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 김기림(金起林)의 고향 성진(城津)은 어디일까?
1.
시인(詩人) 김기림[金起林]은
1908. 5. 11. ~ 미상
함경북도(咸鏡北道) 성진(城津) 출생이다.
1931년 시(詩) 「고대(苦待)」(1931), 「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호는 편석촌(片石村). 1908년 5월 11일 함북 성진 출생. 1915년 임명(臨溟)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해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중퇴한 후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이로써 보건대 김기림(金起林)은 1921년이나 1930년에 이주(移住)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記者)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39년 토호쿠제대(東北帝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조선일보사 기자를 지냈다.
1942년 경성중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가 광복(光復) 후 상경해서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사망했다고 한다.
2.
그의 고향 함경북도 성진(城津)에 대해 알아보자.
현 한반도 함경북도(咸鏡北道) 성진(城津)은 김책시의 옛이름이라고 한다.
성진군(城津郡)은 1898년에 길주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신설했던 군으로 성호와 동해바다의 나루가 있는 군이므로 성진군(城津郡)이라 하였는데, 1943년에 학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898년에는 길주군 성진첨사 관하의 성진진과 동해면 일부 및 함경남도 단천군 이하면 좌측을 합한 지역을 분할하여 성진군으로 독립되었다. 다음해 마산·군산과 더불어 개항장(開港場)이 됨에 따라 외국인 거류 구역이 설정되면서 일개 어촌이 차츰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길주군에서 독립되자 성진 주민 중 일부와 길주 군민이 합세하여 성진군의 분리를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자 다시 군이 합쳐지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1904년 완전히 독립되었다.(네이버 백과)
이와관련 1885-1896년에 조선(朝鮮)을 방문했던 러시아인 카르네프 외4인의 저서인 <내가 본 조선, 조선인>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조선(朝鮮)은 해안(海岸)이나 바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륙에는 만족할 만한 교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본국의 지방과 가까운 慶興 북쪽에서 이원(함경도),호량(회령),부량(부령)들이 海岸으로 이전될 예정이었다. 최근에는 咸鏡道지방 자체가 두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 완전히 독립했으며, 각각의 관찰사들이 관할하고 있었다.(p327)
즉, 조선(朝鮮)의 북방이 러시아로 넘어감에 따라, 바이칼호의 서남쪽에 위치했던 경흥(慶興)을 중심으로 육진(六鎭)지역의 지명들이 옮겨지고 있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지명이동은 대륙북쪽에서 좀더 남쪽으로 변경된 일이니, 고증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성진(城津)이 일개 어촌(漁村)에서 항구(港口)도시로 변모해 개항장이 되었다는점으로 미루어 보아, 러시아의 기선(汽船)이 움직일수 있었던 큰 강 정도로 해석함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큰 강이라 하면, 육진(六鎭)지역에서 바이칼호로 연결되는 지류나, 예니세이강으로 연결되는 지류를 의미하지 않을까? 명확히 집어낼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다.
3.
성진(城津)이 원래 길주(吉州)에 속했다고 하니, 대륙조선(大陸朝鮮)에서 길주(吉州)는 고려의 윤관(尹瓘)장군이 개척한 구성(九城)의 하나이며,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김종서(金宗瑞) 장군이 개척한 육진(六鎭)지역 중 마천령(摩天嶺)에 걸쳐 있었던 지명인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참고하건대, 분명 마천령(摩天嶺)의 북쪽지역에 위치했던 것이고, 따라서 성진(城津)은 마천령(摩天嶺)의 아래쪽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반도 함경북도(咸鏡北道)에 동서가 아닌 남북(南北)으로 만들어 놓은 마천령(摩天嶺)의 남쪽 오른쪽에 길주(吉州)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대륙북방의 길주(吉州)는 마천령(摩天嶺)의 북쪽에 존재했음을 강하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일전에 올렸던 마천령(摩天嶺)을 찾아서 라는 글에서 인용한 지도를 통해 고증해 보면 아래와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위 지도그림의 성진(城津)이 바로 시인(詩人) 김기림(金起林)이 태어나 청운(靑雲)의 꿈을 꾸던 그의 고향인 것이다.
4.
다음은 그의 시(詩) 향수(鄕愁)를 감상해 보자.
향수 – 김기림
나의 고향은
저 산 넘어 또 저 구름 밖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나는 문득
가로수 스치는 저녁바람 소리 속에서
여엄-엄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위의 시(詩)에서 아라사는 당연히 러시아다. 일전의 글에서 분석했듯이 대륙조선(大陸朝鮮)의 육진지역은 1937년이 되어서야 스탈린에 의해 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륙조선(大陸朝鮮)의 마천령(摩天嶺)을 중심으로 한 육진지역 이북은 일찍부터 러시아의 차지가 되었던 것이며, 당연히 김기림(金起林)은 어린시절 산넘어 존재하고 있던 러시아의 소식을 자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인(詩人) 김기림(金起林)은 대륙조선(大陸朝鮮)의 반도강제이주라는 일만년 역사(歷史)이래 민족(民族) 최대의 시련을 여섯줄의 조그마한 시구(詩句)로 표현하여 그의 고향(故鄕)이 대륙(大陸) 어디였는지 알수 있도록 우리에게 작은 속삭임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2019.12.09. 松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