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는 잠시면 오를 것만 같은 400m의 거린데 10여분이나 걸려서야 정상에
올랐다.(14:40) 풀 한 포기 없이 바위로만 이루어진 해발 812m의 천성산 제2봉이다.
정상에 서니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젖은 옷들을 반갑다며 흔들고, 멀리 태평양으로 퍼져나간 울산 앞바다까지 훤히 바
라보이는 조망이 일품이다. 굽어보는 서녘 계곡에는 원효스님이 직접 창건하신 내원
사가 발밑에 내려보이는가 하면 맞은편에는 천성산(원효산)이 우뚝 솟아 있다.
( 정상에 서다. 14:41)
태백산맥의 맨 마지막에 솟아난 해발 922m의 천성산은 양산의 웅상읍, 하북면, 상
북면 등 3개 읍, 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암을 비
롯한 천연동굴속의 아미타여래입상 등 많은 명승지와 문화유적을 간직한 채 오랜 세
월동안 의연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원효산(화엄벌 922.2m봉), 천성산(812m봉)으로 불리던 것을 양산시에서
922.2m봉을 천성산, 812m봉을 천성산 제2봉으로 정정했는데, 이유인즉 천성산이
경치가 빼어나 경남의 소금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명산으로서 옛 이름은 원적산
이었으나 원효대사(AD617~686)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제자 일천명을 득도(得道)시켰
다하여 천성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 때문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참조하면
사실은 이 산에서 득도한 제자는 988명이었고 8명은 대구 팔공산에서 나머지 4명은
경북 상주군의 공덕산(912m)사불암에서 득도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
광받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화엄 늪과 밀밭 늪은 희귀한 꽃과 식
물(끈끈이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
아볼 수 없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특히 한반도 내륙의 산봉 가운데 동해의 일출을 가
장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하산은 부엉이 바위 쪽으로 길을 잡고 출발한다.(14:55) 우연의 일치겠지만 모두들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 바위를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숲속 길을 5분여
동안 걸어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계속해서 10여분을 임도를 따라 걸으니 천성산
철쭉제 기념비와 비석이 기다린다.(15:14)
(천성산 철쭉제 기념비)
해마다 5월이 되면 「자연과 꽃과 사람의 향연」 천성산 철쭉제가 이곳에서 개최
되는데 주위가 온통 철쭉 군락지로 형성되어 있어 붉은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기념으로 흔적을 남기고 다시 출발이다.(15:23) 직진하면 미타암
방향이지만 날씨관계상 욕심을 접고 좌측 철쭉 군락지로 내려서서 법수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숲속 계곡길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 탓에 몸은 조금씩 지쳐가고 한 시 바
삐 시원한 물속에 잠기고 싶은 조급함 탓에 계곡은 길게만 느껴진다. 금년에는 비가
자주 왔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계곡의 물이 많지가 않다. 30여분을 내려오다가
잠시 쉬면서 머리도 감고 등목도(15:52) 하면서 여유를 부려보지만 더위에 대한 원천
적인 갈증은 해소되지가 않는 듯 이내 땀방울이 샘솟듯 한다.
계곡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살펴보니 예전 같지가 않다. 몇 년 전인가 부부동반 산
행을 하면서 이곳 법수계곡 맑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근 채 준비해 간 냉면을 비벼먹
으며 환상적인 추억을 연출했던 그 때는 충분한 양의 물이 흘러 계곡 어디서나 휴식
을 취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몸을 씻으며 머무를 만한 곳이 없
어 몹시 안타깝다.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아 해매이듯 웅덩이를 찾아 20여분을 내려
와서야 눈이 번쩍 띄는 멋진 폭포수를 발견하고 모두들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가 경쟁이라도 하듯 서둘러 여장을 풀었다. 이윽고 명경지수에 몸을 담그니 그
시원함과 즐거움에 한 순간 세상이 멈추어 버리는 듯 한 착각이 든다.
(2층 폭포. 16:30)
(그 시원함에 온갖 시름 다 잊고 세상이 멈추어 버렸다.)
구슬땀을 흘리며,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헉헉 목까지 차오르는 깔딱 숨을 간신
히 몰아쉬며, 남몰래 울려고 내가 왔던가를 외쳐가며, 평소에 운동을 좀 더 많이 했었
어야 했는데 등등 안타까운 후회와 모든 잡념을 꾹꾹 눌러 참아가며 여기까지 오길
참 잘했지 않는가!!! 오늘 같이 더운 날 이런 횡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부처
님, 하느님, 조상님 등 모든 조물주님께 감사를 드리고만 싶다. 시세말로 보약 한재를
먹은들 이보다 더 좋은 몸보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비스듬히 기대어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에 몸을 맞기고 하늘을 바라보니 그 물보
라 속으로 비치는 영롱한 무지개 빛 영상이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하다. 마냥 잡아두
고만 싶은 시간이었는데 웃고 떠들며 즐기다 보니 웃음에 놀라고 넘쳐흐르는 즐거움
에 밀려 어느새 태양은 저만큼에서 발길을 재촉하라 손짓을 한다. 기념이랄까 추억
한 페이지 남긴 것을 위로 삼으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출발한다. 하산 길은 내리막길
이라 힘들지는 않지만 오르막길 보다 더욱 안전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에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역으로 암벽을 내려오고 혈수폭포를 지난다. 이렇게도 많은 능선길을 감고 돌았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능선 길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니 감회가 새롭다. 어느덧 보현사
가 눈앞이다. 오늘하루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보현사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삼배를 올리며 날머리로 내려선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