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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월간마운틴-2006년9월호-경산시경계종주
늦여름의 종주산행
발백산~환성산~팔공산~금박산…8구간 120.5㎞ 글·사진 황소영 기자
◇ 경북 경산시 남천면과 청도군 매전면을 잇는 이현재. 8월 현재 도로포장 공사가 막바지 진행 중이다. 정상 턱밑까지 차량 통행은 가능하다. 사진은 산행 초입인 절개지 사면.
경상북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경산시는 경부선과 대구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국도4호(산업도로)와 25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다.
대구광역시 기준 동쪽에 포진해 포항·경주·울산·부산 등 영남 남동쪽에서 대구로 진입할 시 거쳐야 할 관문이 돼주니 대구와는 공생관계로 맺어진 끈끈한 형제도시쯤 되겠다.
그렇다 하여 온전히 대구의 협력자로 그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삼한시대 압독국부터 문화적 태동을 시작한 경산은 원효대사와 설총,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가 출생한 지역이자 김유신이 군주로 있으며 삼국통일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 핏줄을 거스를 수 없었는지 영남대·대구가톨릭대·대구대·경일대·대구한의대 등 10개가 넘는 대학에 학생 수만도 무려 13만여 명. 부설 연구소 역시 100여 개 남짓,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대학을 보유한 도시 중 하나다.
진량과 자인공업단지 등에는 1천 개가 훌쩍 넘는 중소기업이 있으며, 포도·복숭아·대추 등 작물 수확에도 소홀함이 없다니 교육과 산업과 자연이 어우러진 도농 복합적 기능도시라 하겠다.
사실 산꾼들에게 알려진 경산의 명산은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원효사·천성사·불굴사 등이 들어선 팔공산(1193m) 정도. 그나마 이 산마저 ‘대구의 산’으로 인이 박힌 터라 성곽처럼 사방이 산에 폭 둘러 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산악인의 발길이 잦은 곳은 못 된다.
경산의 대표적 산으로는 ‘서로 고리를 걸어 당기는 형상’인 환성산, 하양읍의 주산으로 금호강 조망이 좋은 무학산,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격전했다는 초래산, 경산시 동북 중앙권을 연결하는 금박산,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경산 최동단 구룡산, 원효대사가 창건한 반룡사를 품은 반룡산, 용산산성과 무지개샘이 볼만한 용산, 남산면의 주산 대왕산, 원효대사·설총·일연의 위업이 서린 삼성산, 원효와 설총의 출생과 수행 설화가 깃든 현성산, 이 산의 정기 덕분에 8정승이 태어날 것이라 전하는 선의산, 말이 뛰어 하늘로 승천할 듯한 마암산, 학이 날아가는 모습의 동학산, 임진왜란 때 최응담 의병장이 활동했던 금성산, 경산의 정남쪽에 솟은 백자산, 임진왜란 때 경산향교의 오성위패를 보호해준 성암산 등이다.
120.5㎞에 이르는 둘레산길 종주산행 코스
경북 경산은 서쪽으로 대구광역시, 동남쪽으론 청도군, 동북쪽엔 영천시 등과 맞닿은 경북의 내륙도시로, 시의 가장 동쪽은 용성면 매남리, 서쪽은 남천면 산전리, 남쪽은 남천면 하도리, 북쪽은 와촌면 음양리에 닿는다.
전체적으로 물길이 적은 편이지만 동쪽의 하양읍과 영천시 금호읍 사이(신대잠수교), 서쪽 대구시 동구 및 수성구와의 경계를 금호강이 가르며 시의 목 부분에 푸른 강줄기를 드리운다.
그밖에 청도군과 이웃한 석현교, 대구와 맞닿은 신매교와 사월교, 대정수문이 있는 오목잠수교, 북쪽 영천시와 경계인 와촌교, 대구대학교로 들어서는 대구대교 등의 수계가 있다.
건널 수 없는 물길은 거의 없으므로 경산시 둘레산길 종주산행 거리는 금호강과 기타 하천을 포함 대략 120.5㎞가 된다.
보행속도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겠으나 당일산행으로 끝내려면 8구간이 적당하다.
대체로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와 정상리를 거쳐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로 넘어가는 8번 군도에서 1구간을 시작한다.
지난 3월호에 소개한 청도군 둘레산길(187㎞) 역시 이곳에서 출발했는데, 1~2구간은 경산시와 같으며 3구간 상원산 직전에서 경산은 북으로, 청도는 남서로 방향이 달라진다.
두 시군 모두 대구광역시와 맞닿아 있다.
마지막 8구간 구룡산에서 1구간 출발점인 정상약수터고개까지도 청도군 둘레산길 10구간과 길이 겹친다.
1구간 갈고개와 2구간 남성현재, 5구간 능성고개에는 휴게소와 식당이 있다.
3구간 성암산~월드컵경기장 구간은 시민체육공원으로 산행객과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복잡하며, 4구간은 공장지대·공사장·하천·제방·논밭·도로 등을 거치는 도심이다.
둘레산길 위로 솟은 산으로는 1구간 발백산과 반룡산, 2구간 대왕산·선의산·용각산, 3구간 동학산·병풍산·성암산, 5구간 환성산, 6구간 팔공산(갓바위). 7구간 환지봉, 8구간 금박산 등인데 도심 통과가 대부분인 4구간엔 이름을 얻은 마땅한 산이 없다.
2구간 용각산 정상은 둘레산길에서 약간 벗어나 청도읍으로 치우쳐 있지만 갈림길에서 왕복 500m의 가까운 거리이므로 한번쯤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8구간 영천구룡산에서부터 반룡사 삼거리까지의 4.50㎞와 비오재 삼거리에서 동학산 삼거리까지는 비슬지맥과 산길이 겹친다.
경산시 둘레산길 종주산행에는 1:5만 지형도 대구·영천·동곡·청도 총 4매가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인적 드문 산들이 많아 여름철엔 잡목과 가시풀로 진행이 힘들며, 독도에 주의할 구간도 적지 않다.
다만 최근 지역 산악회들의 종주산행이 활발히 진행되는 추세여서, 표지기를 따른다면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이현재에서 출발, 선의산 가기 전에 만나는 바위 전망대. 선의산 정상보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훨씬 볼만하다.
이현재에서 선의산까지
어느 지역이든 그곳을 대표하는 산, 그래서 전국에 골고루 퍼진 산꾼들 사이에 각인될만한 산들이 적어도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경북 경산엔 딱히 그렇게 드러낼 산이 없다.
팔공산을 제하고 그나마 전망 좋은 곳을 꼽자면 청도군과 경계를 이룬 시의 남쪽 선의산~용각산 정도. 한국조폐공사 경산조폐창 산악회 남세현 회장이 추천한 길이다.
이현재를 출발, 선의산과 용각산을 거쳐 남성현재로 내려서는 이번 산행의 도상거리는 약 11㎞. 남회장의 GPS 기록은 13.2㎞로 표시하고 있다.
휴식과 점심식사 포함 7시간쯤 걸린다.
이번 산행에는 남세현 회장을 비롯 지난 2월 청도군 둘레산길(본지 06년 3월호)에 동행했던 백종회(www.k2alpineclub.org) 회원 김병춘·황병재·권한철씨와 신참내기 경찰 신동화씨가 동행이 된다.
백종회는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후 대구 K2산악회에서 독립한 소모임’으로 9정맥 완주를 목표로 한 준족들의 산악회다.
1999년부터 대간 종주를 시작해 지금은 1대간 포함 8정맥(낙동·낙남·금남호남·금남·호남·한북·한남금북·한남)을 완주한 상태며, 금북 하나만을 남겨뒀다.
차량 한 대는 하산 지점인 ‘남성현쉼터’ 그늘 속에 세워두고 나머지 차량으로 초입인 이현재로 떠난다.
최근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개통됐지만 아직도 공사 진행 중. 차량 진입을 막는 구조물 앞에 차를 주차하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든다.
경산시 남천면과 청도군 매전면을 잇는 이현재 정상 우측 절개지 사이로 산행 초입을 알리는 리본 몇 개가 달렸다.
간벌로 쓰러진 나무둥치를 넘어서며 5분쯤 올라서자 곧 능선. 대구 옆 동네니 그 더위야 이미 각오한 터.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마냥 마구마구 땀이 쏟아지는데, 남회장의 말로는 그나마 며칠 전보단 한결 수월해진 날씨란다.
3교대 근무하며 쉬는 날마다 경산의 산들을 속속들이 올라선다는 남회장에겐 지독한 더위나 인적 드문 산길도 그리 어색한 풍경이 아닌 모양이다.
청도산악회의 둘레산길 산행 표지기를 비롯 간간이 안내 리본이 보이지만 길은 대체로 한적하고 습하며 날카롭다.
“아얏! 아흐” 가시가 살갗을 스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잽싸게 쏟아진다.
이미 경산시 둘레산길을 완주한 권한철씨는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다.
피부가 약해 여느 동행에 비해 흉터가 심한데도 긴 옷은 답답해 입을 수 없단다.
하룻밤만 지나면 진정이 된다니 다행이지만 선두에 서서 길을 헤치는 그이의 모습에 뒷사람들이 더 안달복달 걱정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전망바위에 닿는다.
발 아래로 두곡리 두실과 신천지가 내려다 뵌다.
권한철씨가 얼려온 과일 통조림이 아삭아삭, 입안에서 기분 좋은 소리로 씹힌다.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산행 때마다 꺼내온다는데, 배낭 속엔 복숭아·파인애플·포도 통조림이 하나씩 들었다.
황병재씨 말처럼 슈퍼마켓이 따로 없다.
여름 산행엔 최고의 행동식이다.
전망바위에서 3분쯤 진행하면 선의산이 0.7㎞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금정골(도성사) 하산로는 3㎞다.
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며 땀을 좀 뺀 후에야 선의산에 닿는다.
경산 남천과 청도 매전의 경계를 이루는 선의산 정상석(2000년 1월 1일 세움)에는 ‘남천면의 주산으로 쌍계산이라고도 하며 선녀가 하강하여 춤을 추는 형상이라 선의산이라 했다.
이곳의 정기를 받으면 8정승이 태어난다는 설화가 있다.
산의 정상에는 용정이라는 샘이 있어 가뭄이 심할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적혔다.
선의산 정상에는 일제 때 묻어둔 쇠말뚝(길이 1.5m, 지름 1.5㎝)을 뽑아 기념한 돌 하나가 올려져 있다.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으로 정상석을 찍을 때마다 김병춘씨의 휴대폰은 계속 ‘스마일~’을 외치고 있었다.
“이야, 이 휴대폰은 참 친절도 하네. 돌한테도 웃으라고 얘길 다 해주고.” 그 말에 정작 웃어버린 건 더위에 지친 일행들. 이름 때문에 ‘봄병아리’란 애칭을 갖고 있는 김씨는 이미 환갑의 초로가 되었지만 99년부터 지난해까지 1대간 9정맥을 모두 완주했고, 현재는 6기맥 8지맥을 종주 중이다.
그러니 함부로 “힘들다, 어렵다”, 젊은 사람은 투정도 할 수 없다.
닉네임도 ‘산마루’로 바꿨다는데 그이의 단단한 어깨와 허벅지에선 환갑의 나이가 오히려 어색하다.
◇ 전망바위를 지나 선의산을 오르기 위해 진행 중인 취재진.
용각산에서 남성현재로 내려서다
오후 12시 33분, 정상을 벗어난다.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용각산이 5㎞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있다.
도성사까지는 3.3㎞다.
적당히 햇살 숨은 곳을 골라 도시락을 펼쳐 놓는다.
남세현 회장의 도시락이 제일 튼실하다.
아내 역시 조폐공사에 근무하며 산악 활동을 하는 터라 아무래도 산꾼이, 산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제일 잘 아는 탓이리. 열어둔 반찬통으로 쉴 새없이 날벌레와 개미떼가 몰려든다.
1시간을 미처 쉬지 못하고 다시 산행에 나선다.
초록 숲 사이로 언뜻언뜻 우람한 산세가 드러나더니 11시 방향에 용각산이 지척이다.
오르막과 평지를 번갈아 내보이던 길이 소나무 숲으로 변신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청신한 솔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이정표에는 거리 표시 대신 ‘선의산 1시간’ ‘용각산 30분’이라고 적혔다.
용각산은 둘레산길에선 다소 벗어나 있다.
용각산과 남성현재로 갈리는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두고 왕복 500m의 산 정상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삼거리엔 ‘내 고장 바로 알기 캠페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경산시민모임이 주최하고 경산시산악연맹준비위원회가 주관, 경산시와 경산신문사가 후원한 ‘2006 경산시 경계 일주’란다.
둘레산길 산행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마땅한 그늘이 없어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오르는 용각산 길은 억새와 철쭉군락이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아련한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용각산으로 오르는 길엔 새소리마저 잠잠하다.
삼거리에서 용각산은 약 5분. 바위로 이뤄진 정상에는 지글지글 열기가 솟는다.
청도군 청도읍과 매전면, 경산시 남천면의 경계를 잇는 용각산은 사실 경산보다는 아무래도 정상을 안은 청도 사람과 더 친숙하다.
용각산에는 말 발자국 형상과 바위에 말고삐를 맬 수 있는 기묘한 바위 구멍이 있어 ‘옛날 장수가 용마를 매어 두었다가 용마를 타고 청도 앞산, 즉 남산의 지맥인 와우산까지 날아갔다’는 설화가 전한다.
정상부 밑에는 선의산과 마찬가지로 용샘이라 부르는 우물이 있는데 옛날에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어 넣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었다 한다.
지금은 메워지고 흔적만 남았다고. 전설 가득한 용각산 정상에 서면 군사시설을 머리에 얹은 상원산과 영남알프스 산군, 또 비슬지맥 등이 바라다 보인다.
용각산을 떠나 오후 3시 16분, 삼거리로 돌아온다.
이제 남성현재로 내려서는 일만 남아 안심했는데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질 않다.
오르막이 시작되며 작은 봉우리가 나타나더니 남성현재까지 90분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용암온천까지는 약 2시간 거리. 산 아래로 보리고개를 넘나드는 차량의 소음이 들릴 뿐, 우리가 자가용을 주차해둔 남성현재는 나올 생각도 없다.
정상 하산이 곧 끝은 아니다.
“남성현이란 고개 이름이 꼭 사람 이름 같아요”라고 무심코 얘기하자 조폐공사산악회 남회장이 “우리 집안 친척뻘”이라고 너스레다.
그의 이름이 남세현이니 그리 터무니 없는 농담은 아니겠다.
산행 초입 고개는 이현재였는데, 그러고 보면 그 고갯마루도 꼭 사람 이름 같다.
3년 전 권한철씨와 함께 경산 둘레산길을 끝낸 남회장은 작년엔 소속 산악회와 종주 완료, 지금은 청도군계를 산행 중이다.
가까운 곳을 놓치고 먼 곳으로만 떠나려는 산악인들에게 인근 지역 산부터 차근히 돌아보는 일은 권장할 만하다.
안산 헬기장을 지나면서 길이 점점 낮아진다.
자박대는 등산화 소리에 놀랐는지 나무 뒤로 줄행랑 치는 두어 마리의 멧돼지가 보인다.
차량 소음이 다시 가까워진다.
오후 5시 5분, 아직도 한없이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 기회에 경산시 둘레산길을 시작하겠다”는 김병춘씨만 외로이 도로 너머 숲으로 사라지고, 나머지 일행들은 달궈진 얼굴을 식히며 산을 떠날 뿐. 이 지친 더위도 곧 저 산들과 강을 지나 머나먼 여행길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