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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지냈을 것이라 믿고
6월15일 출발하여 7월14일까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어느 친구가 배낭여행을 가자고했을 때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해서 굉장히 망설였는데 건방진 얘기지만 더 늙기 전에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하여...인생은 깡이다
다녀온 경로는 방콕에서 버스타고 라오스의 비엔티안, 방비엥 폰사완 루앙프라방을보고 배를 타고 박삥을 거쳐 태국의 치앙콩에서 뻐스로 치앙라이 치앙마이들려 침대기차타고 다시방콕을 거쳐 버스와 택시로 캄보디아 씨엠리업 프놈펜 씨하눅빌(해수욕장)에서는 여객선타고 꼬꽁에서 다시 방콕을 거쳐 깐짜부리나를 보고왔수다
다녀와서 생각하니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말도 안통하고 물설고 낮설은 타향에서 그래도 고생안하고 재미있게 다녀왔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 뿐이요
또 한 가지는 나를 이 땅에 낳아 살게 해주신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되었고
내가 천원짜리 밥을 먹을 때 유러피안들은 일원짜리를 먹는구나 생각하니 우리나라도 빨리 경제성장을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울화통이 터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나이 사람들은 없고 전부 학생들인데 특히 여자 학생들이 혼자 다니는 걸 보고 참 용감하다 우리나라의 앞날이 희망 차다는걸 느꼈읍니다
참고로 경비는 물가가 싸서 지내는데 불편 없이 밥 한 끼에 천원정도 잠자는데 일인당 이삼천원 정도로 교통비 술값 특식비등 총 경비는 비행기 값 포함 한달동안 백만원 정도들었음(비행기 값280,000. 세금29,000 일일경비 약25.000원정도)
자세한 것은 시간 나는대로 사진을 곁들여 올리겠나이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하루 되십시오
여행 일기
6/15일 오늘은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약간은 흥분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처와 아들 손자 손녀가 동승을한다
혼자 다녀 오마해도 시간이 있으니 같이 가잔다
비행장에 도착하니 다른 두 녀석들은 벌써 와서 기다린다
손자 손녀와 이별 인사를하고 들어가려는데 아들 녀석이 핸드폰을 갖어다가 로빙써비스라나 태국가서도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집사람은 하는 말이 몸이 불편하면 아무 생각 말고 즉시 전화하고 돌아오란다
비행기를 타고 비몽 사몽간에 자다 졸다를 거듭하다보니 방콕이란다(5시간) 밤 한시쯤(우리나라와 두 시간 차이) 내려 택시를 타고 배낭여행자의 거리라는 카오산에 도착하니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길이없다
간신이 숙소를 찿아 들어가 잠을 청하니 왼지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방값이395밧인데 공항에서 온 택시비가 340밧(고속도로비40밧을 손님이 별도로 냄)
-태국 돈 1밧은 30원 일 딸라는 40밧
6/16 부지런한 녀석들은 벌써 일어나 면도까지하고 수선을 떠는데 나와 안대장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니 답답한 모양이다
배낭을 끌고 카오산을 왔다갔다하며 만남의 광장을 찿는데 엉뚱하게도 과일가계가 보인다 이때 안대장 왈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과일은 먹어야 한단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주인에게 청하니 식성도 가지가지
신박사는 두리안을 안대장은 망고를 꼭 먹어야 한단다
두리안 짹푸르트 망고 망고스틴 람부딴 리치 리꼬 파인애플 바나나 불에 구은것 (이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생전 처음보는 과일도 있으니까)
친절한 주인은 과일을 골고루 때려가며 골라서 능숙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니 서로 많이 먹으려고 내기나 하는 것처럼 배가 부르도록 먹은 후에야 이제는 가잔다
만남의 광장에서 라오스 가는 차를 예약하고 또 가서 과일을 먹었다 태국 맛사지도하고
저녁에 차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어느 장소에 데려다 놓고는 기다리란다 우리는 막간을 이용하여 일식집에가서 라면으로 (200밧)간식을 하고 아홉시에 차를 탔는데 에어콘차가 시원한 것이 지나쳐서 추위때문에 나누어준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다
이스라엘 녀석이 뒤에 앉았는데 내가 앉은키가 커서 텔레비가 안 보인다고 말도 없이 등밪이를 뒤로 젖힌다-고얀놈
여행 중 제일 버릇없이 떠들고 매너없이 행동하는 것이 이스라엘 중국 다음이 한국사람이란다
6/17 새벽 다섯시에 태국의 국경마을 농카이에 도착하여 국경 문 열 때를 기다려서 출국 수속을 하고 이어 라오스 입국 수속을 한 다음 대기하는 뻐스에 올랐다
라오스의수도 비엔티안의 메콩강가에 내려줘서 툭툭기사에게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아느냐고 하니 잘 안단다
이 딸라를 달라기에 타고같다
방을 보니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곳을 찾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독채 넓은 방을 예약하고(20불) 다시 같더니 안대장이 자기는 당요로 고생하는데 여기서 상황버섯을 사면 싸다고 세 개를 샀단다(일 키로에 삼십불-캄보디아 프놈펜에가니 십불하드라고)우리도 한 개씩을 샀다
그런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아까내린 메콩강변은 삼십메터로 안 되드라고...세상에 이런 일이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저녁에는 메콩강변에서 라오맥주에 가지고간 소주로 밤 두시까지 술 타령을했다
6/18
아침에 일어나 시장 사원 독립기념탑과 시내를 둘러보고
(일국의 수도가 우리나라의 읍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드라고) 송태우를 대절하여 국경근처로 다시 가서 괴상한 불상들이있는 부처공원을 돌아보고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우정의 다리를 보고 와서-이곳은 그때 한참 여기저기에서 모를 심고 있었음
메콩강변에서 차를 타고 산수가 중국의 계림과 비슷하다는 방비엥에 도착하여 아주 근사한 숙소를 정하고
시내 구경을 하였다 가지고 간 소주를 없애야 한다고 해서 시장구경하고 오다가 과일안주를 사와서 한잔
6/19
오도바이 두 대를 빌려서 관광을 하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는데(렌트비 한대에 5불) 비가 갑자기
억수로 오는 바람에 서로 헤어져 한참을 서로 찿다가
애들도 아닌데 숙소로 돌아 오겠지하고 몽족마을로갔다
입장료를내고 식당에서 만난 여행가의 설명을 들으며 소수민족(몽족) 마을구경을 했다
마침 소를 잡는데 소를 꽁꽁 묶어놓고 칼로 목을 따서 잡드라고-(신박사는 외면을하고 저 멀리 도망을가서 보려고도 하지 않더라고)
그런대로 그 들만의 학교도 있고 지금 15살 된 며느리가 시집 온지 2년이 지났는데 애가 없다고 시어머니가 걱정을한다
손으로 수를 놓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단다
사는 모습은 창고 같은데서 가족이 같이 살고 부엌은 조그만 헛간 같은 데다 불을 지필정도의 공간만있는 곳이었고 옆에는 식기며 주전자 양재기같은 것이 걸려있었음
그곳을 지나 주변 경치를 보고 소고기 한 접시에 찰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것으로 점심을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간 사람이 강변에 있는 방가로 구경을 하고
간다고 하여 들어 같더니 아 글쎄 세상에 이런 일이...
아침에 헤어져서 애가 타도록 찿아 다니던 친구들이 거기에서 어느 여자들과 식사에 맥주를 놓고 희희 낙낙하는게 아닌가-말도 안 통하는 녀석들이 손짓발짓해가며
말인즉 자기들은 우리가 간 길을 비 때문에 조금 늦게 쭉 달려서 칠십키로를 갖다왔다나! 기름이 부족하여
중간에 기름도 넣고... 덕분에 기가 막히는 산천 구경
한번 잘 했 노라며 무용담에 게거품을 흘린다
그 곳은 게릴라가 출몰하여 중간 중간에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경비를 서는 곳인데 정말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빗길을 겁도 없이 구경을 하면서 달려같다
온 것이다-안대장은 거기서 오도바이 마후라에
종아리를 구었음
저녁에는 태국 맛사지를 하고 또 한잔했지
6/20 아침에 일어나 쌈짱 동굴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우리나라의 동굴보다 형편없이 볼품이 없었음)
튜브를 빌려서 차로 한 사키로 정도 강 상류로 가서
튜브를 타고 물 흐르는 대로 두시간정도 타고 내려오면서 비도 맞으며 다이빙도하고하며 내려오는데
그것이 굉장히 좋드라고(落花가 行雲流水하는듯)
내려와서는 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딩굴딩굴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한국 보쌈김치 하는 곳에서 식사하고
숙소로 돌아와 또 한잔했지
6/21
아침에 폰사완으로 출발하였는데 해발 천 미터
이상 되는 산길을 7시간정도 걸려서 도착하여
숙소 구하느라 애를 먹었지-삐끼가 따라다녀
-저녁에 술꾼들이 그냥 잘 수 가없지
이 나라 대부분의 차들은 거의 한국산 중고차였음
-므슨 학원 므슨 회사 경노석 금연석같은
글자들을 지우지도 않고 사용하고 있었음
6/22
주인집 아들의 겔로퍼를 타고 돌 항아리가 널려있는
곳으로 갔다 돌로 항아리는 참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왜 만들어서 무엇에 썼는지는 모른단다
산에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대략 수백개는
되는 것 같더라고 -세계 문화유산 보호지역이라나
길 가에는 집이나 가게 앞에 포탄(대포) 껍질에 장식을해서 세워놓아서 과거의 전쟁참상을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
몽족 마을과 전쟁당시 폐허가 된 병원을 둘러보고 돌아왔지
-역시 한잔하고
6/23
아침에 배낭을 일부는 메고 끌고하여 뻐쓰를타고 루앙프라방으로가서(6시간) 숙소 정하고는 시장을
한 바퀴돌고 메콩강가에서 또 한잔
6/24
송태우를 전세 내어 동굴사원을 가기로 하고 먼 길을 달리며 주변경치를 감상하면서 도착하여 강을 배를 타고 건너서
강가에 있는 두개의 빠우동굴울 구경하고 왔지
- 동굴은 위아래 두개였는데 윗 동굴은 캄캄해서
전지를 빌려서 구경을 했는데 별 것 아니 드라고
아랬동굴은 강변에 있는데 동굴 안에 오만가지
불상들을 모아놓은 좀 특색이 있는 곳인데 거기서
아주 작은 불상하나 훔쳐왔지 그냥 잘 수 없어서 한잔
6/25
아침에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사원을 지나
산꼭대기에 있는 탑까지 산책을 하고(푸씨산100m) 시내구경 박물관 왕궁 터 시장 등을 종일 돌아다님-여기는 아침에만
시장이 열리는 곳이 있고 밤에만 열리는 시장이 있었음
6/26
아침에 일어나 길다란 배를 타고(배의 승무원은 선장과 요금 받는 여자와 열 대여섯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 둘이서 배가 선착장에 닿으면 능숙한 솜씨로 배를 대고 배의 모든 일을 하였음-승객은 15명정도) 국경마을인 훼이싸이로 가기위해 9시간30분 걸려서 중간지점인 빡빙이란 마을에 도착하여 일박-배가 가다가 자고 간다- 메콩강변에는 염소와 물소들이 떼를 지어 목욕을 한 후에 강변에 나와 일광욕을 하고 있고 강변에 있는 마을은 산을 화전하여 강원도는 저리 가라하는 비탈에다 옥수수 바나나등을 심어먹고 살고 있는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평화로운 마을들이었음
-누가 하는 말이 강원도 비탈은 저리가라네
6/27
아침에 시장을 들려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또 배를 타고 (8시간30분 걸려서) 훼이싸이에 도착하여 선창까지 툭툭을 타고 와서 다시 뽀드를 타고 국경을 건너
태국에 입국수속을 한 다음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제일 늦게 통과)치앙콩에 도착 하여 별장 같은 데서 일박
6/28
치앙콩에서 버스로 치앙라이에 도착하여 한국인이
경영하는 숙소에 도착하여 한국인 식당에가서
제육볶음으로 식사를하고
온천을 다녀서(물은 좋은데 시설이 아주 형편없음) 치앙라이대학을(굉장히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음) 보고 와서 이북에서 탈출하여 한국에 가려다 잡힌 동포를
(여자 한명과 딸 하나 어린 조카하나)경찰서에 가서 면회하고 돌아옴-이북에서 탈출하는 길이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와서 한국으로 간다함 그 고생을 하고 와서 잡혀있어도 정작 철창 안에 있는 사람은 명랑하게 얘기하는데 면회 간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돈 까지 보태 주고 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음)
6/29
아침에 트래킹을 떠났다 관광 경찰차를 타고(두대)
산악마을 메싸롱 매싸이 골든트라이앵글(메콩강을 중심으로 라오스 버마 태국의 경계를 이루는 삼각형지형으로 과거 마약재배지이며 마약거래지) 마약 박물관 은장군 묘(이곳은 과거 중국의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에게 밀려서 이곳에서 해체를 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는 중국인 마을로 당시 인솔자였던 장군의 묘를 모셔 놓고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절을 하고 있었음)와 전쟁당시 버마에서 태국으로 이주하여 산속에 살고 있는 카렌족(빠동족) 마을을 들려서 치앙센을 거쳐 돌아와 대하(큰 새우)에다 생선찌개로 저녁을하고
시장구경을 한 다음 이어 한잔하고...
6/30
3시간정도를 버스로 치앙마이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야시장 구경도하고 태국 맛사지도하고 시내구경
치앙마이는 실질적으로 태국 제2의 도시이자 북부제일의 도시이다(맹라이 왕이 세운 란나 왕국의 수도였다)
-치앙마이 구 시가지는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여있다
많은 부분이 없어졌지만 연결되는 문과 성곽의 네 모퉁이는 복원되었다 성벽과 문은 붉은색벽돌로 되어있으며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비교적 넓은 해자가 파여있다
해자 안에는 물이 담겨있어서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7/1
일일 트래킹으로 코끼리 조련소에서 코끼리의 춤과
공차는 것 농구하는 것을 보고 이어 코끼리를 타고
산길 연못 강을 건너 한 시간 동안 다니다가
뗐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와서
두 마리의 흰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리조트로 와서 식사를 하고
코끼리 똥을 분해하여 종이를 만들어 인형 앨범 등 각종물건을 만들어 파는 곳을 들려서
난 농원을 갔는데 계곡에 있는 농원으로 나비도 많고
똑같은 난에서 여러 가지의 꽃이 피어 참 보기가 좋았다 한인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식사를 하고 야시장을 들려서 돌아옴
7/2
시내 관광을 하고 기차표 예매-방콕 행
17시50분에 1996년에 우리나라 대우에서 납품한 침대 기차를 타고13시간을 달려서(7/3일06시50분 도착) 방콕에 도착 아래침대는 넓은데 위의 침대는 좀 좁았다
-어떤 때는 어찌나 천천히 달리는지 신경질이 날 정도다
-식사와 음료는 주문을 받아 배달하여줌
7/3
버스로 아란야프라텟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 후 뽀이렜을거쳐 택시를 타고(900밧-안대장은 이걸 500밧에 깍아보려고 한참을 우겨서 갈 길이 늦어짐)(길이 비포장도 있고 울퉁불퉁하고 아주 안 좋았음(뻐스7시간 택시4시간 반)
(차에 주유를 하는 데 길 옆에 진열되어있는 가계에서 병이나 프라스틱 통으로 주유를 함) 씨엠리업에 도착하여 역시 한인이 경영하는 숙소에 짐을 풀다-한국 학생들이
무척 많았음(주로 혼자 온 여학생들-놀랬구먼)
7/4
택시를 대절하여 앙코르톰과 앙코르 왓을 구경하고
주변에 있는 유적지까지 구경하고 북한사람들이 경영하는 평양 냉면집에 가서 냉면을 먹었는데 차갑지가 안아서 그런지 영 맛이 그게 아니었음( 안대장이 노래방 기계를 보더니 노래 신청을 했는데 남한노래라 그런지
말만 그러라고 하고는 끝내 안 해 주더라고)
7/5
우리가 잔 글로벌하우스주인이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은 대개가 여기서 방콕으로 돌아가고
백에 한 둘 정도가 프놈펜으로 간다고 하여
우리는 용기를 내어 프놈펜으로 향했지
처음에는 돈레샆인가하는 호수를 따라 여객선을 타고 가려했는데 요금이 25불이란다 버스비와(5불) 비교해보니 돈이 아까워서 버스를 타고 (7시간)프놈펜의 한국인 식당인 아리랑에서 오랜만에 삼계탕으로 영양 보충을 했지(칠불)
-비빔밥, 육계장등 한국음식은 오불정도로 비쌌음
-여기에서 상황버섯을 십불에 샀음(안대장은 또 샀지) 주인말로는 라오스의 상황버섯도 여기에서 가져간 것
이라했음 시장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잠
7/6
킬링필드 박물관을 보고(학교 건물인데 여기에서
감금 고문 처형을 했던 곳-비디오를 보여줌)
점심시간에 아리랑식당 주인 부부와 애들 세 명과 얘기를
해 봤는데 어른이고 애들이고 한국에 가기 싫다고한다
-애들은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데 아주 좋아 하드라고
-부부에게 나중에 한국으로 가면 애들 친구도 없고 사회적응이 안될 것 아니냐고 했더니
지금으로서는 한국에 갈 이유가 없단다
왕궁 사원 국립박물관등을 보고 툭툭을 전세 내어
킬링필드 위령탑을 갔지 길이 비포장으로 먼지하며 울퉁불퉁하여 옆구리가 아플 정도의 길을 30분쯤 달려가니
촌 동네에 위령탑과 사람들을 죽여 매장했던
현장이 나오는데 사상이란 것이, 공산당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탑에는 층층마다 해골을 전시했는데 보기가 안 좋드라고
7/7
버스로 이 나라의 유일한 해변 휴양지인
씨하눅 빌로 가서(4시간)해변에(오쯔띠알 해변)
비살삭이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고 자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곳으로
백여 미터를 걸어도 가슴밖에 물이 안차고 수온이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없어서 물놀이에는 참으로 좋았음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기도 함
-꽃게를 먹었는데 싸기는 하지만 살이 별로 없고 대하라고 하는 새우는 우리나라 것 같이 크지가 않더라고 -주인말로는 자연산이라 그렇다고...
밤에는 식사를 하는 평상에서 모기장치고 해변에서 잠
7/8
하루 종일 벌거벗고 해변에서 즐김
저녁에 중국인이 하는 술집에 갔는데 예쁜 여자들이 참 많이도 있더라고 한 사람에 한 여자가 옆에 않아 말도
안 통하는데 주므르는 년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는 년
노래를 부르면 무슨 노래인지 아나
춤도 박자가 안 맞아 못하고 구경만하다가
나중에 디스코 시간이 있어 기분 좀 내고왔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캄보디아의 여자들 중에는 월남계의 여자가 제일 희고 예뿐데 본토사람이나 다른 외국인은 2~30불이면(대학교수의 월급이 30불) 뭔지 모르지만 가능한데 한국의 졸부들이 이곳에 원정을 와서 물을 흐려 놓아서 한국 사람이란 것을 알면 무조건 100불이라야 된다니 이거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7/9
12시에 여객선을 타고 꼬꽁 가서(4시간)
오토바이로 핫렉으로 가 출국수속을 하고
태국 뜨랏까지 한 시간 이십분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중간에서 갈아타고 감)다시 뜨랏에서 버스를 타고(4시간)
밤 11시 정도에 방콕에 도착하니 비는 오고
카오산 거리에 여행객은 많고 방은 없고
아주 애를 먹다가 정말 허수룩한데서 일박을 함
-천장에 달린 선풍기방에 공동화장실
7/10
버스로 깐짜나부리로 향하여(2시간반) 조리플록이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이름도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를 걸어서 건너 같다와 전쟁박물관을 보고 옴
영화에는 굉장한 것으로 보이던데 실물은
정말 그게 아니었다-한 30미터 정도 되는 철교
콰이강의 다리 실제촬영지는 여기가 아니란다
7/11
기차를 타고 콰이강의 다리를 거쳐서 남뚝까지 가는데 절벽을 깍아 (전에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기차길을 낸 곳이 많았고 계곡에는 지금도 나무 교각으로 만든 곳을
기차가 서행하고있음) 길옆에는 강이 흘러서 경치가 좋아서 관광객들이 중간 중간에 많이 있었음
-길 옆이 다 관광지였는데 강물은 황토물이었음
기차에서 내려서 점심을 먹고 툭툭으로 싸이욕노이폭포를 구경하고 그냥 갈 수 없다고 하여 폭포 아래로
들어가서 물을 맞고 쉬다가 돌아와서 만인묘 유엔군 묘지 야시장을 들려서옴
7/12
버스타고 에라완 국립공원으로가서 제1폭포부터 제7폭포까지 등산을 하면서(산 높이1050m) 일곱 개 폭포에서 즐기는 유러피안들의 자유 분망한 모습을 즐기며 맨위의 폭포에서는 우리도 벌거벗고 물속에 들어가서 폭포수를 맞으며
한참동안 즐기다 내려옴
여기서 한 가지-유럽의 젊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년여성들도 남의 이목을 상관하지 않고 입고 온
반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물에 들어가서 놀다가 나와서는 약간 비켜서서 용감하게 팬티를 벗고 노 팬티로 바지만 입고 유유히 산을 내려 가드라는 얘기
버스로 다시 숙소로 와서 타이 맛사지하고 꿈나라로
7/13
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다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하고
(나는 한 달 동안 수염을 기름) 노 팬티로
오일 맛사지도 하고 버스로 방콕을 거쳐
비행장에 도착하여 기다리다가 비행기타고(5시간)
7/14
인천에 내리니 아침6시 여기가 내 나라 대한민국이로구나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구만
여행 후 소감
처음에는 무척 겁을 냈는데 그 곳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먹는 것 자는 것
말 안 통하는 것 큰 문제는 없었고
절대 짐을 많이 가지고 가지 말 것 (필요한 것은
그곳에서 사면 더 싸다-물가가 비싼 곳이 아니라면)
모기걱정을 많이 했는데 5방쯤 물렸을까
더위도 큰 문제가 없어서 12시부터2시까지만 덥고
그 외는 그리 덥지 않았고 우기인데도 비가 계속
오는 것이 아니라 잠깐 오고 마는 것이라 큰 불편은 없었음) 영어를 조금하면 도움이 되겠지만(안대장은 반은 영어로 반은 한국말로하면서 상대에게 못 알아듣는다고 신경질) 제일 좋은 점은 가고 싶으면 가고 더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가다가 저기가 좋겠다 하면 들려가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골라먹고 경비도 절약되고
나는 다시여행을 한다면 자유여행을 하리라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옛말에 서울이 무섭다고 하니까 과천서부터 기어서
갔다는 식으로 우리들은 지례 겁을 먹고 우리나이에 하면서 엄두를 못 내는데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태국의 뻐스는 우리나라 버스보다도 좋고(대개 이층 뻐스로 에어컨 좋고 장거리 여행 때는 물과 간식도 줌)
라오스나 캄보디아는 차가 시원찮음(대개 중고차)
-라오스나 캄보디아는 오도바이가 제일 많았고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냄새가 지독하다)오도바이택시와 송태우라고하는 우리나라 픽엎 같은 차에 6.25때 타던 군용트럭같이 뒤 짐칸에 길게 옆으로 좌석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음
단 여행을 떠나기 전에 대략적인 스케줄과 사전정보가
꼭 필요한 것 같다-공부를 해가지고가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안대장은 집에 가면 생활영어를 학원에라도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맘먹은 대로 잘 될까
건강하게 웃으며 살도록 노력합시다
-어떤 놈이 싫어서 못 한 다더냐 웃기는 놈이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