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 기억들은 시가 되어
최해숙 (국문 3)
바람이 자는 날은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 갔다
바위가 소라고동을 깨
간기 보다 먼저 오는
허기를 달래 주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어머니를 따라 밭으로 갔다
황토빛 고구마 흙 대강 털고
칼 보다 날랜 바람이 껍질 깎아
퉤퉤 뱉고 노오란 속살만 주었다
갈라진 손 마디마다 옹이를 달고
거친 나무개비들 툭툭 분질러
아궁이에 넣으시며
" 보드라운 손 다칠라 "
고운 솔개비만 남겨 주시던
어머니 처럼
거친 문장 가지들 분질러 내고
흙을 털고 말 껍질 깎아 내면
내 시가 시린 허기를 달래 줄까
사랑받았던 기억들
아궁이 속 불처럼 환한 날
군 고구마 같은 시 하나 꺼냈으면
재 속을 헤 짚어 보는 것이다
나비는 공룡보다 힘이 세다
공룡 발자국이 화석처럼 남아 있는
우리 동네에는요
사람들은 공룡무늬 쌀을 먹고요
빵집에 가면 공룡 이름을 닮은
티라미스케이크가 있고요
목욕탕에는 여인들이 간혹 공룡등을
하고 있다는데요
그 목욕탕에는 경상도에만 있다는
등을 미는 기기가 있어
공룡등을 밀기도 하는데요
어느날은 등 미는 기계에 누군가
배를 밀고 있었는데요
공룡등이 그 등에 대고 한마디 했다네요
아니, 배는 왜? 라고요
그러자 그이가 돌아서는데
아뿔싸 !
출렁거리는 배에서 나비 떼가 일제히
뛰어 내렸다네요
그러자 공룡등은 습!
등에 부황을 떼어내며
날아가는 나비들만 멀뚱히
바라 보았다는데요
런닝머신
나는 가끔 그 위를 걸으며
산책을 하고 달리는 꿈을 꾼다
창밖의 햇빛도 공기도 함께 달린다
잎 진 나무가지들 손 흔들며 지나가고
장롱속 꽃무늬 쉬폰 원피스도 따라 달린다
뒷꿈치가 들리는 봄날에도 꿈만 꾸느라
나는 물 한번 준 적 없는데
햇살 바람 잘 드는 화분 옆에서
날마다 키가 자라 볕 좋은 날은
솜 이불도 거뜬히 들어 주는 것이다
첫댓글 어린 시절 바다로 들로
간기 보다 먼저 오는 허기를 달래던 기억 몇 자락이 떠오릅니다.
거친 바다가 저를 깎아내는 작업처럼
우리 삶이 시를 닮았네요.
고향 같은 시~ 고맙습니다.
시인이 운영하는 파리***는 빵가게가 아니라
마음을 파는 상점 같네요.
"쓰담쓰담" 위로의 마음, "뭉게뭉게" 꿈꾸는 마음, "콩닥콩닥" ~~
출렁거리는 배에서 떨어지는 때를 나비로
키가 자란 러닝머신이 이블을 들어주는 것이라든지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