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항 인천 갈산중앙의원 원장
작금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다. 즉 '사회 다수 구성원의 판단이 정의로운 판단'이라 믿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서는 여타 사회 집단과 마찬가지로 의사 사회도 '다수 회원들의 판단이 올바른 판단'이라 믿게 된다.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별로 다르고, 진료과목별로 다르며, 개원의·봉직의·교직의 여부에 따라 다르다. 또한 각자 살아온 방식이 '이념을 추구하는 형'인지 혹은 '이득을 추구하는 형'인지에 따라 다르다. 계급사회 즉 비민주적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엘리트 계층의 판단에 대체로 복종하지만, 계급이 없어진 민주주의 사회는 자신과 다른 생각에 충돌하기 쉽다. 그래서 민주사회는 갈등이 증폭되는 사회인 것이다. 신문, 인터넷, SNS 등 많은 소통 수단들은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손쉽게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과거보다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의견 수렴이 쉽지 않다. 집단 구성원들 각각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이념 혹은 이득에 따라 판단한다. 의사 사회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입장과 각기 다른 판단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의심의 깊이가 깊어지면 갈등의 골도 깊어진다. 늘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수년 전 대통령을 지지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비난한다. 어제 박수를 친 사람들이 오늘은 욕을 퍼붓는다. 이러한 현상은 '명백한 정치인의 잘못'이라 말할 상황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나 빠른 사회의식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 변화는 SNS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공급받는 다양한 정보의 영향이기도 하다. 공급받는 정보가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의 거짓된 사생활 정보가 진실처럼 빠르게 퍼져나가고, 광우병에 대한 터무니없는 정보가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이처럼 다수의 판단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정보화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는 때로는 긍정적 효과도 발생시키지만 때로는 위험한 거짓 정보로 인해 선동적 포퓰리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고소와 고발이 남발된다. 이런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의견을 모으는 적당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것은 '장치를 통해 수렴된 의견에 반발'하는 상황이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장치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빨리 결정해야 할 것과 비공개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 그리고 공표한 것과 정반대의 반대급부를 노려야 할 경우는 이러한 장치로는 획득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활성화시켜야만 우리 사회나 의사집단의 내부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의협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복잡한 집단이다. 의사라는 공통분모를 빼면 같은 것이 없다고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의 갈등 모습이 타 집단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서로에게 믿음의 신호를 보내야만 하는 시대상황임도 분명하다. '급변하는 의료와 그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의사로서의 의견을 사회에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서로에게 믿음을 보여야 하고 그래야만 결집된 의견을 모을 수 있다. 이번 의사협회장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은 시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사회에 비해 의사의 직업적 특성은 사회에 느리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바라는 새로운 의료계 리더의 윤리상을 그려보라면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적 사회 정의를 이해하고 그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려는 정신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