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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10차(방축리 → 괘일산 → 무이산→ 과치재)
2006년 1월 1일 (일요일) 맑음
▶ 개요
1월 1일(일요일)
-. 03:10 울산 반구동 로터리 출발
-. 06:20 방축리 도착
-. 07:15 방축리 금과동산 출발
-. 07:38 88고속도로
-. 08:10 88고속도로 횡단
-. 08:40 이목고개
-. 09:05 봉황산(235.5m)
-. 09:45 일목고개
-. 10:10 서암산 전위봉(손목고도 355m)
-. 11:45 민치(중식)
-. 12:35 중식 후 출발
-. 13:11 설산 갈림길
-. 13:58 괘일산
-. 14:38 무이산
-. 15:40 과치재(금일 정맥 도상거리 : 15.4km)
-. 16:45 과치재 출발
-. 17:05 담양읍 도착(석식)
-. 19:35 광주시 북구 문흥동 수정 찜질방 도착
▶현재까지 호남정맥 종주 총 도상 거리 : 161.8km(사람과 산 종주 지도집 참조)
▶산행기
*1월 1일(일요일)
-. 03:10 울산 반구동 로터리 출발
-. 06:20 방축리 도착
-. 07:15 방축리 금과동산 출발
새해 첫새벽에 집을 나선다. 끝과 시작을 보기위한 사람들로 거리는 아직도 대낮 같다. 간만에 태영이가 참가하여 승용차가 만원이라 비좁지만 분위기는 좋다. 무지무지한 속도로 달려서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방축리에 도착한다. 마을의 공터에 애마를 주차시키고도 여유가 있다. 사위가 아직 어둡고 눈밭을 나서기에는 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도 변에 서서야 ‘금과동산’을 확인한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금과면 에 있는 동산이란 뜻이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 이곳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였나 보다. 뒤돌아 지난차주 하산한 덕진봉을 올려다보니 마지막 내려서는 구간에서 우린 조금 이탈을 하였음을 알았다.
도로를 횡단하여 마을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접어들면 이내 동네 뒷동산이고 다시 왼쪽 둔덕으로 올라서 동산을 넘어야 하지만 우린 소로를 내쳐 따른다.
-. 07:38 88고속도로
아직도 사방에는 많은 눈들로 논, 밭과 길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쌓여있다. 농로를 계속 따라 구릉을 지나 작은 마을 앞 논길을 따라 88고속도로와 만나고(07:38) 도로 아래 통행로가 있지만 절개지 수로를 따라 올라서 고속도로와 함께 정맥을 이어간다. 본래의 정맥은 “S"자 형으로 고속도로를 넘나들어야 하나 마을의 뒷동산에다 연이은 횡단의 위험을(?) 핑계로 그대로 고속도로를 따르기로 하고 땡땡이를 친다.
오른쪽으로 314.5봉으로 오르는 지점을 염탐하며 갓길을 걷고 있는데 건너 쪽 차선으로 번쩍번쩍 도로공사 차량이 지나가다 우릴 발견하고는 멈추어 선다. 그들의 눈에는 웬 미친놈들이고 쉽나보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오른쪽 산으로 일단 피신을 하고 철수는 첨병으로 등로를 확인하다 말고 돌아 내려온다.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그냥 도로를 계속 따르잔다.
그렇게 우린 대담하게 고속도로를 따라 정맥을 이어가는데 왼쪽으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도로위에서 새해의 해를 맞이한다.
‘올 한해도 무탈 산행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현재의 육신은 고속도로를 보행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지만 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해를 맞는다. 잠시 후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인 절개지를 만나고 그 건너편에 팔랑이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우릴 반긴다(08:10).
-. 08:40 이목고개
발목까지 빠지는 눈 덮인 둔덕길로 올라서 본격적 산행이다. 왼쪽은 전북 순창군 금과면 이고 오른쪽은 담양군 금성 면이다.
봉우리 하나 넘고 소나무 정원수 묘목 밭을 지나니 대나무 밭이다. 더디어 담양땅 깊숙이 들어왔다.
대나무 숲을 지나며 실로 담양 땅임을 실감하고 소로를 내려서니 마을 도로가 가로 지르는 이목고개이다. 왼쪽으로 농가 앞 비닐하우스는 아니나 다를까 볼품없이 허물어져 있다. 마침 현지 주민인 아저씨 한분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분들의 갑작스런 재난의 불행에 대한 나눔은 없이 배낭 메고 산행을 나온 미안한 마음에 걱정을 하자 도리어 많은 눈 때문에 산행이 어렵지 않느냐며 안전산행을 걱정해주시는 고움 마음씨로 우리의 기우를 덜어준다.
-. 09:05 봉황산(235.5m)
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농로를 잠시 따르다 숲 속으로 접어들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얌전하게 올라서면 봉황산이다. 도상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나 봉황이라는 이름과 달리 크게 특징은 없다. 방위가 좋아서 붙여진 이름인가? 쌓인 눈으로 삼각점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지나친다.
내려서니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이 꼭 극지방의 이글루를 연상케 한다. 앞선 삼래가 “이런 거 한 컷 해바라 작품이겠다.” “아직 실력이 거기까지는 아이다!”
-. 09:45 일목고개
봉황산을 내려서면 오솔길처럼 널널하다. 임도를 만나고 왼쪽으로 단풍나무 묘목 밭이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내려서면 대나무 밭에 잠시 등로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눈대중으로 무덤이 있는 왼쪽으로 대나무를 헤치고 내려서니 일목마을이다. 마을회관이 반듯하고 아직은 산중의 마을은 아침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조용하다.
도로를 따라 마을을 벗어나 아스팔트 2차선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오르니 도로 왼쪽에 ‘面長晉判洙功績碑’가있고 고개마루에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 10:10 서암산(450m) 전위봉(손목고도 355m)
고개를 가로질러 둔덕을 올라서 무덤이 있는 마을의 동산에서 다시 등로가 사라졌다. 눈 쌓인 마을 주변의 등로가 매번 우릴 시련에 빠지게 한다. 엉뚱하게 다시 왼쪽으로 무덤을 지나 내려서야한다. 왼쪽이 밭인 밭둑길이 잠시이고 팔뚝만한 대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하는 상신마을이다. 마을의 한복판 도로를 따른다.
모락모락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자 사람이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것 같지만 인적은 보이지 않고 개들의 울음소리만이 우릴 반긴다. 비탈진 도로가 끝이 나면 '松旨濃園’이란 입석이 있는 과수원이다. 오른쪽 둔덕으로 과수원 복판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금방 놈이 지나갔는지 과수나무아래가 뻘밭으로 파헤쳐져 있다. 먹이를 찾아 나섰던 멧돼지 소행이다.
과수원이 끝나면 본격적 오르막이다. 한바탕 미끄러운 눈길과 씨름을 하고 가파르게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서암산 전위봉이다. 금과면 들녘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지나온 마루금도 한눈에 덜어온다.
벌써 힘들어하는 태영이의 배낭을 점검하니 과메기와 온갖 쌈에 양념이 나온다. 그리하여 고시레로 예정에도 없던 약식 시산제(?)를 지내고 시린 손에 쌈을 싸 철수가 가져온 ‘산사춘’ 한잔 떨어 넣고 과메기 한입 물고서 세상이 내 것인 냥 모두들 즐거워한다.
-. 11:45 민치(중식)
-. 12:35 중식 후 출발
서암산(456M)을 바라보며 안부에 내려섰다가 왼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골짜기로 꽂히는 기분이다.
널따란 임도 같은 서흥고개를 건너고(11:20) 다시 등로가 얌전해지며 소나무 숲길을 널널하게 걷다가 희미한 소로가 지나가는 민치 직전의 무덤가에서 중식 만찬을 갖는다. 메뉴야 라면이지만 추위에는 제격인 뜨거운 국물이 좋다. 파, 마늘, 고춧가루를 곁들이니 소주가 그리워진다.
-. 13:11 설산 갈림길
오후 발품을 팔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따끈한 커피가 간절하지만 서로 미루다 챙기지 못했다. 민치를 지나자 다시 오르막이다. 임도를 건너고 철탑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녹슨 철망울타리가 함께한다(12:45). 잠시 만에 철망을 오른쪽으로 보내고(12:53) 정맥은 왼쪽으로 휘어지며 다시 오름길이고 마루금은 8부 능선 정도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철탑을 지나 내려간다.
다시 바위 사이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소나무 숲 속에 갈림길이다. 직진이면 설산이지만 정맥은 오른쪽으로 비켜서 내려간다.
여기서부터 호남정맥을 통해서는 전북 땅과는 이제 이별을 한다. 전북의 순창군과 전남의 담양군, 곡성군의 꼭짓점인 것이다.
■ 하얗게 빛나는 곡성 제2명산 설산 (위치 : 옥과면~순천 금과면, 높이 : 522m)
곡성팔경에 동악조일(動樂朝日)이요, 설산낙조(雪 山落照)라는 말이 있다. 동악산의 일출과 설산의 낙조를 곡성의 첫번째와 두번째 경승으로 꼽은 것이다. 또 옥과팔경에는 설산귀운(雪山歸雲)과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 하여 설산에 드리운 구름과 그 옆산인 괘일산(掛日山 약455m)의 형상을 함께 경승으로 꼽고 있다. 곡성의 10대 산을 꼽을 때도 동악산 다음으로 설산을 꼽는다. 설산은 낮지만 그만큼 곡성땅에서는 꼽아주는 명산이다.
- 곡성군 사이트에서 -
-. 13:58 괘일산(446m)
이제 왼쪽은 곡성군 오산 면이다. 왼쪽으로 설산을 조망하며 마저 내려서면 큰 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는 임도 안부다. 내려선 방향으로 설산 1.0km, 직진이면 괘일산 1.2km, 왼쪽으로 임도를 따르면 관광농원 2.4km, 수도암 1.8km라는 이정표 안내도 간판이 있다.
숲 속으로 접어들어 잠시 오르면 바위 암릉길에 눈까지 쌓여있어 매우 미끄럽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는 올망졸망 설산의 모습이 눈이 부시다. 바위 사면을 올라서 괘일산 첫 번째 봉에 서니 암봉으로 이루어진 괘일산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래로는 옥과면 들녘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선두를 따라 잡기위해 태영이와 둘이서 숨만 고르고 그대로 내려선다. 간간이 로프를 의지하며 아슬아슬하게 봉우리 3개를 넘고 내려서니 바위 절벽에서 선두가 기다리고 있다. 삼래가 준비한 사진기로 기념사진을 남겼다며 갈 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내림길을 따라서 괘일산과는 작별이다. 안부를 만나기전에 오솔길 삼거리를 만나나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은 우측 길을 택하여 내려가다 다시 좌측 길을 다시 만나서야 좌측 소로가 정맥에 충실한 마루금이라 생각된다. 잠시 후 방화로를 만나(14:21) 함께하다 오른쪽으로 소나무 숲길 속으로 덜어간다(14:24).
-. 14:38 무이산(304.6m)
소나무 갈비가 쌓여서 등로가 푹신푹신하다. 큰 부침이 없이 무이산에 선다. 오른쪽으로 동강리 들녘이 잠깐 보이고 괘일산 꼭대기 암봉도 보인다. 그러나 별 특징은 없지만 여긴 삼각점(순창 458 1981 복구)이 모습을 내 놓고 있어 오늘 처음으로 확인을 한다.
-. 15:40 과치재
내림길은 키 작은 다복솔이 많은 길이다. 멀리서 차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이 호남고속도로가 가까이로 지나가나보다 그러면 오늘의 날머리도 가깝다는 것 아닌가.
눈 위를 종일 걷다보니 점점 지쳐온다. 그러나 앞을 가로막는 봉우리들은 끝을 보기가 힘들다. 하나 넘고 나면 또 가로막고 큰 편차는 없지만 여러 봉우리를 넘다보니 이제는 작은 봉우리 하나 넘는 것도 힘에 부친다. 기진맥진하여 다섯 번째로 손목고도 230봉에 서자 차량의 굉음 소리만이 마지막 기를 솟게 한다(15:25).
솔 숲길을 얌전하게 내려서 무덤을 폴짝 뛰어내려서니 15,13번 국도가 지나가는 과치재이다(15:40). 2차선 아스팔트도로이고 왼쪽은 전남 곡성군 오산 면이고 오른쪽은 담양군 무정 면이다. 도로 건너에는 신촌 주유소가 있고 ‘전남과학대학’을 안내하는 이정표도 있다.
-. 16:45 과치재 출발
-. 17:01 담양읍 도착(석식)
-. 19:35 광주시 북구 문흥동 ‘수정 찜질방’ 도착
5분여 후 담양 쪽에서 옥과 행 군내버스가 온다. 삼래와 철수는 버스를 타고 방축리로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먼저 출발을 한다. 옥과 면에 도착하면 택시를 이용하여 방축리로 이동을 할 것이다.
등산화 속으로 눈이 서며들어 장화가 되어있다. 발은 얼어서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 후미로 당도한 회장님이 다음 들머리를 확인하고는 신촌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가서 발을 녹이며 잠시 신세를 지고 나니 애마가 생각보다 빨리 당도하였다. 주유소 아주머니에게 자문한 결과 담양 읍의 ‘대나무 찜질방’으로 숙소로 정하기로 하고 담양으로 향한다(16:45).
하지만 대단한 일진이 우릴 황당하게 만든다. 어렵지 않게 ‘대나무 찜질방’이라는 새 건물을 찾아서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입구를 향하자 이곳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몰려나온다. 얼마 전 개업을 한 찜질방 이지만 보일러 고장으로 손님들을 모두 내 보내고 새 손님도 받지를 않는단다. 우린 앞에 있는 보리밥 뷔페로가 몸도 녹이고 저녁을 먹는다.
이곳 주인의 자문을 받아 식사 후 담양댐아래 까지 이동하여 다른 찜질방을 수소문 하여 찾아보았지만 이곳 담양은 시골이라 찜질방이 없다는 판단 하에 광주 시로 무작정 이동을 한다. 아마 식당 주인께서는 우리가 숙소 차원에서 찜질방을 고집하는 줄 모르고 온천을 소개하였다.
광주시내에 당도하여 00병원 모퉁이에서 군고구마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물어서 어렵사리 북구 문흥동의 ‘수정 찜질방’에서 대단한 하루를 접는다.
그러나 난 쉬 눈이 감기지 않는다. 마눌의 등살에 해방이 되어 감개무량하여?
장화로 변해있는 등산화 걱정 때문이다. 다들 잠들었다 싶은 시각에 난 쓰레기통을 뒤져서 비닐봉지 하나를 장만하여 몰래 등산화를 가져 들어와 제일 고온의 방 화덕위에 올려놓고 시치미를 떼고 시원한 마루에 누워있다.
얼마 후
관리아저씨가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 순찰을 돌다가 드디어 나의 신발을 발견한 것이다. “이양반아! 이 냄새나는 것을 이곳에 두면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이용하겠냐! 누구 손님 다 떨어지게 할 작정이냐!” 난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조아리며 용서를 빌고 겨우 무마시키고는 원위치 시킨다.
‘애라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 걱정하자.’
잠이라도 자 두어야 산엘 가지..........
추신 : 오호통제라! 이 일을 우짜노
2일간의 원행을 무사히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디카의 사진을 PC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다가 조작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진을 모두 날리고 이날까지 억울하고 분통하여 쉬 잠을 이루질 못했던 여러 날, 이제 겨우 진정을 하고 삼래의 사진이라도 다운 받아서 체면치레 하였습니다. 아마 이 진한 아쉬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진짜로 오호 통제네 ..정말로 귀한긴데 우짜노.디카본체에는 사진이 남아있는거 아이가?
디카도 새로이 장만한기 첯번째로 출사를 나가서 사달이 났습니다... 메모리 칩에서 이상이 생겼나 봅니다. 새해 액땜으루다 치부할려고해도 영 허전합니다.....
정 억울하고 분 하면 한번더 가서 찍는수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