어진 마음도 성령 앞에서는 녹습니다.
제철소에서 고물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불은 이런 잡동사니를 녹여 새로운 것을 만듭니다.
3] 불은 움직이게 합니다.
자동차도, 기차도 , 비행기도 로케트도 불이 있으면 움직입니다.
사람도 성령이 충만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위하여 움직입니다.
[3] 성령은 바람과도 같습니다.
1] 바람은 공기가 움직이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움직이는 공기 라고 하여도 됩니다.
움직이는 생기 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성령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 입니다.
이름만 신자인 거듭난 체험이 없는 신자는 공기 없는 죽은 영적 시체 입니다.
2] 바람은 이동을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성도는 바람을 일으킵니다.
세상에는 춤바람 , 좋지 못한 바람을 일으키지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기도의 바람을 일으키고 회개의 바람을 일으키고 성경을 애독하는 바람을 일으키고 좋은 신앙의 덕을 세우는 멋 잇는 바람을 일으킵니다.
[4] 그 외에도 성령은 예수의 영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자꾸 예수님만 생각이 나고 에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3. 오늘 본문은 성령을 받으라 하는데 꼭 성령에 취하라 하는 의미로 들립니다.
오순절날 저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사도와 120 문도들이 술에 취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1] 취한다는 말은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 입니다.
술에 취한사람은 말도 술에 취하고 정신도 몸도 술을 영향을 받습니다.
말도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정신도 흐릿하고 발도 갈지자로 걷습니다.
약에 취한사람도 정신을 못차리더라고요
그런데 성령에 취하면 입에 방언이 열리고 기도의 입이열리고 설교자도 입술도 성령의 지배를 받아 거룩한 떨림이 있습니다.
[2] 술에 취한사람은 담대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 술을 어느 정도 주면 주지 않는것보다 유익하다고 합니다.
전도도 담대하게 합니다.
믿음의 생활도 배장 있게 합니다.
[3]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 뱃속에서부터 솟구치는 거룩한 성령의 기쁨
입에 가득한 성령의 향취는 맛을 본 사람만이 맛을 압니다.
[4]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술을 먹은 사람이 술이 생각이 나듯 그 성령님을 계속 사모 합니다.
이 성령을 달라고 애원하고 금식하고 철야를 합니다.
[결론]
세속의 술에 취하면 사람이 망쳐지고 폐가망신 합니다.
세상의불 마귀의 불을 받으면 자기 인생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인생도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살려주시고
완전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십니다.
술에 인박힌 사람은 하루 종일 술을 찾습니다.
주일날 설교처럼 죽은 자식 신발도 훔쳐다가 술을 퍼먹습니다.
성령의 새 술 에 인이 박히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
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서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기도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 뜻이니라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켜 주기만 한 것이 아니고 로마의 퀴퀴한 감옥에서 뭐가 그리 기쁜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쁨의 웃음은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고 체질을 바꾸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웃으며 기쁘게 사는 사람에게는 우울증이나 불면증이나 위장병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화를 내면 몸 속에 독기가 생기고 웃으면 몸 속에 있는 독기가 몸밖으로 빠져 나온다고 합니다.
잠언서 17장22절 말씀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 하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기뻐하기 위하여 많은 방법을 고안합니다.
저는 저의 육신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여드리기 위하여 또 나를 도와준 사장님께 기쁨을 주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얼마 못 갑니다.
낙원이란 즐거움의 동산입니다.
공산당을 만든 마르크스는 지상낙원을 만들 생각에 공산당을 만들었고
박태선이도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하여 신앙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 기쁨을 얻기 위하여
마약을 하기도 합니다.
또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려고 하는 기쁨은 실패요 좌절입니다.
오늘 진정한 기쁨은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이 온다는 것이고 성령이 충만하면 찬송이 넘친다는 것이고 찬송이 넘치면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기뻐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희락입니다.
성령과 악령의 역사는 이것으로 구분이 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기쁨이 충만 합니다.
그러나 악마가 오면 고통이 옵니다.
천국엔 일명 낙원입니다.
거기는 기쁨이 충만한 곳 입니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
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어느 집사님이 예수 믿기 전에 무당 귀신이 들어와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꾸 사람들만 보면 귀신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외버스를 타도 공짜라는 것입니다. "당신, 과거에 이랬지요."하며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택시도 거저 탔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 부인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 운전기사의 부인이 집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야기할 까 말까 하다가 택시에서 내리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운전기사가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집에 가서 내 말대로 맞으면 오지 말고, 만약에 틀리면 내가 당신에게 몇 배로 물어 주겠다." 그리고 자기 집을 가르쳐 주었는데, (운전기사가 찾아왔겠습니까? ) 운전기사가 두달만에 찾아 왔답니다. 그 말대로 집에 갔더니, 부인의 부정현장을 보고 이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탁이 있는데 믿을만한 여자를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성경에 의하면 참소자요 헐뜯는 자입니다. 훼방자입니다. 잘 된 것을 흐트려 놓는 것이 귀신입니다. 귀신의 영에 들어간 자는 참소하고 훼방하는 일에 앞장 섭니다. 과거의 일을 들춰 내고, 이야기 안 해도 되는 것을 갖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흙탕물을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다 가라앉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꾸라지 노릇 하며 그 물을 흐트려 놓으면 그 물을 못 먹습니다. 가라앉혀야 먹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들춰 내서 좋은 일이 있고, 넘어 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의 일은 남의 지나간 과거만을 들추어 내는데, 자신도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당이 그것 갖고 돈 벌면 될텐데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난 이렇게 해서 돈 버는 것은 싫다. 앞으로의 일을 할만한 능력이 없지 않느냐?" 무당이 해결방법을 이야기해 주는데, "이 귀신을 좇아내려면 교회에 가야 된다."
그래서 교회에 갔답니다.
예수 믿고 나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면 더 기쁨이 옵니다.
새 술에 취한 것처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2. 찬송을 하라 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1] 찬송이 넘칠 때 기쁨이 옵니다.
어느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않는 장로님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신자를 광신자로 몰아붙였습니다.
장로님이 신경성노이로제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노이로제라는 병은 매사가 원망, 불평, 불만입니다.
병이 점점 깊어지자 교인들의 권고로 기도언에 기도라는 것을 하기 위하여 올라갔는데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들고 짜증이요 불만만 나드랍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여도 기도도 한 마듸 안나오고
그런데 찬송을 하기 시작을 하엿답니다.
한절 두절 30분 이상 찬송을 부르이 기도문이 열리고 회개가 나오고 그래서 기 쁨이 충만하여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
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 하나님의 명령이라서 찬송을 하여야 합니다.
이사야서에 보니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의 아버지입니다.
성령님이 갑자기 나를 붙들어 주셨다.
그리고 빛이 비치는 순간나는 갑자기 구원을 받았다.
나는 구원을 받기위하여 내가 해야할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닳았다.
오직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믿고 찬송하는일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거대한 일을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여야 하겠습니다.
[3] 감사하고 찬송할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감옥에서 전도를하다가 옥에 갖혔을 때 찬송을하니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지고 지진이 나서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마다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후에는 시를 씁니다.
이시가 찬송시가 된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아우 찰스 웨슬레는 많은 찬송을 지은 작시자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시를 썻나?
그는 성경을 읽고 언제나 그 감동을 시로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결론] 성령이 충만하면 찬송이 넘칩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아직 기쁨이 넘치지 못하면 찬송을하고 감사를 하고 찬송의 기도를 하나님에게 올리십시오
나의 생애에 찬송이 고갈되었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3. 참된 기쁨이 아니다.
4.성령이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의 기쁨을 의미하고 있다.
5. 서로 화답- 속으로만 감사하지 말라
@ 세상사람들은 술 , 마약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려고 합니다.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
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1. 이런 것들이 참된 기쁨이며 열매이다.
2.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1.이러한 기쁨은 결코 습관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2. 이 기쁨은 싫증나는 기쁨이 아니다.
3. 이 감사와 찬송하는 일을 일생 동안 하여야 한다.[ 배은망덕하지 말라]
[ 주해 ]
이 말씀은 기독교인의 가정윤리요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
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
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
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가정이란 중요한 곳이다]
하나님은 에덴에 살기 좋고 먹을 것 풍성하게 최고의 낙원을 만드시고 사람을 친히 빚으셔서 그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최고의 축복 속에서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아담에게는 무엇인가 부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와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입니다.
1.가정은 하나님이 사람의 고독을 해결하여 주신 축복의 도구입니다.
너무나 좋은 제도인 것입니다.
저는 총각 때 교회를 개척한 적이 있습니다.
주일 밤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고 성도들이 다가고 난 뒤면 그 허전함
그 공허함은 저에게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정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3절에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체 하면서 서로 멀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4~5절에 보면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하면서 분방할 필요가 있을 때는 서로 의논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신의 은사를 받지도 못하였으면서 넘치는 정욕을 해결할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는데 이를 무시하다가 사탄의 올무에 걸려 넘어집니다.
3.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을 이어져 나가기에 중요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내대에 끝나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닌 천대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좋은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 합니다.
길목사가 아버지 입은 코트를 물려주시듯 우리도 좋은 신앙을 계승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가정은 참으로 중요한 것 입니다.
러시아의 격언 중에 “사랑하는 아들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해 하루에 한번 기도하라.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이 전쟁터에 나아가 전투를 하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해 하루에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결혼을 하여 새 가정을 꾸미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아내와 남편을 번갈아 가며 이를 위하여 서로 노력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1.이 말씀처럼 여성 동지 여러분에게 반발을 받는 성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도데체 남자가 뭐그리 대단하다고 하나님은 왜 남자 편을 드느냐고 반발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처음부터 아내가 남편을 복종할 이유부터 설명을 합니다.
21절을 읽습니다.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남편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남편이 훌륭하거나 남편이 탁월하다거나 그래서가 아닌 아내들이여 너희가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면 남편에게 복종을 하라
이렇게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도 그리스도의 명령이니 네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복종하라
그래서 남편에게 복종을 하지 않는 것은 남편을 머리로 세우신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2. 아내는 남편을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듯 섬기고
몸이 머리의 명령에 본성적으로 순종하듯 순종하라고 명령을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높여주는 남편은 인생에 있어서 행복자요 성공자 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보물로 여기며 가장존귀히 여기듯 아내들은 남편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어느 군대가 쳐들어와 한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이때 적군의 장수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포로로 잡아갈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다 풀어주겠다. 여자들은 즉시 마을을 떠나되 각자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을 한 가지씩만 가지고 가도록 허락하겠다.” 이 명령에 여자들은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하나씩 들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어떤 여인은 금붙이를 가져가기도 했고, 심지어 은수저까지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자그마한 한 여인이 엄청나게 큰 보따리를 힘겹게 끌고 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적군이 그 여인에게 다가가 “무슨 보물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냐? 그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그녀의 남편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적군은 “명령 위반이다. 보물을 하나씩 가져가라 했지 언제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드디어 여인은 적군의 장수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금붙이가 아니라 제 남편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적군의 장수는 이 여인의 지혜와 그 마음씨에 감동되어 남편을 데려가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아내가 남편을 보물같이 여기고 산다면 분명히 행복한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
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
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몇 년전 저는 서울 서초동 사라의 교교회 부근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한 적이 있었는데 진로에서 붗힌 간판 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라]
그러고 그 회장은 다른 여자를 보았다고 합니다
여자들을 보면 참 연약하고 고생들을 많이 합니다.
남편을 잘 섬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가 남편을 위하여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사랑을 기대 합니다.
이럴때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듸는 어떤 보약보다도 효과가 좋습니다.
영국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너무 무뚝뚝해서 부인이 이름 모를 병을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여보, 당신 죽으면 난 어떻게 해? 당신은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고 말하자, 아내는 얼굴이 환해지면서 “여보, 정말이에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당신이 하도 말을 안 해서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줄 알고 고민하다가 병이 되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늦었어요.” 하고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칭찬도 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Billy Sunday는 “처음 들을 때 아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칭찬해 주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말로 하기 쑥스러우면 편지를 써서 표현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의 권위만 내세우지 말고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1]오늘 본문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하시면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자기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알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수고하고 아내를 위하여 희생을 하면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을 할 것입니다.
[2] 허물을 덮어주는 남편이 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내의 죄와 허물을 생명 걸고 덮어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3]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결혼은 한 지체를 이루는 신비입니다.
부모를 자식이 떠날 수 없는 것 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은 불효 입니다.
이것은 본성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식과 부모 사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보다 더 연합이 되는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부자의 연을 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듯 부부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한 몸이요 한 생명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내를 내 몸 이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가정을 위한 최고의 말씀입니다.
이렇게만 산다면 행복한 가정이 아루어 질 것 입니다.
그러나 아담이후의 죄성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잇는 힘을 다하여 거부하고
아내를 최고로 사랑하는 것을 죄성은 교묘하게 방해하기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겟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