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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이때에, 고구려가 비로소 불교를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문명교류사 입장에서 종교의 전파는 초전(初傳)과 공전(公傳)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초전은 민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수수되는 전파이다.
종교적 사명을 띤 전도자들의 비공식적인 전도는 상당 시간 앞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저변에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그리고 정치적인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국가는 공인이라는 절차를 마련한다.
고구려에도 꽤 이른 시기에 불교가 전파되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일연은 [삼보감통록(三寶感通錄)]이라는 책에 “고구려 요동성(遼東城) 곁에 탑이 있다”라고 쓴 다음,
노인들이 말하는 신이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옛날 고구려 성왕(聖王)이 국경을 둘러보려 이 성에 이르렀소.
다섯 색깔의 구름이 땅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가서 구름을 헤치며 찾자,
한 승려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지. 가까이 가면 곧 사라지고, 멀리서 다시 나타나는 것이 보였소.
그 곁에 흙으로 된 3층 탑이 있었다오.
위는 솥을 덮은 것 같았으나 무엇인지 잘 몰랐소.
다시 가서 승려를 찾았지만 오직 마른 풀만 남았고, 한 길쯤 파보니 지팡이와 신발이 나왔지.
다시 파서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새긴 글도 발견했고. 왕을 모시던 신하가 알아보고 말했소.
‘이것은 부처님의 탑입니다.’ 왕이 자세히 말하라고 재촉했소. ‘한(漢) 나라 때 있었습니다.
저 이름은 포도왕(蒲圖王)입니다.’ 왕은 부처님을 믿게 되어 7층 목탑을 세웠지.
뒷날 불법이 시작될 때에 이런저런 사정을 모두 알게 되었소.”
일연은 여기서 고구려 성왕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포도왕은 물론 부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탑은 아소카왕이 온 세계에 불교를 전하려 세운 석주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소수림왕이 불교를 공인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