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wonnews.co.kr%2Fnews%2Fphoto%2F201605%2F115316_30481_058.jpg) | | ▲ 원기5년(1920년) 부안 봉래정사에서 초안하여 원기20년(1935년) 발간 | | 원기20년(1935) 4월, 교단은 〈조선불교혁신론(朝鮮佛敎革新論)〉을 발간한다. 원기5년(1920) 소태산대종사가 부안 봉래산에 주석하고 있을 때의 초안이다. 왜 초안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이때에 발간되었을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서릿발같던 시국(時局)에 대처했던 초창교단의 지혜로운 취사가 두드러진다. 이듬해에 조선총독부가 '유사종교 소탕령'을 내리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불법연구회는 혁신불교이다'라 밝혀, 교단해체를 피하는 역학을 했기 때문이다.
〈혁신론〉은 석존을 연원불로 정한 대종사의 불법관(佛法觀)을 잘 말해준다. 이른바 불법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이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권상로 〈조선불교개혁론(改革論)〉,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維新論)〉(1913), 이영재 〈조선불교혁명론(革命論)〉, 김벽옹 〈조선불교기우론(杞憂論)〉 등의 저술이 있어서 흥미롭다. 개화기 이후 한국불교는 개혁사조(改革思潮)였으며, 대종사의 새 종교운동도 같은 흐름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혁신론〉은 4×6판 37쪽이며, 편집 겸 발행인은 전음광(호적 명 全世權), 불법연구회의 발행이다. 대종사의 저술 대신 교단이름을 밝히고 있다. 국한문 혼용이나 한문에는 국문의 토가 달려 있어 대중성이 잘 드러난다. 전권을 7장으로 나눠, 1. 과거 조선사회의 불법에 대한 견해, 2. 조선승려의 실생활, 3. 세존의 지혜와 능력, 4. 외방(外邦)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5.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6. 분열된 교화과목을 통일하기로, 7. 등상불숭배를 불성일원상(佛性一圓相)으로라 구성하고 있다. 말미에 불성일원상 조성법, 심고와 기도에 대한 설명을 붙여, 일원상 종지(宗旨)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해에 중앙총부에 대각전을 준공하고 불단(佛壇)을 조성하여 법신불을 봉안한 흐름의 반영이다.
원기28년(1943) 전라북도에서 발간불허된 〈정전(正典)〉을 불교시보사 김태흡사장의 주선으로 총독부에 허가를 신청할 때, 〈불교정전〉이라 이름했으니, 〈혁신론〉의 내용을 '제1편 개선론(改善論)'으로 편집해 넣은 결과이다. 그리고 원기 47년 〈정전〉·〈대종경〉을 〈원불교교전〉으로 발행하면서 〈대종경〉 서품 15-19장으로 옮긴다. 이를 통해 〈정전〉이 본래 모습을 찾고, 〈대종경〉에 불교의 혁신이념을 담을 수 있었다. 혁신 곧 '개혁과 유신'을 포함한 실천이념이다.
<원광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