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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노인 유럽 방랑기
제12일 Paris에서 Strasbourg로
아들과 헤어져 Strasbourg로 향하는 TGV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다. 약 20년 전에 집 사람과 함께 유럽여행을 한 때가 있었다. 그 때 Strasbourg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회의가 있기 사흘 전에 Zurich로 들어가 스위스의 루체른과 인터라켄으로 자동차로 여행 한 후에 Strasbourg로 들어가 회의에 참석 한 일이 있어 낯 익은 곳이다.
가면서 나는 전편에서도 말했지만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긴장된다. 떠나기 전에 옥션에서 인터넷으로 렌터카 예약을 했지만 이것이 잘 된 것인지 믿음도 안 가고 이 차에 Navigation이 장착 되어 있는지, 최소 영어로 안내가 되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도착하자 마자 나는 예약된 렌터카 회사로 직행해서 확인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는 VW의 Polo급을 10일 간 60만원 정도로 예약했는데 확인해 보니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었다.
호텔을 찾아 첵크인을 하고 간단히 저녁을 한 후 잠을 청했다. 서울을 떠나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밤이 많았는데 갈 때 Amazon의 Kindle이라는 e-book을 갖고 갔는데 여러 책이 수록되어 있어 그 중에 “권력의 조건”이라는 도리스 컨스가 쓴 에이브라험 린컨에 관한 책이었다 키워드가 라이벌까지 끌어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쉽 이었다. 잠을 청하며 읽은 책들이 이 번 여행에서는 여러 권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도 한 위인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대한 정치가인지는 처음 알았다. 포용의 리더쉽, 소통의 리더쉽의 달인이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정신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두 권으로 된 것을 다 읽었다. 공화당 대통령 경선 때 라이벌이던 주요 세 사람을 모두 내각으로 끌여들여 끝까지 함께하는 리더쉽은 배울 만 하지 않는가? 이제 나 혼자 만의 여행이 시작 된다.
제13일 Emmering으로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식사 후에 역으로 가서 렌터카 회사로 가서 자동차 인수에 들어 갔다. 직원예기는 VW Polo급은 Automatic이 없는데 괜찮으냐고 해서 Automatic이면 좋겠다고 했더니 하루에 5유로 그리고 Navi가 하루에 10유로 이렇게 해서 세금을 포함 총200유로를 더 물게 되었다. 차 키를 받아 주차장으로 가 보니 Toyota의 Auris라는 Hybrid였다. 나는 연비도 그렇고 흥미가 있어 claim을 하지 않고 시동을 걸고 Navigation을 조정하였다. 한글로 안내해 주도록 조정하여 주었으므로 별 문제가 없었다. 예정된 호텔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하였다. 뮌헨 근처의 Fuerstenfeldburck 의 Emmering에 호텔이 있었다. 이 번 여행의 첫 번째 실수는 Hybrid 차량을 빌린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Autobahn에서는 맞지 않는 차였다. 순발력이 없고 130km이상의 속도를 내면 부숴 질 것 같은 소리가 난다. Autobahn에서는 추월을 자주 해야 되는데 이 정도의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345km를 3시간 반 정도 걸려 호텔에 여정을 풀고 Dachau Schloss로 갔다.
이 Dachau Schloss는 Wittelsbasch 가문의 처음 여름별장으로 Wilhelm 4세와 Albrehit5세(1508-1579)공작 시절이였다. 왕도 아닌 공작시절에 이러한 화려한 여름 별장이라니. 뒤 편의 정원은 잘 가꿔져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The Concentration Camp of Dachau(다하우 수용소) 내가 수용소라 한 것은 유태인 뿐 만 아니고 독일 프랑스 기타 유럽 국가의 나치에 반대하는 정치인 들을 납치 감금 수용한 곳으로 그 동안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독일 남부에 이런 시설이 있었다는데 놀랐다. 여기뿐만 아니고 중부 유럽 여러 곳에 이런 시설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다.
(Dachau 수용소의 안내 표지판)
들어가는 순간부터 충격이었다. 한 사람의 생활 공간, 數없이 펼쳐지는 收容棟 감시의 눈길 이런 모든 것 들을 전시하는 독일, 모든 치부를 펼쳐 놓고 용서를 빌며 미래를 약속하는 독일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일본의 아베 정권의 꼼수가 더욱 더 나의 분노를 치밀게 한다. 나는 반 일본주의자는 아니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우리가 일본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 들은 앗사리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합리주의(?)로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태도, 항상 주위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태도라든지,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태도 등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아베 정권은 반대되는 일 만 한다.
(유태인을 비롯한 나치로 보면 불령 인사 수용동)
이러한 건물이 수도 없이 늘어서 있었는데 현재에는 몇 동만 남기고는 대 부분의수용동은기초만 남아 있고 미군이 점령 후에도 한 때는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1932년 Hitler가 총통이 되고 1933년부터 이 Dachau 수용소가 개설 유태인 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이 한 칸이 한 사람의 생활 공간)
이 곳을 방문하게 된 것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듯싶어 마음이 갈아 앉으면서도 기쁘게 생각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 인가 하는 생각이 맴 돈다.
이 차가 바로 Toyota의 Hybrid Auris이다. 국내에는 아직 들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지금 횡성에서 Toyota의 RAV4라는 SUV를 타고 있다. 내가 두고 두고 빌린 것을 후회하는 바로 그 차다. 신차를 살 때도 Hybrid는 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호텔로 돌아와 보니 Emmering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깨끗하고 아주 한적한 곳에 있는 호텔 아침상도 근사하게 받았다.
제14일 Fuessen에서
Austria의 Tyrol 지방에 있는Hotel로 가는 도중에 독일 최 남단에 Fuessen이 있다. 그 곳에는 Hohenschwangau성 그리고 그림 같은 Disney Land가 모델로 삼은Neuschwanstein성이 있는 곳이다. 성이 있는 근처는 호텔도 비싸고 해서 약30km 정도 떨어져 있는 Austria의 Tyrol 지방의 Berwang Zugspitzblick라는 곳에 호텔을 잡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성이 있는 곳을 대강 돌아 보고 사람도 너무 많아 본격적인 탐사는 내일로 미루었다. 호텔이 있는 Zugspitzblick 지방은 너무 아름다워 정말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보는 알프스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에 돌 들이 많아서 인지 높은 산 들은 회색 봉우리를 이고 밑에는 초록의 초원과 검게 보이는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머물었던 호텔과 식당 왼쪽에서 두 번째 차가 나의 Auris)
이 지방은 겨울에는 스키 그 외는 Tracking과 Mountainbike로 사람 들을 유혹하고 있다. 곳곳에 스키어를 실어 나르는 Lift가 보인다. 간간히 움직이는 Lift는 Tracking하는 사람 들을 태워 주는 모양이다.
나는 이틀 내내 부속 식당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저녁에는 메뉴에Schnizel(돈가스)이 있어 Beef로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대 만족이었다.
제14일 Berwang Zugspitzbrick에서
아침 일찍 성 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8시30분쯤 도착했는데도 Ticket House에는 줄이 벌써 50m 정도 늘어서 있다. 성 두 곳과 바이에른 왕조 박물관 한 곳 포함하면 한 사람당 23유로로 비쌌지만 할 수 없이 전부를 볼 수 있는 표를 샀다. 우선은 Hohenschwangau 성으로 갔다. 처음에는 모르고 Ticket에 있는 Bar code를 읽혔더니 안 된다. 몇 번을 해도 안되니까 독일 사람으로 보이는 친구가 시간이 되어야 한단다. 자세히 보니 Grouping을 하여 입장객을 분산시키고 언어가 같은 사람 들을 모아 설명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한 30분을 기다렸다. 이 성은 루드비히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2세가 고딕양식으로 지은 성으로 루드비히2세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이다.
성 내부에는 스테인드 그라스, 가구 들, 기사 상 들, 그리고 샹들리에, 주고 받은 선물 들, 당시의 주방을 유지해 전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드비히2세도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유명을 달리 했단다. 이러한 일 들이 1800년대 중반이니 그렇게 오래 된 성은 아니다, 관람 시간은 약45분 정도 걸렸고 다음 Neuschwanstein 성에 들어 갈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약 한 시간이 있다. 나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가기로 했다. 마차가 여러 대가 있어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30분 정도 걸려 다른 성에 도착하였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아들이 두고 간 우산이 있어 도움이 되었다.
(다른 방향에서 본 호엔슈방가우 성)
11시 45분에 성에 입장하도록 되어 있어 들어 갔다. 다른 성 들과 같이 같은 pattern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 두 성에는 작곡가 바그너의 여러 음악의 주제가 그림으로 또는 조각으로 표현 되어 있다. 황제와 나란히 어깨를 해서 붙어 있는 바그너의 초상화도 있고 묵었던 침대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음악”로엥그린”이라던지 “탄호이저 서곡” 이러한 곡을 회화화 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Neuschwanstein(노아슈반슈타인)성을 건설하며 너무 많은 국고를 탕진하여 죽음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루드비히2세는 일찍 죽고 Otto 1세가 즉위하였다. 얼마 후에 루드비히 2세의 아들인 루드비히 3세로 이어 지지만 1차 대전 후에 바이에른 공화국의 한 개 주로 편입되어 왕국은 최후를 맞는다. 이 아름다운 성은 이러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은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으며 톡톡히 제 역할을 해서 후손 들에게 큰 수혜를 주고 있지 않는가? 이는 왕조 당시의 평민 들이 수탈 당한 역사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머리 속에서 계산해 보아도 어마어마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리엔 다리에서 본 노이슈반슈타인 성)
둘러 보고 나오니 12시 30분 성에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마리엔 다리가 있다. 그 다리에서 성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해서 거기까지 올라갔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는 있지만 올라가 보니 정말 손에 잡힐 듯 아름답게 보인다.
(내려오며 잡힌 Hohenschwangau 성)
약40분 정도 걸려 Ticket House 있는데 까지 내려와 벡스 맥주 하나와 Hot dog를 사 점심으로 때웠다. 그리고 바이에른 왕조 박물관으로 들어 갔다. 거기는 Back Bag을 아예 맞기라고 해서 Locker에 집어 넣고 들어 갔다.
이렇게 가 보고 싶었던 성 들을 보고 걷기도 많이 해서 약간은 피곤했다. 비는 거의 그쳐 가고 있었다.
3일 간 약 650km를 달리다 보니 기름을 넣어야 되는데 어떻게 넣지? 스트레스 다. 주유소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20, 30, 50유로 표시가 있는 스위치가 20유로 버튼을 눌렀다. 옆에서도 주유를 해서 내 차에 기름이 들어 가는지 알 수가 없어 독일 사람에게 영어 하느냐고 했더니 무얼 도와 주랴 해서 내가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좀 봐 달라고 하니 보더니 들어 간 것 같은데 해서 나는 시동을 걸고 게이지를 확인하니 들어가 있어 Casher에게 가 돈을 지불하고 나니 이제 독일에서의 주유 방법은 확실히 알았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내려 오는 길)
Hotel로 돌아와서 호텔 방에 짐을 놓아 두고 산책하려 밖으로 나왔다.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 가서 여러 자료 들을 들고 나왔는데 자료가 거의 Ski, Mountainbike, Tracking 하는데 관한 자료다. 조그만 동네인데도 예외 없이 교회 첨탑이 보인다. 한 시간 이상을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Mirabelle이라는 식당인데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부속 식당이다. 분위기도 좋고 손님 들도 여러 팀이 들어 와 있었다.
(Innsbruck에 예약한 Gasthof Restaurant Aldranser Hof)
제16일 Innsbruck에서
아침을 맛 있게 먹고 이틀 동안 얼굴을 마주한 maid와 악수로 작별 인사를 하고 인스부르크로 향했다. 알프스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이 곳이 바로 Fuern Pass라 하여 우리 옛 대관령 고개를 연상하게 만든다. 2차선으로 꼬불꼬불한 길에 다니는 차량이 꽤 많았다.
커브마다 앞에 펼쳐지는 알프스의 풍광은 환상적이었다. 이 Pass가 끝나자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가 나온다. 오늘 Hotel은 Aldrans라는 인스부르크 남쪽의 언덕에 있는 곳이다. 주소를 입력하는데 마지막 숫자를 입력하는데 안 들어 간다.대충 치고 출발을 했는데 다 가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데 Hotel이 없다. 언덕길을 두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더 올라가 보자 하고 악셀을 밟았다. 한 100m정도 더 올라가니 아름다운 호텔이 보였다.
(호텔 베란다에서 본 Innsbruck 시내)
짐을 풀고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갔다.
(그름에 가린 노르드케테 산)
(Innsbruck 거리)
이 날이 주말인지라 거리에 사람 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위 사진 어디에 주차를 해 놓고 시내 구경을 했는데 Innsbruck 거리의 특징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약 한 시가쯤 둘러 보다 호텔로 돌아 왔다. 돌아오고 나서 생각하니 황제가 베란다에 나와 광장을 내려다 보는 황금지붕을 보아야 하는데 잊어 버린 거다. 할 수 없다. 그리고는 호텔 주위의 Aldrans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어제 묵었던 Berwang 보다 조금 더 큰 마을로 Tyrol지방의 멋을 한 껏 부리고 있었다. 언덕에 있는 마을인데도 작은 호수도 있고 산림도 울창하고 산악 자전거로 냅다 달리고 싶은 그런 길. 시간 반쯤 걷다 마을로 들어 오며 와인과 맥주 그리고 Blueberry, 소시지 등을 사서 베란다에 앉아 마시기 시작하였다. Swiss Zermatt의 Adonis Hotel 베란다에서 아들과 마시던 생각이 난다. 와인 375ml와 500cc 맥주를 다 마시니 조금은 취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Innsbruck 시내는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 한다.
(점등 되기 시작한 Innsbruck시내 멀리 공항 활주로에도)
무언가 가슴 속에 묵직한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얼굴에 와 닿는 여름 밤의 바람이 시원하게 만들어 주긴 하지만…
이 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옷을 잘 못 가져왔다 할 정도로 유럽의 8월 날씨가 너무 선선 했다. 아침에 13-4도 오스트리아 지방은 8-9도 낮에는 20-22도 정도로 가을 날씨였다. 잠 옷을 안 가져가서 내의만으로 밤에 버티려다 티셔츠까지 입고 잤다.
(청명한 오스트리아 아침의 알프스)
제17일 Salzburg에서
아침9시경 차에 시동을 걸고 Salzburg로 출발하였다.
약 두 시간 걸려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였다. 다행하게도 시내에서 멀지 않는 곳에 호텔이 있었다. 도착하자 마자 호텔 Information에 Mirabelle 궁이 어디냐고 물으니 지도와 함께 표시해 주며 앞에서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단다. 호텔에서 나오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이 성이 하나 보인다.
(Hohen Salzburg Fortress 잘스부르그 요새)
걸어서 시내로 들어가니 거리가 예술이다. 대성당이 나오고 Residenzgallerie, Mozart 동상 광장, Mozart Geburtshaus(모찰트 생가) 등등이 다 거기 있다.
(Salzburg의 대성당 종탑)
(Mozart의 동상)
(Mozart 생가 현재는 박물관 옆에는 1756년 1월 27일 오전에 태어났다는 표지가 있다)
상점은 온통 Mozart Marketing 이다. Chocolate, 의류, 모자, 카페이름, 상점 점포 이름 등등 Mozart를 빼면 Salzburg가 존재 할 수 없을 정도랄까? 나는 Mirabelle 궁으로 향했다. Salzburg river를 건너 가면 시 청사가 나오고
(왠 약속이 그렇게 많은지 다리에 달린 열쇠 들과 미안하지만 구걸하는 여인)
다리 위에는 어김없이 수 많은 열쇠가 걸려져 있다. 무슨 약속,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한 5분 더 걸어가니 Mirabelle 궁의 정원이 나온다. Franz Josef I 가 건설한 이 Mirabelle 궁전은 정말 아름답다. 가 보지는 못 했지만 사진에서 본 비엔나의 쉔브룬궁 보다는 규모는 작은 것 같은데 그래도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장미 정원, 분수, 조각 들 이런 것 들이 조화를 이루어 보기 좋은 정원이 되었다.
(Mirabelle Garden에서 본 Hohen Salsburg Fortress와 성당)
(Franz Josef 1세가 지은 Mirabelle Palace)
강가에 지은 어느 백작이 살았음직한 웅장한 집이라든지, 아담하게 지은 소박한 집 들이 늘어서 있다. 다리 위에서 아래쪽, 그리고 위쪽을 보는 눈은 정말로 즐거웠다. 다시 Mozart House 앞의 Café에 앉아 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내 카메라에 잡힌 단체로 온 우리나라 사람 들)
(카페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찍은 위에 Mozart 생가 앞의 카페에서)
제18일째 2014년 8월18일 Salzburg에서
아침에 일어나 다시 걸어서 시내로 나와 Salzburg museum으로 갔다. 가 보니 당분간 휴관이란다. 옆에 Panorama 박물관이 있어 들어 가 보았더니 약 150년 전에 한 사람의 화가가 10여 년에 걸쳐 그림을 그려 파노라마로 전시해 놓았다. 거기에 LCD화면으로 현재의 시가지가 나오도록 해 놓아 150년 간 어떻게 변해 갔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150년 전의 Salzburg 시가지)
Reidenz Gallerie로 갔다. 여기도 역시 화려하고 웅장한 황제의 저택으로 사용한 건물로 전시되어 있는 여러 보물급 물건 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뿐이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 갔다.
(대성당 내부의 강단)
규모는 그리 큰 것 같이 모이지는 않았는데 경건한 마음이 절로 나온다.
다음에는 Fortress로 올라가려 한다. 45도 정도 기울어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올라가니 전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1495년부터 1619년까지 지어져 난공불락의 요새로 태어 났다.
(요새 위에서 Mirabelle 궁을 중심으로 찍은 시가지 전경)
(요새 안에 있는 작은 노천 카페)
(요새 전망대)
15세기에 토목 건축술에 놀라울 따름이다. 요새 안에 대포도 여러 문이 장착되어 있는데 발사 할 때의 진동 흡수 문제 등의 해결 기술이 발군이지 않나 생각된다.
Salzburg Mozart의 고향에 왔으니 Opera라도 한 번 볼까 하고 Ticket Counter에 갔더니 오늘 공연이 Don Giovanni 인데 420유로 와 330유로 두 Class로 너무 비싸고 내 복장이 횡성 시장에서 14,000원 주고 사 입고 온 반바지로는 입장을 안 시킬 것 같은 느낌이라 포기했고 거리 악사의 Mozart를 감상하기로 했다.
(기념품 가게)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거리가 관광객 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로 기념품 가게 들을 비롯하여 식당, 카페 등이 몰려 있는 거리이다. 모차르트 생가 옆에 수퍼마켓이 있는데 거기서 빵과 맥주를 사서 모차르트 광장 벤치에서 먹으려 했다. 목에서 카메라를 벗고 계산을 하고 나서는 카메라를 계산대 옆이 놓고 나와서 50m쯤 가다 생각이 났다. 허둥지둥 돌아가며 카메라 보다 찍어 놓은 사진이 없어 지면 어떻게 하나 더없이 두려웠다. 가서 Casher에게 “My Camara”하니 여기 있다고 내어 준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며 점심으로 사온 맥주와 빵으로 모차르트 광장의 벤치에서 허기를 채웠다.
(모차르트 brand 쵸코렛 가게)
Salzburg DOM은 1628년 건축하기 시작하여 대 완성 된 것은 1959년 인 것 같다. 유럽의 거의 모든 성당과 건물 들은 건축 당시부터 시대 변천에 따라 조금 씩 Renovation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깨끗하게 유지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르네상스 문명이 이태리로부터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꽃을 피우고 그 후로 독일로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특출한 왕과 귀족 들을 갖은 나라 들이 문화 문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태리의 메디치 가, 프랑스의 앙주 가문, 바이에른왕조, 합스부르크왕가 등이 그런 사례 들인 것이다. 국민 들을 수탈해서 했던지 아니면 무역, 금융 등을 통해 축재를 하여 문명을 발전시켰던지 간에 문화를 융성하게 만든 지도자의 혜안이 부러웠고 그 결과가 현재의 유럽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19일 Regensburg에서
짐을 다시 싸 길을 떠났다. Landau를 지나는 20번 도로와 3번을 통해 Regensburg로 향했다. Salzburg에서 Strasbourg로 돌아 가는 길을 어느 루트로 정 할지 생각하면서 최종적으로 정한 길이 Regensburg와 Wuerzburg를 거쳐 가는 것이다. 이 루트를 정한 것은 Google Map의 역할이 컸다. 중요 도시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Google Map은 참으로 유용했다. 이 것이 Contents의위력이 아니던가?
(Regensburg로 가는 도중에 길에서 잡은 어느 이름 모를 고성)
교외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놓았고 호텔에서 City Center까지는 약10km 정도였다. City Center로 가서 주차 할 곳을 찾다가 적당한 곳이 없어 어느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시켰다. 호텔에서 갖고 온 지도를 보니 학센 메뉴가 있는 식당 선전이 있어 가 보니 20일까지 휴업이란다. 우선은 어디로 갈까 하다 목도 마르고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지도를 펼치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DOM(대주교가 관할하는 성당을 칭함)을 중심으로 펼쳐진 거리는 Salzburg와는 또 다른 약간 투박한 독일스러움이 엿 보이는 그런 도시다. 이 곳은 그래도 연구해서 잡은 여정이긴 해도 나에게는 로또를 잡은 것 같았다. 정말 도나우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다.
나는 우선 Regensburg DOM으로 갔다. 두 개의 높이 솥은 첨탑과 외양은 여태 보아 온 어느 성당보다 더 화려하고 예술적이다.
(대성당 내부의 파이프 오르간과 스테인드 그라스)
작은 골목마다 보이는 교회의 종탑 들은 마음을 푸근하고 평안하게 해 준다. 내내 걸으면서 우리나라의 그 시절 아! 이때는 고려 말기, 이때는 정조시대 이런 생각을 하며 비교해 보는 때가 많았다. 우리는 무얼 했지? 장보고의 청해진의 무역, 일본에 백제의 문화, 중국 산동반도에 신라촌 이러한 것들을 체계화 시키고 발전시켰으면 지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역사는 되 돌릴 수 없지 않은가?
DOM 광장으로 나왔다. 오늘은 노점상 들의 날인가 보다.
각종 소시지, 치즈, 올리브, 과일 등 상품 들을 진열하여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맛 있어 보이는 소시지나 육류 가공품, 큰 치즈덩어리 조금씩 잘라 시식도 하게 해 준다.
나는 방향을 틀어 약간 언덕 위에 있는 Prince of Thurn & Taxis Palace Museum으로 갔다.
이 궁전은 11세기에서 14세기에 지어지고 여기에는 St. Emmeram, Wolfgang, Carolingen 황제가 묻혀 있다 한다.
(여러 분의 이해가 쉽게 따온 자료)
(무덤이 있는 장소로 여기는 개방하지 않고 있다)
(내려 오며 찍은 거리의 사진 어김없이 종탑이 보인다.)
(맥주 양조장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도나우강 변에 자리잡은 주택 들 여기도 종탑이 보인다.)
제20일 2014년 8월20일 수요일 Wuerzburg에서
Autobahn 3번을 계속 따라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도중에 2차 대전 후에 전범재판으로 유명한 뉘른베르크를 통과하는데 들러야 할지 망설이다 바로 가기로 결심했다. 중간에 길을 확장하고 새로 포장하는 구간이 여러 군데 있어 약 2시간 반쯤 걸린 것 같다. 여기도 주차비가 free인 외곽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카메라만 들고 City Center로 갔다. 가면서 보니 높은 곳에 요새 같은 성채가 보인다. 안내 책자를 보니 여기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다. 나는 먼저 Residenz(궁전)로 갔다.
(레지덴즈 궁전의 정원)
이 궁전은 18세기에 건설된 궁으로 Wuerzburg의 bishop(대주교)이 살았던 곳이다. 황태자 신분이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궁을 지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내부 관람은 포기 했지만 보지 않아도 뮌헨의 레지덴즈에 견줄 규모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나는 마리엔요새(Festung Marienberg)로 갔다. 차로 다닐 때는 주차 장소와 주차비가 항상 걱정이다.
(성채의 일부)
성채는 11세기에 건설되어 1253년부터 1719년까지 뷔르츠부르크의 대주교가 살던 곳이라 한다. 이 후에 Residenz를 지어 옮겨 갔다.
(요새 내부에 있는 성당)
(요새의 전망탑)
요새를 둘러 보면 정말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요새로 들어가는 길은 3중으로 차단할 수 있고 옆에는 깊은 해자로 요새를 막을 수 있다.
(요새에서 바라 본 뷔르츠부르크 시가지)
(다른 방향에서 본 성채)
(요새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Down Town)
내려와 Schloss und Hofgarten Veitshoechheim으로 갔는데 이 건물과 시원하고넓은 정원도 대주교의 여름별장으로 건립되었단다.
(Schloss und Hofgarten)
(경사진 면에는 포도 밭이 펼쳐져 보인다)
Market Square로 내려와서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시켜놓고 그 옆 노천카페의 메뉴를 보니 맥주 한 잔과 학센을 포함 9.5유로다. 괜찮은 가격이다.
(Wuerzburg St. Killian DOM 대성당)
이 성당은 1040년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시대에 따라 조금씩 개조되어 현재에 이르렀는데 내부는 다음 페이지의 사진에서 보듯이 흰 회로 되어 있다. 산뜻하게 느껴진다.
(성당 내부)
(11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Neumuenster Kirche)
(1377년부터 1480년까지 지은 Gothic 양식의 St. Marien Kapelle)
(성당 내부 강단은 소박하지만 경건한 마음이 든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무척 많았다. 러시아, 중동 사람들, 이탈리아, 동구라파사람 들 같이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Regensburg나 여기는 어제 오늘 동양인은 나 혼자 밖에 없는 것 같다.
(거리의 피에로 밑에 사람이 가는 봉을 세워 잡고 위 사람은 그 봉을 손바닥으로 눌러 잡고 앉아 있다.)
이제 피로감이 슬슬 찾아 온다. 호텔이 휴게소 특히 트럭을 위한 넓은 주차장과 Burger King, Kentucky Fried Chicken등 페스트후드 점이 있는 곳에 있었다. 나는 Chicken Wing 여섯 조각과 맥주 500cc 두 캔을 사 들고 방에 들어가 그 것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안 온다. Kindle로 독서를 해서
“밀수꾼들-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매스커레이드 호텔-히가시노 게이꼬” 이런 소설 들을 권력의 조건(링컨이야기)을 다 본 후에 읽었다.
제21일 2014년 8월21일 목요일 Heidelberg에서
Google 지도를 보니 약153km로 두 시간 정도의 거리다. Heidelberg시내에서 약20km떨아진 Leimen이란 곳에 호텔을 잡아서 우선 호텔로 갔다. 짐을 풀고 Navi에 Heidelberg Schloss를 치니 안 나온다. 여러 번 시도하다 Schloss Garten OK하고 갔다. 길이 좀 이상한 것 같았지만 그냥 믿고 갔다. 한 30분 달려 도착한 곳은 Schwetzingen으로 Heidelberg에서 꽤 벗어난 것 같다.
(Schwetzingen Schloss und Garten 정면의 주성과 좌우 양 옆의 긴 회랑이 보인다)
엄청난 규모의 성이다. 더구나 정원은 또 얼마나 넓은가? 여기로 데려다 준 Navi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원의 이모 저모)
나는 다시 Heidelberg 성을 찾아 나섰다. 우선 Zentrum(Center)를 쳐서 Heidelberg로 진입을 해서 가면 될 것으로 보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Heidelberger Schloss로 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산 위에 있는 것은 알기 때문에 올라 가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라 한다. 몇 번 반항을 하다 보니 이 놈도 길을 잃은 것 같다. 무작정 위로 올라가기만 했다. 위에서 차가 내려오면 비켜 줄 데도 없는 주택가 좁은 길로 하여간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서야 2차선 도로가 나온다. 노부부가 산책하나 보다. 나는 내려서 다가가 성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 했더니 여기가 성을 보는 곳 중에 최고란다. 차는 거기 세워두고 한100m 내려오니 성이 내려다 보인다. 사진 몇 커트를 찍고 차를 끌고 내려와 입구 길가에 세워두고 Ticket을 6유로를 주고 샀다. 20년 전과 비교해 보니 Information Center가 새로 지어졌을 뿐이다. 예전과 같았다.
(문 뒤에 보이는 건물이 새로 지어진 Information & Ticket Center)
죽 둘러보고 전에는 없었던 Drug Museum이 생겨 거기도 보고 성주가 발 한짝이 짧아 발자국이 한 쪽이 패인 발코니도 보고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사진도 찍고 그리고 내부에 들어가 보려 했더니 이 표 갖고는 안 된단다 또 사와야 한단다. 안 보고 말지.
(Drug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액체 저장용 병과 고체를 저장하는 가구. 저울도 보인다)
Down Town으로 내려와 뒷골목 한편에 주차를 시켜 놓고 걸어서 대학교 주위를 걸어 다녔다.
(Heidelberg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종탑이 보이는 상점가)
여기는 역시 동양인 들이 많이 보인다. 단체 여행객이 주류로 보인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으며 살 물건도 없지만 이 거리를 누볐다. 나를 보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내가 이 나이에 무엇이 무서우랴. 이제 내려 놀 것 다 내려 놓았는데. 그리고 종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성당은 아주 소박하였다. 나의 방랑도 무사하게 곧 끝나는데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했다.)
(대학광장)
내가 묵은 호텔이 있는 Leimen이라는 곳은 Heidelberg 외곽의 작은 마을인데 그런데도 분수가 있는 광장에 노천카페도 있어 돌아와서 그 노천카페에서 맥주와 피자를 시켜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은 프랑스의 Strasbourg로 돌아가 렌터카를 반환하고 파리로 돌아 가야지.
제22일째 다시 Paris로
아침 8시까지 차를 반납하기로 하고 10시 파리행 기차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빌릴 때 한 시간을 연장해 놓았다. 호텔에서
스트라스부르 역까지 130km정도라 6시에 출발하면 충분하겠지 생각하였다. 쉬지 않고 휴게소에도 들리지 않고 그냥 갔다. 빌릴 때 가까운 주유소를 알려 주었는데 주소를 입력해도 안 들어 간다. 7시 45분쯤 역에 도착하여 주유소를 찾다 Navi에게 물었더니 알려주어 갔더니 그 주유소다. 내려 주유기를 보니 독일하고 또 틀리다. 보니 카드를 넣어야 하나 보다. 카드를 넣고 주유기를 넣으니 기름이 들어간다. Full로 채우고 카드를 뽑고 출발하였다. 조금 가다 유턴을 하려고 주위를 보는데 누가 헐레벌떡 쫓아 와 창문을 마구 두드린다. 돈을 안 내고 갔단다. 나는 카드를 넣어 그냥 결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다시 돌아 가서 Casher에 가 결재를 하고 쫓아온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했더니 웃었다. 주유로 또 한 번 사고를 쳤구나. 주차를 시켜 놓고 렌터카회사로 와 키를 반납하려 했더니 앞의 친구가 그냥 뭔지 붙들고 늘어진다. 근 30분이 지나 내 차례가 와 키를 반납하였다. 모든 것이 all right이냐고 하기에 한 마디 하려다가 지쳐서 그냥 OK하고 나왔다.
10시 14분 출발하는 TGV에 몸을 싣고 Paris로 향했다. 역시 1등이 조금 넓고 좋은데 2등은 사람도 많고 짐칸도 부족하였다. 서울서 갈 때 2주 사용 할 수 있는 1등 좌석표를 사 갔는데 Strasbourg에서 파리로 갈 때는 이미 기간이 지나 따로 2등칸을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항상 여유가 있어 좌석 예약이 필요 없었다.
(고양이가 서 있는 Rue de la Voute Pass)
그리고 예약할 때는 따로 예약 비를 내야 한다. Rue de la Voute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가는 도중에 고양이가 나를 반겨준다. 지하철표 10장 묶음을 사서 그것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전번에 못 본 곳이 어디냐? 이번 여행의 주제인 “성 과 성당”에 맞는 곳을 찾았고 그리고는 뻔하지 않겠는가? 개선문부터 La Defense까지가 아니겠는가. 그 곳에서 놀게 될 것이 뻔하다는 얘기다.
(프랑스의 영웅 샤르르 드 골 동상)
약 17년 전에 알사스로렌 지방에 TV 브라운 관 용 유리 공장을 지으려 할 때 현지 채용한 프랑스에서 공부를 한 박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연락이 되었다. 내일 오전 10시에 샹제리제의 르노자동차 전시장 앞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루즈벨트 역 쪽에서 찍은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에 있는 루이뷔똥 본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신상이 나오는 날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도 여러 명 보인다)
개선문을 올라가 볼까 하고 계단을 내려 지하로 갔더니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포기하고 올라와 개선문에 새겨진 전쟁영웅 들의 이름을 보며 1차 대전 100주년이 되는 금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제23일째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Paris에서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4호선을 타고 St. German des Pres역에서 내려 거기 있는 성당으로 갔다.
(St. German Des Pres 성당과 내부의 조각상)
촛불 하나를 밝히고 여러 성당에서도 여러 번 기도 드렸지만 이 번에는 고3인 첫째 손녀 대학에 잘 들여 보내주시라는 주제만으로 기도를 드리는 영락없는 할배가 되었다. 성당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크로와상 두 개와 커피로 아침을 했다.
아침을 먹는 도중에 한국 촬영 감독과 staff 들이 프랑스인 모델 두 사람과 같이 CF 를 찍고 있었다. 모델이 Bag을 들고 walking하는 장면을 10컷도 넘게 찍고는
성당 맞은편에서 다른 모델을 써서 촬영하는데 Bag에 point를 두는 것 같았다. 어느 업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4호선에 St. Sulpis(성 쉴피)역에 내려 St. Sulpis 성당으로 갔다.
나무에 가려 한 종탑은 안 보이지만 규모가 엄청 컸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글쎄 모르겠지만 파리에서는 노트르담 성당 다음으로 크지 않을까?
(St. Sulpis 성당의 내부)
여기서는 촛불을 밝히고 친구 따님이 암 투병을 하는데 빨리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사람은 참으로 약한 존재다. 이렇게 나의 마음도 평안을 얻게 되지 않을까?
(성당 내부에 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상)
이 성당의 내부는 정말 아름답다. 노트르담은 크다는 것만 생각나는데 이 성당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나는 서둘러 전에 같이 근무한 동료와의 만남을 서둘러서 약속 장소로 갔다.
현재 LG 전자 파리 지사에 근무하는 이 박사는 식구 들과 함께 나왔다. 아들과 한 살이 채 안된 딸과 부인과 함께 나왔다. 우리는 음료를 시켜 놓고 프랑스에서 같이 근무 했던 동료 들의 소식을 들으며 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인지라 식구 들하고 모처럼 나들이 한 것 같아서 서둘러 일어 났다. 차를 갖고 나왔으니 어디 베르사이유나 폰텐부로 같은데 가시면 어떠냐 하는데 전에 가 보았던 곳이고 해서 거절하고 보내 주었다. 마음이 개운하다. 메츠에는 있는 다른 KAIST의 이 박사가 살고 있는데 이 번에 연락은 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개선문 쪽에서 찍은 La Defense)
이렇게 무작정 걸으면서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를 이곳 저곳 다니며 파리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도 밤9시 비행기라 거의 꼬박 하루가 남아 있지만 자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출장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15일을 넘긴 적이 없었다. 10일만 되면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이 번에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다. 벌서 예정된 돌아 갈 날짜가 다가 왔는지 모르겠다.
다니다가 모처럼 교리는 나도 모르지만 Trinity 교회(전 페이지 밑의 사진)를 발견했다.
(트리니티 교회를 알려주는 표지판)
(시원한 센 강과 에펠탑)
제24일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Paris에서 서울로
오늘은 서울로 돌아 가는 날이다. 아침에 Check Out을 하고 짐을 들고 북역Gare de Nord)으로 가서 Locker에 보관시키고 밖으로 나와 역 앞의 즐비한 카페에서 아침을 느긋하게 해결했다.
(24일 아침의 파리 북역)
(어느 공작이 살던 곳이라 한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무슨 Maison)
북역으로 다시 돌아가 어디서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지 얼마인지 보다 표를 9.5유로를 주고 샀다. 남아 있는 현금이 30유로 정도다. 그런데 도버해협의 터널을 지나 런던으로 가는 기차도 여기서 출발한다. 여기서 영국으로 가 버릴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횡성 집을 한 달을 비웠는데 잡초가 정글을 이루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을 접었다. 다시 거리로 향했다.
(모처럼 개신교회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참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걷고 또 걸었다.
나포레온 시신이 묻혀 있다는 앵벌리드 근처에 오니 Merry-go-Round도 있었다. 그 안에는 말만 있는 게 아니라 자동차도 있고 신데렐라 마차도 있다.
(아마 우리나라 대법원인 것 같다. Palais de Justice 지도 들고 오는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 같다)
파리에서의 점심은 주로 노천카페에서 해결했다.
(Pont Nef)
(Palais de Justice의 벽에 붙은 조각, 저울을 들고 있다)
오후 두 시 정도에 샹제리제로 다시 왔다. 다시 노천카페에 자리 잡고 나는 커피대신에 맥주를 시켜 놓고 내 딸이 번역을 한 “Me Before You”의 마지막 장면에 남자주인공의 유언 중에 여자주인공에게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여유를 갖고 커피를 마셔 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이 장면이 생각나서 나도 멋을 부려 보았지만. 이제 더 걸을 기운도 없었다. 다리도 천근, 이제 북역으로 가서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야지. 북역으로 가니 4시였다. 샤를드골 제2터미날로 가는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 도착하니 4시 40분 정도였다. 수속이 시작되는 것은 6시부터 약 한 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 공항로비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기념품가게와 약국 그리고 카페 하나 달랑 이 것 뿐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계속 기다리는데 누가 카운터로 들어 간다. 가서 KAL 수속 하느냐 했더니 20분 더 기다리란다.
시간이 되어 수속을 하고 Lounge로 들어 가서 wine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잔을 더 마시고 다른 것은 별로 먹지 않았다. 비행기 타면 그 때 먹지 하고. Airfrance에서 운영하는 Lounge는 넓고 깨끗했다. 음료나 Buffet 식으로 내어 놓은 음식도 그런대로 좋다. 그렇게 한 참을 와인을 마시다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 보는 A380이다. 어떤 비행기일까 설레는 마음도 있었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의자는 거의 180도 펴 지는데 두 의자를 창가에 나란히 배치해서 Privacy는 B747, B767이나 차이가 없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항공사의 좌석은 Zig Zag로 배치해서 완전한 독립 공간으로 생각되게 하였다.
옆에 40대 후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가 탔다. 타더니 양말을 훌훌 벋더니 그냥 내 놓고 나보고 보란다. 기분이 상했다. 벗었으면 담요로 가리던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애써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하나는 계속 와인을 시켜 마신다. 아마 비행 중에 마신 와인은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두 병은 될 것 같다. 나도 식사하면서 와인을 세 잔 정도 마셨는데 그리고는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천국에 다녀 온 소년” 이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종교적인 영화인데 재미 있게 보았다. 책으로도 비슷한 것을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아침을 주는데 옆 친구는 또 와인을 달란다. 이렇게 마지막 비행기안에서는 찜찜해서 돌아 왔다. 어느 큰 대기업의 부장이나 이사 정도로 보였는데 예의가 영 꽝이다. 나는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도 예의가 있고 남을 배려해 주면 더 좋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며.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8월25일 2시다. 1일 1시30분 출발하여 25일 두 시까지 만 25일 여행을 즐겁게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 왔다. 횡성 집은 어찌 되었을까? 28일 서울대 분당병원에 심전도와 혈액검사를 하고 혈압 약을 처방 받아야 해서 아들 집에 머물기로 했다. 검사를 받고 담당의사를 만나 결과를 보니 혈당, 혈압, 고지혈증 다 좋고 신장도 하나인데도 기능도 좋단다. 그 즉시 횡성으로 출발하여 28일 세 시경 집에 돌아오니 생각보다는 좋다. 잔디도 가기 전보다 더 많이 자랐고 잔디에는 잡초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두 군데의 수로가 있는데 그 곳에는 잡초가 내 무릎까지 무성하게 자랐다. 이 번 여행에서 아들과 같이 하며 많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한 것이 좋았고 또 나의 용기와 건강에 나도 놀라며 이 여행기를 끝내려 한다.
여행하는데 나에게 용기를 준 가족들 친구 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끝.
참고 자료
철도여행 총 길이: 2,289km
자동차 여행 총 길이: 1,849km
도보 총 길이: 406,876보(16,953보/일)
약10km/day*24=240km
여행 길이 총합계: 4,378km
찍은 사진 총수: 2,36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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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페지기님.
잘 읽었습니다. 한데 그 많은 사진이 하나도 안나왔네요.
나오게할수 없으면 사진부분을 삭제하면 어떨까요?
사진이 jpg가 아닌 bmp형식이라서 바꾸는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