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 양식을 Musical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발달한 대중 예술로 음악 특히 노래가 중심이 되어 무용(춤)과 극적 요소(드라마)가 조화를 이룬 종합 공연물이다.
원래 Musical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대중연극의 한 분야를 차지하는 Musical Comedy, Musical Play 등을 일괄된 약칭으로 통용한다.
Musical은 언론, 극장, 애호가 등에 의해 쓰여지면서 Operetta에서 Musical Play에 이르는 음악적 작품을 가리키며, 레뷔,보드빌 등 극의 성격을 갖지 않는 작품도 포함해서 Musical이라 부른다.
Musical의 정의를 말하자면 Operetta의 방식을 도입한 대사극과 극적인 가창과 혼성으로 이루어 지고, 극적인 의미를 지닌 춤을 첨가한 것이 Musical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이야기 소재는 자유롭고 다양하다 (Comedy, Melodrama, 풍자극, 환상극, 문학작품, 희곡 등).
작품상의 특성은 미국에서 거의 1세기에 가까운 변천을 하고 있기에 낙천주의, 행동주의, 휴머니즘, 유우머, 위트 등의 미국적 기질을 반영하는 특징이 있으며, 바른 진행, 로맨틱한 선율, 재즈적인 리듬감, 가수의 매력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들도 있다.
장르적인 특징은 Drama와 Opera 또는 오페레타(Operetta,작은 오페라를 뜻함), 무용극과 현대적인 화려한 쇼가 한데 모여 있다는 데 있다.
정극, 무용, 오페라의 일반적인 요소에 대중 가수의 콘서트 같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특히 코믹함과 환타지가 어우러져 속도감이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는 인상적이다.
초기 뮤지컬은 코믹 오페라 같은 가벼운 악극인 오페레타 형식을 띠었다.
영국에서의 뮤지컬 코메디,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뮤지컬 등 조금씩 그 성향이 달리하는 이름들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유럽을 풍미한 오페레타와 그 계열의 음악극 형식을 수용하면서 20세기 이후에는 미국인의 기호에 맞추어 발달한 대중 음악극을 뮤지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와 코믹 오페라, 비엔나식의 오페레타, 프랑스의 오페라 부파, 코메디, 발레, 팬터마임등 다양다색한 공연 예술의 형태들이 집합된 것이다.
이러한 요소를 선택하여 속도감있는 전개와 로맨틱하고 아름다우며 듣기 쉬운 선율, 유머러스한 리듬감을 통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 바로 뮤지컬인 것이다.
연극 속에 음악과 춤이 적당히 혼합되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초기의 형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 위상이 정립된 것이다.
이처럼 뮤지컬은 음악이 주는 감동이 절대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뮤지컬에는 드라마의 요소가 많이 첨가되고 있다. 초기에 비하면 여러모로 대단히 복잡한 표현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음악, 무용, 연기, 의상, 무대 장치, 조명, 분장 등 각 분야가 세부적 완성도를 기하면서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낸다. 여기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지휘는 감동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뮤지컬은 낭만적인 공연물이다.
사실주의 연극(Realism Theatre) 이라기보다는 낭만주의 연극(Romanticism Theatre)에 가깝다. 그것은 사실의 정확한 표현보다 이상적인 것들을 표현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정형보다는 파격이, 사실성보다는 환상이 지배적이다.
뮤지컬이 화려하고 낙천적이며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낭만성 때문이다.
연극과 오페라와 뮤지컬은 어떻게 다른가?
배우의 몸짓과 춤, 연희의 장소(놀이판, 굿판 등), 관객을 두고 흔히 연극을 구성하는 3요소라 부른다. 여기에는 물론 배우가 쓰는 탈이라는 가면, 광대 를 대신하는 인형(꼭두), 의상, 연희 장소의 여러 가지 장치, 관객을 위한 자리 등 부수적인 요소가 따른다.
연극에 있어 음악과 무용을 분리하여 생각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고전극이나 현대극이 대부분 음악과 무용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은 종합 예술이라고 부른다.
연극과 뮤지컬의 변별력은 음악에 있다. 그것은 연극이 주로 스토리 라인이나 배우의 몸짓에 따라 작품이 구성되는 것과는 달리, 음악적인 요소가 작품 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럼 뮤지컬과 오페라는 어떻게 다른가?
뮤지컬이 오페라의 한 부류인 오페레타에서 출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뮤지컬은 오페라의 형식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오페라는 주로 고전적인 문학의 스토리가 중심이며 음악의 형식은 고전주의 음악에 근거하고 있다. 또 연극성보다는 노래 위주의 공연으로 아리 아, 중창, 합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오페라의 창법이라는 독특한 발성법에 의해 불리는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뮤지컬 음악은 오페라의 노래와 같은 형식일 수도 있으나 보다 대중적 이다.
예를 들면 팝, 발라드, 랩, 레게, 재즈등 대중적인 기호에 맞는 음악들이 자유롭게 작품속에 그려질수 있는 특징이 있다.
연극과 오페라 그리고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음악인 셈이다. 여기에 오페라 가수들은 춤을 추지 않지만 뮤지컬 배우들은 춤을 춘다는 것도 다른 점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대 공연 예술은 탈장르적이고 복합 장르적인 요소들이 많다.
연극과 오페라가, 뮤지컬과 연극이, 뮤지컬과 오페라가 서로 상호보완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만큼 종합 예술인 연극, 오페라, 뮤지컬을 각각의 장르라고 단정적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뮤지컬의 특징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자.
우선 뮤지컬은 종합극(Total Theatre)이다.
기존의 연극적인 요소에다가 음악과 춤이 곁들여진다. 물론 극작가, 연출가, 안무가, 배우, 가수, 무용가, 의상 디자이너들의 공동 작업은 당연하다.
또 뮤지컬은 '프리젠터이셔널극(Presentational Theatre)'이다.
무대위의 배우가 관객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공연하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 배우가 극중의 상대보다는 관객을 향해 노래 부르고, 또 관객이 여기에 박수 로 답례하는 것은 프리젠터이셔널극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은 또한 '대중극(Popular Theatre)'이다.
뮤지컬 공연은 지적인 자극보다는 보고 듣고 즐길 거리를 찾는 관객들을 충족시켜 주는 요소를 듬뿍 안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향락적이고 오락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런 공연 양식을 견지하면서 크게 타락하지 않고 오늘에 이를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근본은 향락적인 것이다.
이러한 대중극으로서의 성격은 상업성과 연관을 맺고 있기도 하고 사회 윤리와도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뮤지컬은 그 형식상 특수한 '약속(convention)이 필요한 극'이다.
여기서 약속이란 극작가, 연기자, 관객이 묵시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것인데, 뮤지컬에서 이 약속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 한다.
예를 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갱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절박한 순간에도 배우들이 노래를 하는 장면은 일반적인 상식에 익숙해져있는 관객에게 는 생소할 것이다.
이외에도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등 수많은 작품 속에서 전쟁 장면이나, 주인공 끼리의 격한 감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뮤지컬만의 특성이다.
이런 극중의 노래들을 뮤지컬 넘버라고 부른다.
이들 뮤지컬 넘버들을 세심하게 들으면 극의 흐름, 극중 배우의 감정등이 잘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래들이 낯설지 않고 드라마와 자연 스럽게 어울려 관객들을 감동 속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이다.
뮤직컬음악의 구조
1)서곡(Overture) - 극이 시작하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음악에 미리 익숙하게 하고 또한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감정을 정돈케 하는 역할을 한다.
2) 오프닝 넘버(OPENING Number) - 오프닝 코러스(Opening Chorus)라고도 하며 서곡이 끝난 후 연주되는 곡 혹은 코러스들의 합창을 일컫는다. 이곡의 역할은 관객의 관심 집중, 분위기 안정, 상황 설명 등이며 따라서 대부분 힘차고 활력 있는게 특징이다.
3) 제시(Exposition) - 앞으로 진행될 극중 상황 이전에 어떤 배경과 상황이 선행되었는가를 설명하여 주는 곳이다. 뮤지컬에서는 주로 노래를 통해 전달되며 정확한 가사 전달과 분명한 발음이 특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4) 프로덕션 넘버(Production Number) - 대체로 1막의 중간 부분 그리고 1막의 끝에 나오는 곡이다. 2막의 첫 부분에 두는 것으로 한 작품에 2회정도 소개된다. 뮤지컬의 각 요소들이 모두 동원되는 부분으로 화려하고 대담하며 유쾌하다.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5) 반복 연주(Reprise) - 중요한 극적 순간에 앞의 노래가 다시 연주되는 것을 말하나 반드시 같은 선율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 변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극적 상황이 변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히 반복 연주는 한 작품의 음악적인 특색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작품의 음악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6) 쇼 스타퍼(Show Stopper) - 뮤지컬에서 유머스러운 노래나 연기를 삽입시켜 일종의 기분 전환의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이때 관객의 박수나 환호로 인하여 극의 진행이 사실상 끊어지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 쇼 스타퍼가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그 쇼는 실패한 것임으로 캐스팅에 주의하여야 한다.
7) 아리아 - 뮤지컬의 백미로 일컬어지며 흔히 남녀 주인공의 사랑의 환희나 사랑의비극,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연주되면 이중창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이 부분을 위해 하나의 뮤지컬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 커튼 콜 - 공연이 모두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는 의미에서 그 동안 공연된 극중의 중요 멜로디나 아리아 합창곡등을 폊집하여 짤막짤막하게 배우들의 노래와 춤을 보여 주면서 화려한 막을 내린다.
영국의 초기 뮤지컬은 1728년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인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에서 시작하였다.
이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는 범죄 집단의 탐욕과 배신을 정치적인 풍자와 함께 섞어 공연 음악의 위트가 특출한 작곡가였던 헨리 퍼셀의 작품들로부터 거리의 발라드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들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런던 연극사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그에 이어 희가극의 기본이 되었다. 이 때의 뮤지컬 무대는 경직되고 전통적인 오페라와 연극 양식을 좀 더 가벼운 코믹 터치로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형식의 발전은 길버트와 설리번의 공동작품을 공연하기 시작한 1877년경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영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강한 국가였다. 그러다 보니 세계의 무역상들과 부호들이 거래를 위해 런던으로 몰려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한 적당한 오락물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둘러 제작하여 1892년 10월 영국 황태자극장에서 공연한 [도시에서,In Town]를 기점으로 한 뮤지컬 파스(Musical Frace)류의 공연물이 었다.
당시의 뮤지컬 파스는 자유롭고 애매한 제목의 근본, 풍부한 노래와 춤, 희극 오페라 무대의 인기 있는 연주자들과 화사한 미인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게 특색이었다.
그 뒤 이 형식은 더욱 발전되어 1893년 존스의 음악으로 [게이티 걸, A Gaiety Girl]을 상연하였는데 이것이 뮤지컬 코메디라고 불리는 첫번째 작품이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유럽에서 견지디 못한 사람들이 이주하여 개척한 미국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당시의 유럽 본토에 비해 식견이 짧았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고도로 세련된 유럽의 예술보다는 쉽고 즐거운 여흥거리를 원하였다.
게다가 유럽 제국들이 앞을 다투어 신대륙에 진출하고 20세기 초에 이민 문호가 개방되면서 미국은 새로운 문화 양식을 찾게 되었다.
미국에 뮤지컬의 씨가 최초로 뿌려진 것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인 1751년으로 알려진다.
이때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인 [거지 오페라]가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앞선 1730년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플로라,Flora]라는 발라드 오페라가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발라드 오페라의 공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춘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민스트럴 쇼(Minstre Show-흑인 노래와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오페라를 혼합한 형태의 미국식 악극)]가 유행하였으며 거기서 파생한 보드 빌(Vaude Ville,풍자적인 대중가요를 의미하던 용어, 가벼운 뮤지컬 극), 발레스크(Burlesque, 해학적인 내용을 담은 장막 풍자극)등 순수 하게 미국적인 뮤지컬 쇼와 뒤따라 유럽에서 수입된 코믹 오페라, 오페레타 등이 혼합되어 차츰 뮤지컬 코메디 스타일의 형식이 구축되었다.
그 뒤 미국인에 의한 최최의 뮤지컬 작품으로는 남북전쟁 직후인 1866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니그로즈에서 공연된 [검은 옷의 괴조,The Black Crook]가 있다.
원래공연이 예정되었던 극장에 불이 나서 서둘러 극장이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브로드웨이 무대 극장가가 생기게 된 시초가 되었다.
최초의 뮤지컬로 기록된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온 발레단에 의해 황급히 공연된 것으로 음악과 춤을 배합한 일종의 멜로 드라마이며 당시는 뮤지컬 [엑스트라 바겐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5년 뒤인 1871년 영국에서 공연되면서 영국 뮤지컬의 싹을 틔었다.
이를 계기로 1860년대 들어서 미국 창작 뮤지컬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고 작품의 경향은 유럽의 영향을 받은 코믹 오페라형이 대부분이었다.
1927년 공연된 [쇼보트,Show Boat]는 종래의 뮤지컬과 달리하며 앞으로의 작품들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그 다음으로 이정표적인 작품은 로저스 헤머스 타인의 [오클라호마,Oklahoma!](1943)인데 이 작품의 성공으로 미국 뮤지컬은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정착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 뒤 반세기 동안 미국은 콜 포터, 레너드 번스타인, 어빙 벌린, 조지 거쉬인 등의 작품들로 세계 뮤지컬을 주도하였다.
이런 미국의 뮤지컬들은 전후 런던 무대를 점령하여 미국 뮤지컬의 위력을 세계에 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뮤지컬은 황금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뮤지컬로는 [쇼보트],[오클라호마],[남태평양,South Pacific] (1949)등이 있다.
뮤지컬을 독특한 공연 예술로 완성시킨 1930년대를 뮤지컬 황금기 제 1기라고 본다면 제2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를 되찾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던 인류가 마음을 달래고, 영혼의 쉼터를 마련키 위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상당한 애정을 기울이게 된다.
그동안 대중적인 뮤지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시기부터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 진다.
하나의 버라이어티 쇼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사가, 작곡가, 안무가들이 등장하여 보다 전문적인 양식을 만들어 갔다.
로저스 햄머스타인의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은 인간애를다룬 문학적인 주제와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으로 관객들이 극중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그동안 뮤지컬의 음악이 그저 극 속에서나 머무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을시작으로 뮤지컬의 노래들이 대중에게 파고들기 시작하였고 시대와 현실 그리고 삶의 이상을 노래하게 하였다.
이 시기에 현대 뮤지컬의 형식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가시와 건달들,Guys & Dolls](1950), [왕과 나,King & I](1951), [피터팬,Peter pan](1954),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1956), [시카고,Chicago](1957),[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 등이 있다.
이어 1960, 70년대는 뮤지컬의 역사에 중요한 전화점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이 때 역시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뮤지컬의 낙천적인 면이 사라지고 사회적 문제들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진지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문학성과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선호하고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호소력이 강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전자사운드는 또 다른 변화를 주기에 충분하였다.
[헬로우 돌리, Hello, Dolly!](1964),[지붕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1965),[헤어,Hair](1967),[코러스 라인,A Chorus Line](1975)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는 뮤지컬의 개념이 바뀐 시대이다.
대중들에게 하나의 독특한 장르로서 인정을 받으면서 대형화,상업화하는 데 성공하는 등 뮤지컬이 산업화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전유물이라 는 데서 벗어나 세계인이 좋아하는 공연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는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에비타, Evita](1978), [캐츠, Cats](1981),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1981), [레미제라블,Les Miserable](1980) 등을 제작,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뮤지컬을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태어 났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면서 뮤지컬은 주제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보다 종합적인 요소를 갖추게 되었으며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는 뮤지컬이 항상 공연되는 결과를 낳았다.
뮤지컬 역시 시대에 따라 조금씩 그 변화 과정을 거쳐 왔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보다 관객과 친근하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있는 것이다.
이제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뮤지컬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시작된 시기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뮤지컬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지난 1966년 무렵이다.
유럽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뮤지컬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는 이론적 체계 정리와 토착화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방향을 계속 모색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그 양식은 조금 달라도 형식적인 면에서 뮤지컬과 같은 공연물들이 올려져 왔다.
1930년대에 유행하였던 대중극의 대표적인 악극,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극과 같은 전통 음악극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용어 자체가 외래 문화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의 시작인 '예그린 악단'에서 찾을 수 있다.
제3극장의 의 [새우잡이](1965) 같은 뮤지컬 형식의 작품도 있지만 예그린 악단의 [살찌기 옵소예](1966)를 본격적인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것은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중적인 인기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뮤지컬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그린 악단은 처음엔 연극 형태의 음악극을 시도하였다. 첫 작품으로 발표한 [삼천만의 대향연]이 그랬다.
연극과 음악을 합성한 형태였으며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은 형식의 공연물이 올려 지다가 1963년에 공연된 [흥부와 놀부]에서 처음으로 무용, 음악, 연극 이 함께 만나는 뮤지컬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흥부와 놀부]는 극에 맞는 새로운 작곡을 하여 공연된 본격적인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극의 줄거리에 맞도록 기존 민요를 적절히 편곡하여 엮어 나간 작품이었다.
예그린 악단의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은 단장 박용구,음악(상임 지휘) 최창권, 무용 임성남, 연출 백은선,임영웅이 한 팀이 되어 1966년에 만든 [살짜기 옵소예]가 시작되었다.
[살짜기 옵소예]는 당시 상당한 반응과 호응을 일으켜 음반으로도 제작되었고 패티 김이 부른 주제가 '살짜기 옵소예'는 어느 대중 가요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무용,연극 등 각 분야의 전문인 또는 인기 스타가 모인 이 작품은 화려하게 한국 뮤지컬의 시작을 알렸다.
그뒤 예그린 악단은 [꽃님이 꽃님이](1967), [대춘향전](1968), [바다여 말하라](1971), [화려한 산하](1971), [종이여 울려라](1972)등을 서울시민회관 에서 공연하다가 1974년 국립극장에 국립가무단이란 이름으로 편입되어 [시집가는 날](1974), [상록수](1975),[태양처럼](1976)등을 공연하였다.
또 1876년부터는 국립 예그린 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런 사람](1977),[시집 가는 날](1977)을 역시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이 단체가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에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에 소속되면서부터이다.
시립가무단은 [달빛 나그네](1978), [우리들의 축제](1981), [사랑은 물이랑 타고](1983), [포기와베스](1984), [지붕위의 바이올린](1985), [용이 나리샤](1988), [고향의 민들레](1990),[춤추는 도시](1922),[서울 사람들](1994),[간도 아리랑](1995) 등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다.
민간 극단에서 올린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이 드라마센타에서 공연한 [포기와 베스]이다.
당시 미국에서 연극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유인형이 동랑레퍼토리극장의 젊은 배우들인 신구, 백의현, 양정현, 안민수 등과 함께 만들어 큰 호평을 얻 었다.
이후에 만들어진 [방황하는 별들] 등 별 시리즈는 청소년 뮤지컬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 1973년 극단 가교는 톰 존스 작의 [환타스틱스]를 [철부지들]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국립 극장에서 공연하였는데 오랫동안 고정 레퍼토리로 관객들에 게 선보여 왔다.
이 작품은 우리 뮤지컬 사상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공연한 우리나라 극단의 수만 해도 10개에 이를 정도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극단으로 이 작품을 공연한 단체는 뿌리, 대중, 현대극 장 등이 있으며 , 심지어 서울시립가무단과 서울예술단에서도 공연되었다.
출연 인원이 8명에 불과하고 음악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가능하기 대문에 영세한 민간 극단이 제작하기에 부담이 덜 가는 작품이었다.
현대적인 뮤지컬을 지속적으로 공연한 단체는 역시 현대극장이다.
민간 극단으로 부담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형 뮤지컬을 1977년부터 꾸준히 공연하였으며 류관순 기념관에서 [빠담 빠담 빠담]을 올려 상업극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성공하였다. 이 작품은 1996년에 극단 유인촌레퍼토리 제작으로 네번째 리바이벌 공연을 하여 대성공을 기록하였으며 더 이상의 상업극 논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현대극장은 그뒤 [피터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에비타](1981),[백설공주](1982), [뿌리](1982), [올리버](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레미제라블](1988)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번역하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주무대로 활동하여 왔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왕성하게 만든 대형 무대의 뮤지컬로 현대극장은 우리 뮤지컬의 토양을 다지는 데 크게 공헌한 셈이다.
여기에 중형 무대의 뮤지컬로 일대 뮤지컬의 대중화 바람을 몰고 온 것은 극단 민중, 대중, 광장의 세 극단이 1983년에 합동으로 공연한 [아가씨와 건달 들]이었다.
이 공연은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미국 뮤지컬이다.
1983년 초연 이후 1997년 현재까지 13년 동안 연 200만명 이상의 관객이 공연을 본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대성공은 세 극단으로 하여 금 뮤지컬을 계속 제작 공연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극단 민중은 1984년에 [카바레]를 극단 광장과 합동으로, 1992년에는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을 공연하였다.
극단 대중은 1989년에 [쉘부르의 우산],1990년에 [캐츠],1991년에 [넌센스]를 공연하였으며 극단 광장도 극단 단 민중과의 합동 공연인 [캬바레]를 비롯 하여 1987년에 [피핀], 1992년에 [코러스 라인],1993년에 [레미제라블]을 공연하였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열기가 가득할 때 88서울예술단(현 서울예술단)에 뮤지컬 전문 단체로 변신하여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컬 대중화 에 불을 당겼다.
1987년에 [한강이 흐른다]를 시작으로 1990년에 [백두산 신곡], 1993년에 [뜬쇠가 되어 돌아오다], 1995년에 [꽃전차] 그리고 [아틀란티스 2045], 1996년에는 [살짜기 옵서예]를 리바이벌한 [애랑과ㅣ 배비장],[성춘향]등을 비롯하여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였다.
1988년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출발하였던 롯데월드 예술 극장도 전속 단원을 확보하고 [신비의 거울속으로](1989), [가스펠](1990), [아가씨와 건달들] (1990),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91), [돈키호테](1992),[레미제라블](1993) 등 번역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여 오다가 결국 재정적으로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해체되고 말았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극단 맥토가 [동숭동 연가](1993), [번데기](1994) 등 우리 창작극을 무대에 올려 높은 완성도로 관심을 모았고 젊은 극단인 모시는 사람들은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는 [블루 사이공]등을 내놓았다.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록큰롤](1995), [사운드 오브 뮤직](1996), [7인의 신부](1995), [만해 한용훈]등을 공연해 관객 동원에도 성공하였다.
또 뮤지컬프로덕션 에이콤이 뮤지컬 전문 단체를 표방하고 나서서 [아가씨와 건달들](1994)에 이어 [스타가 될거야](1995), [명성황후](1996), [겨울나 그네](1997)등을 공연하면서 국내 최고의 민간 뮤지컬 단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여기에 서울뮤지컬컴퍼니는 [사랑은 비를 타고](1995), [쇼 코메디](1996) 등 우리 창작극을 개발하여 무대에 올려서 새로운 뮤지컬 극단으로 발돋움하 고 있다.
또 삼성영상사업단은 [42번가](1996),[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을 수입하여 한국과 미국의 스탭과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는 공동 시스템의 작품을 선보이 며 대형 뮤지컬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