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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kig8392 (2005-11-28 14:01) | 신고하기 | 이의제기 |
■영산김씨(永山金氏)■ 1. 시조 : 김영이(金永貽)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영동(永同)은 충북 최남단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시대에 길동군이라 불리우다가 경덕왕때 영동으로 고쳤으며,1413년경상도로부터 충청도에 이관되었으며, 1895년 영동군이 되고,1914년에 황간을 편입하였다. 한때 영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신라 제31대 신무왕(神武王)의 넷째 아들 김익광(金益光)의 후예(後裔)로 전하는 영산김씨(永山金氏)의 시조(始祖) 김영이(金令貽)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고려조에서 추충동덕보사공신으로 찬성사에 추증되고 영산군에 추봉되었으며,본관 (本貫)을 영산(永山)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조선초기(朝鮮初期)에 명성을 날린 영산 김씨(永山金氏)는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길원(金吉元)이 공민왕 때 판도판서로 홍건적을 토평하는데 공을세워 영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산(현 영동)으로 하였다. 그의 맏아들 김종경(金宗敬)이 고려 정종(定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우찬성(右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도총관(都摠管 : 오위도총부에서 군무를 총괄하던 정2품 최고군직)을 지냈으며, 김종경(金宗敬)의 손자 김수온(金守溫)은 세종(世宗)과 세조(世祖) 때의 명신(名臣)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1441년(세종 23) 문과(文科)에 오른 김수온(金守溫)은 중시(重試)를 거쳐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모두 장원하고,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로 있으면서 세종(世宗)의 특명으로 집현전(集賢殿)에서「치평요람(治平要覽」과「의방유취(醫方類聚)」편찬에 참여하였으나, 부사직(副司直)에 올라「석가보(釋迦譜)」를 증수(增修)하였다. 그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올라 세조(世祖)의 총애를 받았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고, 학문(學問)과 문장(文章)에 뛰어나 명(明)나라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쳤다. 벼슬이 극품(極品)에 이르렀으나 항상 청빈하게 살았다. 1481년(성종 12) 병이 악화되어 운명이 가까워지자 자제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부디「중용(中庸)」과「대학(大學)」을 많이 읽지마라. 내 이제 혼미한 중에서도 눈 앞에 서언한 것은 모두 중용과 대학의 글자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학문에 깊이가 있었다. 담대의 석학(碩學) 구종직(丘從直)은 남의 표문(表文)을 써준 것을 보고 모래 위에 꿇어 앉으면서 "평일에 비록 공(公)의 문장이 교묘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오."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김수온(金守溫)의 형(兄) 김수성(金守省)은 신미(信眉)라는 불명(佛名)으로 탈속하여 웅문거필(雄文巨筆)로 명성을 떨쳤으며, 속리산(俗離山) 성불사(成佛사) 복천암(福泉菴)에 사리(舍利)를 남기고 있다. 방촌(坊村) 김재두(金載斗,1794~1868)영광출생,헌종원년 1835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통정대부로 낭천(狼川,강원도 화천)현감을 거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문장이 출중(出衆)하였고 도학군자(道學君子)로서 명성(名聲)을 떨쳤다. 그의 영정을 경북 청도 학산사(鶴山祠)에 봉안하였는데 청도 유생 박시묵 박형묵 등 6인의 협조로 충주에 있는 후손 병헌(炳憲)家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학행(學行)으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천거되었던 김곤(金滾)과 뛰어난 효행(孝行)으로 감찰(監察)에 증직된 김언건(金彦建)이 유명했으며, 광해군(光海君) 때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지낸 김각(金覺)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김득진(金得進), 부호군(副護軍) 김염근(金廉謹)·김호덕(金好德) 등과 함께 충효(忠孝)의 전통가문(傳統家門)인 영산김씨(永山金氏)를 더욱 빛냈다. [人口(1985년 현재)] 영산 15,115명이 있다. 3. 집성촌 충북 영동군 용산면 일원, 충남 서산군 일원, 당진읍 일원, 예산군 오가면 분천리, 경북 상주군,청도군 일원, 전북 장수군 일원, 전남 영광군,함평군 일원. 4. 근래인물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 독립운동가 김석.김덕근, 전 국회의원 김우성, 전 군수 김달근, 전 국회의원 김성호, 전 산림청차장 김연표,예비역 준장 김상헌,부장판사 김용헌, 국회의원 김낙성, 의회의원 김내근, 농협전무 김용근, 초등교장 김병수, 공사부장 김병용,서기관 김병철,충북대교수 김성보,건양대교수 김은중 등이 있다. 5. 주요 유적지 충북 영동군 양강면 남전리 산 622 소재 시조 김영이(金令貽)묘소와 빙옥정(氷玉亭)(남기산) 충북 영동군 용산면 용산리 45-2 소재에 김종경(金宗敬)선생 사당 풍천당(楓川堂) 충북 영동군 용산면 구촌리『영산부원군 문평공 김수온(金守溫)선생 신도비』(1981.10.9) 충북 영동군 영동읍 한곡리 18-1 김수온 선생 유택(충북기념물 제76호) 충북 보은군 보은읍 지산리 산332 김수온 부조묘(사당)(충북기념물 제48호)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舍乃里) 속리산소재 복천암(신미대사) 위 복천암 수암화상부도(秀庵和尙浮屠)(충북유형문화제 제12호) 전남 영광군 불갑면 자비리 소재 영모정(永慕亭)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산47「유조선국 영산김씨세장비」(1919.10.)(전남문화재 제142호) |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dainmyeon.com.ne.kr/kim7/k113.htm,영산김씨 대동보1권(P.326~327,1997.11.10, 문화인쇄사) |
첫댓글 신미대사 수암화상 부도는 보물1416호로 지정되었으니 고쳐 주시고 한 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영산김씨는 김 영이 선조가 관조이나 2세 김길원이 영산 부원군으로 봉해진 뒤 신라김씨의 분파록에 의해 인정받았으며 영동의 구명을 왜 영산이라고 하였는지 상세한 내용이 올려져 있으니 찾아 보세요.
영동의 수목원세장원을 소게합니다. ***영동군 용산면 매금리 앞 19번국도에서 서남쪽 내를 건느면 "영산김씨 참봉공파 기은공 후손 세장비"와 제단석 망두 장면등이 있고 먼저가신 유해를 모신곳에 와비가 보기좋게 숲(전나무) 사이에 자리잡은 모습이 모기좋게 늘어서 있어 도로에서도 잘 보이니 지나는 기회가 있으면 들려보세요,.........참봉공파
본문에 틀린곳이 많아 고쳤으니 본문 기록자는 고쳐주세요.
신무왕은 45대, 찬성사 아니고 전객시령, 성불사가 아닌 복천사(현 복천암), 수온은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성종조까지, 치펑요람 보다 의방유치 월인천강지곡, 관조 묘소가 아니고 단소로하고, 혜각존자 신미대사의 한글(훈민정음)팡제 등 *전부 수정해 주세요. * (회장;010-5389-2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