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07년. 함경남도 풍산군 노은리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독실한 불교가정의 열한 살 난 아들 불암(佛岩)이 첫서리가 내리는 새벽부터 이상한 병을 앓기 시작했다. 섬뜩할 정도로 붉은 빛이 두 눈에 고이면서 일체 말이 없어졌다. 혼자 산야를 헤매고 다니고, 온몸에 피멍이 들어서야 집에 기어들어와 잠을 자는 것이 일과였다. 다니던 서당도 집어치우고 갑자기 괴력을 지닌 짐승처럼 나댔다.
부모의 걱정이 절정에 이른 어느 해 겨울 이슥한 밤에 불암이 느닷없이 오지등잔과 등잔바탕을,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는 마당에 집어던지면서 광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외풍이 심한 탓에 방에 들여놓은 질그릇 화로에는 참나무 군불을 때고 나온 숯이 담뿍 담겨 이글거렸다. 그걸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마당에 내던지니 눈 위로 쏟아진 숯불이 지지직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안방에서 막 잠을 청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원산댁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먼저 불암 아버지의 고함이 집안을 잡아 흔들었다. “저 녀석이 왜 저래? 이젠 완전히 미쳐버렸구나.” 어머니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저녁에 식사도 잘했는데 어쩐 일이지?” 흘러내린 머리를 얼레빗으로 대강 추스르고 남편의 뒤를 이어 뛰어나온 원산댁이 혼자 아들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불암의 손을 붙잡고 늘어졌다. 시뻘건 눈으로 마당에 내던질 물건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는 불암은 윗목에 놓인 반닫이에 번득이는 눈길을 꽂았다. 아들의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용을 쓸 적마다 반닫이의 거멍쇠 장식 위 서랍 놋쇠고리가 찰랑댔다. “너 왜 이러니? 무슨 일이냐?” 불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외로 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이래? 혹시 서당에서 친구들하고 싸운 일로 속이 상해 이러는 거냐? 아니면 서당훈장님의 지청구라도 들었냐?” “아뇨.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빨간 사람들이 군대처럼 밀려와서 날 잡아 죽이려고 해요. 아이쿠! 무서워. 날 좀 살려주세요. 저 밖을 보세요. 모두 벌거벗은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말을 해봐라.” 아무리 살펴봐도 밖에는 점점 탐스러워지는 눈발이, 거센 바람에 아예 옆으로 누워서 내리고 있을 뿐이다. 불암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윽 훔치고는 다시 눈 내리는 밖을 응시하다가 공포로 일그러진 입을 열었다. “온몸이 새빨갛고, 곧추선 고추를 내놓은 천둥벌거숭이 남자들입니다. 입을 딱 벌리고 고함쳐대는 수백 명의 사내들이 저를 향해 모두 달려들어요. 저것 좀 보세요.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아우성입니다. 아이쿠! 무서워.” “저 애가 홍동지를 말하는 것 아냐. 남사당패들이 꼭두각시놀음에 쓰는 나무인형 말이야. 야! 이 자식아. 그게 무엇이 무섭다고 그래. 사람이 만든 나무인형일 뿐이야. 네가 헛것을 보는 게다.”
불암의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고 정신을 차리고 똑똑히 보라고 애걸했으나 아들은 아니라고 몸을 비틀면서 벌벌 떨었다. 너무 무서워 숨이 막히는지 밖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손사래를 치다가 어미의 품안에 얼굴을 박았다. 문 밖에서 아들의 말을 듣고 서있던 아버지는 두엄치기 전용연장인 거름대를 가져다가 아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나쁜 놈들이 밀려오면 푹푹 찔러라. 방안의 기물을 내던지면 우리가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 불암은 엉거주춤 아버지가 방안으로 디밀어넣은 거름대를 받아 양손으로 단단히 거머쥐었다. 아직도 얼굴은 질려서 관자놀이에 파란빛이 서렸다. 쇠스랑 대신 거름대를 넣어준 것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노간주나무대 끝에 세 가닥 가지가 뻗은 거름대는 쇠스랑보다는 훨씬 덜 위험했기 때문이다. 깨어진 화로와 등잔을 마당 귀퉁이에 치워놓고 불암의 부모는 한숨을 삼키면서 안방으로 들어갔지만, 피차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남편이었다. “여보, 아무래도 불암이 몸이 쇠약해 저런 모양이오. 내일 새벽에 일찍 재 넘어 한의원에게 가서 보약을 한 제 지어와야겠소. 그걸 달여 먹이면서 치성을 드리는 수밖에 없겠소.” 하지만, 보약을 먹여도 증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불암의 병은 더 심해졌다. 막판에는 뒷산으로 뛰어올라가 골짜기를 헤집고 다녀서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다. 허벅지나 팔뚝은 물론 얼굴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행여 깊은 산속으로 갔다가 곰이나 호랑이를 만나는 날이면 제명에 죽지 못할 터인데 이를 어쩌나’하는 부모의 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씩 무엇인가 내심에서 발동하면 미친듯이 산꼭대기로 뛰어올랐다. 동네청년들이 뒤를 쫓았으나 아무도 불암을 잡을 수 없었다. 그건 가히 괴력에 가까웠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아니었다. 산비탈을 뛰어오르는 노루보다 빠르니 어느 누가 뒤따를 수 있겠는가. 보다 못한 원산댁은 남편의 허락을 받고 명산의 이름난 절을 모두 찾아 나섰다. 영험이 있다는 절이면 마다하지 않고 불공을 드리러 갔다. 북청의 관음사, 내금강의 유험사, 외금강의 신계사, 이원의 정광사 등을 두루 다녔으나 백약이 무효였고 백방이 허사였다.
그럭저럭 무심한 세월은 흘러서 불암이 스무 살 고개를 넘었다. 폐인이 되어 방구석에 쓰러져있는 꼴을 보다 못한 원산댁이 결심을 하고 아들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살다 죽을 바엔 무엇이든 다 해보자. 뭐 원하는 것이 없느냐? 죽기 전에 소원을 다 들어주마.” “제 귀에서 날마다 아우성치는 놈들의 괴성만 없애준다면 전 무엇이나 할 것입니다. 허락하실 것이지요?” “자식을 살린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느냐.” “부처님, 산신령, 무당, 점쟁이, 심지어 조상신도 다 못하니 마지막으로 풍문에 듣던 예수란 분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원산댁은 잠시 멈칫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는 어쩌고, 조상들이 믿어오던 부처님과 조상신을 어떻게 하고 서양귀신에게 가겠다는 건가. 더구나 종갓집인데, 친척들의 입방아를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픈 것이 어미의 마음이었다. 죽어가는 아들의 소원을 어찌 윽박지르겠는가. “예수를 부처님 자리에 앉혀놓으면 네 병이 낫겠느냐?”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도 제 병을 고치지 못해서 날마다 아우성치는 괴성을 듣고 살아야 하니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풍산군 안산면 백자동교회의 전도사와 장로를 초청했다. 그들 앞에서 불암은 예수를 믿겠노라고 결심을 표했다. 병을 고쳐달라고 울어대면서 말이다. 그 밤으로 불암은 교회로 옮겨져서 온 교인들의 기도를 받기 시작했다. 전교인이 새벽부터 밤낮으로 울부짖으면서 불암의 귀에 붙은 마귀떼를 몰아내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밤마다 발가벗은 홍동지가 고추를 덜렁거리면서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나타나서 더 기세당당하게 그를 향해 고함쳤다. 어서 낫으로 목을 쳐서 죽으라고 말이다. 교인들도 불암도 열심히 기도했으나 좀처럼 차도가 없으니 매일 죽을 지경이었다. 이따금 부모나 친척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교회 안을 기웃거렸으나 조금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걸 보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쯧쯧……. 서양귀신도 별수 없군. 홍동지 같은 목각인형의 소리도 물리치지 못하니 우리 부처님이나 산신령님하고 무엇이 달라. 하긴 우리 조상신이 못하는 걸 서양신이 어찌 하겠어.”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그를 위해 울어대는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불암도 울었다. 진정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저들처럼 이웃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겠으니 병을 고쳐달라고 몸부림치면서 뒹굴었으나, 그의 귀에 달라붙은 홍동지 귀신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놈이 아니고 군대로 밀려오는 귀신을 없애는 방법이 정말 없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이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단 말인가. 불암은 깜깜한 밤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고심했다. 순간 퍼뜩 머리에 번개처럼 한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 그 방법밖에 없다. 전도사님이 가르쳐준 사도신경을 열심히 외우자.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다. 글로 쓰자. 불암은 벌떡 일어섰다. 호롱불을 밝혔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어둠이 물러가면서 혼자 자고 있던 방 안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머리맡에 성경이 놓여있고 그 옆에 창호지가 두르르 말려있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코끝이 시리다고 했을 때 전도사님이 5일장에서 사다 놓은, 문풍지로 쓸 한지였다. 낮에는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이 이 방을 썼기 때문에 먹, 붓, 종이와 벼루가 방 한구석에 놓여있었다. 아직도 벼루에는 먹물이 그득했다. 그걸로 사도신경을 써볼까 하는데 자꾸 눈앞에 피가 어른거렸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던 전도사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먹물이 아닌 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맞다. 사도신경을 창호지 위에 피로 쓰면, 내 병이 나을 것이다. 귀신들이 피를 보면 무서워 천리만리 도망갈 것이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불암은 방안을 두루 살폈다. 선반에 새끼줄로 싸놓은 자귀가 눈에 들어왔다. 전신에 한기가 흐르면서 섬뜩했다. <내 나름대로의 회개의식을 치르리라.> 선반에서 자귀를 내려 새끼줄을 풀어냈다. 호롱불에 날카로운 날이 퍼런 빛을 뿜어냈다. 전신에 소름이 좍 깔렸다. 오른손에 자귀의 자루를 단단히 잡고 힘을 다해 왼손 중지의 첫 마디를 찍었다. 좁은 방 벽이 벌겋게 물들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써내려갔다. 나름대로의 회개의식을 거행하면서 지은 죄가 너무 더러워 병이 낫지 않는 것을 안다고, 울면서 하나님께 고했다. 어려서부터 지은 죄를 하나하나 토설하면서 어깨를 들먹이며 어찌나 울었는지 글씨가 삐뚤빼뚤 제멋대로였다. 사도신경의 맨마지막 구절 <죄를 사하여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을 쓴 뒤에 피를 멎게 하려고 횃대에 걸린 명주목도리를 잡아당겼다. 명주로 꽁꽁 싸맸으나 여전히 피로 흥건히 젖어오는 왼손의 가운뎃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꼭 잡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문틈으로 새들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호롱불을 응시했다. 그 순간 갑자기 귓속에서 난리를 쳤던 홍동지들의 아우성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잠잠해지는 것이 아닌가. 10년 간 그렇게도 괴롭혔던 소리를 들어보려고 불암은 귀를 기울였으나 사위가 죽은 듯 고요했다. 이따금 밖에서 낑낑거리는 청삽사리의 부스럭거림만이 간간이 귓가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