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부터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건설에 이
르기까지, 노동가요가 끼친 시기별 역할과 변화에 대해 정리한 것이
다.
1. 노동가요의 본격적인 출발 : '아리랑목동'에서 '파업가'까지
87년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노동자의 폭발적인 파업에 이어 5,000여개의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역사적인 승리의 횃불이었다. 이 투쟁은 많은 분야에서 노
동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고 민중가요진영 역시 새로운 고민을
하게 하는 출발점이었다.
폭발적으로 일어난 대공장투쟁에서 불려진 노래를 살펴보면, 울산
의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쟁취싸움에서는 '아리랑목동', '아침이슬',
'훌라송', 서울 지하철에서는 '뱃노래', '아빠의 청춘', '훌라송', 거
제의 대우조선에서는 그 당시 대공장투쟁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월
의 노래', '늙은 노동자의 노래', '훌라송' 등 다수의 민중가요가 불
려졌다. 거제 대우조선에서 보였던 이러한 특징은 노민추진영의 오
랜 준비결과로 '상고문'이 돌면서 시작된 투쟁에서 쟁의지도부에 의
해 현장대중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며, 당시 현장활동가 사이에서는
민중가요를 모르면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분위기
였다고 한다.
대공장에 비해 회사규모는 작지만 인재는 많았다는 중소기업 노동
자들의 투쟁에서 불려졌던 노래를 정리해 보면, 인천의 한독금속에
서는 '흔들리지 않게','훌라송', '임을 위한 행진곡', '불나비', '내
가 이세상에 태어나' 등 다수의 노래가 불려졌다. 인천의 경우 민중
교회운동이 발전하여 내부에 노동문제상담소와 문화담당부서가 있었
기에 싸움이 벌어진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쉽게 찾아와 자문을 구하
고 노래를 배울 수 있었다. 그 밖의 여러 사업장의 경험을 보면, 투
쟁이 깊어가고 철야농성이 시작되면서부터 '노동해방가', '농민가',
'광주출정가' 등의 노래와 여성사업장을 중심으로 '사노라면', '우
리들 이야기', '불나비', '시다의 꿈' 등 노동자의 삶을 담은 다수의
노래들이 불리워졌다.
지역과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민중가요를 접하기는 어려웠고 많은 현장에서는 대중가요와 군가를
부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런 노래로는 당시 절박한 노동자
의 요구를 담을 수 없었기에 투쟁은 새로운 내용의 노래를 요구하였
다.
87년 총파업의 긴장감과 폭발적 위력은 선진노동자, 활동가에게는
노동해방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까이 느끼게 해 주었고, 투쟁의 잔
영은 많은 사람들을 노동운동의 대열에 동참하게 하였다. 노래운동
진영에서도 기존의 민중가요 - 학생운동을 통해 창작된 노래의 흐름
과는 다른 노동자의 힘과 요구를 담은 노래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진
다. 구로지역의 투쟁을 이끌었던 노조 문화부장들과 지역활동가 김
호철, 그리고 마창지역에서 만들어진 '동지여 내가 있다', '고백'등
은 누구나 쉽게 배울수 있고, 더불어 노동자의 건강하고 힘찬 정서
가 팍팍 담겨있어서 노동자에게는 진짜로 필요한 노래로 자리잡았
다. 하나의 단결된 힘으로 뭉쳐서 승리를 향해 가자는 "흩어지면 죽
는다 "로 시작하는 '파업가'와 "피묻은 작업복은 파업의 깃발이다
"로 이어지는 '노동조합가'는 88년 여름과 가을을 거쳐 마치 들불
이 타 번지듯이 전국노동자의 가슴과 가슴에 꽂히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노동가요 탄생배경을 정리해 보면 첫째, 87년 대투
쟁 이후 당시의 전율을 담은 곡들이 88년 봄이 되면서 창작되기 시
작한다. 이 노래들은 노동자의 투쟁과 집회가 있는 곳에서 입에서
입으로 불려져 전국노동자의 사랑을 받게 된다. 둘째, 투쟁을 통해
각성된 노동자의 세계관을 담은 노동시의 발전은 노랫말로 녹아들어
이전까지의 민중가요와는 다른 힘차고 진취적이며 노동계급의 살아
번뜩이는 투쟁의 노래로 창작된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잘 정리한
시어와 음악의 만남은 노래를 투쟁을 이끄는 동력이며 무기로 서게
한다. 그 시절 노동시 창작자의 이름을 기억해 보면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등이며 이들에 의한 노동문학의 발전은 노동가요 창작에 많
은 영향을 미쳤다.
노래는 새로운 조직을 낳고 : 투쟁속에서 결성된 문화패
노동가요의 힘을 투쟁 속에서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지하철노조 등 대기업노조에서는 곧이어 일상적인 문화
소모임인 노래패를 구성하게 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의 민
주노조 건설투쟁에 맞선 자본측의 대응은 직장폐쇄와 위장폐업 심지
어 자본철수로까지 나타나 결국은 노동자의 생존권 사수와 농성대오
유지를 위해 문화선전대가 구성되고소단위 모임이 결성된다. 이들은
가두선전전과 지역내 연대투쟁의 선봉문선대로 활동을 하게 되고 이
후 지역마다 단일문선대 구성의 발전 경로를 갖는다.
또 하나의 특징은 대학노래패 출신 활동가들의 현장으로의 집중을
들 수 있다. 이들의 현장 참여는 많은 현장 문화소모임 구성의 실질
적 구심이 되었고,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높은 파급력을 갖게 된
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탄생하고 성장한 노동가요는 노동대중
의 광범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또한 높은 파급력으로 노동운동의 양
적 확대와 질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새날
이 밝아온다 "의 '전노협 진군가'는 89년에 창작되어 전국노동자의
단결의 구심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에 대중적 파급력과 현장
으로부터의 참여를 이뤄낸 상징적인 노래로 기억된다. 그리고 서노
협과 서노문협이 공동 기획했던 전노협 건설의 염원을 담은 '노래판
굿 꽃다지'도 문화행사를 통해 전국노동자를 하나로 묶는데 많은 영
향을 끼친 사업으로 평가된다.
2. 90년 이후의 노동가요
87년 이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민주노조운동은 공안정국으로
시작된 90년에 접어들어 갖가지 악법과 제도를 동원한 침탈과 여론
을 이용한 이데올로기공세 등 정권과 자본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더우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정권은 물리적인 강
제수단까지 동원하여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마구잡이 탄압을 자행하
고 한편, 3당합당(민자당결성)으로 총자본의 선봉임이 확인되었다.
작업장안에서는 '신경영전략'에 의해 노동통제가 날로 강해지고 기
업문화운동의 전개로 노동자의 일상적인 생활에까지 자본의 논리가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정말 좋은 시절 다 가고 새로운 시련이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상황이었다.
전술가요, 풍자가요, 생활가요의 등장
이 시기에 나타난 노래운동 진영의 특징은 창작의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철의 노동자', '다시 또
다시', '연대투쟁가' 등 목적 의식적인 전술가요와 '1노2김가', '들
어나 봤나', '쓰레기 청소가' 등 당시의 시대상황을 풍자 비판하는
풍자가요, 그리고 노동자의 하루일과를 다룬 '진짜노동자3', '달동네
부푼꿈' 등 일상생활을 주요 소재로 한 노래들이 창작되었다. 그러
나 이러한 노동가요 창작진영의 노래들은 앞서 정리한 시기에 창작
되었던 노래만큼의 파급력을 갖지는 못했다. 다양한 요구에 맞춰 의
욕을 갖고 다방면으로 창작활동을 시도하였으나 현장대중과 함께 호
흡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노동운동 발전과 함께 성장하던
노동가요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계속되면서 전반
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드는 노동운동의 영향을 받아 점차 쟁의기간에
만 부르는 노래로 굳어져 갔다.
·전국차원의 기획사업과 노래패조직의 안정화 :
이 시기에 주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전국단위의 기획사
업과 노래를 매개로 한 소모임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전국단위 기획사업을 살펴보면, 전국 문화국수련회, 노래테이프 제
작, 노동가요모음 노래책 출판이 전노협문화국에서 주도하여 이루어
졌고 주간노동자신문사 주최 노동자 가요제가 열리고, 전노협 문화
국, 서노문협, 민예총 공동기획사업으로서 '90, '91 '노래판굿 꽃다
지'가 공연되었다. 위의 사업들은 당시의 문화 담당자와 노동대중,
청년학생 그리고 진보적인 시민대중에게도 노동예술의 기획사업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리잡게 된다.
이 시기에는 단위 사업장, 지역별로 노래 소모임이 안정적으로 자
리잡게 된다. 이들의 활동은 봄에는 공동임투 문선대로, 가을철에는
지역별 가을맞이 문화제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연대를 실천하게
되고 지역단위로 노래패연합의 모습으로 발전해간다. 노래패연합으
로 발전한 구로지역의 노래패연합, 인천지역 노래패연합, 마창지역
노래패연합 '땡감' 등이 기억난다.
3. 신한국 이후의 노동자노래운동
무쟁의원년 선포, 노 경총 임금합의, 총액임금제 실시 등으로 개
혁적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는 깨어지고 김영삼정권 역시 총자본의
선두적 방패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또한 잃었던 현장내부의 영향력
이 신경영전략에 의해 서서히 살아나고 상대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현장에서 밀리는 침체기로 정리된다.
침체의 늪
93년 이후 현재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많은 정서를 뚫고 나아감
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담은 내용의 노래가 창작되어지지만 현장대
중들의 가슴속 깊이 박혀지는 노래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리는 말은 '노래가 어렵고 가사가 길다'
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최근의 노동가요는 현장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작물의 이러한 한계의 배경에는 첫째, 현장운동
의 침체를 들 수 있다. 노동가요가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폭발적으
로 자리잡았던 탄생의 배경이 있었듯이 최근의 현장정서를 뚫고 나
아감에 적지않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둘째, 창작진의 예술적 역량
이 축적되지 못한 한계를 꼽을 수 있다. '바위처럼', '또다시 앞으
로', 전술가요로 나온 '우리는 염원한다 민주노총을', 그리고 최근에
많이 불려지고 있는 '가자! 노동해방' 정도의 노래가 그나마 노동대
중에게 기억되는 노래로 볼 수 있다. 셋째, 노동문학의 쇠퇴(노동시
의 창작 부재)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창작의 부재와 더불어 나타나
는 문예활동가들의 현장으로부터의 이탈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4. 앞으로 노동자 노래운동의 과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총자본의 움직임에 맞설 수 있는 노동진
영의 계급적 단결인 산업별 조직 건설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경제
적 안정, 사회적 참여를 이뤄내는 것, 그리고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
뤄내는 것 등을 당면한 운동의 몇가지 원칙으로 삼고, 노래운동도
다양한 방식과 접근을 통한 문화적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고 풀어가
야 할 것이다.
첫째, 쉽고 빠르게 힘을 모을 수 있는 노래의 창작이 요구된다. 민
주노총건설 이후 노동가요 정서에 대한 다양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창작진영의 과제가 있다. 현재의 노동가요가 사무전문직 조합
원이 소화하기에는 다소의 거리가 있다는 지적과, 제조업 현장에서
의 최근 상황을 돌파하고 힘을 결집하는 노동가요가 필요하다는 요
구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고민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변화 발전과 함
께 하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 해결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더 많은 실
천과 넓은 시각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둘째, 기업문화에 대응한 노조의 실천활동 중 문화적인 부분에 대
해서 고민할 수 있는 대오로서의 노래소모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지
금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조합내 일상적 실천을 바탕
으로 조합원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해나가야 한다.
셋째, 노동가요를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전문일꾼들을 육성하
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일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실천하면서 침체의 늪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
다.
토 론 문
1. 요즘 노래테이프의 보급의 효과는 어떤가?
= 근래 노래방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 술집문화가 바뀌고 노래도
규격화 문화로 바뀔뿐 아니라, 집회에서 오래동안 노래부르는 것도
지겨워하고 선진노동자 이외에는 평상시에도 노동자노래를 자주 접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래테이프가 행사나 쟁의때에만 사용되는 정
도라 배급도 예전만 못하다. 더구나 재정문제 때문에 테이프를 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아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 대기업의 노동조합의 체육대회같은 행사때 노래패나 문화팀의
진보적 문화운동단체가 주관하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의 문제인가?
= 능력의 문제보다는 회사에서 소위 운동권 문화단체에 대해 재정
지출을 기피하고 하물며 노조에서조차도 진보적인 노래운동 단체에
게는 실질적인 지출을 하지않는 관행을 깨지 않는 것이 문제다.
3. 신경영전략 등에 맞선 노동운동의 지형변화에 따른 문화운동의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한다면?
= 기존의 문화운동을 풍물, 노래 등 선전 선동성이 뛰어나 도구
적 개념에서 바라본다면 이제는 관습, 예의 등 총체적이고 광범위한
범주에서 바라봐야 한다. 요즈음 '문예에서 문화로'라는 얘기를 하
고 있는 데 바로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의 신경영전략을 현장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을 확보하는 정도
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축적논리에 노동을 전면적으로 포섭하고 종
속시켜 나가려 하고 노동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를 포함한 노동자의
의식과 삶과 미래의 전망을 기업내에 실질적으로 포섭하려 한다. 현
대의 경우 울산에 호텔에 버금가는 현대문화관을 지어 다양한 프로
그램으로 흡인하고 있다. 자본투자면에서 기본적으로 역부족일 수밖
에 없을 것이지만, 현대중공업노조는 1500만원을 들여 문화공간을
마련하려고 시도한다든지 거제 대우조선의 경우 복직기금 3억을 들
여 정문앞의 건물을 구하여 대응하려 하고 있다. 단협에서 교육시간
을 확보하여 대항문화교육을 하거나, 사내 폐쇄회로 또는 유선TV의
시간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4. 가요는 '무의식'이라고 규정하기도 하는 데 88년 이후 '의식
적'인 노동가요가 나왔다는 점이 평가될 수 있다. 자본의 신경영전
략도 '의식'적인 문화전략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