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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은유·1
박대현(문학평론가)
1. 언어와 은유
은유에 대한 최초의 개념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은유는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轉用)하는 것”이다.은유는 일반적으로 시적 상상력을 동반하는 수사학적 차원으로 이해되어왔으나, 은유는 인간의 언어 체계의 근본 바탕을 이룬다. 은유는 언어 발생의 기초적인 형식이다. 인간 언어의 발생은 은유의 형식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카시러(Erst Cassirer)와 더불어 동시대의 바필드(Owen Barfield)는 최초의 언어가 비유라고 말한다. 실제 사물인 ‘달’을 ‘X’라고 하고 이 사물의 명칭을 ‘Y’라고 할 때, “X는 Y이다”에서 Y는 X에 대한 비유(명칭)인 동시에 바로 언어가 되며, 이것이 일차적 비유다.사물을 지칭하는 언어의 발생 과정에서 어떤 사물을 의미하기 위해서 무엇(언어)을 전용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차적 비유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아니라 ‘언어와 언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언어와 언어’의 관계에 내재된 은유성을 최초로 주목한 이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 사례를 은유로 간주한다.
① “여기 내 배가 서 있다.”: ‘서다’(유개념)가 ‘정박하다’(종개념)의 의미로 전용된 은유
② “오디세우스는 만 가지 선행을 하였다.”: ‘만 가지’(종개념)가 ‘다수’(유개념)의 의미로 전용된 은유.
③ “청동으로 생명을 푸면서”(‘청동의 칼로 생명을 베면서’라는 뜻): ‘푸다’(종개념)가 ‘베다’(종개념)의 의미로 전용된 은유.
④ “인생의 저녁”: <인생:노령=하루:저녁>라는 유추에 의한 전용.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닌 은유 감각으로는 ‘인생의 저녁’(④)만이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①, ②, ③, ④ 모두 은유로 간주한다. 인간의 일상적 언어가 은유에 바탕하고 있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발생 단계에서 일차적 비유를 거쳤고, 언어의 일상적 용법 역시 이차적 비유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 용법은 다분히 은유 형식에 기반한다. 인간의 언어가 은유 형식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언어 그 자체는 사물과의 완벽한 일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언급한 언어의 자의성(arbitrariness)이 그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언어는 대상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 결핍을 보인다. 그래서 다른 개념의 언어를 빌려와 그 결핍을 보완하고자 한다. 그것이 은유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은유의 문제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다. 레이코프(G.Lakoff)와 존슨(M.Johnson)의 말처럼,은유는 인간의 사고 과정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간의 개념 체계를 구성하고 규정하는 근본 원리로 작동한다. 요컨대, 은유는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한 것”으로 사물과 세계에 대한 사유의 확장을 가져온다.
2. 시적 기능으로서의 은유
언어의 구조적 특징인 은유(환유와 더불어)에 주목한 이는 로만 야콥슨이다. 야콥슨은 당대 신경과학의 성과에 의지하여 언어의 계열체(은유)와 통합체(환유)에 주목했다. 20세기 중반 야콥슨의 이러한 업적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실어증과 관련한 신경과학의 성과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실어증 연구는 1861년 프랑스 외과 의사 브로카(Paul Pierre Broca)가 뇌 외상으로 언어장애를 가진 반신불수 환자를 진료하면서 시작됐다. 브로카는 좌측 뇌의 앞부분(전두엽)의 손상이 단어만을 말할 뿐 문장을 구성하지 못하는 실어증과 관련된 것을 발견한다. 이 실어증과 관련된 뇌 영역을 브로카 영역이라 부른다. 얼마 후(1874년)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베르니케(Carl Wernicke)가 좌측 뇌의 관자놀이(측두엽) 손상된 환자는 문장을 형식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의미를 생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와 관련된 뇌 영역이 베르니케 영역이다. 이 영역의 기능 상실에 따른 실어증을 각각 브로카 실어증, 베르니케 실어증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언어의 구조를 규명한 이가 로만 야콥슨이다. 브로카 실어증이 문법 처리에 이상을 유발하는 말하기 장애(인접성 장애)이고 베르니케 실어증이 정상 속도로 자연스럽게 말을 함에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장애(유사성 장애)라는 사실에 착안하여,로만 야콥슨은 인간의 언어 행위에 “두 가지 근본적인 배열 방식”인 “선택(select)과 결합(combination)”에 주목한다.선택은 언어의 계열체를 이루고 결합은 언어의 통합체를 이룬다. 쉬운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통합체 | ||||
계 열 체 | 깃발 | 이(가) | 펄럭인다 | 통합체1 |
구름 | 은(는) | 흘러간다 | 통합체2 | |
바람 | 도 | 불어온다 | 통합체3 | |
사람 | 마저 | 몸부림친다 | 통합체4 | |
⋮ | ⋮ | ⋮ | ⋮ | |
계열체1 | 계열체2 | 계열체3 |
‘깃발, 구름, 바람, 사람, ⋯’은 문장의 주어에 들어가는 낱말들의 계열체를 이루고, ‘-이(가), -은(는), -도, -마저, ⋯’는 체언과 결합할 수 있는 조사들의 계열체를 이룬다. ‘펄럭인다, 흘러간다, 불어온다, 방황한다, ⋯’ 역시 문장의 서술어가 될 수 있는 낱말들의 계열체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깃발+-이+펄럭인다’, ‘구름+-은+흘러간다’, ‘바람+-도+불어온다’, ‘사람+-마저+몸부림친다’ 등은 각각의 통합체를 이룬다. 선택의 관계성은 계열체의 원리가 되고 결합의 관계성은 통합체의 원리가 된다.
로만 야콥슨은 ‘선택’과 ‘결합’이라는 언어 행위의 두 가지 배열 방식이 언어의 시적 기능에 관한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택’과 ‘결합’ 그 자체가 시적 기능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언어는 ‘선택’과 ‘결합’이라는 배열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콥슨은 ‘선택’과 ‘결합’이 시적 기능을 발현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을 제시한다. 그 조건은 바로 다음과 같다.
시적 기능은 등가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 다시 말하여 등가성이 배열의 구성 요소로 승격된다.
자칫 잘못하면 위의 내용은 쉽게 흘려들을 수도 있는데, 김준오는 이 내용을 짐짓 상술하고 있다. 상술하는 과정에서 야콥슨의 다른 문장 “인접성에 유사성이 중첩되는 시에서는 환유는 모두가 다소는 은유적이며 은유는 모두 환유적 색깔을 갖는다”는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야콥슨이 말한 언어의 시적 기능이 발생하는 근본 원리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시적 기능은 언어의 선택 양식과 배열양식의 양면에 의존해서 ‘등가성’을 만들어 내는 언어의 한 기능이다. “시적 기능은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배열의 축으로 투사한다”가 그것이다. 예컨대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는 나부끼다, 펄럭거리다, 흔들리다 등 선택될 수 있는 동의어들 가운데서 펄럭이다가 선택되어 주어인 사람의 서술어로 배열되고 있는데, 이 ‘펄럭이다’의 주어는 ‘깃발’이 원래 관습적이다. 다시 말하면 깃발의 서술어로 쓰일 펄럭이다를 ‘사람’으로 옮겨온 경우인데 이것은 사람의 움직임과 깃발의 움직임을 등가의 것이 되게 하는 원리, 곧 시적 기능에 근거한 것이다. 선택의 유사성이 배열의 인접성에 중첩된 것이다. 그래서 야콥슨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곧 “인접성에 유사성이 중첩되는 시에서는 환유는 모두가 다소는 은유적이며, 은유는 모두 환유적이다.” 이런 시적 기능에 의해서 시는 상징적이고 복합적이고 다의적 본질, 곧 모호성의 본질을 띠게 된다.
위의 내용을 통해 시적 기능에서 은유가 차지하는 위상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김준오는 강은교의 「자전(自轉)·1」 한 구절인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위 내용에 따라 강은교 시구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위 도식은 정확하게 야콥슨이 말한 시적 기능에 은유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깃발’과 ‘사람’은 움직임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등가성(유사성)의 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위 비유는 단순히 ‘사람은 깃발이다’와 같은 치환 은유의 도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깃발의 움직임’과 ‘사람의 움직임’ 사이에 작용하는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배열(결합)의 축’으로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곧 등가성의 원리는 수직선이 아니라 대각선을 따라 움직인다. ‘사람은 깃발이다’를 위 도식에 적용하면 등가성의 원리가 수직의 방향으로 적용되지만, ‘사람은 펄럭이다’를 위 도식에 적용할 때 등가성의 원리가 대각의 방향으로 적용된다. 김준오는 야콥슨이 말한 시적 기능, 즉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배열의 축으로 투사한다”는 시적 기능의 본질적 속성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등가성의 원리가 선택의 축에서 배열의축으로 투사된다는 점에서, 위의 대각적 관계를 유사성(등가성)이 인접성에 중첩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시적 기능의 관점에서 “환유는 모두가 다소 은유적이며, 은유는 모두 환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시적 기능이란 간단히 말해서 은유의 등가성이 선택의 축에 머물지 않고 배열의 축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야콥슨은 시적 기능의 핵심적인 요소로 은유를 주목한다. 은유에 내재된 유사성(등가성)의 원리를 배열의 축으로 투사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하다. 간단히 말해, 은유를 문장으로 풀어놓았다는 의미다. 문장으로 실현되기 이전의 은유는 ‘A(=B)’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즉 ‘깃발(=사람)’의 형식이다. 즉, ‘깃발’은 ‘사람’을 함의하지만, 이 의미가 결합의 축으로 배열된 상태는 아니다. ‘깃발(=사람)’은 여전히 결합이 아닌 선택의 축에 남아 있다. 이것이 ‘문장으로서’ 시적 기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깃발은 사람이다’처럼 배열의 축을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준오는 야콥슨의 진술을 좀더 심화시켜 나간다. ‘깃발은 사람이다’와 같은 은유 형식에 머물지 않고, ‘사람은 펄럭인다’와 같은 문장 형식을 제시한다. ‘깃발이 펄럭인다’와 ‘사람이 몸부림친다’라는 두 문장을 대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깃발은 사람이다’보다 ‘사람은 펄럭인다’가 훨씬 더 인상적인 의미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김준오는 야콥슨의 논의를 빌려 시적 기능의 본질을 ‘은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깃발’의 관계보다 ‘사람-펄럭이다’의 관계가 의미론적 긴장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원래 이 은유는 ‘사람-깃발-펄럭이다’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깃발’의 단계를 생략함으로써 의미론적 충격을 안긴다. 이것이 야콥슨에 기반하여 김준오가 주목한 시적 긴장의 은유적 형식의 요체다.
3. 은유의 긴장과 쾌락
은유는 인지언어학의 활성화 확산 모형(Spreading Activation Model)의 관점에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활성화 확산 모형은 인간의 의미 정보가 어떻게 확산적으로 활성화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모형이다.콜린스와 로프터스(Collins & Loftus)는 인간의 의미 정보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데 이는 ‘은유’의 작동 원리를 암시한다. 메타포(metaphor)가 ‘넘어서(meta) 움직이다(phor)’라는 어원적 의미를 지니듯이, 한 개념이 다른 개념으로 전이되고 확산되는 효과를 유발한다.마찬가지로 활성화 확산 모형은 한 개념의 의미 정보가 어떻게 확산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림>lbid. p. 412 |
이 모형에서 각 개념들을 연결하는 간선의 기울기는 연결되는 개념들의 활성화 강도에 비례한다. 즉 간선의 기울기는 의미의 공통성(property in common)에 비례한다. 이를테면, ‘빨강(red)’은 곧바로 ‘소방차(fire engine)’와 ‘장미(roses)’를 즉시 활성화하고 활성화의 강도가 센 데 비해, ‘불(fire)’과 ‘사과(apples)’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활성화의 강도 또한 약하다. ‘빨강’과 ‘구름’은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활성화의 강도가 약하고 시간 또한 더 많이 걸린다. 그나마 ‘해돋이(sunrises)’와 ‘석양(sunsets)’이라는 중간 노드(node)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구름(clouds)’을 통해 ‘거리(street)’를 활성화하고자 할 경우, 여러 노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노드 사이의 활성화 정도는 의미의 공통성에 비례한다.
인지언어학의 활성화 확산 모형은 앨런 테이트(A.Tate)가 말한 은유(혹은 모든 비유)에 내재된 ‘긴장(tension)’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은유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긴장은 약해지고 거리가 멀수록 긴장은 강해진다. 이는 긴장의 강도가 두 이미지들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노드의 수와 관계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간 노드의 수가 증가할수록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를 여러 이미지들이 채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다 복합적인 의미의 활성화가 발생한다.
예컨대, 앞서 말한 ‘구름’과 ‘거리’의 경우, 그 중간 노드로서 ‘석양(sunsets)’ 혹은 ‘일출(sunrises)’, ‘빨강’, ‘소방차’, ‘불’, ‘집’, ‘구급차’, ‘차’, ‘트럭’, ‘버스’, ‘차량’ 등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리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 노드가 보다 많은 경우에는 의미의 활성화가 그 시대의 인식틀(épistémè)을 초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의 조향과 김춘수의 시가 그럴 것이다. 중간 노드가 아예 없는 경우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들어갈 이미지들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은유는 긴장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의 은유는 긴장을 추구한다. 리쾨르의 표현대로라면, 죽은 은유(dead metaphor)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은유(living metaphor)를 추구한다.여러 이미지들을 통과하면서 의미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때 새로운 시적 의미가 발생한다. 그것은 이미지들의 연합 혹은 충돌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의미의 활성화다. 보조관념에서 원관념을 향해 가는 의미의 활성화 과정에서 이미지의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이를 통해 “서로가 하나로 용해해 버리는 (듯한) 통합의 음조와 정신을 확산하는” 힘(코울리지)과 “이전에는 인식되지 못했던 사물의 관계”(셸리)를 표현하는 은유로서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은유는 그 어원이 뜻하는 바대로 본래의 것을 넘어서는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은유는 진화론적으로 인간이 소유한 인지 능력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 지능의 진화 가설에 따르면,인간 지능의 발달은 인간이 처하게 된 외부현실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복잡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쾌락이 발생한다. 은유의 쾌락은 다분히 정신적 쾌락에 해당한다. 정신적 쾌락의 발생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정신적 쾌락을 특징짓는 정서는 기대감이 결과적으로 어긋나면서 자율신경계가 흥분하고, 그로 인해 해석에 대한 탐색이 촉발될 때 유발된다. 따라서 정신적 쾌락은 개인에게 (일반적으로 암묵적인) 명확한 일련의 기대감,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대감이 어긋난 상황을 일반적으로 하나의 서사 구조 내에 위치시켜)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 발생한다.
진화론적으로 은유의 쾌락은 위와 같은 기제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제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기대감의 좌절에 따른 자율신경계의 흥분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의 탐색 가능성이다. 시에서의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나 ‘전경화(foregrounding)’는 평균적인 기대감을 좌절시키는 장치다. 이러한 이화(異化) 작용은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의미의 풍부함을 촉발시킨다.은유의 긴장으로 인한 미적 흥분은 바로 이러한 이화(異化) 작용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한 이미지(원관념)와 다른 이미지(보조관념)의 의미론적 격차 앞에서 자율신경계가 흥분하고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은유의 정신적 쾌락이 발생한다. 은유의 생명력은 이화 작용과 더불어 해석 ‘가능성’의 존재에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소진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의식과 사유의 확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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