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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아이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하지만 최근 ‘나부터 교육혁명’이라는 두툼한 책을 펴낸 강수돌(42)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두손을 내저으며 외친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한다면 시골로 가야죠!”
서울로,강남으로,대치동으로 향하는 여느 부모들과는 반대로 강 교수는 과천에서 청주로,다시 조치원 서당골로 주소를 옮겼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고려대 조치원 캠퍼스의 교수로 임용되었기 때문이지만 그는 시골에 귀틀집을 짓고 고향의 부모님까지 모셔다가 4년째 ‘제대로’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강 교수가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식구들의 요강을 뒷간의 큰 오줌통에 버리는 것이고,큰 통이 다 차면 거름밭에 뿌리고,그 거름을 또 그의 어머니가 일구는 텃밭에 뿌린다. 집이 마을과 떨어진 외딴 곳이라 초등학교 2,3학년인 셋째 한울이와 둘째 아롬이는 매일 10리 길을 걸어 학교에 오간다.
불편하고 수고로울 것 같은 시골생활에 대한 식구들의 반응은? 뜻밖에도 대만족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강 교수의 아내 조경선씨야 어릴 적 시골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손치더라도 중학교 3학년인 맏이 한결이 역시 “과천에 있을 때보다 더 좋다”며 만족감을 표현한다는 것.
“살아있는 자연이 그 어떤 책보다 좋은 교재지요. 우리 아이들은 집 뒤의 산이며 과수원을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개미하고 얘기하기도 하고,지렁이를 보면 다시 흙 속으로 넣어줍니다. 심성이 세상을 향해 열리는 거죠.”
강교수의 시골생활은 ‘아이들 다 키워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낭만적인 귀농과 다르다. 30년 전 자신이 겪었던 교육 시스템이 그대로 대물림되고,초등학생 자살 같은 교육문제가 보편화된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우리사회의 교육을 살리기 위한 ‘나부터’ 운동 차원에서 ‘귀거래’의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내가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바로 지금 여기서 얼마나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지더군요. 학교 성적이나 좋은 대학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더란 말입니다. 지금의 경쟁적인 도시의 학교교육은 성적이 좋은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모두에게 상처가 될 뿐이니까요.”
주변에서는 최소한 한결이는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하지만 강 교수 부부의 생각은 다르다. 벌써부터 지난해 한결이가 예비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 대안학교를 점찍어 놓았다.
“대학문제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도 된다고 봅니다. 정말 하고 싶은 전공을 향해 최선을 다해보고,성적이 부족하면 1년 더 공부해서 재도전하면 되죠. 남보다 좀 늦으면 어때요. 꼭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속도로 달려야 하나요?느긋한 시야를 가지면 성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답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문제점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무조건 일류대를 나와야 한다’는 일류대학 강박증이 첫번째고,그 다음은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조급증이다.
마지막은 ‘얇은 귀’. 웬만큼 줏대를 분명히 세우지 않으면 “참교육이니 인간교육이니 그런 고지식한 얘기만 하다가는 나중에 자식들한테 원망듣기 딱 좋지…” 혀를 끌끌 차는 옆집 아줌마의 한마디에 남다르게 키워보려던 결심이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잘못 배운 것 같기도 해요. 아이에게 인생과 돈과 에너지를 다 투자하고 헌신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를 일류학교에 넣으려고 학원도 보내고 닦달하는데,출발점은 사랑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학대가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사랑법은 어떤걸까. 부모들이 자신의 삶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아이의 입장과 의견을 들어보고 헤아려주는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정보를 모아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이 부모의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강 교수라고 교육에 통달한 것도 아니고,매일 공자님 말씀만 읊는 성인군자 아빠도 아니다. 그도 자신의 결심과는 달리 벌컥 화를 먼저 내는 ‘약점’이 있다.
“한결이는 이제 슬슬 아빠의 모순점을 지적하거든요. 지나가면서 ‘아빠는 왜 화를 내는 거야?’ 한마디 툭 던지면 그제서야 저도 ‘아차,그래’ 하면서 후회하곤 하죠.”
현재 강 교수 가족은 귀틀집을 떠나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안식년을 맞은 그가 위스콘신 매디슨대학의 초청을 받은 것. 지난 7월 말 미국에 도착해 아이들은 새 학기부터 미국학교에 다니고 있다(기자도 추석 직전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그와 접촉할 수 밖에 없었다).
강 교수는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수업을 못 따라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왜 우리 공교육은 미국의 좋은 아이디어를 수용하지 못할까에 골몰하고 있다.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주사위를 던지며 숫자를 배우는 놀이교육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란 탓이다. 생활도 여전하다. 아파트 같은 연립에 살고 근처 월마트에 쇼핑도 가지만 길에 버려진 책상을 주어다가 재활용 하기도 하고,집값에 수도료가 포함되지 않건만 이곳에서도 요강을 쓰고 있다.
“시골로 옮길 수 없다면 아이들과 함께 주말농장이나 시골 텃밭체험을 떠나 자연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학원 대신 동네 엄마들끼리 공동육아를 계획해보는 것도 권할만 합니다. 물론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죠.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계속 가도 길이 열리는 건 아니거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저처럼 나부터 바꾸겠다는 부모가 하나씩 늘어나면 언젠가는 교육이 제 자리를 찾으리라 믿습니다.”
<강수돌 교수가 제안하는 부모들을 위한 지침>
①경쟁심리에서 벗어나라. 우리 아이는 다른 애보다 특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②아이들이 욕구를 솔직히 표현하도록 들어주고 받아주라.
③'밥상혁명'부터 시작하라. 아침에 가능한 한 현미 잡곡밥을 먹고 등교하게 하라.
④공부와 성적에만 신경쓰지 말고 아이의 담임은 어떤 분인지,친한 친구가 누군지 등에 관심을 보여라.
⑤아이들이 병나기 전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애들이 뭐든지 될 것 같은 착각을 버려라.
⑥부모의 마음을 먼저 열어라. 아이들의 고민을 차분히 들어주고 함께 놀며 문화생활을 함께 하라.
권혜숙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200309180000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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