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효령대군은 1396년(태조5)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둘째 왕자로 태어났다. 12세에 효령군으로 봉군되고,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인 해주정씨와 혼인했으며 17세에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사양한 그는 개국 초기 억불숭유 정책에 입각한 왕권 확립에 노력했다. 특히 백성들의 민심 이반을 총화로 이끌기 위해 유ㆍ불 조화론을 주창했다.
효령대군은 나라의 안정과 왕정의 토대를 굳건히 다지는데 노력했다. 백성들의 자치규범으로‘향헌(鄕憲)56조’를 제정하여 백성들의 윤리 도덕과 의식교화에도 헌신했다. 효에 대한 이론정립과‘부모은중장 수태골경합부’를 사경했다.
그는 국보 2호인‘탑골공원 10층석탑’의 건립과 보물 2호인‘보신각종’의 주조를 직접 감독했다. 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짓게 되자 그 역사를 주관했으며, 계정혜(戒定慧)에 바탕을 둔 불법의 수련을 독실히 했다. 그밖에 연주암(관악산), 무위사(월출산), 백련사(만덕산), 회암사(양주) 등 많은 사찰을 중건ㆍ중수했다. 문장에도 뛰어나 연화경, 금강경,원각경 등의 우리말 번역을 비롯하여 많은 호국불사를 주장했다.
태조부터 9대 성종에 이르기까지 9대에 걸쳐 임금을 보필한 그는 오로지 왕실의 번영과 나라 발전에 충성을 다했다.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예우를 받으며 살다가 1486년(성종17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는 7남을 두었다.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은 아우인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켰다. 효령대군은 살아생전에 손자 33명, 증손자 109명을 두었다. 부인 해주정씨는 14세에 대군의 배필이 되었으며, 1470년(성종1)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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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http://blog.daum.net/12501436/15083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