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詩에 경건한 멜로디 붙여 세상 떠난 이들 위로했죠
입력 : 2022.11.07 03:30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래
두 자녀 그리며 써낸 시 다섯 편 골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만든 말러
영혼 위로하는 기도문 만든 슈베르트
▲ 프란츠 슈베르트가 1816년 작곡한 가곡 ‘연도문(Litanei)’ D343은 독일 시인 요한 야코비가 1776년 발표한 ‘모든 영혼의 안식을 위한 기도문’에 경건한 악상의 멜로디를 붙인 거예요. 사진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음악 방송에서 슈베르트의 연도문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갑작스럽게 가족과 이별한 슬픔은 말로 헤아리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두려움과 슬픔 없는 천국에서 잠들기를
먼저 언급할 음악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연가곡(連歌曲)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가곡이란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연가곡은 여러 개의 독립적 악곡을 내용에 따라 체계적으로 엮은 거예요. 말러는 큰 규모(스케일)의 교향곡을 쓴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깊은 서정을 담은 가곡도 많이 남겼고, 이 가곡의 음을 교향곡의 주된 선율로 사용하기도 했죠.
말러가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작곡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모두 다섯 곡으로 되어 있어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작품을 가사로 사용했습니다. 뤼케르트는 성홍열(전염병 중 하나)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두 자녀를 그리며 1833년부터 이듬해까지 시 428편을 썼는데요. 이 곡은 그중 다섯 편을 골라 만들었어요.
다섯 곡의 가사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담한 심경을 탄식조로 나타내며, 때로는 과거의 행복을 회상하며 어린 영혼의 안식을 바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첫 번째 곡인 '이제 태양이 떠오르려 하네'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후 처음 맞이하는 아침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곡 '왜 그토록 어두운 눈빛으로'는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려는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며 머지않아 그가 천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예감을 그립니다. 세 번째 곡 '너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항상 엄마의 곁에 있었던 아이의 부재를 안타깝게 실감하는 내용이며, 네 번째 곡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는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가 먼 곳으로 외출했다고 생각하려 애쓰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 곡 '이렇게 폭풍이 부는 날씨에'는 험한 날씨에 아이들을 결코 밖에 내보내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표현되며 결국 두려움과 슬픔이 없는 천국에서 잠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이지요.
말러가 이 노래를 만들 당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창작력도 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아내 알마 말러가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불과 2주 된 시점에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알마는 말러가 쓴 작품의 내용 때문에 불안감을 나타냈다고 해요. 아이를 떠나보낼까 두려웠던 거지요. 그런데 이 예감은 현실이 됐어요. 1907년 그의 첫째 딸 마리아가 5살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이 사건은 말러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짙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오페라 작곡 중단하고 추모곡 만들어
두 번째 작품도 알마 말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생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는 스승인 아널드 쇤베르크, 동료인 안톤 베베른과 함께 '제2빈악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죠. 그가 생애 마지막에 쓴 바이올린 협주곡은 '천사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18살에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난 소녀를 추모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마농 그로피우스로, 말러 사후 건축가와 재혼한 알마가 남편 그로피우스와 낳은 딸이었어요. 마농이 세상을 떠나자 평소 마농을 귀여워했던 베르크는 큰 충격을 받았고, 당시 작업하고 있던 오페라 '룰루'의 작곡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협주곡을 만드는 데 집중해 4개월 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지요. 안타깝게도 베르크 역시 작품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35년 12월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사망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치 자신을 위한 진혼곡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협주곡은 두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각 악장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시작의 느린 부분은 작품 전체의 어두운 분위기를 암시하며, 이어지는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 대목에서는 오스트리아 춤곡의 리듬을 사용해 마농의 밝은 성격을 그리고 있습니다. 강렬한 불협화음과 바이올린 독주의 자유로운 카덴차(악곡이나 악장이 끝나기 전 독주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풍 악상이 등장하는 2악장의 첫 부분은 알레그로(빠르게)로 전곡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이어지는 아다지오(매우 느리게) 부분에서는 바흐의 칸타타 60번의 멜로디를 인용하며 마치 누군가 조용히 사라지듯 작품이 끝맺어지지요.
"떠난 사람들이여 평화롭게 쉬기를"
지난 2일은 천주교와 일부 기독교 기념일 중 하나인 '모든 영혼의 날'이었습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죠. 이와 관련된 가곡을 소개합니다. 프란츠 슈베르트가 1816년 작곡한 가곡 '연도문(連禱文·Litanei)' D343입니다. 연도문은 제사장과 회중(모임에 온 사람들)이 번갈아 부르는 기도문을 뜻하는데요. 슈베르트는 독일 시인 요한 야코비가 1776년 발표한 '모든 영혼의 안식을 위한 기도문'에 경건한 악상의 멜로디를 붙였습니다. 기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평화로이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 / 두려운 고통을 다 겪고 / 달콤한 꿈도 끝났네 / 삶에 지쳐, 태어남도 없이 / 이 세상에서 떠난 사람들이여 / 평화롭게 쉬기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85년 작곡한 가곡 '위령절(慰靈節·Allerseelen)' 역시 많은 성악가가 애창하는 명곡입니다. 위령절은 모든 영혼의 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곡은 그가 최초로 출판한 가곡집인 작품 번호 10에 담긴 여덟 곡 중 마지막 곡이에요. 오스트리아의 시인 헤르만 폰 길름의 시에 음을 붙인 이 노래는 꽃피는 5월에 자신을 떠난 영혼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모든 무덤에 꽃이 피고 향기롭다 / 1년 중 하루는 죽은 자를 위해 자유로워지는 날 / 나의 가슴으로 오라 내가 너를 다시 안을 수 있도록 / 마치 예전 5월의 어느 날처럼.'
▲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 /KBS·위키피디아
▲ 오스트리아 출생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 /KBS·위키피디아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김주영 피아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