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가들은 거장들의 삶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일종의 대표적인 가르침처럼 간직한다. 우리는 위대한 작가의 전기가 그의 업적의 비밀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헤밍웨이 같은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고무시키지만, 아마도 그는 사냥을 하거나 권투를 하라고 고무시키는 지도 모른다. . . 작가들은 항상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자신들 안에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끄집어내는 수단으로 배우기를 원한다. 거장의 삶은, 요즘은 톨스토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데, 특별히 톨스토이의 경우에 있어서는 50세에 양심의 위기를 맞는다. 항상 그의 열정이나 그의 윤리의 자비로 톨스토이는 고통스러운 결단의 교대하는 흐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소설작업은 그를 의기양양하게 하여 끔찍하게 낙심시켰다. 흔히 {안나 까레니나}(Anna Karenina)의 완성 원고가 불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막아졌다고들 말한다. 어떤 사건에서도 50의 나이에 그는 그의 삶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또 그가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더 나은 일을 할 일도 없는 사람들에게 뚜쟁이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소설쓰기를 포기했다. 물론 그의 결심은 더 짧은 형식은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 않고, 수년에 걸쳐 그가 크지 않은 작품인 [크로이체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작업에 뛰어들지만, 그러나 대부분 그는 짜르 치하의 압도적으로 비참한 삶에 대항하는데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기의 지위와 재능을 대부분 사용하였다. 그는 예언적 목소리를 탐닉하였다. 그는 기독교적 비폭력이라는 그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농부들의 자식들이 읽을 수 있게 가르치도록 고안된 입문서를 썼다. 이제 이론적으로는 최소한 모든 작가가 톨스토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지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적인 사실이 예술의 바로 그 아이디어를 압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 인지되거나 느낀 공동사회의 고통이나 위험이 문학의 전통적인 작업을 참을 수 없는 전통적 목적으로 만드는 수준이 되는 지점 말이다. 그러나 문학의 역사에 대한 잠깐의 검사만 해보아도 유럽에 있어서의 이런 신념의 위기에 대한 많은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예술의 열정이 사회적 열정이었던 적이 자주 있었다. 우리는 농부의 신을 신고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톨스토이 백작뿐만 아니라 역사와 인간해방의 엄청난 중요성만 빼고는 소설의 모든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일파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의 도덕적 황폐화에 대한 반응을 생각하는 싸르트르와 까뮈가 있는데, 이는 드라마와 알레고리와 형이상학 그리고 거리에서 팜플렛을 나누어주는 문학적 르네상스이다. 예외는 있지만, 미국 작가들은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덜 열렬한 경향을 띠고 있고 그래서 양심의 위기에 비교적 상처를 덜 입는다. 우리 작가들의 정신적 문제들은 유명하지만 그러나 참여의 문제와 관계가 있는 그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우리의 19세기 거장들은 인구가 적은 곳에 살았다. 숲, 바다, 초원은 무서운 자유의 이미지였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주 다른 신념이었다. 나는 예컨대 헤밍웨이의 절망에 대해 생각하는데, 그의 절망은 그를 자신에게 총을 겨누도록 한 것이었고, 포크너와 핏제랄드의 절망은 그들을 술로 망하게 했다. 그들이 살아내어야 하였던 시대의 문제는 성공 또는 실패라는 고통이었고, 그 어는 사건에서도 필멸의 한계에 대한 어떤 인식, 험한 개인주의에 대한 위로할 수 없음이 전적으로 사사로운 신념을 형성하였을 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톨스토이는 일흔의 나이에 그의 마지막 소설 {부활}을 쓰기 위해 살았다는 것이다. 그의 자아는 거대하지만, 그러나 우리 미국인 거장들은 그들의 자아로 대지와 하늘을 지탱하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태도를 생각해보자니, 나는 그 태도의 이국성에 대해 잘 알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학사에서 십년인 1930년대가 있는데, 이때는 정치와 예술과 참여가 모든 이의 마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우리는 이 시기를 불발된 예술적 에너지의 시대로, 속은 지식인들과 나쁜 프롤레타리아 소설들의 시대로 보고 있다. 이념화되면서 우리는 그로 인해 고통을 겪었거나, 또는 그래서 그 교훈은 지속된다. 그 이후로 미국 소설가들은 그들을 분명하게 사사로운 시민들로 그리고 독립적인 기업가(흥행가)로 정리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우리들에게는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동료들과는 달리, 우리 나라를 위해 상원이나 대사로 봉사하는 전통이 없다. 세관의 관리로나 일했을 뿐. 우리는 우리 작업의 공공 가치를 그 작업의 사사로운 어투의 부수적인 성질로 본다. 우리의 태도는 귀화한 미국 시인 W. H. 오든에 의해 간단하게 표현되는데, 그는 한 작가의 정치철학은 그의 탐욕보다도 더 그에게 위험하다라고 했다. 우리는 만약에 한 작품이 외부의 착상에 의해 형성되거나, 작품에 어떤 류의 계획된 의도가 있거나, 일련의 진실이 조명될라치면, 그 작품이 더럽혀지고 따라서 우리는 예술이 아니라 논쟁거리를 생산하게 된다는 걱정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설이 순수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강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50이 넘은 나이에도 항상 그런 식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아주 기묘하게도, 막 기술된 미학적 경건함은 예술가의 착상을 스스로 미국의 심장지대에 놓는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독립적인 사업가라는 개념은 국가적인 유산이다. 누구보다도 어빙 하우(Irving Howe)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유럽의 노동자들과 달리 그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규정하는데에 대해 반대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들의 직업이 아니라 그들의 그들의 일로부터 얻는 것에 의해, 그들이 축적해온 재산에 의해, 그들의 종족적 배경과 그들의 사회적 활동--어느 것이든, 간단히 말하면 더 큰 공동체로부터 자신들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독립적인 사업가에게는 위로의 상승이 있고, 최소한 세대를 넘어, 그리고 거기에는 길이 있다--그는 일이 틀어지면 천막을 걷고 움직여 길을 떠날 수 있다. 작가가 그의 예술에 허용할 수 있는 것과 허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이런 작가의 착상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개인주의라는 위대한 효과적인 신화를 표현한다. 우리는 한 나라로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개념화하고 그것들을 풀어 가는, 혹은 풀지 못하는 그런 방식에 있어서 비이념적이고 비체계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우리는 만성적으로 그라고 본질적으로 체계적인 해결에 대해 의심을 한다. 우리는 실용주의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헌법의 창고에 들어가 서투르게 수선하는 것을 좋아한다. 노동자들보다 별 나을 것도 없는 작가들은 지식인에 대한, 지식인의 열정에 대한 국가적인 혐오를 공유하며, 우리가 우리의 책의 목소리로 찾아낸 목소리들은 톨스토이의 최저음보다 더 냉소적이고 덜 서사적인 그늘이 되는 것이다. 산으로부터 올림피아 신들의 관점에 우선하여, 우리는 평등주의의 목격에 대한 권위를 위해, 실용주의적 목격자가 그의 눈과 귀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의 실용적인 목격자를 위해 종사한다. 이런 문학작업의 경건성이 강화되던 순간을 들라면, 아마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가 출판되던 1940년일 것이다. 이에 앞섰던 것은 내적으로는 소설가와 비평가의 작업 그리고 외적으로는 신문과 심포지움 또는 회의에서 수행되었던 강렬한 논쟁의 10년이었다. 그 시대의 거의 어떤 진지한 작품도 사회적 위기라는 가정을 전해받지 못했다. 경제공황의 비참함에 직면하여, 그리고 근대 전체 국가의 출현에 직면해서 작가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말콤 코울리(Malcolm Cowley)의 책 {그리고 나는 작가의 무역소에서 일했다}에서 들을 수 있다. 모든 미국 작가에 의해 불가피하게 공유될 수밖에 없었던 그 정신은 이상사회를 위한 바램이었다. 작가들 사이에서 이 정신은 존 크로우 랜썸과 엘런 테이트 같은 보수적인 남부의 토지균배론자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남부의 농장 생활의 정중함에 근거를 둔 유토피아를 계획할 수 있었고, 또는 엘리어트는 그의 황무지 뒤에 황금의 신이 불밝힌 중세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것은 마치 맑시스트 사회주의의 다양성의 수많은 예언들에서처럼 그랬다. 그리고 책 바깥에서는 문학의, 모든 예술의 가치와 정당성이 격렬한 논의의 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 작가가 어떤 입장을 취하건, 형식주의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성은 피할 수 없었다. 작가의 운명은 그의 양심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의 자리를 찾아 그의 노선을 그리게 하였다. 참여--무엇에? 종사--무슨 종류에? 그 진행과정은 잔인하기도 했고 복잡하기도 했다.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여갔다. 역사는 순수한 사고를 오염시켰고, 올바른 명분은 그른 사람들과 혼재되었고, 이상들은 편의를 쫓았고, 그리고 혐오스러운 작가는 좋은 일을 했고, 고귀한 작가는 더러운 일을 했다. 그러나 훌륭한 작가건 나쁜 작가건 모두는 세상에서 진행되는 일과 접촉을 하고 있는 듯했다. 헤밍웨이 자신은 1937년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소설을 펴냈는데, 그 안에서 헤밍웨이적 영웅인 플로리다 출신의 밀수입자는 공동사회의 정서를 발화하는 데에 가까워졌다. 이 책에서 그의 이름은 헤리 모건인데 그는 "사람은 혼자서는 좃도 기회가 없어"라고 말하게 되어진다. 이 말은 초기 소설들의 낭만적으로 아주 열중해서 포함된 추방자의 젊은 형제쯤이나 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념비적인 통찰이다. 헤밍웨이의 다음 소설은 스페인 내전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직접 그 전쟁을 보았고, 그는 포크너와 핏제랄드 보다 더 세속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직접 체험한다. 비록 그가 국왕지지자이긴 하지만, 그는 국왕지지자 편에 유리하도록 일을 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깊이 불신하고 급기야 혐오하게까지 된다. 이러한 판단은 아주 건전한 것으로 오웰의 {카탈로니아의 충성}의 판단과는 다르다. 그러나 자기가 배운 것을 계시의 점인 {1984}의 정치적 예언으로 옮긴 이는 유럽인 오웰이었다. 우리는 대조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혼자서는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밍웨이의 영웅은 이제 로버트 조단으로 이름이 붙여지고 그는 국왕지지자 편의 젊은 미국 자원자로, 우파그룹 팔렌헤에 의해 장악된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산으로 가는 폭약 전문가이다. 그는 영웅적으로 그가 참가한 공산당 무리의 지휘권을 장악하여 그들을 살아남도록 보내고 혼자 죽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내전의 유일하게 지속되는 가치인 그 자신의 명예의 부호로 생을 마감한다. 미국작가들의 가장 국제적인 점은 도덕적으로 말하면 고립주의자이다. 전쟁은 그것을 통해 사람의 닦아진 개인주의가 영웅적인 면으로 끌어올려질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물으러 보내지 말라. 종은 내가 나일 수 있기 위해 울리는 것이다. 이제 당신이나 내가 나의 주장을 너무 읽기 전에, 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들어가기 전에, 뭔가 분명하게 말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 나는 문학에 대해 어떤 선언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신념에 대해 말하려고 하며, 그것은 문학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문학적 신념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가정들과 아이디어들의 문화이다.그래서 나는 여기서 리얼리즘과 실험주의를 비교하거나 낭만적 전통이나 모더니즘의 영향이라 그런 종류의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문학 비평가와 역사가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소설 작업에서 지금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 그리마 아마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하는 것을 소리내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글쓰기, 우리의 천직에 대해 무엇을 믿고 있으며, 무엇이 그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는가? . . . Katerina Clark 교수의 {소련의 소설: 의식으로서의 역사}(The Soviet Novel: History as Ritual)는 소련의 소설이 공식적인 신화들의 보고로 작용한다는 생각. 나는 소련의 반체제 저자들의 운명을 알게 되고 이 나라에서 그들중 많은 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이성적인 주장이며, 나는 그 책을 읽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나는 저속한 작품이나 다를 바 없는 미국 소설들 중 몇몇 진지한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화에 대한 보고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증하는데, 비록 물론 방향에 의한 것은 아니며 그리고 물론 우리의 신화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며, 최소한 최근까지는 그렇다. 그리고 이제 5-60년이 지난 현재에 헤밍웨이에 대한 고려는 대중과 젊은 작가들에게의 그의 인기가 부분적으로는 미국 신화의 한 보고로 역할을 한 그의 봉사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가능성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기업가(흥행가)적인 자아는 멜빌의 {백경}과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에서 다소 거친 다룸으로 오게 되었다. 사회로부터의 물러남, 사회에 대한 불신, 사회에 대한 절망이 로버트 조단이 생활과 사랑으로부터 물러나 {누그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마지막 쪽에서 그의 총열 너머로 바라본 이후부터 우리 소설에 압도적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자아를, 신도 아니고, 국가도, 사랑도, 또는 우주적 질서에 대한 어떤 확신도 아닌 오직 자아만을 부여받은 것 같아, 우리는 우리자신을 그 주해자로 만들어왔다. 우리는 헤밍웨이의 낭만을 거부해왔을 수도 있다. 그 자아는 불합리하고, 음울하게 해학적이고, 그리고 허구적으로 부서지고 파편적으로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다. 분명 우리는 현대의 소설이 분명 소설을 덜 읽는 것처럼 보이는 독자들로부터 생긴 줄어든 권위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모순적인 두려움없이 현대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새로운 소설을 가장 열심히 읽는 대개의 독자들이 영화업자라는 것은 우리가 빠져있는 곤경의 징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특이한 것은 작가 자신들의 마음에서의 소설에 대한 줄어든 권위로, 작가들은 소설로 갈수록 세상에 대해서 적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인상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 중요한 예외들로 내 마음 속에서 그것을 시험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진지한 소설에 어떤 소심함, 우리를 그것의 오랜 소굴에서 되끌어내는 개념과 언어의 어떤 적당함(겸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우리의 분석과 우리의 지도에 경계선을 긋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와 문을 걸고 차양을 내리고 일종의 어떤 울려퍼지지 않는 사적인 생활에 안주하게 하기 위하여, 큰 몸집을 숨긴 어떤 규칙을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소설은 전통적으로 그래왔듯이 개인적인 삶을 항상 다루어왔다. 문학에 있어서의 높은 진지함은 단일한 영혼의 도덕적 광대함에 대한 믿음에 부착되어 있다. 만약 예술가가 행운이 있거나 천재라면 그의 신념에 대한 구체적인 창조물인, 엠마 보바리, 캐리 미버, 스티븐 디덜러스, 제이 갯츠비, 조셉 케이는 우주를 함축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도덕적으로 조명한 허구적인 삶을 부과함으로써 더 현재의 우리가 된다. 그러나 내가 거명한 이들 인물들에 대하여 그들이 그들의 생기를 찾는 책들은, 그것이 중산층의 편협주의이든 종교적 문화이든, 정부의 관료체제이든, 전체적으로 사회를 적으로 만든다. 이 개인들의 운명은 그들 주위의 광대한 세계에 대한 그들의 투쟁이나 양보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책의 지도는 엄청나다. {시스터 캐리}의 여주인공은 그녀의 연인 허스트우드처럼 거대 도시의 물질적 유혹물에 의해 지배되는 영혼이다. 우리는 그녀의 정서적 교육을 목격하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지 않으며, 그녀뿐만 아니라 그 책의 어떤 인물도 인내심이 없으며, 오히려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감정에 있다. 드라이저에게는 인간정신의 지속적인 지배에 대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날 행해진 개인적인 삶의 아주 잘 쓰여지고 최신유행대로 멋지게 냉소적인 많은 소설들의 뿌리에 근거하는 감상주의에 대한 주장은 없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의 인식은 집중적으로 시카고를 거쳐, 뉴욕을 걸쳐, 전 미국을 걸쳐 움직여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오늘날 우리의 작업에서 많이 빠져버린 것이 바로 밖으로 움직여 가는 것, 바로 그 판단의 의미있는(중요한) 체계이다. 물론 우리눈 현재 이러한 축소된 문학의 상당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리고 물론 이것이 배타적으로 미국적인 것만은 아니다. 초기의 물러남은 1950년대에 로브-그릴렛(Robbe -Grillet)에 의해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이해하고 위치지우는 미국적인 현상으로, 문학이 어떤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고갈, 또는 모든 사악함이 다 알려지고 완전히 보도되며, 그 사악함에 대한 모든 해결책이 알려진다는 발견에 대한 고갈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으며, 그것이 모두 오직 잃어버린 표현의 신선함으로, 그리고 예술의 힘으로 진행된다. 어떤 화내기, 도덕에 관계없는 체계 안에서 예술가는 물러감의 행위에서만 기민하다. 물론 이런 일반화에는 많은 예외가 있다. 우리는 베트남에 대한 소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흑인 작가들과 여성중심주의 작가들에게 적용되면 분명히 덜 진실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우리가 이제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것은 심지어 우리가 본 세상을 보고하고 도덕적으로 포괄적인 세상을 만드는 전통적인 소설가가 되어도 그렇다. 어쨌든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우리는 겁을 집어먹고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당당한 땅을 뒤흔드는 의도인 어떤 상상력의 분노가 모자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이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아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모두 함께 글쓰기를 포기하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삶에 대해 욕을 하였듯이 예술에 대해 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표류가 있다. 나는 정치 소설의 예가 되는 나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발표된 몇몇 작품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들은 다만 만연하는 규칙을 역설할 뿐이다. 미국인 비평가들에 의해 고안되어 그 연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에 대한 통탄할만한 파손 이상의 어떤 것으로 다룰 수 있을만한 고안된 시학은 없다. 이것은 나의 인상이고, 아마 이치에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우리의 비판 공동체의 몇몇 부분들에게 있어서, 소설에서 공공의 문제를 사사로운 생활에 부과하는 것, 한 개인 내부의 역사에 대한 조명 등, 한 이야기 속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조사는 한 작품을 미학적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소설은 항상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여진다. 사실, 만약 소설의 주제가 어떤 특정한 종류라면, 만약 소설이 노동조합 조직가에 대한 것이라면, 예컨대, 또는 복지시설에 있는 한 가족에 대한 것이라면, 그 소설은 예컨대 예비학교에서의 생활에 대한 소설이 정치적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만큼이나, 정치적이라고 생각되며, 다시 말해, 불순하다고 생각된다. 정치적이라 함은 항상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 윌리암 버클리에 대한 CIA의 소설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몇 달전에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한 비평가 로버트 올터(Alter)는 조셉 헬러의 소설 Catch-22와 내 소설 {대니얼서}가 공화국에 적대되는 정신에 의해 못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사이에서 마지막 구별은 기이한 구별이고 아마도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소설가들, 남아공의 나딘 고디머, 체코의 밀란 쿤데라, 서독의 귄터 그라스,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께스 같은 작가들에게 즐거움의 원인이 될 것이며, 스땅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말로에게도 상당한 웃음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몇몇 비평가들이 정치적인 소설을 잘 수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이런 저런 예가 다른 나라에 대해 외국인에 의해 쓰여진 한에 있어서 갈채를 보내기도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중상모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리이건이 폴란드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것과 유사하다. 잠시 30년대로 돌아가보자. 아무도 30년대를 모범적인 시대로 주장되는 것을 진지하게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경제공황이나 크리스탈 나이트나 여론조작을 위한 공개재판에서 보는 것에는 미미하게나마 바람직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역사의 목적이 예술을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 도자기에 대한 부]가 많은 여자들 혹은 남자들만한 가치가 있다는 포크너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포크너가 전후의 남부에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20세기 유럽의 대학살을 대가로 카프카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미국 작가들을 위치지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30년대를 주목하게 되는데, 그 시대는 아마도 불발된 예술적 에너지와 속은 지식인들 그리고 질나쁜 프롤레타리아 소설들의 메마른 십년일 것이고, 그리고 나는 포크너, 헤밍웨이, 핏제랄드, 그리고 토마스 울프 뿐만 아니라, 제임스 T. 패럴, 캐서린 앤 포터, 리차드 라이트, 넬슨 앨그렌, 윌리암 사로연, 존 스타인벡, 존 도스 파소스, 나다니엘 웨스트, 도로시 파커, 에드워드 달버그, 달튼 트럼보, 조라 닐 허스튼, 호레이스 멕코이, 어스킨 콜드웰, 일리언 헬만, 제임스 에기, 에드문드 윌슨, 대니얼 푹스, 헨리 로스, 헨리 밀러 등도 본다. 시작하는 사람들로 말이다. 광대한 다양성과 논쟁의 문학이요, 모든 면에 대한 논쟁, 열정으로 가득차 넘치기도 하고, 자기 소모적이기까지 한 사람들. 현재에 있어 문학 생활은 대조적으로 단정하다. 오늘날은 매우 조용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태양이 밝게 비추고 완벽해서인가? 우리 시대의 모든 흡혈귀들이 모두 심장에 말뚝이 박혀서인가?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예술의 권위, 국가적인 논쟁에 있어서 지속되는 서술 비판의 중심적인 장리라는 우리의 가정을 포기해서인가? 알프레드 카진은 30년대에 대해 여기에 적절할만한 생각을 갖고 있다. 카진은 말한다. "그 중요한 시기는 혁명보다는 반혁명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영혼의 사도적인 자유에서보다는 국가의 권력에서 더 강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정통성은 30년대에 있어서 규범이 되었고, 급진주의는 아니다. 그 시기는 가난과 억압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 실제로 독일과 스페인에서 파시즘의 승리를 보았던 만큼이나, 공산주의에서 급진적이었던 것에 대한 스탈린주의자의 공포스러운 억제되지 않는 지배를 보았던 만큼이나 쉽게 정서화될 것처럼 보이는 시기. 이 나라에서 뉴딜이라는 위기 제정에 겉으로 보기에 필요할 것 같은 국가통제주의는 곧 펄 항구와 함께 현재 많은 미국인들이 규범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조직화와 지식인 통제의 형식들을 애써 생각해내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그의 언급을 맥락에서 어긋나게 취하였다. 그러나 만약 카진이 옳다면,--그리고 문화의 다른 모든 것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가가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극적인 의존에 대한 어떤 암시를 가지게 된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예술 작업을 개별화의 궁극적인 행동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공동체의 한 생산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여 서술의 자신감으로부터 판단을 한다. 사고의 서술 양식은 모두에게 자연적으로 오며, 마치 예컨대 수학이나 과학적인 추론이 자연적으로 오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선사시대의 인간의 생활의 동녘에서는 이야기하기가 셈하기나 바퀴가 했던 만큼 발명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작품의 행위를 한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는 하나의 지속되는 서술이다. 소설은 생활과 권위의 일시적임을 모방하는 것인데, 그것은 소설의 이야기는 거의 자주 그 인물의 죽음이기 때문인데, 이는 위대한 비평가 벤야민의 말에서와 같은 권위를 갖는다. "심지어 가장 불쌍한 천한 사람이라도 죽으면서 그의 주변의 삶에 대해서는 그것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다소 냉소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물러남, 우리의 자신과 우리의 소명에 대한 우리의 비정치적인 실용적 시각에서, 우리 작가들은 우리 시대의 전반적인 위기를 표현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삶의 정치적 환경에 그리고 우리 정치가들의 체제지지자의규칙에 일종의 대경실색할만한 굴종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도덕적 분노가 우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동안에 우리의 안락에 의해 팔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통제주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사고의 영역에 침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환경하의 작가들의 문제가 전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고 함축할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정책의 강압, 냉전 이데올로기, 그리고 폭탄의 그림자는 우리에게서 글쓰기가 중요한 문제이며, 목격과 도덕적 지위에 구원의 수단이 있다는 신념인 우리의 소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요즈음에 많은 우리의 최고의 작가들은 일종의 수동적인 예언을 한다. 그들은 우리 삶에 있어서의 힘없음이나 불운함에 집중하며, 우리 공공 장소들의 인간생활에의 부적합성이나 인간의 감정의 행위에 우리의 문화의 부적당에 집중한다. 부주의한 사회 비평은, 레오 톨스토이처럼, 예술로부터 가난한 이들의 아이들을 글을 읽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확신으로 앞뒤로 몰고 다닐만한 수준의 분노도 없이 그들의 비평을 늘어놓는다. 오늘날 음색적으로 철학적으로 헤밍웨이의 낭만을 취하는 젊은 작가들은 사물의 지배적인 조건을 잘못 취할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의 미래도 개인적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 운명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을 가지지 못해 스스로 독립적인 기업가로서 우리는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역사에 의해 파기되고 있는 신화에 매달리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가 우리 삶의 변화하는 본질에 계속 진실하게 남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오늘날 진행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적절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더 구질구질하고 너절하고 더 정력적인 종류의 책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덜 윤이 나고 덜 자의식적인,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있다면, 누가 그것(힘)을 가지며,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역사를 만들어가겠는가. 우리 자신의 감각을 되세우기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찾아낼 말들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한다면, 여기서 내가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 젊은 작가들의 콧구멍을 확대시킬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추적의 단서를 줄 것이다.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