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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우리 대전광역시의 어제와 오늘
신성동 추천 0 조회 81 16.02.12 16: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 大田은?

대전광역시의 행정구역 안에는 백제시대부터 전해오는 이름들이 있다. 우술군(雨述郡), 노사지현(奴斯只縣), 소비포현(所比浦縣), 진현현(辰峴縣) 등이 그것들이다. 우술군은 비풍군(比豊郡)-회덕군(懷德郡)-회덕면(懷德面)-회덕동(懷德洞)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노사지현 현재의 유성(儒城)으로, 소비포현은 현재의 덕진동(德津洞), 진현현은 현재의 진잠동(眞岑洞)으로 바뀌었다.

 

<대동여지도 대전부분> 

 

<1805년 진잠현 지도>

 

 

<회덕현 지도>

 

1895년(고종32년) 지방관제개정에 따라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라는 행정리명이 생기다.

 

우리 고장 大田은 舊 韓末, 대전천변 모래밭에 있던 조그만 부락 "한밭"에 경부선 철길 공사를 위해 일본인 기술자와 인부들의 숙소가 들어서고 그후 철도 개통에 맞춰 대전정거장이 생기자 일본 본토에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근대도시가 형성된다.

 

*1910년대 현 계룡공고에서 본 원동, 대흥동.

 

*1920년대 같은 장소에서 본 삼성동, 은행동.

 

*1905년 대전정거장 개통

 

*1914.3.1 회덕군, 진잠군 일부를 통합하여 대전군 대전면(현 인동, 중동,원동, 정동, 삼성동)사무소 개소

 

*1914.3.1 대전군청 읍내동에서 원동으로 이전 개소.

 

*1917.10.01 외남면의 대전리, 수침리, 대흥리, 목척리, 발암리, 무사리 일부, 외천리 일부, 소제리 일부를 편입

*1926.03.01 구역확장으로 외남면의 외천리, 신대리, 대동리, 소제리, 연효리 편입

*1931.04.01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 (인구:23,284명)

*1932.10.01 충남도청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개청식 거행 

 

*1932.10.01 외남면의 방축리, 대사리, 부사리, 유천면의 용두·평리(하평) 편입

*1935.10.01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 원동에서 중앙로 네거리로 부청사 신축 이전

 

*1935.10.01 대전군이 폐지되고 대덕군 신설 (면적:11.36Km², 인구:39,061명)

*1940.11.01 외남면 산소·용방·탁곤·가양·홍도리, 산내면 석교리, 유천면 상평, 유천, 과례, 당대리 편입 (면적:35.71㎢, 인구:69,712명)
*1940.11.01 대덕군 외남면 잔여지역 삼정, 가오, 호동, 옥계, 대성리가 산내면에 편입됨으로써 외남면은 폐지

 

1945.8.15 解放 -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다물도 춤을 춘다.

*1949.08.15 충청남도 대전부를 충청남도 대전시로 개칭 (면적:35.71Km², 인구:126,704명, 가구:22,338)
*1963.01.01 대덕군 유천면 전역, 회덕면의 대화, 오정, 용전리, 산내면 옥계, 삼정, 가오, 효동리 편입 (88.21Km², 289,511명)
*1971.07.01 동부, 중부, 서부, 북부출장소 설치
*1977.09.01 대통령령 제8667호로 출장소제 폐지하고 동구청, 중구청 설치
*1983.02.15 대통령령 제11027호로 대덕군 유성읍, 회덕면 전역, 구즉면, 탄동면, 기성면, 진잠면 일부 편입 
*1988.01.01 대통령령 제12367호로 서구청 신설 (3구, 1출장소, 63개동)
*1989.01.01 법률 제4049호로 진잠면 남선리 제외 대덕군 전역 편입, 대전직할시 출발(면적:540Km2, 176개 법정동)
*1995.01.01 법률 제4789호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대전광역시로 명칭 변경

 

우리 대전은 1993년 8월7일 세계인의 耳目을 끌며 세계무역박람회(대전엑스포'93)를 개최하여 훌륭하게 마쳤고, 1996년에는 11개의 정부부처가 옮겨와 정부대전청사를 개청하였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날로 번창하여 가는 희망에 찬 "우리의 고장 한밭 大田"이다.

 

 
왜 대전(大田)이 이처럼 번영하여 가는 것인가?

그 이유는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우선 이 고장의 위치가 국토의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라는데 있다. 경기·충청의 중부지역과 영남과 호남을 연계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다음은 자연 지리적 조건이 다른 어느 곳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택리지(擇里志)의 저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우리 대전(大田)을 다음과 같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기술하였다.

고을동쪽에서 금강 남안을 돌아 계룡산의 배후가 되는 곳에서 겹쳐진 고개(중령(中嶺))를 넘으면 유성(儒城)의 대평야인데, 즉 계룡산 북동 모퉁이에 해당한다. 계룡산 남동마을(新都內)은 국초에 서울로 정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이 동네의 물은 한 들 가운데를 구획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진산(珍山)의 옥계(玉溪)와 합치어 북으로 금강에 들어가는 데 갑천(甲川)이라 이름한다. 내의 동쪽은 곧 회덕현(懷德縣)이고, 서쪽은 유성촌(儒城村)과 진잠현(鎭岑縣)이다. 동서의 두 산이 남쪽에서 평야를 끼고 돌아 북쪽에 이르러서 합치었고, 또 높게 사방을 산으로 막아 가운데를 둘러쌌다. 평평한 언덕과 산은 길고 구불어지고, 어여쁜 산기슭은 맑고 깨끗하다. 구봉산(九峯山)과 보문산(寶文山)이 남쪽에 높이 솟아 그 맑고 깨끗한 기상이 거의 한양의 동교(東郊)보다 낫다. 논밭은 극히 좋고 또 넓으나 다만 바다에서 다소 멀어 서쪽에 있는 강경(江景)에서 교역하는 것에 의지한다. 그러나 강경과의 거리는 백리를 넘지 않는다.

(自州東 循錦江南岸鷄龍背後 踰重嶺 爲儒城大野 卽鷄龍維也. 鷄龍南洞 國初欲都而未果. 是洞之水 畵一野之中 自西流 東與珍山玉溪合 北入錦江 名曰甲川. 川東 卽懷德縣 西卽儒城村及鎭岑縣也. 東西兩山 自南抱野 至北合又 高障四山 而環圍野中 平岡委蛇 嫩麓精秀 九峯山 與寶文山 聳峙於南 淸名氣像 殆過漢陽東郊. 田地極善且廣但海汀稍遠 西仰江景之輸易 然江不滿百里)

 

 

실로 우리 대전(大田)은 사람이 살면서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천혜(天惠)의 복지(福地)이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알맞은 고도(高度)에 광활하게 펼쳐진 한밭들과 동서남북은 병풍처럼 두른 산들이 풍해를 막아 준다. 또한 수해도 거의 없는 등 천재(天災)가 없는 낙원이다. 거기에다 역사의 젖줄인 금강이 도시의 등 뒤로 유유히 흐르고 도시 한복판에는 세 가닥의 큰 내가 흐리니 한밭내(대전천(大田川))에서 먼저 만나 하나 되고 다시 성천(省川)과 만나 갑천(甲川)을 이루어 금강으로 가나니 하늘에서 내려다 본 대전(大田)의 산천(山川)은 과연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대 전 찬 가

 

한밭, 대전, 회덕, 진잠, 유성

쌍청, 우암, 동춘, 제월, 취금헌

산태극, 물태극, 비단강, 대청호

  

경부선, 호남선, 대전발 영시오십분

가로등 흐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못잊을 대전의 밤, 오기택과 남일해 

 

대전역 3분 정차 프렛홈 가락국수

빵꾸안난 기차바퀴 쇠망치로 두드리면

눈썹을 휘날리며 갱생회로 뛰었다

 

케비에스만 나오던 흑백 티뷔시절

이웃집 누나 훔쳐보던 빡빡머리 머슴애가

육군 제2훈련소행 입영열차를 탓다네 

 

추풍령을 넘어서 대전역 정차 5분만에 

조교 완장 찬 가라병장 호통소리에 

가끼우동 노랑 냄비는 프렛홈에 나뒹군다

  

 영남학파 기호학파 개나리 봇짐지고

알성급제 바라며 과거 보러 가는길에

회덕 황부자의 미륵원에 신세진다.

 

중천 구름속의 아스라한 초승달을

술잔속에 띄워놓고 시한수 읊조리니 

비단강 물결 위에는 어사화가 비친다.

 

 

보문,만인, 정기,국사, 망덕,식장, 계족,금병

노루,우산, 갑하,도덕, 빈계,구봉, 효자,쟁기

둘러 앉은 봉우리들 인재를 품었구나

 

효부, 열녀, 효자정려는 골골마다 자리하고

그정신 이어받아 배움의 도시되니

온누리 젊은이들 구름처럼 몰려 오네

 

대전역에 발 내릴때 낯설었던 한밭땅이

이제는 산천을 알고 사람까지 좋아지니

칠순 지나 고향가기를 포기할까 말까 한다.

 

2008년 7월10일 寶雲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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