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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 1면 구조조정, 경영혁신으로 도약기반 마련 高永才 본사 사장 송년모임서 발전청사진 밝혀
창사 60주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향신문이 금년들어 발전적 대전환점을 모색중이다. 야심찬 주택사업 상림원 분양호조와 더불어 열독률 1위를 기록했다는 반가운 소식은 지난해 12월 17일 사우회 송년모임 때 高永才 사장으로부터 전해졌다. 구랍 12월 17일 경향신문사 앞 서라벌 뷔페에서 있은 사우회 송년모임에서 고영재 사장은 축사를 통해 “정해년은 경향신문이 거듭나는 한 해가 될 것” 이라고 말하고 “상림원 주택 사업의 분양 호조로 경향신문의 재정기반 구축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내부적으로 단행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으로 자생력도 강화 되었다”고 말했다. 사우회 2006년 송년모임은 특히 예년과 달리 선배 회우들이 대거 참석해 본사의 도약을 바라는 퇴직사우들의 간절한 희망을 대변해 주었다. 金景來 명예회장, 朱孝敏 鄭在虎 趙庸中 曺圭晋 尹相哲尹汝雋 林判鎬 呂永茂 선배등 원로 회우와 張峻峰 전 사장을 비롯해 멀리 지방에서 裵宙璇 權度鎬 李龜煥 회우가 천리를 멀다 아니 하고 참석했고 조규진회우는 양주를, 정재호 회우는 포도주를 선물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池龍雨 회장은 이날 송년사에서 “지난 1년은 사우회 창립 10년의 해로서 열과 성을 다해 사우회를 성원해 준 회우들 덕분으로 활기찬 한해가 되었다” 고 회고하고 “산악회에 이어 바둑 동호인 모임이 결성되고 사우회 문고가 개설 된 것도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 회우 소식 -서울 언론인클럽 회장 任洪彬 회우 선임 임홍빈 본회회우가 1월 23일 서울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열린 서울언론인클럽 정기 총회에서 1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 서울언론인클럽회장은 경향신문 논설주간, 문학사상회장과 이천의 테르메덴 온천리조트 회장을 맡고 있다. -3.1문화재단상 李御寧회우 (사) 3·1 문화재단은 제 47회 3·1문화상 예술상 수상자로 이어령회우를 선정. 시상식은 3월1일 홀리데이인 서울 무궁화홀에서 열렸다. -자랑스런 홍익인상 李相壁회우 선정 홍익대 총동문회는 최근 2006년 자랑스러운 홍익인상좦수상자로 이상벽 회우를 선정. -李承澈 논설위원 관훈클럽 감사에 관훈클럽은 1월 4일 54대 위원을 선임하고 운영위원 감사에 이승철 본사논설위원을 선임. -“자랑스러운 중앙 언론인” 선정 裵壯洙 선임기자 중앙대 언론동문회와 중앙대학교는 12월12일 “올해의 자랑스러운 중앙언론인”에 신문부문 배장수 스포츠칸 선임기자(부장)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지난해 12월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앙대 언론동문의밤 행사때 있었다. -元熙福 스포츠칸부장 민주시민 언론상 수상 경향신문 원희복기자가 제8회좥민주시민 언론상 본상을 수상했다. 12년간 최대 필화사건인 민족일보 사건을 진상규명에 나서 2006년 11월 과거사위원회로부터 명예회복 결과를 얻어내 본상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
* 정동산책
宗敎와 가정평화 - 다양성 속 調和로 갈등 극복
鄭 雲 宗(본보 편집주간)
가정 불화의 원인들 중에 종교적 갈등, 즉 각기 믿는 종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집안은 부자간에 종교가 다르고 시부모와 며느리가 각각 다른 종교를 믿고 있어 불화가 잦다는 말도 들린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문제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극단적으로 말해 가족구성원 각자가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는 단계에 온다면 가정 불화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할 것이다. 한 가정에서 가령 할아버지는 향교에 나가서 장의로 공자님을 모시고, 할머니는 열심히 사찰을 찾아 집안의 평안과 식구들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부처님께 구원을 빌고 자식들은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 종교 활동을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그 가정분위기가 어떠할지는 불문가지라하겠다. 결국 한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서양에서는 이교도 간에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며느리가 개종하여 시댁의 종교를 갖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고 한다. 즉 종교의 자유라는 단위가 가족구성원 개개인이 되었을 때 가정의 화목을 해치는 요소도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미연에 배제할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실제 며칠 전 친구가 부친상을 당하여 문상을 갔더니 장례의식이 기독교식으로 달라진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오래동안 불교를 믿었었고 고인도 전통적인 유교 집안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형님내외가 기독교를 종교로 가져서 피차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가족회의로서 기독교로 통일했고, 아들, 며느리들도 따르기로 해서 서로의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해 있는 여러 의식의 차이가 종교로 인해서 서로 다르게 표출되어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때 가족구성원 간에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을 가족의 합의와 양보로 슬기롭게 풀수 있다는 하나의 본보기라 할수 있다. 보수적인 유교문화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구세대와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믿는 젊은 층 위주의 충돌은 같은 제례에서 방법의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 쪽은 절을 하고 음복을 하나, 다른 한쪽은 우상숭배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앉아서 기도할 것을 주장한다. 전래의 예식과 추도식의 방법이 다르다고 조상을 기리는 정신마저 같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 의식을 다르게 끌고 갈 때 가족구성원 간의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족간의 종교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 하는 것도 가정의 화목과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생각해 본것이다. * 송년모임 협찬 감사드립니다
◆ 50만원 : 고영재 이두성 최순열 ◆ 30만원 : 김경래 지용우 심상기 ◆ 30만원 : 박상엽 ◆ 20만원 : 손주환 윤상철 이원창 ◆ 30만원 : 윤여준 강신철 ◆ 10만원 : 강웅희 강한필 강병국 ◆ 30만원 : 구건서 권도호 김명수 ◆ 30만원 : 김종옥 남연희 손광식 ◆ 30만원 : 송태호 박명훈 박일남 ◆ 30만원 : 박남희 배주선 안신배 ◆ 30만원 : 양성목 양길종 이형균 ◆ 30만원 : 이광훈 이용승 이규섭 ◆ 30만원 : 이경택 장명석 장준봉 ◆ 20만원 :조용중 차영진 한웅희 박무일 ◆ 20만원 :OB산악회 ◆ 5만원 : 강윤상 김동식 김동화 ◆ 5만원 : 김윤성 김진황 박강우 ◆ 5만원 : 박정강 박우학 서석일 ◆ 5만원 : 송선무 문영웅 이상근 ◆ 5만원 : 이상범 이상호 이성호 ◆ 5만원 : 이성희 이영환(윤전) ◆ 5만원 : 이정세 임종백 장정랑 ◆ 5만원 : 정운종 한원동
◆특별선물 : 정재호 와인, ◆특별선물 : 조규진 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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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 2면
출판계의 巨木 '멀티미디어 旗手'로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 ‘大韓言論’에 대서특필-
沈 相 基(前 本社 社長.서울미디어그룹 회장)
<1961년 경향신문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중앙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 경향신문 사장을 거쳐 일요신문, 우먼센스, 리빙센스, 아이큐점프 등 16개에 이르는 미디어를 성공시킨 잡지출판계의 거목 沈相基 전 경향신문 사장의 프로필이 퇴직 원로언론인 모임인 대한언론인회 회보에 대서 특필 됐다. 다음은 ‘大韓言論’이 심상기 회우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50넘어 출판사업에 도전
심상기 회우는 1988년 나이 50이 넘은 나이에 출판사업을 시작했다. 대단한 용기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말렸다고 한다. 어느 친구는 당시 이런 말을 했다.“심사장, 공연히 잡지 만들어 낸다고 하다가 쪽박 차고 길거리에 나 앉는 것 아니야?” 일부 잡지사 사장들은 “심사장 6개월 안에 무너지고 말꺼야”, “나이 늙은 사람이 어떻게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등 이름을 거론하면 알만한 사람들이 쓴말을 해댔다. 심 회우는 처음에 단행본 출판사를 시작해 보려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잡지 출판사냐, 단행본 출판사냐를 놓고 심사숙고한 끝에 잡지 출판사를 만들기로 했다. 단판 승부를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잡지는 한번 성공하면 승승장구 할 수 있으나 단행본은 한 권, 한 권 가내 수공업적인 수순과 성공단계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형태가 지지부진하고 성공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물론 잡지는 투자금액도 크고 한번 안 되기 시작하면 끝없는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헤어나지 못할 염려도 컸다. 하지만 잡지, 그 중에서도 여성종합지를 선택했다. 신문사의 출판담당 이사, 상무를 거치면서 4년 동안 출판과 잡지 만들기를 지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심 회우가 근무하던 중앙일보에서는 활발한 출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여성종합지를 비롯해 20대 여성잡지, 하이틴, 소년잡지, 문예지, 전집물, 단행본 등 방대한 종합출판사 규모였다. 그곳에서 편집, 판매, 광고등 모든 분야에 걸쳐 경영·관리를 했기 때문에 출판사 사장’수업‘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때문에 수익성도 체크할 수 있었고 손익을 관리하는 안목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과 수업덕분에 여성종합지를 선호하게 되었고 잡지출판이란 일대 도박을 결행했다. 여성지의 神話...우면센스 創刊
창간을 전후해서는 TV광고도 과감히 했다. 신문광고에도 적잖은 돈을 쏟아 부었다. 당시 창간호를 네 차례나 인쇄 했으니 판매가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달동안 4쇄를 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이 아니면 그 어려움을 이해하기 힘들다. 종이를 실어 나르고, 인쇄할 때마다 판갈이를 해야 하고, 인쇄공장에서 전국 판매처에 배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한차례 정도 증쇄를 하는 일은 있어도 네 번씩이나 인쇄를 하는 일은 월간잡지의 경우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재를 소중히 여겨 ‘삼고초려’해서라도 능력 있는 일꾼을 끌어오기 위해 몸소 스카우트 대상자의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먼센스〉는 창간됐다. 그 후로도 여성종합지의 대표적인 존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먼센스의 성공으로 회사는 탄력을 받아 성장궤도에 올라섰다. 뒤이어 아이큐점프를 비롯한 만화잡지, 리빙센스등 생활잡지를 만들어 냈고 일요신문을 인수해 성공시켰다. 근년에는 도산 직전의 〈시사저널〉도 맡아 재건의 터전을 이룩했다. 케이블TV에도 손을 대 한동안 알찬 경영을 했었다. 그 여세를 몰아 지상파 방송에도 진출하려 했다. 이런 족적을 보면 심 회우는 성공한 경영자요, 손을 대기만 하면 모두 살려놓는 신문, 잡지, 출판의 ‘미다스 손‘으로 손꼽힌다. 영상사업까지 영역확대
현재 총 사원 수 500여명, 계열회사 5개사의 작지 않은 기업으로 성장한 서울미디어그룹은 앞으로도 출판·신문·방송 이외에 영상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정보산업의 기수로 발돋움하고 있다. 각 사업 영역에는 그 분야마다 선발, 선두주자가 있게 마련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정상에 올라선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방대한 자금, 우수한 인력, 경쟁을 뚫고 나갈 뚝심 등등… 심 회우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서울미디어그룹’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 미니回顧
학술기자 30년의 보람
朴 錫 興 회우 〈전 논설위원〉 경향신문 문화면 학술기사 타신문 사설·칼럼으로 발전 정치적 언론통제가 심했던 60년대 말 신문사에 들어와 동아 조선 사주 구속이 초 읽기에 들어간 2001년 5월 퇴직 하기 까지 나는 33년간 학술 담당 전문 기자로 일했다. 경향신문에서 기획위원과 논설위원이었던 3년을 제외하곤 꼬박 30년을 편집국에서 신문제작 일선에 참여할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퇴직 후 고지식한 30년 기자생활을 자식의 도리와 가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었으나 때늦은 회한일 뿐이다. 60년대 말 학술 문화재 종교 교육 등은 문화부기자의 일상적인 취재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이규은 경향신문 편집부장은 문화면 대장 OK단계에서 문화면 편집기자에게 내가 쓴 학술 기사를 키우라고 자주 지적하여 이 기사들이 중요기사로 바뀌고 다음날 다른 신문들의 칼럼이나 사설로 발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학술기사가 경향신문 문화면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엇다. 고대 아시아문제연구소의 ‘한국인의 가치관 조사’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25권 편찬’ 착수, ‘복천동 가야고분 4국시대 입증’ 외국 이론 번역에 급급한 수입 학문의 한계 ‘완전학습의 허구’ ‘서둘러야 할 독도연구’ 그런 기사들이었다. 나는 경향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와 학술 문화부장 논설위원으로 ‘식민지 근대화 모순 인식과 극복’을 아젠다로 설정하여 식민사관극복 학문의 토착화 교육개혁 종교개혁 등을 제기 하고 국사교과서 개편, 교육개혁 종교개혁등의 후속 과정을 추적 보도했다. 한국사를 바꾸는 최초의 구석기 청동기, 철기 발굴 및 고대사 논쟁을 기사화 하기도했다. 학술부기자로 이런 작업을 도왔던 후배 기자 모두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이 되었으니 나는 선후배 모두 잘만난것이다.
당대의 석학·원로 두루 만나며 종횡무진 취재 보람 느껴 70년대 와 80년대에는 문화재 발굴 특종기사, 역사학 논쟁, 국학 시리즈 등으로 학술기사가 문화면의 주종이 되었다. 그러나 5공 말기 군사정권에 차출됐다 돌아온 일부 언론인이 신문방송사를 장악하면서 문화면이 다시 오락 읽을 거리 위주의 60년대 말로 돌아갔다. 나는 33년 재직중에 국가 발전에 기여한 많은 인사를 만났다. 최현배 백낙준 홍이섭 김상기 한경직 이청담 이서웅 이성철 노기남 이병도 이은상 이혜구 성경린 이선근 정재각 민형규씨등 원로를 직접 취재하고 사숙하는 행운이 있었고 그 다음 세대인 김철준 이기백 황성모 최영희 최석우 김옥균 박법정 김원룡 황수영 최순우 손보기 서명원 윤천주 이규호 강원룡 성내운 이문영 김진만 신두영 고병익 신수범씨 등과는 기자와 취재원 관계를 뛰어 넘는 친절한 사이가 되어 신문 제작에 도움을 받았다. 이 중진들이 내게 소개했던 소장 교수 대부분이 학계의 원로가 되어 은퇴 90년대 후반에 문화일보 포럼을 맡았을때는 다음 세대의 교수를 찾기 위해 학술 논문을 뒤지고 학술 회의를 취재해야했다. 소장 교수들이 발전하는 과정과 그들의 주장을 세상에 전파해 좋은 영향을 줄때가 기뻤다. 그러나 신문에 등장 시킨 교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하거나 실패하는 경우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가질때도 있었다. 나를 문화부 차장과 부장으로 발탁한 이규행 손광식 두 선배가 문화일보 창간에 나서 직장을 옮겨 나는 제2의 학술기자 생활을 했다. 이 제2의 학술기자 10년은 참으로 어려운 기간이었으나 남시욱 김진현 사장을 도와 문화일보 오피니언 면을 2면으로 정착시키고 포럼을 담당, 다양하고 깊이 있는 토론 문화를 진작 시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모두가 학술 기자 30여년이 나에게 남긴 보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회보 3면 棋友會 발족, 회장에 具健書 회우 총무엔 元鍾善 회우, 매월 둘째 목요일 친선대국 경향OB기우회가 사우회 산하 동호인 모임으로 창립, 발족했다. 기우회는 지난해 12월21일 사우회 사무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에 구건서, 총무에 원종선 회우를 선출했다. 또한 장명석, 손광식, 장준봉 세분의 사장출신 회원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기우회는 창립 총회후 사우회에서 친선 바둑대회를 갖고 회원들간 친선도모와 대국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기우회는 새해부터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바둑대회를 열기로 했으며 월례 정기 바둑모임은 둘째 목요일에 갖기로했다. 이에따라좬경향 OB기우회좭는 별칭좬이목회좭로 부르기로했다. 둘째 목요일좬이목좭을 집중하는 모임으로 발전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한편 창립 총회이후 많은 회원들이 찬조금을 내 놓아 기우회 발전기금 조성에 동참했다. 한편 기우회 월례 모임은 지난 1월부터 3월 까지 3회 사우회 사무실에서 열려 많은 회원들이 참가했고 월례 모임은 앞으로 계속 된다. 또한 1월 모임에는 이승구 회원이 참석, 회식 비용을 부담하여 회원들을 즐겁게 했다. 기우회는 그동안 3회 월례 모임에 평균 10명이 넘는 회원들이 참가하여 비교적 높은 참석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 기우회 회원은 30여명이다. 3월 6일 현재 금일봉을 보내온 회우들은 다음과 같다. ▲김동식 ▲손광식 ▲이봉섭 ▲이승구 ▲이용방 ▲장명석 ▲장정랑 ▲정운종 ▲지용우 ▲구건서
* 紀行文 나의 일곱나라 방랑기
池 龍 雨 (본회회장)
토정비결을 본 것도 아니지만 새해 벽두부터 내겐 역마살이 끼었던 모양이다. 불과 달포 사이에 해외여행을 3차례나 다녀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 벼르던 동유럽 5개국을 단 9일 만에 한바퀴 돈 것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격’이다. 이유야 어떻든 냉전시대에는 가 볼 꿈도 꾸지 못했던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직접 내 눈으로 보았고, 요한슈트라우스의 감미로운 월츠가 지금도 울려 퍼지는 비엔나에서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등 음악의 거장들이 묻힌 공원묘지를 거닐며 야릇한 상념에 젖어본 것은 내게는 값진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몇 년전 서유럽 7개국 여행 때는 강폭이 겨우 청계천의 곱절만한 파리의 세느강이나 런던의 테임즈강, 독일의 라인강 정도를 보았을 뿐인데 내가 맑고, 넓고, 푸른 도나우(다뉴브)강을 따라 유유히 떠내려가는 유람선에 몸을 맡기고 보니 별천지에라도 온 느낌이었다.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강 양안으로 흡사 중세 건축물 전시장처럼 즐비하게 들어선 역사유적지와 명소들이 도열해 있는 부다페스트쪽의 물길은 흔히 ‘도나우강의 진주’로일컫는다. 동유럽의 파리, 프라하 그 중에서도 프라하에서 받은 강렬한 잔영(殘影)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내 망막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근래에 프라하가 각국의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프라하시내의 웅장한 건축물들은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르네상스등 모든 시대의 건축양식이 총 망라된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미션 임파서블’, ‘프라하의 연인’등 부지기수의 영화들이 프라하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특히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천문시계는 분초도 안 틀리는 프라하의 명물중의 명물이다. 터키에서 여행 ‘본전’ 뽑았다 터키는 발길 닿는 곳마다가 찬란한 인류문화유산의 보고다. 중국의 문화유적에서 받은 감명과는 또 다른 경이(驚異)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문명사가인 토인비가 이스탄불을 가리켜‘인류문명의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이라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님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관문인 보스포로스 해협은 동서의 두 대륙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다. 예로부터 터키는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길목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하는 종교의 접점이다. 터키를 가리켜서‘문명충돌이 낳은 미운 오리새끼’라고 풍자한 어느 역사학자의 시니시즘에도 일응 수궁이 간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스탄불에서 산지 10년이 넘었다는 한국인 여성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한다. “중국의 시황제가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 돌궐족과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였지요” 그 돌궐족, 흉노족으로 불린 사람들이 바로 트루크(터키)민족이라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에서도 배우긴 했지만 그 말을 현지에서 들으니 6·25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용감하게 싸웠던 터키군인들이 회상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15세기 오스만 제국시대의 터키는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손아귀에 넣고 흔든 강대국중의 강대국이었다. 그런 눈부신 세력형성을 했던 터키가 이제는 유럽연합에도 끼지 못하는 2류국가로 전락해 버린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세계적 문화유산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터키이지만 여행자들은 일단 고생은 각오해야 한다. 우선 하루에 버스로 짧게는 5시간, 길게는 9시간씩 타고 달려야 하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잠자리도 ‘쾌적’과는 거리가 멀다. 명색이 5성급 호텔이라는 곳이 우리나라 장급여관만도 못하다. 그뿐인가. 먹는 것 또한 비위가 약한 사람들에겐 고역이다. 음식에서 비위에 안 맞는 향기가 진동한다. 라면을 가져온 일행들이 적지 않다. 볼것은많으나 침식이 침시기 불편한터키 여행은 이방인들에게 호 불호의 옵션을 던진다. 카파토키아의 신비 터키여행의 핵심중의 핵심인 카파도키아는 수도 앙카라 남동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괴레메 계곡에 숨어있다. 카파토키아야 말로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경이로운 천연의 조각품이라 할 수 있다. 약 3백만년전 에르지에스화산의 대폭발 때 엄청나게 흘러내린 마그마(용암)가 만들어낸 거대한 화산조각작품들의 계곡이다. 대폭발후 오랜 세월을 두고 겪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버섯모양을 비롯 곰, 낙타, 악마의 상과 구름형상등 온갖 기기묘묘한 대자연의 조각품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곳을 구석구석 거닐면서 나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시공을 초월해 태초의 원시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야릇한 착각마저 느꼈다.
OB산악회 남한산성서 시산제 故 金在萬 회우 명예회장 추서 경향신문OB산악회(회장 李相鎬)는 丁亥年 새해를 맞아 많은 회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南漢山城에서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山祭를 올렸다. 전날 하루종일 비가오던 날씨가 하늘이 도왔는지 산제 당일에는 안개가 끼긴 했으나 산행하기에는 너무 좋은 하루였다. 남한산 제2등산로를 따라 산제 장소인 옛 우물터에서 지용우 고문을 비롯해 20여명의 경향 산악동지들은 山神께 정성껏 제를 올렸다. 정운종 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산제는 예년과 달리 최근 유명을 달리한 산악동지 金在萬 산우를 추도하는 모임이었기에 시종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산제가 끝난후 산성내 석촌가든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故 金在萬 산우를 명예회장으로 추서하는등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언젠가는 하산 길에 산행에 참가했던 회우들 전원을 홍지동의 자택으로 초대해서 푸짐한 불고기 가든파티를 열어주던 정다운 추억을 경향 산우들은 잊지 못해 늘 얘기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2년여 전 여러번 산행에 불참하면서 수술대에 오르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이번 시산제에는 오랜만에 박석흥 회우와 최귀조 회우가 참석하여 산제분위기를 북돋웠으며 특히 얼마전 정년퇴임한 김상훤 회우가 산악회 신입회원으로 가입하여 산우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또한 불가피한 사정으로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한 강한필 고문과 김세환 회우는 금일봉을 보내와 시산제를 격려했다. 이날 김세환 감사의 후임으로 구건서(경향기우회 회장)회우를 새 감사로 선임했다. 이날 시산제에 동참한 회우는 다음과 같다. 구건서 김무부 김상훤 김연탁 김종수 김충한 박석흥 박우학 양성목 여구만 이상범 이상호 이정세 임상묵 임상학 장 옥 전철수 정운종 지용우 최귀조 〈가나다순〉. ------------------------------------------------------------------------------------------------------------------------
회보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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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龍雨회장=1월 8∼17일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등 동유럽 5개국, 1월 23∼27일 일본북해도, 2월7∼15일까지 터키 여행, 2월 20일 ‘대언론인회30년사’ 편찬위원으로 선임 ◇李炯均수석부회장=인하대 사회과학대 객원교수로 3월 봄학기부터 ‘매스컴과 사회’ ‘PR론‘을 강의. ◇鄭雲宗본보 편집주간=2월 20일 ‘대한언론인회30년사’ 편찬위원회 주간(대표집필)으로 선임 ◇趙世衡한국정학연구소 이사장=3월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전개’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짐. ◇孟泰均 李相鎬회우=2월 20일 ‘ 대한언론인회30년사’ 편찬위원으로 선임 ◇李光勳회우=고려대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새 학기부터 ‘언론 문장 ’ 강의 ◇趙陽晋회우=광주시 초월읍 도령리205 우림퓨전빌 아파트 105동 1004호로 이사 (031)769-3796 HP=017-1715-3792 ◇朴權欽(헌정회 편집위원장)회우=12월31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A한국다도 대학원 제13기 졸업식?B과 송년茶談會를 개최. 그리고 차(茶)인 연합회 회장으로 재선임 ◇姜曾模회우=06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1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아들(우석군)결혼 (031)715-6330 ◇宋忠基회우=동작구 신대방동 714 동작산떼빌 아파트 102동 505호 이사 (3289-1647) ◇金永在회우=마포구 합정동 428-49 ?A책만드는집?B으로 주소변경 (3142-1585 HP=011-9874-1585) ◇李鍾連(프런티어 타임스사장)회우=12월15일 새벽 서울대 병원서 장모상 (3471-4994) ◇卞四鳳 회우=파주시 교하읍 와룡리 205동문 2차아파트 204동 1102호로 이사 (031) 947-5331 ◇諸圭邦회우=HP=010-6818-6892로 변경 ◇정학재회우=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1314-3 성우아뜨리움 402호로 이사 (031)903-4235 HP=011-868-0245 ◇韓相圭회우=1월 15일부터 2주예정으로 LA에 있는 친지방문차 출국 (762-2064) ◇南政洙 회우=성남시 분당구 정자3동 신화아파트 502동 101호로 이사 (010-7774-0021) ◇金漢吉 회우=(주)청십자 약품 상임감사 동대문구 용두동 737-20세건빌딩 2F(929-7200 HP=011-9146-2781) ◇李成鎬 회우=6242-6748 HP=010-7997-6748로 변경 ◇孟泰均 회우=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635-302호로 이사 (031)275-8605 HP=011-485-5103 ◇李埰洛(전 본사사장)회우=010-3433-3363로 변경 ◇韓元東 회우=1월27일(토요일) 오후4시 국제 전자센터 컨벤션 웨딩홀에서 딸(경아양)결혼 (971-0590) ◇朴一男 회우=2월3일(토요일) 오후3시 코리아 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딸(진희양) 결혼 (031)748-3635 HP=011-711-6550 ◇姜信煥(대한뉴스 총무이사)회우=2월10일(토요일) 오후2시 남서울웨딩홀에서 딸(동원양)결혼(019-250-7677) ◇朴錫興(건양대 겸임교수)회우=지난해 12월 15∼18일까지 인도 뉴델리 대학에서 열린 제8차 태평양, 아시아 한국학 학술대회에 참석,?A21세기 한국신문의 위기와 도전?B을 발표. 12월 29일 귀국 (019-398-2271) ◇金志榮 회우=2월1일부로 한국신문 윤리위원회 심의실 심의위원 선임 (734-3081) ◇李光洙 회우=2월 5일 오전 5시40분 강북삼성병원서 부친상 (373-8688) ◇張峻峰(국학원 상임고문)회우='韓國馬文化 발전과 民族史的의의'주제로 대한출판문화협회강당에서 남도영강사(동국대명예교수)의 주제발표로 3월13일 오후7시 개최. ◇任殷淳회우='李지지 언론인 출신모임 2007 세종로 포럼' 자문그룹 발기인 추대 ◇李珍澤회우=(주)드림세종 상무이사(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 640-1 더존타워 704호 042)824-2466 HP=011-9480-5279 ◇李世煥회우=3월9일(금요일) 오후7시 명성교회 베들레헴의집 3층에서 딸(성민양)결혼 (HP=011-357-9121) 소식 알려 주십시오 본회는 격월로 회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알찬 소식지가 될수 있도록 사우회 운영을 위한 좋은 의견이나 주변에 있는 사우들의 크고 작은 소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식지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회보편집자) 2006 회비내신분 ?z06년12월=조장준, 이학기, 김연탁, 김상기, 박일남, 전호련, 김창흡, 한윤섭, 이구환, 이태자, 김길홍, 원종선, 유병희, 송충기, 노명수, 임상묵, 김한길, 홍관식, 이봉섭, 이만복, 서복식, 유병삼, 허성관, 김진학, 김선환 ?z07년1월=김성영, 박석홍, 정건용 ?z07년2월=조관수, 양재구, 황인성, 이혜복
본사 인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겸 미디어칸 대표이사(파견)김택근 ▲논설위원 허영섭 〈편집국〉 ▲선임기자 이기환 ▲문화2부장 문학수 ▲체육부장 권부원 〈출판본부〉 ▲뉴스메이커편집장 윤석원 ▲NIE연구소장 신동호 〈스포츠칸본부〉 ▲편집국장 김태관 ▲선임기자 배장수 황인원 ▲편집부장 심인석▲체육부장 하재천 ▲문화연예부장 오광수 ▲종합뉴스부장 원희복▲스포츠칸마케팅국장 백용하 〈경영지원실〉 ▲기획위원 서도영 ▲총무팀장 김용일 ▲업무지원팀장 조인철 〈제작국〉 ▲부국장(윤전담당) 겸 기술관리팀장 이재흥 ▲제작2팀장 송창섭 ▲전산운영팀장 김정원 〈판매국〉 ▲수도권2팀장 홍구표 ▲판매관리팀장 오경식 〈광고마케팅국〉 ▲부국장 겸 광고기획팀장 박흥신 ▲마케팅1팀장 김현옥 ▲마케팅2팀장김오성▲마케팅3팀장이문종 ▲마케팅4팀장 박재구 ▲광고관리팀장 이종혁 〈사업국〉 ▲사업1팀장 겸 사업총괄 이동형 ▲사업2팀장 김한진 ▲사업3팀장 최영환 (12월8일자) ▲산업부장 직무대행 박종성 (2월2일자) ◇승진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조성환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이승철 〈편집국〉 ▲정치부 차장 이기수 ▲전국부〃박용근, 윤희일 ▲전략기획실 기획인사팀〃심우진 ▲제작국 제작1팀〃김광만 정석모 ▲윤전1팀〃김대환 안태준 ▲윤전2팀〃박재구 ▲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 종합뉴스부〃류원근 ◇보직변경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유병선 ▲편집국 선임기자 유인화 설원태 ▲국제부장 양권모 ▲전국부장 박래용 ▲여론독자부장 최병태 ▲산업부 차장 안치용 ▲문화2부차장 최병준 ▲출판본부 레이디경향부장 유인경 ▲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사진부장 권호욱 (3월3일자) 2006년 회비내신분 2006년 12월 = 조장준, 이학기, 김연탁, 김상기, 박일남, 전호련, 김창흡, 한윤섭, 이구환, 이태자, 김길홍, 원종선, 유병희, 송충기, 노명수, 임상묵, 김한길, 홍관식, 이봉섭, 이만복, 서복식, 유병삼, 허성관, 김진학, 김선환 2007년 1월 = 김성영, 박석홍, 정건용 2007년 2월 = 조관수, 양재구, 황인성, 이혜복
訃 音 黃秉晧 회우 黃秉晧 회우가 1월 8일 오전 6시 흑석동 중앙대병원서 별세. 황회우는 56년부터 69년 편집부차장, 부장을 역임. 黃仁洙 회우 黃仁洙 회우가 1월 18일 오후 3시 신대방동 보라매병원서 별세(51년생) .黃회우는 1969년 7월 입사, 문선부와 발송부 과장으로 재직. 유족으로는 1남1녀가있다. (698-0846) 金在萬 회우 金在萬 회우가 2월 15일 오후 7시 40분 강남성모병원서 별세(44년생). 金회우는 1977년 2월 입사, 외간부장, 한국방송개발원부장, 민정기 법무사무소 사무장 역임. 유족으로는 3남이 있다. (379-1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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