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자루 / 초연 박선영
삐걱거린 낡은 대문 옆
금이 간 벽돌 담 따라
녹슨 삽 두 자루가
세월의 세파에 지친 몸을 쉰다.
쥐면 부서질 손잡이에는
빛바랜 벽지에 어깨를 의지한
늙은 아버지의 푸른 세월
땀의 굳은살의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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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과 열정사이 / 초연 박선영
살짝 기우는 태양열이
어둠을 머금은 시간
살갗에 부딪치는
해 저문 바람결에
한기가 몸서리 칠
밤을 예감한다
달도 별도
냉정의 시간에
내 가슴은 열정이
시작된 가을 저녁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애타게 부르는
잎새우는 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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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 초연 박선영
아침 잠 많은 딸아이
엄마! 나오지 마
꼼짝없이 감금되어
달그락 소리만 엿 듣는다
아침 연속극
다 끝나 갈 무렵
방문이 열리고
엄마 나와도 돼!
미역국 호박전까지
생일상을 차려 놨네
엄마!
내 엄마여서 감사합니다.
내가 고마워!
내 딸 이여서 대답하고
미역국 한 그릇
나이 한 그릇 다 먹고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요
친정 엄마한테 전화 했다
딸 덕분에 철이 드나
엄마 딸보다
내 딸이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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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 초연 박선영
하얗게 눈 덮인 겨울밤
뜨끈한 아랫목 이불 덮고
생고구마 몇 알
하얗게 깍아
오독오독 깨물 때
참 따뜻했다
뒷산 아래 올빼미 우는소리
대나무 잎새 사그락 소리도
노곤하게 밀려오는
겨울밤이면
군밤 터진 얘기에
귀를 세우다
무거운 눈 감았다 뜨니
밤사이 다녀간 고양이
하얀 발자국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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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아래 엄나무 / 초연 박선영
하늘 가리는
단감나무 밑에
엄나무가 있었다
감나무 양팔가지에
출렁이는 나무아래
그네 타는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하면
가시세운 엄나무에
햇살이 내려앉고
지나가는 바람도
잎새 위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