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수감사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감사해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 본 문 : 고린도전서 1장 1절 - 9절 (신약성경 263쪽)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아멘!
오늘 주일은 1년 동안,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먼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인사와 축복기원을 한 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우리의
신앙을 지켜갈 수 있도록 은사를 공급해 주시되, 은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계속해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라!’ 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멋진 사람은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먼저 좌석에 앉아서 기도를 합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덩치가 산더미 같이 엄청나게 큰 흑인 여자가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를 다섯 명이나 데리고
자기의 옆자리에 비집고 앉는 것이었습니다.그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과연 그 목사님은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요.
“하나님! 지금 제 옆에 앉은 이 여자가 저의 아내가 아닌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깊이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좋은 면, 밝은 면, 아름다운 면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울 때, 우리 인생의 즐거움은 행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감사」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구절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약 178개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그만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말로도 번역이 된 책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정상에서 만납시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저자의 이름이 좀 특별한데 ‘지그 지글러(Zig Zigler)’ 라는 분입니다.
그가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는데, 그 자서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자신은 혼자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과 천사가
자신과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깨닫고, 그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합니다.
그 다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서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귀한 동반자였다.' 고 감사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이웃들을 향해 감사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고
참으로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 그들에게 감사 외에 다른 할말이 없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마지막 결론을 이런 글로 마무리 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든 삶이 나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린 하나님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이웃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제목의 책도 있습니다. “백만 번의 감사” 라는 책인데, 실제로 그 책 속에는 다른 내용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내용이 백만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책을 펴서 거기 기록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내용을 백만 번 반복하면
마음에 감사가 넘치면서 감사 찬양이 저절로 나오고, 그러면서 놀랍게도 육신이
치유를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삶이 감사축복으로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한 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백만 번의 감사고백’ 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인간의 성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면, 성공입니까?
높은 권세를 누렸다고?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얼마나 많이 감사하며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생각할 때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깨달은 것은, 은혜 많이 받았다고 많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깨닫는 부분만큼만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의식이요. 의식과 감성이 합쳐지는 통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습니다. 얼마나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안하게 되면 둔해지고, 배불러도 둔해지고, 깨닫는 삶을 살지를 못합니다.
언제 깨닫게 되느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련하게도 환난과 핍박과 고난, 남다른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고, 비로소 감사에 대해서 민감해지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웃음으로 감사하기보다, 깨달음에서 오는 눈물로 더 많이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내가 무엇인가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내가 받았다' 라고 깨달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받았음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그 사람을 향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받고 살면서도,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에겐 감사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떤 분이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가다가 손을 들고 "오 하나님" 그러면서
감사를 합니다. 그래서 왜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눈썹이 있어서 빗물이 좌우로 흐르기 때문이랍니다.
이 분이 또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감사하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콧구멍이 밑으로 뚫린 것이
감사하답니다. 생각해 보니 그래요. 이 콧구멍이 위로 뚫렸으면, 비오는 날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뚜겅을 만들어 덮어야죠. 그 뚜겅을 덮었다 열었다 너무 너무 불편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유지케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은 참 신비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시작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단세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단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합해 졌을 때, 그 속에 우리의 오장육부와 우리의 성격과
우리 조상들과 부모님의 모습 등,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들어있는 신비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몸속에 296개의 뼈가 있어서 우리를 걷게 하고, 앉게 하고 눕게 하고, 그리고 우리 몸
속에 혈관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고,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혈관은 알아서 신비하게도 기차 철로처럼 가다가 간에는 간에 맞는 영양분은 내려놓고 가고
심장에는 심장에 맞는 영양분을 내려놓고 가고, 그렇게 우리 온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다 공급해 주시면서, 우리의 신비한 생명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소중한 오장육부 중에서 내 심장은 어떻습니까? 하루에 자그만치 10만 3689번을 뜁니다.
그리고 내 몸속의 혈액은 놀랍게도 하루에 약 3억 킬로미터를 달립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하루에 숨을 무려 2만 3040번을 쉽니다.
여러분! 내가 무슨 수고를 해서 심장이 그렇게 많이 잘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아무런 수고를 안 해도 나의 폐는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해줍니다. 이 모든 일에 약간의 차질만 와도 나의 생명에는 금방 이상이 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생각조차 안해도 그처럼 여러 번 심장이 뛰어주고
나의 폐는 호흡해주니, 정말 내 생명을 지으시고 지탱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입니까? 한 사람이 하루에 두뇌 세포를 700만개를 사용하며 산답니다.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그 누가 우리 인간을 만들 수 있었고,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형제자매, 부부, 자녀, 이웃들에게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 문화, 우리의 사회생활 속에서 우리 민족들이 좀 무언가 잘못된 문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감사하다고 하든지, 고맙다고 하면, 내가 낮아지는 줄로 생각하는 잘못된 의식입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에 매우 인색합니다. 아니 아예 안하려고 작정하고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특히 남자들, 자기 부인에게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를 말 안 해도 마음으로 알기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이유는, 내가 다 벌어서 먹여 살리는데 고마울게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럴까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고맙다고 하는 순간, 그는 높아지고 나는 낮아진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아무래도 DNA - 유전적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공자의 유교사상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공자가 죽어야 산다고 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우리의 체질이 감사를 모르는 체질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다고 하면, 그 순간 우리 자신이 올라갑니다.
사랑의 경험이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성숙되면서, 그 순간 감사 앞에 우린 겸손하게 됩니다.
감사로 인해서 자유해집니다. 미래가 보입니다. 그래서 행복할 뿐더러 앞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 사람에게 감사! 특히 가족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계평화나 국가경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 내 부모가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항상 내 가까이 있는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내 가족에게 먼저 ‘사랑해요! 감사해요! 고마워요!’ 라는 따뜻한 천사의 말을 전하며 삽시다.
지금 당장 열에 있는 분들에게 따뜻한 천사의 말을 전합시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고마워요!’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노라!” 아멘!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감사했습니다.
행여라도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분하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면 그건 망조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 구원받은 사람은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분 저런 분을 생각하면 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사람은 원망하고, 분해하고, 한을 품고, 그것을 입으로 토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답게, 하나님께 감사! 사람에게 감사! 특히 가족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일까요?
먼저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감사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원망하고 불평 잘 하는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지도 말고, 같이 놀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망하고 불평 잘 하는 사람과 사귀다 보면, 나도 몰래 원망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제가 보니까요, 불평하는 사람은 이래도 불평하고, 저래도 불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브라질에 있는 유명한 아마존 정글을 방문한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거기엔 40m나 되는 아주 큰 나무, 그 꼭대기 나뭇가지 사이에다가 꼭 까치집처럼 지은 방이 있답니다.
그게 바로 일종의 호텔의 룸인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방이 제일 비싼 방이랍니다.
그 집 지붕에서는 원숭이들이 모여가지고 얼마나 시끄럽게 하는지 제대로 잠자기가 힘들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면, 문 앞에 원숭이들이 먹을 것 좀 달라고 막 달려든답니다.
그 호텔에 사장님과 정글을 산책하는데, 그 사장님이 바나나를 한바구니 들고 가면서 원숭이들이 오면
하나씩 주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원숭이들이 이것을 받아갈 때, 주는 순간 공손하게
받지 않고, 빼앗듯이 탁 가로채 가지고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주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이게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입니다. 동물은 한평생 먹을 것을 주어도 고마워 할 줄을 모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주고 자기를 붙잡을까봐 그런 겁니다.
이처럼 은혜와 사랑으로 받고, 그것을 아는 데는 감사가 있지만, 불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
빼앗거나, 투쟁하여 싸워 쟁취한 것에는 감사가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렇게 얻었으면서도 원망과 불평밖에 없습니다.
가끔 파업도 하고 데모도 하면서 빨간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 쟁취!' 를 외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하므로 얼마를 얻어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얻고나면 거기엔 고마움도 감사도 전혀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왜 감사가 없습니까? 내가 쟁취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쪽에 가서 보면, 모내기 하는 것도 그냥 모내기가 아니라 '모내기 혁명' 이라고 합니다.
모내기가 왜 혁명입니까? 그것도 싸움입니다. 그래서 거기엔 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가 없으면 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빼앗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가 있겠습니까? 혁명이나 쟁취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도 없습니다. 그리고 꿈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전혀 없습니다.
얻는 것도 없지만, 얻어도 불행합니다. 왜요? 감사가 없잖아요. 그건 빼앗은 것이지 얻은 게 아니거든요.
그 세계에는 감사가 없어요. 물론 감사하지 않는다고 벌하는 형법은 이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탈무드에 아주 명언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감사할 줄 모를 때, 벌써 그는 불행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다시 벌할 것도 없어요.
감사하지 않는다고 감옥에 보내는 법은 없어요. 그러나 그는 벌써 불행이라는 심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노만 필 박사는 항상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한 사람인데, 어느 날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그의 맞은편에는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은 계속해서 주변 환경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좌석이 왜 이렇게 불편하냐? 시트가 지저분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 돼 있다.
승무원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하느냐?’는 등, 계속 불평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때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대화를 돌릴려고 필 박사에게 서로 인사를 나누자고 제의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자신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 박사가 물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제조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 남편이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아, 예. 제 아내는 매일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아니라 감사를 만드는 제조업자가 돼야 합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도 모든 것을 참아 주셨는데
우리가 조금 어렵고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원망과 불평에는 감사가 사라지고, 삶이 불행해 집니다.
그것뿐입니까. 자기 의를 내세울 때에도 감사는 없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다.
율법적 관계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소유란 소유하는 순간 약간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도, 소유하자마자 또 다른 욕심에 사로 잡힙니다.
성취감이라는 기쁨이 있습니다 만은, 성취되는 순간 불안합니다. 지속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로지 감사만이 우리 사람의 마음을 자유하게 합니다. 그리고 참 행복을 누리게 만듭니다.
또 한 가지는 운명으로 생각하는 자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팔자요 운명인데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이래서 감사가 없는 생활이 그 민족이든, 그 문화든, 그 나라든, 다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게 보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늘 원망 불평을 많이 늘어 놓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 사업체에서 일하는 직원 한명이 다른 직원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게 100만원만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
그는 그 직원의 말을 듣고, 정말 한 사람이 행복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100만원의 돈을 준비해서
그 직원에게 주면서 “이 돈 때문에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고 말했습니다.
그 직원은 자기 사장님의 친절한 배려에 너무 감격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 사장님은 자신이 베푼 작은 선행이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기쁨에 잠시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의 불평섞인 중얼거림이 들렸습니다. “난 참 바보야. 왜 천만 원이라고 말하지 않았지!”
여러분! 이렇게 욕심은 감사를 잃어버리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도 또 불평을 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와 맛있게 밥을 먹고 있을 때,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있어요. “이 집 음식 참 맛없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맛있게 먹던 음식이 왜 그렇게 맛이 없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자기 입맛에 안 맞어도 ‘매우 맛있다.’ 고 했으면 모두 다 맛있게 먹을텐데 말입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모든 사람들의 식욕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아 맛있겠다.’ 그리고 ‘아, 맛있다.’ 하고 선포해 버립니다.
그렇잖아요? 누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실로 집을 짓고 삽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로 자신의 삶을 경영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잠언 25장 11절 말씀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우리는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늘 믿음과 감사의 언어로 하루를 시작하면, 매일 매일이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게서도 감사가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게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원망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그 다음으로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감사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원망 불평은 내게서 사라집니다.
한 믿음 좋은 성도님이 늘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이웃집 무신론자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는 항상 하던 대로 식사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그 무신론자는 안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성도님은 할 수 없이 혼자 기도를 한 다음에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 이웃집 무신론자가 계속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세상엔 돈만 많이 있으면 최고다. 배부르면 행복하다...’ 하는 겁니다.
한참을 듣던 성도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답니다."
그러니까 그 무신론자가 "그래요. 누굽니까?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인가요?" 하고 반색을 하며 묻습니다.
그러자 성도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오, 우리 집 돼지 놈들입니다. 그놈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지놈들 배만 부르면 행복한지 자빠져 자거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감사하는 순간, 우리의 미래가 열립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학교에 입학하는 때부터 계속해서 산수를 배우고, 이어서 수학을 배웁니다.
여러분에게 물어 볼께요? 여러분이 공부한 산수나 수학공식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에도 수학이 나오는데, 성경에 나오는 수학 공식 가운데 가장 그 답을 헤아리기가 어려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찬송가 429장에서도 이 성경수학 공식을 꼭 풀어 보라고 말합니다.
후렴 부분입니다. /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주님께서 주신 복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세어 보아라!” 그러면 “크신 복을 알리라!”
“Count your blessing one by one..." -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크신 복을 알리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8절의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밝은 삶, 환한 삶, 즐거운 삶, 찬양하는 삶,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감사를 세어보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세어보라!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세어보라! - 그리고 그것을 믿고 감사하는 자에게 그 모든 것을 끝까지 견고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감사합니다" 해보세요.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베푸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풀게 될 때에, 내가 받는 은혜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감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풍성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감사를 세어보고, 축복을 헤아려 볼 때, 답이 안 나올 정도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감사로 충만한 삶, 감사로 풍성한 삶, 감사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 주일예배 기도
주님! 우리가 지금 감사한 마음으로 추수감사절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감사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주님이 받으시는 감사로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만 헤아려도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 발이 있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따뜻한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우리가 갈 곳이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고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리는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아침에 보는 맑은 햇살에 기분 맑게 하며, 사랑의 인사로 복된 하루를 시작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기에 정말 감사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 내 눈 반짝이며, 한 줄의 글귀에 감명 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 마디에 우울한 기분 가벼이 할 수 있으며
보여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주심을 진정 감사합니다.
주님! 그 무엇보다도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마음 든든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올립니다. 아멘!
제 목 : 감사합니다.
볼 수 있고 / 들을 수 있고 / 만질 수 있고 /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 오늘도 감사하다는 것을.
오늘 내가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내 삶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 나에겐 소중한 꿈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라도 있다면 난 그 한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
넉넉하지 않아도 / 풍요롭지 못해도
내 마음 넉넉할 수 있어 /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모습이 화려하지 않아도 / 은은한 가을의 국화 향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 있어서 / 난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아는 것 없고, 나눌 것 없는 가난한 내 인생이지만
내 마음 언제나 두 팔 벌리고 / 내게 달려오는 외롭고 곤고한 자들
품어 안을 따뜻한 가슴이 있어 / 내가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오늘 남은 하루도 난 열심히 / 사랑하면서 아픈 이들을 품어 안을 것이다.
내겐 아직 너무 많은 감사거리들이.. / 날 깨우쳐주심에 감사드리며..
볼 수 있는 눈과 / 들을 수 있는 귀와 / 말할 수 있는 입과
안을 수 있는 두 팔과 /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와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맘까지....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