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천 사 ( 楸韆詞)
- 춘향(春香)의 말 · 1
- 서정주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1)베갯모에 2)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시집 「서정주 시선」(1955)>
1) 베갯모 : 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꾸밈새. 조그만 널 조각에 수놓은 헝겊을 덮어 씌워 만듦.
2) 뇌이듯한 : 수놓아진 듯한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古典)인 「춘향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천기의 딸로 태어난 춘향이 양반 관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도령과 맺어지기까지의 역경과 고난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며,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에로의 변형, 재창조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이 시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시적 형상화라 할 수 있으며, 춘향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어 시의 화자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춘향의 말’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연작시 3편 중 첫 번째 시이다.
▶성격 : 낭만적, 이상적, 초월적, 동양적, 불교적
▶심상 : 고전적, 동적 심상
▶어조 : 여성적이며 섬세한 어조
▶구성 : ① 1연 : 현실 초극 의지
② 2연 : 아름다운 현실에의 애착과 초극 의지
③ 3연 : 동경하는 세계에 대한 갈망
④ 4연 : 인간의 운명적 한계 자각
⑤ 5연 : 현실 초극 의지
▶제재 : 그네를 뛰는 춘향
▶주제 : 초월적 세계로의 갈망(현실적 고뇌의 초극)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현실 세계를 가리키는 소재를 있는 대로 찾아 쓰고, 그 공통점을 간단히 요약하라.
▲수양버들나무,풀꽃더미,나비새끼,꾀꼬리
▲공통점 : 봄의 아름다운 자연물(수양버들나무,풀꽃더미)과 서정성과 정감의 대상물(나비새 끼, 꾀꼬리)로서 봄이라는 계절의 화사함, 맑음,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지님.
2. 이 시에서 ‘그네’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라.
춘향의 현실적 괴로움과 운명을 벗어나려는 상징의 그네.
(초월적 의지와 인간의 운명적 굴레를 상징하는 그네. 현실 세계와 이상세계를 이어주는 상 징적인 매개체.)
3. 이 시와 「한림별곡」 8장에서, 작중 화자가 그네를 타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쓰라.
「추천사」는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으나, 「한림별곡」은 단순히 유희의 흥겨움을 즐기고 있다.
4. ㉠은 춘향이가 무엇을 깨달은 것을 표현한 것인지 30자 내외로 쓰라.
동경의 세계로 갈 수 없는 인간적 한계를 깨달음.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그 부제(副題)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춘향이 향단과 그네를 타면서 독백 형식으로 엮은 노래이다. 춘향전에 의하면 ‘그네’는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의 계기로 기능하고 있으며 서로 타인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연인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 시에서도 역시 그네는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닌, 춘향이 자기 자신의 괴로움과 운명을 벗어나려는 수단으로서, 즉 괴로움과 고통, 번민의 현실 세계로부터 벗어나 조화로운 이상 세계(여기서는 ‘저 하늘’ ‘서(西)’로 표현됨)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춘향의 고통과 번민의 내용은 무엇일까? 「춘향전」의 이야기 줄거리에 집착한다면 이는 기생의 딸로 태어난 신분상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그렇게 도식적으로만 이해하려 든다면 그것은 매우 피상적인 견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춘향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세상은 환멸의 대상이 아닌, 수양버들과 풀꽃더미,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 등으로 표현된 아름다운 곳으로서 오히려 애착의 대상일 수가 있으며 더욱이 현실을 벗어나 도달하려는 이상 세계는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이며, ‘아무래도 갈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현실을 초극하려는 의지와 현실에 대한 애착 사이에 놓인 심리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네’는 바로 이들 사이를 왕복하게 한다. 천상 세계를 꿈꾸면서도 끝내 인간이 사는 지상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적 한계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춘향의 고통과 번민은 역설적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사랑의 아픔과 번민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 시 「춘향 유문(春香遺文)」과 마찬가지로 그 시적 모티프(motif)는 고전 소설인 「춘향전」에서 찾았으나 오히려 「춘향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준다. 즉, 이 시에서는 인물의 전형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우리들의 정감 속에 살아 있는 어떤 여인, 사랑의 괴로움과 갈등에 빠진 한 여인의 보편적 이미지로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