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도꾜 조선중고급학교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의 철거였다.
최근까지도 이 학교의 교실 칠판 바로위에,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할 때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지난해말부터 이 초상화를 일제히 철거했다는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에는 액자를 걸기 위해 박아두었던 커다란 못자국 두 개가 나란히 남아 있었다.
초상화 철거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북조선에 대한 일본 사회의 비판적 시선이 그 원인임은 자명할게다.
무엇보다 '조국'에 대한 충성도 중요하지만, 일본이라는 이 땅에 살고 사는 재일조선인들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절실한 때문이겠지. 잘 살게 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편안하게 해주지도 않는 모국의 이념을 완고하게 붙잡고 있기보다는, 북조선 김정일 체제와 다소 거리를 두면서 일본 사회속에서 적응하려는 재일조선인 지도부의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 액션이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조총련이 북조선과 다소 거리를 두려는 정책적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은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런 이념적 논의와는 별개로 그 초상화의 철거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큰 변화는 아닌 듯 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초상화가 걸려 있었을때부터도 그 초상화의 인물들은 이곳 일본에 사는 재일조선인 3,4세 아이들한테는 더 이상 큰 의미를 지닌 인물은 아닌 듯했다.
때문에 초상화의 존재유무나 철거여부는 조총련 스스로나 조총련을 적대시하는 쌍방이 정치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행동과 해석에서 의미가 있을 뿐, 이곳 학생들에게는 전과 다름없는 일상이 진행되고 있을 따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공개수업기간동안 이 학교를 '샅샅이' 둘러보고 있는 중 이 학교의 공식적 설명과 달리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여전히 걸려 있는 교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컴퓨터 실습실이었다. 컴퓨터가 30-40여대가 설치돼 있고 학생들이 컴퓨터를 배우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교실 칠판 바로위 그곳에 김 부자의 초상화가 나란히 버젓이 걸려 있더구나.
왜 붙어 있었을까?
글쎄 학교측의 실수나 착오는 아닌 듯했고, 아마 그 교실의 컴퓨터 등 집기류들이 북한의 지원으로 마련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학교는 북한쪽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컴퓨터 등 학교 일부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지금은 북한쪽의 지원은 한푼도 없다고 한다).
'수령님'과 '장군님'의 배려로 마련된 공간인만큼, 정치적, 경제적 여건이 안 좋아 '조국'과 거리를 두고, 초상화도 철거할 수밖에 없지만, 이곳만은 시설을 마련해준 '분'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해야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예외적으로 초상화를 그대로 둔게 아닐까,......꼬투리 잡는 것같아서 학교쪽에 물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근거는 없다.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초상화 하나 붙어 있다고 시비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공개 수업이 끝나고 대강당에서 이곳 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노래, 춤, 브라스 밴드 공연 등을 보았다. 곡조나 춤사위 등은 북조선의 문화풍이 있으면서도, 서구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세련된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정리할 무렵 무대 배경 걸개그림이 내려왔는데 그 그림은 평양 시가지를 조감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나온 노래는 남쪽 가수 안치환의 노래가 아닌가.
글쎄 평양 걸개 그림속에 흘러나오는 안치환 노래...... 2003년 현재 재일조선인들의 서 있는 자리, 정서를 말해주는 절묘한 풍경 같았다.
이러한 복합적인, 변화하는 재일조선인, 그리고 이들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 다음주 6월6일 이 곳에서 열린 윤도현 밴드 공연에서 더욱 잘 드러났다.
조총련 초청으로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록밴드 윤도현 공연에 대한 이곳 젋은이들의 환호와 열기는 대단했다.
이날 공연에는 일본에서 유일한 조총련 계열 대학인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와서 관람을 했는데, 윤밴드에 대한 호응이 남쪽의 대학생들 못지 않아 윤밴드 공연내내 모두가 일어서서 축제 분위기속에서 공연이 이뤄졌다.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통일 코리아'로, '대-한민국' 구호를 '조-국통일'로 바꿔 부르며 한껏 도취하는 '조선'국적의 젊은이들과 '대한민국' 국적의 젊은 로커 사이에는 벽은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도 윤도현밴드 공연 처음보았는데 멋있더구나. 괜찮은 가수더구먼)
이날 공연 분이기를 조총련 계열 신문인 '조선신보'는 6월10일자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윤도현밴드의 록크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리듬을 잡고 몸을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호응을 하였다. 지난해 가을, 평양공연을 진행한 가수 윤도현씨는 이번 공연이 재일동포들앞에서 하는 첫 공연이여서 앞서 걱정도 많았는데 관객들이 너무 호응을 잘하여 "우리가 여러분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인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윤씨는 또 이번 방문기간에 민족학교를 돌아 보고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대우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으며 대학수험자격취득문제해결을 위한 서명도 했다는 말을 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공연 3부에서는 전체 출연자들이 무대에 오르고 함께 "조∼국통일!"을 목청껏 웨치고 '아리랑'을 불렀다. 무대배경에 흰색 바탕에 파란색 조선지도가 그려 진 대형통일기가 서서히 오르자 회장은 이미 통일됐듯이 '하나'된 공간으로 감동에 휩싸이였다」
「조선대학교 경영학부 3학년 손민수학생은 "우리 동포들의 힘을 느꼈다. 정말 통일이 된것처럼 느껴 졌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고 도꾜조선중고급학교 3학년 서수행학생은 "남조선과 우리들이 가까와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새납연주도 너무 잘했고 윤도현형님의 노래는 분단을 극복할수 있겠다는 힘을 안겨 주었다"고 말했다」
「6.15공동선언발표 3돐을 기념하여 진행된 공연은 젊은이들의 가슴가슴에 통일에 대한 신심과 민족의 긍지를 뜨겁게 안겨 주는 잊을수 없는 무대가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