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지금은 삶의 질이다 <3> 아이들 맡길 데라도 있었으면 |
보육시설 멀고 돌볼 이도 없고… “교육은커녕 아이 혼자 놀 수밖에” |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요!” 많은 농촌지역 가정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직접 육아와 농사를 병행하는가 하면 부인이 남편과 떨어져 애를 데리고 도시로 분가하기도 한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애 많이 낳기 캠페인을 펼치는데 정작 농촌에서는 애를 맡길 곳이 없어 허둥거리고 있다. 탁상 행정과 현장의 엇박자가 곳곳에서 메아리친다. 농촌지역 보육실태와 보완점을 알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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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조순 씨
“새벽에 일 나가면 아이만 집에 사고 날까 늘 걱정”
“농사일로 새벽에 집을 나가면 하루 종일 아이 혼자서 놀아야 합니다. 요즘 도시에선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난리인데, 교육은 차치하더라도 그저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 줄 수 있는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4월 1일 늦은 오후에 만난 조순(43·장성군 북일면 성덕리) 씨의 하소연이다.
딸기농사를 짓는 조 씨에게 요즘 한 가지 걱정이 불어났다. 세 살 난 조카 형민이를 돌보는 일이다. 지난 1998년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오빠 현석(46) 씨가 뒤늦게 베트남 여성과 가정을 꾸렸지만 지난해 어린 형민이를 버려둔 채 가출, 얼마 전 베트남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장애인인 오빠와 다리가 불편한 77세의 노모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형민이 양육은 같은 마을에 사는 조 씨의 몫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려운 형편이지만 돈을 들여서라도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도 조 씨가 사는 마을 근처엔 보육시설이 하나도 없다. 가장 가까운 곳도 20여km나 떨어져 있고, 너무 멀다보니 이곳까지 차량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농사철이 되면 더욱 큰 문제다. 조 씨는 “같은 마을에 조카 형민이 또래의 아이를 둔 집에서 이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데, 매일 오전 9시에 아이를 맡겼다가 오후 4시가 되면 데리러 간다”며 “농번기, 특히 여름철엔 그 시간이 한창 일할 때인데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아이를 데리고 와도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다보니 위험천만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 조 씨도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데 아이 혼자서 하우스 개폐기를 갖고 놀다 다치기도 하고, 농약병을 음료수로 착각하고 들고 다니는 경우까지 있었다.
<사진> 조순 씨는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주는 곳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도시에서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많고,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을 위해 시간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운영하지만 농촌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오전 9시 정도 시작해 오후 4~5시면 끝난다. 결국 나머지 시간은 부모들의 몫이다. 게다가 아이를 맡기고 데리러 가는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조 씨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마을에서 4km정도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이 있지만 5세미만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 이에 농촌지역 병설유치원에 대해 특례조항을 만들어 보육까지 맡는다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수 감소로 빈 교실이 많으므로 이를 활용하면 장소문제도 해결되고, 스쿨버스가 있으니 차량운행도 가능하다.
조 씨는 “북일면을 통틀어 위탁보육이 필요한 5세 미만 아이들은 10여명에 불과하다”며 “획일적인 제도보다 농촌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정책, 맞춤형 탁아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희망했다.
●경북 안동 민필규·권민현 씨 “어린이집 차도 안와 데려다 주느라 불편 하루가 정신 없어”
권민현 씨는 애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없어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 현실이 버겁다.
경북 안동에서 한우를 키우는 권민현(32) 씨는 4살과 2살 난 딸을 키우며 농장 일까지 거드는 억척주부다. 큰 애를 안동 시내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차가 오지 않아 직접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한다. 보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데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권 씨는 남편(민필규, 32)과 일직면의 축사근처에 작은 주거지를 마련해 살고 있다. 창고를 수리해 살림집을 마련한 것이다.
권 씨와 민 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소먹이 주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권 씨가 큰 애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아침 8시30분. 다시 집에 도착해 둘째를 품에 안고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점심 후에는 축사에서 보낸다. 그는 보통 애를 등에 업고 소먹이를 준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디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둘째를 업고 축사에서 2시간을 씨름하면 큰 애가 어린이집에서 끝날 시간이에요. 그러면 시내로 달려가 큰 애를 데리고 와요. 그렇게 농장으로 돌아오면 농사일에 지친 남편이 측은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민 씨는 앉을 여유도 없이 저녁을 차린다. 비록 우왕좌왕인 가족식사지만 밥맛은 꿀맛이다.
그런 후 흙먼지 속에 뒤범벅이 된 둘째와 놀이방에서 땀범벅이 된 큰 애를 씻기면 하루가 지난다. 농사가 시작되는 요즘 권 씨는 고민에 빠졌다. “농번기에는 사람들 쓰고 새참을 마련해야 하는 등 더욱 바빠질 텐데 애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이에요”
권씨는 애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없어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 현실이 버거울 뿐이다. 면소재지라도 마음 놓고 둘째를 맡길 곳이 있으면 좋겠지만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이에 대해 권 씨가 따끔하게 한소리 했다. “면사무소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운영하고 저 같은 여성농민을 위해서는 그 흔한 종이접기 프로그램조차 없어요.” 남편 민 씨도 “농촌에 아무리 어린아이가 없다고 보육시설까지 소외돼서야 하겠냐”며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면소재지에 마련되면 좋겠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이곳에선/경남 거창여성농업인센터 저녁 8시까지 운영…저녁밥도 해결
거창 여성농업인센터는 어린이집과 방과후 공부방 운영으로 농가 영농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인근 면에 어린이집이 없었다면 애들 셋 낳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경남 거창에서 남편(문점동, 44)과 아이 셋을 키우며 상추와 감자농사를 짓는 윤성혜(42)씨는 기자와 동행한 거창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숲속샘골어린이집 김태경(46) 원장을 반갑게 맞았다.
윤씨는 “막내 경민(6)이가 현재 어린이집에 다닌다”며 “큰애(홍민, 13)와 작은애(정민, 12) 모두 돌 지나고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무엇보다 농사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소개했다.
거창여성농업인센터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는 현재 영·유아 40명이 다닌다. 주상면에 위치한 여성농업인센터는 영·유아 보육과 방과 후 공부방, 여성농업인 교육·상담, 도·농교류 등의 사업을 수행한다. 어린이집의 경우 주상·고제·웅양·위천면의 영·유아들을 보육한다.
공부방은 북상면과 고제면, 웅양면에 각각 1개씩 운영하는데 공부방 당 20명의 초·중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 가정에서 직접 보육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린이집을 이용한다. 방과 후 공부방도 저년 8시까지 운영하는데 저녁식사까지 해결해준다.
●전문가 진단/김태경 거창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숲속샘골어린이집 원장 “특수 취약보육지역 지정, 지원 늘려야”
복지부 ‘영육아보육법’ 개정해 농촌 보육센터 추가지원 필요
“정부가 국·공립 보육시설이 없는 면에 대해 당장 특수 취약보육지역으로 지정하고 농어촌 전담보육시설을 갖춰 국·공립 보육시설 수준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김태경 거창여성농업인센터 숲속샘골어린이집 원장은 또한 “보건복지부가 ‘영육아보육법’을 개정해 농촌지역 보육센터의 경우 영·유아 20인 이하 지역에 대한 추가인건비 1인과 20인 이상 지역의 추가인건비 2인 지원을 명문화할 것”을 주장했다.
추가인건비 확보는 농촌지역 보육센터의 존립과 직결된다. 연령별 정원을 채우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장이 취사와 기사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 그만큼 보육활동 시간은 줄어들고 내실을 기하는 것도 어렵다는 논리다.
㈔전국여성농업인센터협의회 보육분과장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농촌 보육환경이 열악한데다 정책 뒷받침도 부족하다”며 “초·중학교에 입학해도 방과 후 집에 오면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에 빠지거나 거리를 방황하다 올바른 학습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민간어린이집이나 학원은 읍내에 집중됐고, 면 단위 이하는 시설이 없거나 통학거리가 멀면 차량도 오지 않는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보육과 공부방을 운영하지만 전국 36개에 그친다.
김 원장은 특히 “정부가 현재 6000명의 보육교사를 1만 명으로 늘리는 것을 추진하는데 “농촌지역 600곳의 보육시설에 2명씩 1200명의 보육교사를 지원하면 열악한 농촌지역 보육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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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운 기자(moonkw@agrinet.co.kr) , 안병한 기자(-) , 이지혜 기자(believeinus@agri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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