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밥의 귀농
주연목장 박예희 집사
먹고살다보면 봄이 태어나고 기생하지 않는 소작인의 공로,
그것만으로도 과오와실수를 인정하게 되는 즐거운 혼 밥을...
혼 밥의 시대가 왔다. 편의점마다 간편한 1인식사가 준비되어 있고, 낯선 식당에서 1인 칸막이의 작은 테이블이 흔하게 보이기도 한다. 757 수감번호( Covid-19 )가 달린 개인의 일상에서 새로운 화법으로 삶을 다루는 먹거리 풍경일수도 있겠다. 어릴 적부터 혼 밥을 즐겨왔던 나였고, 혼 밥의 편리성과 자유로움을 느끼고 살아왔던 나로서는 앙증맞은 작은 테이블은 나를 위해 준비된 일상의 작은 선물 같기도 했다.
혼 밥이 주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인간이 인간을 공유하고 싶어 하고 공유되어 지고 싶어 하는 욕구와 충동은 자연스런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뻗어나가는 사회관계망 속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육체의 진미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매력을 갈구하게 하고자 하는 욕망일수도 있다. 나의 진선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시달리는 문제에 대한 공유언어를 소유하고 싶어 하기도 할 것이다.
고민해야봐야 할 문제는 상대방의 입으로 들어가는 산미들을 보면서 당신은 배가 부른가?
시간을 공유하는 테이블에서 그대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가?
테이블에 2인 이상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대화 속에서 일상의 담화가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불러올 수 있는가? 그것이 호의로운 태도로 삶의 교양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가?
난해하고 어렵게 문제를 풀어낼 의도는 없었으나, 공유의 시각으로 보는 두 밥, 세 밥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다면 혼 밥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일수 있겠으나, 혼 밥은 아름답다. 물론, 바쁘다 바쁜 현대인의 보편적 삶에서 보면 혼 밥은 간편성과 편리성의 상징일수 있겠으나, 이상적인 혼 밥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수평적 취지에서 혼 밥을 다루고 싶다. 러브레터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떨림이 묻어나 있던 단어들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러브레터를 쓰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던 마음들. 밥과 나 사이에 아무 간극 없이 서로를 위로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급히 먹을 이유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만을 위해 준비된 밥과,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나를 고유하게 내려다보면 앞으로 살아갈 날과 살아왔던 날들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 나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대견하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당신 입으로 친히 인도 되어지는 밥 또한 당신이라서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밥이다.
특정한 개인으로 보자면, 나라는 사람은 지친 업무들 사이에서 arrangement 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의 혼잡함 속에서 개인의 역량과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일반인이라면 필요한 자투리 시간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에 같이 동행하는 혼 밥이기도 하다. 때론 일 속에 묻혀버리는 밥이기도 하다. 밥을 수면 위로 올리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한편 부럽기도 하다. 개인을 위해 개인이 준비하는 1인 밥상. 나를 위해 준비하는 밥상에서 맛있는 나의 하루를 응원해보고 싶다. 멋있는 하루보다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왠지 웃음이 묻어나고, 시달리게 하는 대상에 대한 미움보다 미안함이 묻어나는 하루, 비스듬히 나를 보며 나의 어깨를 만져보는 하루, 과연 진정 나를 rush 하게 하는 대상은 타인이어야 하는지, 나여야 하는지에 대한 existential dread(실존적 걱정)에 대한 관찰정도.
여전히 꽃샘추위에 시달리고 있다면, 샘을 내고 있는 대상에 대한 관찰과 연민을 허례 의식 없는 혼 밥과 대화하기를 시도해 보았으면 좋겠다. 첫 번째 도전은, 밥 앞에 볼 빨간 고백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