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택의 생애와 복지활동을 읽고나서
14741123 서경봉
광주.전남의 사회복지를 개척한 인물들은 대부분 미국선교사들로 선교,교육,보건 의료와 복지가 함께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은 최흥종,손양원,강순명등은 목회자로서 선교활동과 함께 복지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소진택선생은 목회자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서 일찍이 전남도청에서 사회복지를 접한 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광주.전남의 사회복지를 위해 많은 사업들을 계획하고 실천하여 전국화 시켰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광주에 와 전남도청에 사환으로 있으면서 야간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고 도청과 복지시설에 근무하면서 전남의 사회복지 발전에 디딤돌을 놓았다.
소진택선생은 도청에서 시군의 아동복지시설을 관리하는등 아동복지에 관심을 갖고 일해 왔으며, 대한사회복지회와 인연을 맺어 국내입양을 활성화시키고 미혼모와 아동들을 지원하였다. 또한 영산어린이집 설립을 돕고 전남영아보호소(이화영아원), 송정어린이집, 광주 청소년종합지원센터를 설립 하였다.
1975년 전남사회사업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이 되고, 전남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등 다양한 활동을 실천해 왔다.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은퇴한 후 광주 삼광복지회를 만들고 보성과 광주에 삼광어린이집을 설립하였고 광주 생명의전화를 설립하였다.
선생은 많은 복지분야중에서 본인이 어렸을 때 도청에서 접해온 아동복지 부분에서 탁월한 눙력을 발휘해서 광주 전남의 아동복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한일보육교류협의회 한국대표를 맡고 보육시설 시설장과 교사들이 매년교류할수 있도록 하고 보육정책이나 프로그램 정보교류및 친교활동을 하는 등 두나라간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선생은 해방후 어려운 시기에 지인의 소개로 얻게된 도청사환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경야독으로 극복해 내고 6.25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아동복지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아동복지 분야에 진력한 점은 우리가 깊이 느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80세가 넘은 현재도 복지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께 깊은 감명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사회복지공부를 하는 우리도 선생께서 일군 광주 전남의 사회복지가 활짝 꽃피울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야겠다. 이제 나이 들어 공부를 시작한 내게도 앞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할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