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장 상인 인터뷰 자료(4)
인터뷰 대상: 대전도매시장에 있는 잡화점 태백상회 사장 배경환(72세)
일시; 7월23일 오전 9시
장소: 태백상회
인터뷰 내용 요약
1. 시장의 역사
-경북 의성이 고향인 배사장님은 직장에 다니다가 처남이 양말 공장을 경영해서, 양말을 싸게 떼어다가 노점에서 양말 판매로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함.
-5년 정도 노점 장사를 하다가 현재의 도매시장에서 가게를 시작했다고 함.
2.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된 계기
-노점에서 장사를 하며, 시골의 5일장을 찾아다니면서 5년 정도 하다가 대전 도매시장 안으로 들어오게 됐음.
-처음에 판매하던 처남의 양말의 이름이 태백양말인 까닭에 태백상회라고 상호를 정했으며, 이 때문에 강원도 분들이 더러 찾아왔음.
-처음에 양말의 가격이 100원이었는데 지금 1000원에 팔고 있다고 하십니다.
-도매시장은 중부지방의 교통이 편리한 중심상권으로, 기차와 고속버스 터미널이 가까이 있어서 영동, 공주, 조치원, 논산, 금산, 보은등 주변지방에서 물건을 구입하러 올 정도로 장사가 잘되던 때가 있었음.
-90년대 화재가 나기 전까지가 장사가 가장 잘되던 시기였으며, 92년에 도매시장에 큰 화재가 나서 전소되어 많은 손해를 보게 됐는데, 실제 손해액은 2~3억 정도라고 하며 보험에서 보상 받은 금액은 3천만 원 정도로 당시 130~140여개의 점포도 거의 같은 손해를 보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방서의 추정 손해액은 전체 도매시장에 5억 정도로 실제 상인들의 피해액과는 차이가 많이 났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큰 손실과 좌절 후에 다시 일어나서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처남의 양말 공장에서 대금 지급 없이 납품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네요.
-대전 도매시장은 중앙시장에서 제일 장사가 잘되는 시장이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2000년에 들어와서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도매시장 옆 길가에 있던 육교를 철거하기 위해서 사장님이 상가회장으로 있던 시기로 부터 4~5년간 고생한 끝에 현재의 횡단보도로 바뀌었는데, 시장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고 강조하십니다. 육교를 기피하는 보행자의 생리 때문에 횡단보도로 바뀐 후 손님이 늘어났다고 하십니다. 이런 작은 것이 모여서 전통시장을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랍니다.
3. 상인의 좌우명 및 노하우
-중앙시장의 상점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시중의 마트 보다 20%정도는 싸게 팔고 있다고 하면서 적은 마진이 큰 장점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손님과 싸우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장님은 고객과의 분쟁을 피하는 대형마트들의 전략을 앞서서 실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특별한 노하우에 대한 말씀의 요청에 장사하는 분들은 어느 누구도 다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면서, 사장님도 손님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4. 기억에 남는 손님
-대형마트 들의 장사와는 다르게 손님과 일대일 호흡이 가능한 시장의 장사는 일면식도 없었던 고향 초등학교의 후배를 손님으로 맞아 단골이 된 경우를 설명하시는데, 이것이 재래식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5. 주위의 추천하실 상점이나 장사하시는 분을 말씀드리니, 삼흥 뿌로치의 이길수 사장과 화신상회의 김성수 사장을 추천하신다.
중앙시장 상인 인터뷰 자료(5)
인터뷰 대상: 인감도장 전문 정용배(75세)
일시; 7월23일 오후 3시 30분
장소: 명인당
인터뷰 내용 요약
1. 시장의 역사
-경북 상주가 고향인 정용배 사장님은 초등학교를 상주에서 졸업한 후에 대전에 정착하셨다고 합니다. 원래 손재주가 있어서 장난감을 만들어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다가 1983년도에 중앙시장에 도장가게를 내게 됐다고 합니다.
-가게가 홍명상가 앞 먹자골목 입구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어서 장사가 잘되었는데, 홍명상가가 철거되면서 장사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홍명상가가 철거되고 난후에 홍명상가가 햇빛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철거 후 햇빛 때문에 물건을 진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면서 홍명상가의 철거를 아쉬워했습니다.
-명인당이라는 상호도 홍명상가의 명자와 같다고 하면서, 홍명상가에 대한 강한 애착을 말씀하십니다.
2.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된 계기
-30년 전의 도장 가격이 5000원 가량이었는데 지금도 그 가격에 팔린다면서 많은 분 들이 기계를 이용해서 도장을 제작하나, 지금도 손으로 파는 수작업만을 고집하는 사장님의 장인정신이 SBS 달인 프로에 출연하게 된 이유인거 같습니다.
-도장과 사인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행안부의 방침에 반대하여 청와대에 항의 했었다고 하는 사장님은 도장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강조하면서 도장을 옹호하기도 하셨습니다.
-상아로 만든 도장,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 물소 뿔로 만든 도장 등을 말씀하시면서, 90년도의 전성기를 지나서 지금은 거의 고급도장의 주문이 없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이 지금도 10만 원대에 팔린다고 합니다. 상아도장은 동물보호 때문에 거래 자체가 없다고 하신다.
-지하철이 중앙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칭 서울의 역세권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3. 상인의 좌우명 및 노하우
-기계로 파는 도장에 반대하여 수작업만을 고집하는 사장님은 이 때문에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노하우라고 말씀하십니다.
4. 기억에 남는 손님
-학생시절에 도장을 팠던 여학생이 커서 자녀의 도장을 파러 온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웃으십니다.
5.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의 노점상인 중에서 아직도 장사를 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이분들이야 말로 중앙시장을 살리는 분들이라고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중앙시장 상인 인터뷰 자료(6)
인터뷰 대상: 경주의류 최길성 사장(57세)
일시; 7월23일 오후 5시
장소: 경주의류
인터뷰 내용 요약
1. 시장의 역사
-연륜이 짧아서 시장의 역사에 대한 소견이 없다고 하십니다.
2.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된 계기
-집안에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여러 집이 있어서, 고등학교 다니면서 자주 중앙시장과 인연이 있었다고 하시는 사장님은, 직장에 다니다가 집안 누님이 하시는 의류점을 인수하면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십니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파는 가게였는데, 남성 티나 남방이 10,000원정도 했는데 지금도 10,000원에 팔고 있다고 하시면서, 100% 소매판매만 한다고 합니다.
-원래 태평회관이라는 큰 음식점이 있던 자리였는데 음식점 상권이 움직이면서 옷가게가 들어오게 됐다고 합니다.
-다른 품목보다도 더욱 백화점이나 대형 의류점에 밀려서 장사가 쇠퇴하는 시기이나, 잘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가게주인이 가게 세를 내려주어서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3. 상인의 좌우명 및 노하우
4. 기억에 남는 손님
-먼 곳으로 이사한 손님이 다시 방문해 주시는 분이 기억에 남는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