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나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비록/이안삼/강혜정>
그대 비록 힘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그대에게 향한 사랑 빈 가슴 채워주리니
그대 비록 혼자라도 서러워 말아요
내 노래가 그대 곁에서 벗 되어 주리라
그대 맑은 눈에 흐르는 눈물
진주처럼 밝혀주리니
그대 가슴 속 아린 상처
내 눈물로 깨끗이 씻어 주리니
내 눈물로 깨끗이 씻어 주리라
외로워도 슬퍼도 그대 향한 나의 사랑
변치않으리 변치않으리
고난이 오고 아플지라도 우리의 사랑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외로워도 슬퍼도 그대 향한 나의 사랑
변치않으리 변치않으리
고난이 오고 아플지라도
우리의 사랑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알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 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플라타너스/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누린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날,
플라타나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