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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역
호남과 전라선이 만나고
헤어짐으로 호남의 시작을 알리는 교통의 삼각지
논 한빼미에 골이 만개가 넘는다는 드넒은 만경평야
호남의 젖줄기 만경강의 넉넉한 자락을 깔고 흐르는
호남 펑야는 일제의 수탈도 역사의 아픔도 있지만 이땅의 민중들의 애환을 안고 깊속히 서해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시골 학교를 졸업하고
그향 친구를 찾아 낮선 이리역 플래트 홈을 나와
친구의 자취방에서 그날부터 언쳐사는 고달픈 객지 생활이라는것을 처음 시작했다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학원에 나가 공부도 하고
이제 시작이니 무엇이든지 할수 있을것 같고 무엇보다는 내가 돈을 벌어 자립의 꿈도 갖질수 있을것 같았다
하루종일 몸은 힘들었지만 저녁에 들어 오다 가끔 마주치는
주인집 할머니 외손녀 성희를 보는게 나에게는 아침 이슬보다 더 맑고 가슴이 뛰었다
반복되는 일상도 낮선 도시의 적응도 서틀었지만 그런대로
호기심도 채울수가 있고 배움의 열정도 있었다
성희는 풋풋한 단발머리의 수즙은 여고섕이었다
그날도 저녁 늦게 수도가에서 성희에게 말을 걸을수
있었다 내 심장은 터널로 깊속히 빨려 들어가는 열차처럼
홍역으로 뜨거워지는 열기가 .직소폭포에서 떨어져 피어나는 햐얀 물안개가 풀섬으로 스며드는 가날픈 풀소리도
났고 그녀에게는 아직 익지 않은 단내가 났다
헝끄러진 가슴으로 무언가가 쏳아지는데 그것은 심연의 혈관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길이 없는 곳에서 만난 변산 앞바다의 용왕님에게 청을 하러 가는것처럼 아득해졌다
새벽을 깨우는 플랫트 홈의 열차의 기적소리가 가까이서 멀어졌다
그소리는 헤어짐을 알리는 정해진 운명이었다 뿌연 열차의 기적소리는 가슴 언저리에 낮게 깔리고 오빠 열차 기적소리가 무서워요 성희가 침묵을 깼다
그때 성희는 성숙한 티가 조금씩 베어 나왔지만 부모님을 떠나 외가집에서 나처럼 언쳐 사니 항상 외롭고 그 또래들 보다 감성이 여려고 가로에 갓 심겨져 있는 코스모스처럼 흔들렸다
새벽의 숨을 나직히 누르고 나는 친구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갔고 친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추궁 헀지먄 내일 나는 일을 나가야 했다
그리 좀 익숙해지는 도시의 공기를 뒤로하고 서울로 가야
했다 더 이상 생활이 되지 않아 공부는 사치에 불과했다
또 다른 도시에서 꿈을 이루겠다는 소망으로 성희와 헤어짐도 없이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고 이도시와 인연을 여기까지로 뭍었다
나중에 성희를 떳떳하게 뚜렸한 소망을 갖고 당당하게
만나고 싶었다
지금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헤어지지만 기필코 하늘 아래
어디에서든 만나야 했다 마음은 애타고 급했지만
용산행 완헁 열차는 내 속도 모른채 더디게 자기 갈길을 가겠다고 했지만 난 한시 바쁜 사람처럼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서울 서울이라는곳으로 흘러 왔다
서울이라도
입 채우기도 힘든 일가 천척들 사는것도 매한가지다
가난에 익숙한 그들에게 나의 등장은 빚 받으러 온 사람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지금 여기가 나의 마지막 가나안 땅이라 믿고 화류계로 슴어 들었다
서울은 참 재미 있었다
뭐든 노력하면 안될게 없을것 같았다
보는것마다 가는곳마다 호기심도 있고 신기하고 또 그들이
특별히 나를 거부 하지도 않아 모든게 넘치고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요정 생활에 재미도 붙치고 안정도 되니 무엇보다
고향 부모님을 먼저 안심시키고 성공할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인사도 드리고 싶었다
전화도 없고 글도 모르니 휴가를 받아 직접 가는게 제일
좋고 나도 원하는 방법이다
서울 생활 처음으로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갔다
늙은 아버지는 디른것은 묻지도 않는다
뱨골치는 않는지 뱃골이 넓고 커야 잘산다는데
확인이라도 하듯 내 배부터 한손으로 더듬이면 절대 배굶지 말고 뭐든 찾아 먹어라고 주문을 외우셨다
시골의 하룻밤을 그런 아버지와 지내고 서울 가려고
나서니 변산에 계시는 증조부 산소에 4부자가 꼭 가야
한다고 아침부터 성화였지만 동짓달 춥기도 하고 동생들도 싫어 하니 이 다음에 꼭 갈터니 그냥 저는 서울을 가겠다고 우겼지만 아버지는 지금 4부자가 안가고 나중에 4부자가 함께 간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다음에 4부자가
함께 가는 날은 오지 않을거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시니 더는 거부도 못하고 겨울 내내 눈속에 뭍힌 변산 하루재 넘어
이십리 산길을 눈을 혜집고 성묘를 하니 뿌듯함도 있고 뭔지 아버지를 편하게 해드린것만 같았다
그 뒤로 사부자와 같이는 성묘를 한번도 가지 않았으니 아버지 예지력에 성묘를 참 잘한것 같았다
하룻밤을 더 자고 서울로 향했다
고속버스에 몸은 실었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뵈니
마음이 짠하고 내가 금방 출세하지도 못할거 뻔히 아는데
마음이 그리 펀하리가 없었다
그러던중 옆자리 젊은 친구하고 말문을 티워 이야기 하다보니 약속도 없이 헤어진 성희를 그 사촌 동생을 만나 성희 안부를 뭍고 있었다
그동안의 성희의 소소한 이아기를 들을수 있었다
참으로 묘햔 인연이었댜 이게 하늘의 뜻일까
증조부 성묘를 해서 벌어진 조상의 은혜일까
그토록 그리던 성희였는데 성희를 다시 만날수 있다니
하늘은 그냥 하늘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도 더이상 추을수가 없었다 꽃이 피고 봄날의 아지랭이가 날고 잠자든 숲에서
섀싹이 돗고 새들이 울고 시원한 물줄기가 마른논에 스며들듯 만선의 뱃고동이 항구를 찾는듯 하늘은 나를 돕고 있었다
서울 생활이 다시 이어졌다
이제는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엄청냔 보물섬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웃을수 있었다 소주잔을 기우려도
성희가 금방 달려 올것 같았다
이제는 누구도 부럽지가 않았다 어쩌다 힘이 들어도
성희가 보였다 나는 그때 성희가 힘이었다 그런 성희가
시골 은행에 근무를 한다고 그 사촌동생이 전해 주었다
시간을 두고 어떻게 만나야 내 진심을 전할수가 있을까
그동안 혹시 좋은 사람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혼자만의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도 좋았다 당시 민족의 명절 설날은
일년중 가쟝 큰 행사이고 요정은 휴식기에 접어든다
그때 당시는 구정이라고 음력 설날은 법정 공요일이
아니었댜 그때에 맞추어 어치피 구정때 시골에 가야 하니
성희를 만난러 귀향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마을의 당산나무는 뭐든 다 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바닷가 사람들은 하늘을 무서워 했다
동짓달 추운 겨울에도 엔진도 없는 풍선배에 노를 젖어 바다로 간다 겨울 날씨는 하루 아침에도 몇번 변한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치면 돗단배는 힘을 잃고 청년들과 함께 바다의 재물이 된다
통곡의 대상은 없다 하늘의 노여움으로 바다가 삼킨다고
믿었다
동네 당골 무당은 생때같은 청년들의 넋을 건진다고 배를 띄워 놓고 굿을 한다 대나무 조리로 그 청년들의 머리카락을 건져 올린다고 믿고 새벽녁까지 청승스럽게 굿을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 가장 큰 굿이 열린다
당산 나무 아래에 정갈하게 차려진 고사상 위에 형형색색 기원문 축문을 달고 만신을 불러 절을 하고 용왕님께 굿을 해야 그해의 마을의 액운을 소멸한다고 장구를 치고 재물을 받친다
그날의 마을은 고사날이자 제사날이 된다
이생에 원수를 풀고 저승으로 가라고 새끼줄을 자른다
그들을 좋은곳으로 보낸다고 뛰고 어이 어이 가라고 윈혼을
달래고 깽가리 소리가 절정으로 향할때 얼굴을 가린 꽃깔 모자의 당골네는 하늘을 날듯 뛰고 막걸리 몇잔으로 입이 삐뜰이진 병길이 아버지는 욕인지 뮌지 알수 없는 소리를 연신 내지른다
병길이 아부이 그런다고 죽은 자식이 살아 오남요
순덕이 엄니가 끼어들지만 동네 어른들은 냅두시요
그러다 말겄지요 하고 애써 외면한다
병길이가 작년 겨울에 바다 귀신이 된게 당산나무가 부정을
타서 아들을 바다로 내 몰았다 고 믿고 있다
내 동창
순영이 엄니는 죽은 남편에게 마지막 악다구를 쑿아 붓는다
애들만 퍼질러 놓고 혼자만 좋다고 갼 원수는 꼴도 보기 싫다고 혼자 욕을 하고 울고 난리가 난다
각가지 형색으로 띠와 마름으로 역겨진 당산 나무는 미안한지 바람에도 흔들리지도 않고 죄인처럼 숨을 죽인다
먹거리가 부족한 동네 사람들이지만 굿날은 난쟁이 벙어리
동네개들도 음식 냄새에 몰려든다
굿은 어느새 서러움과 한풀이 장으로 변하고 어둠은 원망과 한을 덮으로 마을로 내려온다
아버지는 하늘을 무서워 해야 한다고 늘상 그런다
땅을 파도 고기를 잡아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사람은 살수
없다고 하신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밥이고 하늘이 목숨이고 하늘을
무서워 하지 않는자는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길이 막히고 산이 막혀도 고향길은 늘 설래임의 대상이다
누구는 힘든 고향을 왜 가냐고 묻기도 하지만 민족의 대이동 그럼 명절때 고향을 안가고 어디를 가냐고 고향 가라고 명절이 있는건데 고향길 8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다들 그런다
고속버스의 종점 그곳
군 소재지에는 이미 버스가 끊겨 걸어서 20리길을 가야할 고향은 모두의 귀소 본능이고 힘이 안든다 그날은 너무 늦어 큰집으로 가지 않고 집에 들러 잠깐 눈을 붙이고 큰집으로 가서 차례를 지내고
오후 무렵 읍내에 나가 성희가 근무하는 은행으로 갔다
당시에는 명절때 여직원들은 한복 곱게 차려 입고 근무를
했다
혜어지고 몇년만에 처음 만난 성희는
자난날 가녀린 소녀가 아니었다
우아한 한복인지 목이 긴 성희는 선녀복을 입고 하늘의
두래박을 기다리는 천상의 여자였다
나하고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볼품없는 내가 올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저녁 약속만 잡고 은행을 빠져 나왔다
약속을 하고 나왔지만
읍내를 돌고 돌아도 내 꼴하고는 전혀 어울리 읺았다
그냥 맥이 풀리고 지금의 내모습은 하고는 아니었다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얼굴도 아니지 키도 작고 왜소하고
무엇보다 직업을 물어보면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나도
대답이 없다
해는 어느새 밤을 재촉하고 날이 져물어 가는 당산 나무의
쾡가리 소리가 내 마음속에 닐카롭게 들린다
겨울 추워가 살을 에웠다 들뜬 거리의 사람들은 혈육을
만난 기쁨으로 어디론가 바삐 간다
나는 약속된 다방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마음 가라 않치고 은행에서 본 그녀의 뒷 모습이
얕은 미소에 머물러 숨으로 넘어 올때 그녀가 왔다
단정하고 수수한 옷차림에 조금은 안심이 되어 지난
이야기를 끝집어 내고 잠시나마 웃는 여유도 있었다
자리를 옮겨 저녁을 마칠 무릅 여름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온다고 그때 보자고 연락처를 물었지만 그때 공부하러
다니던 독서실 전화번호가 생각나 알려주고 겨울 쓸쓸함이 몰려 있는 읍내를 지나 집으로 가는길에 차가운 바람이 거리를 한바뀌 쓸고 지나 갔다
명절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차장에 나오신 어머니는또 편지 써서 붙치라고 글자 한자 모르는 어머니의 당부는
늘상 들었던 이야기라 귀에 담지도 않고 무언가 채울수 없는 조급함은 서울을 자꾸 재촉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어쩌다 통화는 했지만 자신감은 떨어지고 말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온다는 휴가 날짜가 다가 왔지만 언제
몇시에 오는지 독서실에서 마냥 살수는 없는 노릇이라 총무에게 부탁도 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도 기다리다 지쳐서 성희에게 큰맘 먹고 은행에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으니 독서실 총무가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해서 자기는 일만 보고 내려 왔다고 약간은 아쉬워 하는 눈치도 보였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고 대공원도 가고 화려한 커피숍도 고급
례스토랑도 알아 두었지만 하늘은 그렇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한 이년쯤후에 시골에서 금 은방하는 친구로부터 성희가
결혼한다고 안부 전화를 하면서 자기 가게에서 폐물을
했갔으니 그리 알고 살어라고 말끝을 흐리듯 전화기를
놓았다
그녀는 봄날 화사한 꽃입만 남긴채 어디론가떠낫다
윤중로의 벚꽃처럼 푸른 물에 떠서 누군가를 찾아 떠났다
언제가 다가올 헤어짐이 조금 빨라을뿐인데 어차피 그런
운명이라고 당산 나무에서 무거운 징소리가 징징 거렸다
그늘도 없은
그리움조차 여름 무더위에 지쳐 쉬어가는 한나절 오후 시간에 성희네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가 성희네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지만 전화를 돌린다는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성희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자체가 가슴을 뛰게도 했지만 성희에게 오는 모든 그리움을 내려놓고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마저 지우고 싶었다
이루지 못한 지난 세월속에서 빗나간 삶이지만 성희의 일상을 흩뜨려 놓고는 싶지 않았다
상우는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쇠로 고정시킨 머리는 붕대를 칭칭감고 부러진 다리에는 부목으로 고정되어 미라처럼 굳어진채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마치 시간이 정지것처럼 쇠침대에서는 차가움과 무거운 정적만 흘렀다
간병하는 상우 누나는 마치 체념한듯 어떤 미동도 없이 덤덤하게 병실의 동생을 애써 외면 하덧이 나의 방문을 그져
병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대하듯이 별 감흥없이 마른 눈인사만 건너고 있었다
애초에
지방 사범대학에 들어가서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라도 되려고 선택한 길이지만 맨날 시위와 학생운동으로
자기 자신 조차 지키지 못하고 쫓기는 신세이다 보니 신념과 현실 사이에 고뇌로 스스로 자퇴하고 차라리 군에 지원해서
현실 도피처로 삼아 3년을 만기 전역을 하고 다시 올라와서 서울의 K대 진학하여 학생운동을 멀리하고 알바로 하루 하루 힘들게
공부하는 복학생으로 삶을 그런대로 이어갈수 있었다
학비와 생활비로 여기 저기 손벌려봐도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고 알바비로는 감당이 안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의 궁핍은
자취방에 차가운 냉골보다 더 무서웠다
상우는 시골에서 붙쳐온 돈이 턱도 없이 부족한 생활비에 적은 돈이지만 재수 좋게 처음해보는 주식으로 조금씩 모으는 쏠쏠한 재미도 있고 혼자서 나름대로 주식의 그래프를 보면서 자본의 시장에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되었다
돈이 조금씩 모으다 보니 선물까지 손대고 판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선물에서 일확천금도 꿈꿀수가 었었고 자신감도 붙었다
상우는 없는 돈으로 PC도 몇대 더 사고 선물에 온통 집중하고 선물만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여기고 시골에 가난에 지친
부모 형제를 구제할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삼아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움켜쥔 모래알처럼 빠져 나가는 돈을 기필코 어서 잡고
싶었다
주변에 돈이 될만한 친지나 친구들에게 찾아가서 읍소하고 어렵게 빌린 돈으로 선물에 투자하였지만 빈독에 물붓기만 냅다
하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계가 오고 돈을 좀 만들 모양으로 우선은 시골로 내려가서 이것 저것 좀 챙겨보고
늙은 노모도 옆에서 챙겨 드리고 싶었다
서울에 집사람 성희와 딸래미만 남겨둔채 고향으로 내려와
할일 없이 시골집에서 기르는 개하고 오전 동네 한바퀴 산책을 하고 들러 와서 컴에 앉좌 선물과 싸움을 했지만 번번히 깨지는
현실 앞에서 도모지 답을 찾을수가 없고 매번 돈이 문제였고 돈을 더이상 댈곳이 없었다
상우는 급기야 장인의 퇴직금까지 손대 보니 결과적으로 집사람과도 멀어져 별거 아닌 별거를 시작하고 늦게 낳은 무남독녀인 딸까지 볼수 없게 되었다
선물로 인하여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에 자신의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시골집하고 방앗간 뒤에 있는 밭퇘기를 은행 담보로 돈을 빌려 선물에 넣었지만 형편없이 망가지는 절망으로 하루 하루를 숨만 간신히 쉴수 있었다
상우는 더 이상 방안에서 혼자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늙은 노모를 쳐다 볼 자신도 없었다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고 동네라도 한바퀴 돌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치도록 보고 싶은 딸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매일 맞주하는 아침이 두렵고 동네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같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하던 주식이 선물로 변하고 그 선물이 자신을 옭죄는 그래프를 할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나에게 남은 시간도 많지 않을것 같은 예감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달빛도 없는 신작로 갓길을 혼자서 걷고 있었다
그날은 가을 걸이가 끝나가는 을씨년스러운 가을 날씨에 밤이 싸한 공기가 길을 재촉하는 삼거리 모퉁이를 넘어가는
찰나에 달려오는 덤프트럭에 치면서 몸이 어디로간 붕 떠서 혼자 날라갔다
차라리 후련하고 속이 시원했다
살다보면 속이 까막게 타 들어가고 연기처럼 사라지는게
살이다
이제는 모듣것을 털어내고 천상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물도 기르고 딸래미 목욕도 시키고 울타리에 장단콩도 심고 노모 밥도 채려드리고 싶었다
상우는 아득한곳으로 떨어져 연못에서 고기도 잡고 모처럼 거머리 침의 따끈함에 깊은 눈을 떳을때는
햐얀 병실에서 아무것도 할수없이 묵여있는 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
실로 사고 15일이 지나 어렴풋이 처음으로 의식을 찾을수 있었다
그날 상우는 10리길 동네 선배를 만나서 돈을 빌리려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혼자서 가다가 뺑소니 차량애
치여 다음날 새벽녁에 발견되어 읍내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보름만애 흐린 의식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