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에서는 최근 들어 ‘김대중 정부 5년을 평가한다’는 기획 아
래 전문가 30인에게 각 분야별로 그간의 정부 정책에 대한 점수를 매겨 발표
했다.이에 따르면 경제정책 분야는 10점 만점에 6.27점이 나왔으니 100점 만
점으로 보면 63점이다.이 정도면 한마디로 ‘턱걸이’ 합격 수준이고 엄하게
보면 ‘낙방’이다.무엇이 이런 결과를 낳게 했는가?
우선 김영삼 정부에 견줄 때 더 잘했다는 응답은 57%였고 비슷했다는 답은
27%,더 못했다는 사람은 16%였다.결국 40% 이상이 지난 5년간 펼쳐진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특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는 말이다.그래도 나
은 부분은 ‘외환 위기’ 극복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점이다.그 외는 점수
를 별로 따지 못했다.
특히 외환 위기 이후의 후속조치들이 미흡하거나 적절치 못해 경제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또한 대부분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 대중들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전개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나
아가 경제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문제나 부정부패 척결 문제,벤처 육성의 인
위성 등에서도 점수를 많이 잃었다.
물론 나는 이런 전문가 평가 결과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
는 절대적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하지만 중요한 대기업 연구소의 연
구원,경제 전문기자,경제학 관련 교수들이 내린 평가이기에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일단은 63점이라는 평가에 수긍할 수 있다.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남은 집권 기간과는 무관하게 한국 경제가 그 이
후로도 건강하게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나는 앞으로 전문가들의 평가나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 올바른
소신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한국 경제를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이
와 관련,크게 세 가지 원칙이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경제란 온 세상이 그렇게 보듯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 사는 것’이다.돈벌이 원칙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돈벌이 수단
으로만 보인다.그래서 ‘인적자원’이나 ‘천연자원’을 얼마나 잘 가공하고
다듬어 효율적으로 이익을 낼 것인가만 중요하다.그러나 지난 40년 동안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서양이 놀랄 정도의 고도성장을 달성한 반면,인간
과 자연이 함께 망가졌다는 점을 냉철히 인정해야 한다.그 반성 위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따라서 더 이상 ‘돈벌이’ 시각이 아니라 더불어 건강하게
‘먹고 살기’란 시각에서 전략과 제도,정책을 펼쳐야 한다.
둘째,대외적 자주성의 원칙이다.현재 세상은 미국 등 초강대국이 그 정치경
제적,군사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온 세상을 하나의
이윤 공간,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중이다.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그
리고 그 이전의 군사정부들도 크게 보면 이러한 세계적 경향에 적절히 순응
해왔다.특히 97년말 이후의 ‘IMF 사태’는 그에 거의 강제적으로 순응한 과
정이다.개방화라는 이름 아래 초국적 자본과 세계금융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
식하였고 민영화라는 이름 아래 공공부문이 탈공공화되고 민간자본의 수익성
원칙 아래 종속되며,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해고의 자유와 비정규직의 급속
한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강제하는 자유무역과 경제개방은 강대국의 입김과
세계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생명산업인 농업을 희생시키고 그대신 국내 대기
업이 떡고물을 먹는 식으로 전개된다.더 이상 이런 식은 안 된다.
셋째로,대내적인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원칙이다.즉 풀뿌리 민초들이 정치
경제 등 여러 문제를 결정하는 주체로 나설 수 있어야 하고 그 진행 과정과
결과도 풀뿌리들이 책임성 있게 맡도록 해야 한다.참여와 자치,자율과 연대,
이런 원리들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고 동시에 풀뿌리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그 과정과 결과를 풀뿌리에게 돌려야 한다.
나는 만약 이런 철학을 가진 겸허한 이들이 정책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참
된 일꾼이 된다면 아무리 점수를 안 줘도 90점 이상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