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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4(安)龜尾敎會 하나되게 하는 마음
빌 2:1-5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성도 여러분, 지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교회에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수정 추진 문제로 인해
여야간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계파에 따라 의견이 분열된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두 문제 모두 상반된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쉽게 추진될 것 같지 않습니다.
국가든 사회의 어떤 조직이든 어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논의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보다 나은 결론을 도출하게 하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적절하게 조정되고 통제되지 않는 주장은 분열과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도 다양한 개성과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모인 조직체이니만큼 구성원들이 공통의 비젼을 명확히 하고
개인의 주장은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공동체의 조화와 연합을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하나되게 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오늘의 본문에서만 사도 바울은 “마음”이라는 단어를 5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들은 마음은 뇌의 작용이고,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와 시넵스라는 신경세포말단의 작용의 결과라고 이해합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생각”과 종종 동의어로 쓰입니다.
신 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23:7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
이제 우리가 속한 구미교회가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 지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一心(한마음)입니다.
빌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NIV) "then make my joy complete by being like-minded, having the same love, being one in spirit and purpose"
빌 4:2에서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το αυτο φρονητε)란 문자적으로는 “생각을 같이하여”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감정, 태도, 의지의 같이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과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합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롬 15:5-6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 세상에는 65억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구미 교우들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많이 다릅니다. 옆에 앉아계신 분들을 보십시오.
얼굴 모습이 다르고, 성격과 개성이 다르고, 고향이 다르고, 받은 교육이 다르고, 인생관과 가치관, 삶의 모습과 환경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자 받은 영적 은사도 다양하며 교회에서의 역할과 봉사 또한 개인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과거와 달리 매우 세분화된 오늘날의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또한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보다 성숙된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인생의 삶의 목적 의식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보다 나은 구미교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주인 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데는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개인이 받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연합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마지막 기도의 주제는 제자들의 하나됩에 대한 간구였습니다.
요 17:21-22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부조, 520 “하나님의 백성 사이는 연합과 우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이다....우리는 진리의 한 원칙도 희생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이같은 연합의 상태에 도달해야 함이 우리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증거이다.”
그러면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함께오랜시간 신앙하다 보면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연합이라는 귀한 특성은 이기심이 많은 죄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연합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합을 깨는 것은 순간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또 유지하기 위해 우리 각자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3기별, 15 “연합은 힘이다. 모두가 사랑과 온유와 마음의 겸비로 연합하여야 한다. 감화력을 결합시 키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신자들의 사회가 조직되었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셨던 것처럼 일하여야 한다. 그들은 항상 서로 예의를 보이고
존경해야 한다.”
어떻게 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피차에 하나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재림신도의 가정, 179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게 되면 피차에 가까워진다. 교회 내에서와 가족 내에서 참된 연 합의 비결은
외교적 수완과 경영 수완 또는 난관을 극복하려는 초인간적인 노력에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
2. 둘째는 타존(他尊)심(겸손지심)입니다.
3절에서는 하나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어떤 공동체나 조직체이든지 구성원의 다툼이나 허영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에리쎄이아 - 이기적 야망, 당파심, 당파근성)
성경은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들에 대해 많이 언급합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
잠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6:28 “패려(언행이 거칠고 꼬여있음)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벗을 이간하느니라”
잠 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잠 26:20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잠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잠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허영 (케노독시안; 케노스(내용없는)+독사(영광) : 내용없는 영광이나 자랑 =>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랑
그러므로 다툼을 일으키거나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공동체 연합을 저해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공동체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과 동시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되기 위해서,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고 말씀합니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이다. <웨슬레>
나는 동전 한 닢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구세군 냄비에 소복이 쌓여지는 동전 한 닢처럼
그렇게 조용하게,
이슬비처럼 잔잔하고 진실하게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을 심어 나가고 싶다.
낮은 곳에 오신 주님처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항상 낮은 곳에 머무를 것이다.
- 안요한 목사 이야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예수를 믿은 일이다’ 중에서
존경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구미교회 교우들은 서로서로 형제를 존중해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교우들은 연세높으신 어르신들을 참 마음으로 존경하고 앞에서는 예의있게 섬기고,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하라는 말은,
상대방이 우리가 보기에 존경을 받을 만 할때에만 존경하라는 조건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비록 상대방이 삶이 비록 존경 받을만한 무엇도 없을지 모르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남을 존중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또한 존중을 받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서로를 존경하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3. 셋째는 관심(觀心)입니다.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프랑스 속담에 '관심은 친구를 만들지만 무관심은 적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무관심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무관심입니다.
가장 쉽게, 가장 완전히 어떤 것을 망치게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무관심인 것입니다.
심리학자 William Glasser는 사람은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key person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 패트슨은 "key person이 한사람뿐인 사람은 정신의학적으로 정신분열환자이고, 2-3명이면 경계선 증후군
환자이고, 4-5명을 벗어나지 못하면 노이로제 환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20-30명의 key person과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key person을 얼마나 두고 있습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key person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key person이 되기위한 첫 관문은 개방입니다.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마음을 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긴장을 풀고 자신을 개방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마음과 생애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이 교회 바깥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외로움을 불러오는 성도 사이의 무관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몸을 구성하고 지체로서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옆 성도의 아픔과 상처에 무감각한 것은 내가 죽어 있음을 결정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감각이 없습니다.
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61 “당신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님은 사명을 주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고통과
필요에 관심을 가지라고 명하신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동료 형제들에 대해, 조금더 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힘든 짐은 가능한 나누어지는,
성도 개개인들과 감정과 정서까지 교감하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런 하나된 마음, 이타심, 겸손한 마음, 관심은 예수님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게하는 비결로 성경은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라고 교훈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4. 이런 마음을 갖게하는 것이 예수之심입니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특권들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종이 되셨고,
사람들의 모든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이러한 예수님의 겸비하심을 배운다면 가정이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1보감, 448 “현세의 사물에 있어서 의견, 습관, 취미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신앙의 통일체 안에 함께
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불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동일한 하늘을 그들의 영원한 집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들은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가장 훌륭한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 모든 구미 교우들께서
예수님의 겸손하시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마음을 매일 닮아가시므로
교회가 하나되게 하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