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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서 빌려온 자료입니다.
천국의 하모니카라는 책을 쓴 사람은
현 서울대 의대 혈액 종양 내과 전문의 (김 범석)로서
공중 보건의로 소록도에서 1년간 근무하면서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써
그들에게서 느낀점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수필입니다 .
제가 근무할 때와 거의 같은 느낌들이라 오랫만에 접한 소록도.
소록도에가면 누구나 같은 느낌에 동감이 가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환자들이 젊었기 때문에 농사도 지었지만
그래선지 상처들이 많아 상처치료(드레싱=Dressing) 를 많이 한 반면
지금은 노령화가 되어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어 거동을 못하시고
중풍, 치매, 고혈압 ,암 등이 많아 입원환자를 위주로 치료를 하는 실정이라
간호의 방향이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른 것 같은 느낌입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었지만 ,
소록도를 이해하시는데는 도움이 될것같고
일반 병원과 소록도 병원의 차별성이라 한번 올려 봅니다 .
좀 길어 지루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제목 : 쇼피알 (CPR) = 심폐 소생술
인턴 때는 쇼피알이 참 싫었다.
동공은 이미 다 풀리고 심장 박동도 멎은 시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언제올지도 모를 보호자를 위해 한 시간 이고 두 시간 이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시체의 가슴을 눌러대는 일이 너무 싫었다.
"주치의 선생님 . 환자분 이미 사망 하셨잖아요 .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
원망어린 눈빛으로 주치의인 레지던트 선생님께 물어보면 대답은 늘 비슷하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어쩌냐 자식들이 임종을 봐야 한다는데 ....조금만 고생하자 "
쇼피알 .
쇼로 하는 CPR (심폐 소생술).
실제로 환자의 소생을 기대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사망 선언을 늦추려고 혹은 할 만큼 했다는
의사의 자기 방어를 위해 행해지는 CPR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대게 쇼피알을 하는 풍경은 비슷비슷 하다.
인턴 선생들이 병실에서 번갈아가며 눈치껏 흉부 압박을 하고 있고,
추치의는 병실밖에서 보호자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호자가 환자의죽음을 받아들이거나 환자의 임종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 도착하면
쇼피알은 끝내는 것으로 합의된다.
주치의는병실로 들어와서 인턴에게 CPR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사망을 선언한다.
가족들은 오열하고 그 울음소리를 뒤로한 체 의료진들은 일사 불란하게 병실 밖으로 나간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각본을 짜거나 서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이 연극은 늘 비슷비슷하다.
간혹 보호자가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규하거나,
임종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 아직도착 못했다면 연극은 계속된다.
팔이 아픈 인턴 선생들의 탄성을 뒤로한 체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된다.
의료진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환자의 가족들에게 쇼피알은 환자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남은 가족들의 울부짖음이자,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승쪽으로 환자를 붙잡아 놓는 신성한 의식이다.
이 줄을 놓으면 환자는영영 저승으로 가버린다.
의료진에게 쇼피알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
굳이 육체적으로 힘듦, 의료 인력의 낭비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힘든 일이다 .
갈비뼈는 뚝뚝 소리를 내며 하나씩 부러져가고 ,
멍하니 풀려 버린 동공과 시선을 맞추기 부담스러워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 지 난감하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망자의 시신에 고통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스러워진다.
이것이 과연 망자에 대한 배려인가?
연차가 올라가고 주치의가 되면서 나는 내가 인턴 때 싫어하던 주치의의 모습을 닮아갔다 .
"선생님 , 큰 아들 아직 도착 안했데요 . 조금만 더 수고해주세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남은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어떤 합의점을 찾지못한 체 이루어지는 쇼피알 .
그래도 남는 가족들이 더 힘들테니 여한이라도 없게 해 드려야지 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나는 쇼피알을 하곤 했다 .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사로서 나는 할 만큼 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나는 점점 쇼피알에 익숙해져 갔다.
5월의 따사로운 했살이 감돌던그날도 그랬다
"선생님 000환자분 돌아가신것같아요 "
" 그게 무슨 말인가요 돌아 가시다니 ?"
서둘러 병동에 올라가보니 환자는 이미 동공이 풀려 있었고, 호흡도 심박동도 없었다 .
" 얼른 CPR카트 가져오지 않고 뭐해요 ?"
CPR을 하려고 기도 삽입이 편한 상태로 침대를 돌리는데 주변 기운이 이상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시선이 나를 집중하고 있었다.
" 선생님 CPR 하시게요 ?"
" 그럼 아무것도 안해요 ?"
나 혼자라도 CPR을 할 요량으로 침대를 돌리는데 ,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 선생님 환자분 이미 사망 하셨잖아요 "
그 말은 내가 인턴 때 주치의 선생님께 하던 말이였다 .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했다.
그랬다. 환자는 이미 사망했고, 체온만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도 한시간은 족히 지나 보였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을 쳐다보다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 그러면 보호자들이 문제 삼지 않나요 ?"
말을 뱉은 순간 스스로가 비열하게 느껴졌다.
환자의 죽음보다 내 일신의 방어가 더 걱정이었다.
" 네 걱정안하셔도 돼요 . 보호자가 없어요 "
" 그러면 사망 시간은 어떻게 하죠 ?"
비겁한 자기 방어로도 모자라 나는 끝까지 진료행정 위주였다.
" 선생님 재량껏 하셔도 돼요 . 환자분은 편안하게 가셨잖아요 "
그랬다 . 환자는 그렇게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갔다 .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주치의를 만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목구멍에 손가락 만한 관이 박히는 일을 당하고서야 사망 판정을 받았던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소록도 병원에 와서 처음 맞이한 그 환자의 임종을
나는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을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나는 2007년 4월부터 내과 공중 보건의로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내 환자들은 한센병 환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 가족이 없다. 설령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안된다 .
40~50년 전에 병에 걸리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들에게 피 섞인 보호자는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보니 진료를 하면서 철저하게 환자 위주로 진료를 하게 된다.
보호자에게 휘둘릴 필요도 없다. 환자를 위한 것인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제도의 모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곳은 바깥 병원과는 매우 다른 곳이다.
죽음 역시 바깥에서의 죽음과는 다르다 .
3일장 5일장 7일장은 들어봤어도 우리나라에 1일장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곳에 와서 알았다.
소록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이 아닌 1일장을 한다.
장례식은 허례허식 없이 무척 간소하다.
평소 가족처럼 지내던 마을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이 모여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예배를 드리고
화장터에가서 화장을 하면 장례식은 끝이 난다.
사흘 동안 밤을 새가며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하고 부의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따지는,
그런 장례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떠나보내는 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모자라거나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산자를 위한 것인지 죽은자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의식이 없을 뿐이다.
섬이라는 특수성과 한센병 환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바깥 세상과 많이 다른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당연히 쇼피알을 하던 나에게 당연히 쇼피알을 하지않는 이곳의 풍습이 점점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쇼피알을 하지 않는다 .
한 인간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쇼를할 필요가 무엇이던가 .
누구를 위해 쇼를 하는가.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면 되는것을....
첫댓글 한센병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천국을 향하여 하모니카를 불었던 김범석님. 그의 글을 읽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계속 훔쳤더이다. 올 여름 문학기행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동안의 내 삶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행사가 될 듯하여이다.
제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살아서 다니는 것에 오늘도 감사. 그래서 조금은 쓸모있는 사람 되어야지요. 보고 싶은 이 되어야지요...
정말 가슴이 뭉클하네요. 소록도에서의 문학기행은 다른 때와는 많이 다를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