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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건축, 인테리어, 시각, 서비스, 공공 디자인 등 디자이너의 영역은 무수히 많고 또 다양하다. 자신이 전공하고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 디자인에 집중한다면 그 분야에서 뛰어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스페셜리스트를 넘어 제너럴리스트를 꿈꾸는 디자이너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가 내민 도전장은 그렇게 무모하지도 지나치게 도를 넘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이제껏 쌓아온 내공과 노하우 그리고 어떤것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귀중한 경험으로부터 이 시대에 진정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가 꿈꾸는 디자인은 어느 한 가지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단정 짓지도 않았으며, 나의 색을 일부러 다른 이에게 입히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롯이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누군가와의 협력이 필요하면 도움을 주고받고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진행하면서 차근히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결과물이 이제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그가 말하길,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처음 크로스투디자인이란 회사로 문만 열었을 뿐, 그가 꿈꾸며 만들어온 디자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크로스투디자인의 이동엽 대표이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다. 또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니다. 더욱이 시각디자이너도 아니다. 나는 그냥 디자이너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기획도, 마케팅도, 아트웍(Artwork) 디자인도 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뛰어나기보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길, 나는 오늘도, 내일도, 매일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간다.”_크로스투디자인의 이동엽 대표
Q. 크로스투디자인이란 회사 이름이 참 독특하다. 주로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는 회사인가.
A. 회사 이름이 크로스투디자인(Cross2design)이다. Cross는 신앙적 의미와 디자인적 의미 두 가지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고객과 디자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디자인적 의미는 크로스오버(Crossover)에서 가지고 왔다. 혼합하여 만든 음악의 한 장르를 나타내기도 하는 이 말을 각기 다른 영역의 부분을 교차하여 디자인에 적용한다는 의미에서 to Design을 붙여 크로스투디자인(Cross2design)이 된 것이다. 회사 이름 때문인지 창업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프로젝트와 협업을 수행했다. 제품디자인 뿐만 아니라 프로덕트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수립을 위한 디자인가이드라인, 디자인전략, 공공디자인, 심지어 싸인(Sign)과 로고(Logo) 디자인까지 폭넓게 하고 있다.
Q. 제품디자인 뿐만 아니라 협업을 통한 디자인까지 작은 회사에서 이 모든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A. 그렇다. 남들이 보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론 디자인 전략가로서, 때론 아트웍(Artwork)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 혹은 기업들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나 스스로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제품디자이너 혹은 인테리어디자이너와 같이 한정적인 분야에서의 전문 디자이너 뿐 아니라 디자이너이면서 제품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고,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사용자와 고객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낸다.
그래서 크로스투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은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한정적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하며 때로는 리드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앞으로 크로스투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이며, 이러한 제너럴리스트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이기를 바란다.
Q. 제너럴리스트들이 모여 일하는 방식은 주로 외국계 디자인 회사에서 볼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스페셜리스트 위주의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디자이너를 더 꿈꾼다.
A. 그래서 나는 나를 애매한 디자이너라 표현하고 싶다. 나의 경쟁력은 바로 애매함이다. 우리는 격변하는 시장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한 것 같다. 어느 날 유망직종의 기술이 갑자기 실업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직종으로 바뀌곤 한다. 예전에는 10년 정도 주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5년도 채 가지 않고 거침없이 바뀐다. 한 예로 공공디자인을 들 수 있다. 한참 유행하니 많은 디자인 전공학생들이 공공디자인분야로 뛰어 들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벌써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제품디자인을 잘한다. 그러나 여러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갖다보니 다방면에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시각, 인테리어, 제품, 가구 등 디자인 프로세스는 똑같다.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하다. 부족한 전문성은 협업으로 보충하면 된다. 하지만 한 분야에 전문성이 강한 디자이너는 리더가 되기 힘들다. 나는 제품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냥 디자이너다. 그래서 공공디자인도 하고 제품디자인도 하면서 인테리어도 할 수 있는 것. 특히 디자인 전략이나 가이드라인과 같은 일도 하면서 말이다.
Q. 주로 협업을 통해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클라이언트와의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A. 크로스투디자인을 설립하기 전 우퍼디자인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관리 입장이 아닌, 실무위주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많이 다투기도 했다. 주로 내 위주의 방식으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대표가 되어보니 절대로 클라이언트와 다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아니 절대로 안 된다(웃음).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더라.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게 되고 점차 조율하게 됐다. 그렇다고 무조건 들어주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다보면 자연적으로 거리가 좁혀진다. 밀당(밀고 당기기)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Q. 남녀사이에 오가는 밀당(밀고 당기기)이 일적인 관계에서도 필요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다. 이런 노력으로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는가.
A. 하하. 그렇다고 무조건 밀당(밀고 당기기)을 시도하면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클라이언트를 봐가면서 행동해야 한다.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하는 부분은 밀당(밀고 당기기)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우퍼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시절, 3년째 되는 해에 처음으로 혼자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처음이라 의욕도 컸고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 당시 전적으로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고 성심성의껏 일을 진행했다. 그런 모습들이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그 뒤로 그 클라이언트를 잊을 수가 없다. 전적으로 나를 신뢰하고,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 ‘서울시 사설안내표지 표준디자인’_우퍼디자인
“‘서울시 사설안내표지 표준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무모한 발상을 장인들의 경험에 의해 현실화 시킨 혁신적인 사인표지판이다. 당시 고객이었던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에서는 사설안내표지의 표준디자인을 만들고 싶어 했고 기존의 설치 구조(볼트와 벤딩구조)들이 흉하게 들어나는 것을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서울시만의 정체성이 묻어난 시설물을 원했다. 이러한 니즈들을 해결하기 위해 철물 제작을 몇 십 년씩 하셨던 장인들을 여러 번 찾아뵙고 해결점들을 같이 고민했다. 그 결과 서울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있는 사설안내표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디자인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 ‘F3 systems’_우퍼디자인
“‘F3 systems’는 고객의 신뢰를 100% 받으면서 진행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기억한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F3 systems 전체 제품의 프로덕트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에서 제품 디자인까지 총괄 진행했고 모든 결정권을 일임 받았다. 시작 단계부터 고객사에서 유럽의 경쟁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iF 와 red dot 같은 유럽국가에서 주최하는 디자인어워드가 목표가 되었다. “클라이언트의 전폭적 신뢰는 디자이너도 춤추게 한다”는 의미를 남긴 대표적 프로젝트가 되었다. 각 Pin up award에서 동상과 iF design Award를 수상했다.“
Q. 본인의 디자인은 주로 어떤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고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는가.
A. 개인적으로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브라운(Braun)사의 단정하고 신뢰감 있는 디자인을 선호했지만, 대림미술관에서 했던 디터 람스의 디자인 전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시대의 디자인 아이콘인 애플(Apple)의 조나단 아이브 역시 공개적으로 디터 람스에 존경을 표하며 그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디자인을 보면 참 정갈하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제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디자인의 의미와 철학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Q. 디터 람스의 깔끔하고 완벽한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에게 은은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디자인이야말로 진정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디자인 아닌가.
A. 그렇다. 한 예로 남성 정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최근 깃을 세운 투 버튼 기장의 짧은 정장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신 영화 ‘007스카이폴’에서 남자 주인공은 단순하면서 기본적인 일반 정장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은 그 자체로 멋이 나고 기품이 느껴진다. 이제까지 영화 ‘007’ 시리즈에서 남자 주인공은 수트 차림의 멋을 강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멋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조나단 아이브 같은 인물이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선호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Q. 지난해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2012서울디자인프론티어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들었다. 크로스투디자인과 같은 1인 기업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A. 가장 큰 이점은 음지에 있던 1인 기업들을 양지로 끌어주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크로스투디자인은 운이 좋았다. 좋은 고객과 아이템을 만나 돈도 벌고 포트폴리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보완할 점은 사업의 취지에 맞도록 가산점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사업의 취지는 규모가 작지만 실력이 되는 소규모 디자인 업체와 1인 기업의 육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만 단발적으로 끝난다면 사업의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서 참여 업체들을 평가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업체들은 kidp공인산업 디자인전문회사로 인증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된다. 일종에 가산점 제도를 통해 졸업시키는 시스템이다. 단 그렇게 되려면 명확한 평가기준과 사업운영시스템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Q. 좋은 의견이다. 평가제가 도입된다면 중·소 디자인 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A. 아니다. 예전 대학시절에 ‘e-디자인아카데미’에 참가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모여 함께 디자인 회사들의 강의도 듣고, 팀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난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막상 올라와서 배워보니 다른 학생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다. 팀별로 열심히 준비해서 나름 잘했다고 판단했지만 상대방은 더욱더 잘 해온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이대로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Q.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학연수는 그 전까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나.
A. 그렇다. 그때 나는 영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디자이너가 되려면 왜 꼭 영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유명 디자인 회사 대표가 강의 중에 영어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꼭 영어를 해야 하느냐고. 대표가 말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못하면 디자이너인가? 그럼 그 다음은 뭐로 승부할 건데? 지금은 영어가 중요할 때다.” 이 말이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전까지는 디자인만 잘하면 되지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뛰어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저절로 위기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어학연수를 결심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1년 해외에 나갔다고 영어가 늘지는 않더라(웃음).
Q. 갑자기 허탈해진다(웃음). 그럼 헛수고 한 것이 아닌가. 인생에 가장 큰 대 역전의 기회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A. 인생에서 대 역전의 기회는 바로 그 이후부터다. 학교에 돌아와 다시 공부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명함 하나를 주셨다. 서울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가 있는데 한번 연락해보라고. 이후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곧 방학이니까 미국 비자를 받아 당장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그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년에 1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마케팅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비즈니스 영어도 많이 늘고 제품도 직접 팔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디자인은 한 가지 영역이 아닌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결과 지금의 크로스투디자인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준 셈이다.
△ ‘단층촬영기 Mi SPECT/CT’_크로스투디자인 + 뉴캐어메디컬
“뉴캐어미디컬시스템의 ‘전임상 마이크로 단일광자방출 단층촬영기’ Mi SPECT/CT는 새로운 의학 기술과 신약개발을 위한 소동물 연구실험에 사용되는 의료영상기기로 향후 Micro PET, SPECT, CT 등으로 확장을 고려하여 디자인되었다. 특히 사용자의 행태 분석과 다양한 생산 방법을 검토하여 컨트롤, 도어 등의 각 파트 위채, 작동 방법과 생산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
“앞서 ‘서울시 사설안내표지 표준디자인’과 ‘F3 systems’ 프로젝트의 공통적 특징은 목표가 뚜렷했고 고객의 니즈가 명확했다. 우퍼디자인 회사에 다닐 당시, 정말 훌륭한 전문가들의 상호 신뢰와 협업이 이루어낸 성과로 기억된다. 크로스투디자인은 현재 2년 남짓한 회사라 많은 업무를 수행했지만 아직 공개 할 수 있는 단계(*설계 및 양산단계에 있음)에 있는 프로젝트는 적다. 올해 하반기부터 제품이 출시가 되면 크로스투디자인만의 디자인 스토리가 공개되리라 기대한다.”
Q. 그런 큰 경험을 해 봤다는 게 참으로 부럽다. 지금의 제너럴리스트를 꿈꾸는 것도 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나.
A.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 것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한몫했다. 그때 ‘e-디자인아카데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미국으로 건너가 마케팅을 배운다는 것도 망설였을 것이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봤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인생에 있어 감사할 부분이다. 나중에 잘되어 한국디자인진흥원측에 밥이 라도 사야하나?(웃음).처음부터 디자이너를 꿈꾸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기도 싫다. 공부를 못해서 부모님이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자 무척 노력하셨다. 미술에 흥미를 보이자 방향을 이쪽으로 잡아주신 것 역시 참으로 감사하다.
Q. 한국디자인진흥원측에 밥 사준 다는 그 약속 꼭 지켜야 한다.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신다(웃음). 공부를 못해서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A. 그 말은 전적으로 나에게만 해당된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절대 아니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난 공부보다는 추리소설을 좋아 하고 만화그리기를 좋아 했다. 공부를 너무 못하다 보니 부모님께서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 잘했으면 정말 큰일 났겠다 생각한다. 아마도 부산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니 미술 공부를 반대하셨을 것이고 나는 지금 디자이너가 아닐 것이다.
어느 날 디자인을 해보지 않겠냐고 어머니께서 권하셨다. 공부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학원 보내 준다고 하니 싫어할 리가 없었다. 막상 학원을 다녀보니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미술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부모님의 권유와 후원이 있었기에 계속 이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공부를 못해서 혼만 나던 학생이었는데 미술하면서부터 칭찬과 기대를 처음 받아 봤다. 대학시절 때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나도 디자인 하고 싶은 사람?” 몇 사람만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일등으로 들었다. 그런데 정말 다시 태어나면 공부도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Q. 본인처럼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본인의 경험상 디자인을 전공한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A. 후배들을 보면 당황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형 나 뭐하면 되요?”라고 묻는 후배들이 다반사다. 난 나만의 것, 나만의 멋을 강조하는데 주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디자이너들이 할 일은 고객들의 색을 찾아주는 일이다. 자신의 색을 입히는 것 보다 먼저 고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색을 찾아주는 것이다. 요즘 ‘나만의 디자인으로 고객들을 찾아오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물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참 좋고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한 가지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방면의 길이 열려있고 세상은 넓다. 좀 더 포괄적인 생각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 그 길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며 한국디자인계에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A. 크루스투디자인의 설립 목적은 해외 진출에 기반을 두고 만들었다.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많이 열어줬음 좋겠다. 현재는 거기에 사활을 걸고 집중하고자 한다. 국내 시장이 너무 좁다 보니 몇 개의 아이템만 빼고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경쟁이 치열하다. 디자인 붐도 인테리어디자인에서 제품디자인, 웹디자인, 공공디자인으로 변해 가는데 총 15년이 안 걸렸다. 기존의 디자인 회사들이 이 작은 시장에 진을 치고 있으니 새로운 디자인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넓은 시장을 바라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개인이 진출하기에는 힘들다. 어떻게 진출 시킬 것인지 진출 할 것인지 심각하게 한국디자인계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취재_한국디자인진흥원 정보홍보실 글. 박하나/사진. 김효수
문의_크로스투디자인 02-454-3736, leeyubi@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