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부터 글쓰는게 좋았습니다.작가, 어떤 작가가 되겠다고 거창하게 마음먹었던게 아니라 답답한 생활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글이었거든요. 그러나 아버지는 배고픈 직업이라며 반대하셨고 어린 저는 저에 대한 확신도 없고 아버지가 무서운 마음에 포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벽이 너무 컸기때문에 저는 문과 이과를 선택할때도 아버지 강요에 의해서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문과를 가면 또 글쓴다고 '뻘짓'을 하게 되면 안된다고 무작정 대책없이 이과를 보내셨습니다. 이후에 상황은 나아지는것 없이 현실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신 등급제인데 이과 학생들 수가 적은데다가 또 최상위권아이들이 이과로 다 몰린 상태여서 등급을 맡기가 너무도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아 내신 성적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공부에 무슨재미가 있었겠어요. 목표도 잃었는데... 공부를 하면서도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정말 3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 비참한 얘기지만 제가 수능성적이 정말 바닥인데도 좀더 공부를 열심히 할걸 후회를 하지 않는건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후회할 일이 없을만큼 제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이룰일도 없었다는 거겠죠. 3년동안이나, 제 진로를 꾸려야 하는 시기에 말입니다. 그래도 시간은 가서 대학을 선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참 수시를 쓸 시기에 대학들이 홍보물을 보내오잖아요. 틈새시장(?)이라도 노려서 무조건 서울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학은 일류부터 구석학교들 까지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던중에 동국대 입시요강을 보았는데 문학특기자 전형이라고 해서 모집을 하는데 이과 문과가 상관이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 밖에는 .... 잃었던 꿈을 어쩌면 이룰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정말 절박했던것 같애요. 수시에 실패한 후에 동국대는 아버지께 내꿈을 당당히 보여드릴수 있는 도구였지만 또다시 문예창작과를 갈수 있는 길을 잃었다는 것에 좌절했습니다. 수시도 딱 두군데 서울권에만 지원을 해서 다 실패하고 정말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다시 아무것도 없는 원점으로 와버렸다는 것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동국대를 지원했을때 그 순간만큼 하늘은 내편이었으면했죠 그만큼 제 상황이 간절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수시전에 실기에 대해 아무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원서를 내놓고도 수능을 앞두고 있던 터라 실기 준비라고는 학교문학선생님들 찾아가서 시를 보여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정말 무서운 문학 여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렇게 혼나고 깨지고 자존심에 상처받고서도 그렇게 매달려서 검사받고 그랬는지.. 아마 최금진 선생님께 글에 대해 실망스러운 말을 들어도 덤덤할수 있었던건 그 경험때문일겁니다.
학원을 처음 오게된것도 평범하진 않았던것 같아요. 수시에서 동국대에 떨어지자 떨어졌다는 것보다도 다시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제꿈에 다가설수 없을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도 물러서면 차라리 죽자라는 심정으로 수능 전부터 문과로 재수를 하겠다고 울며불며 아버지에게 매달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수능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앞에 말했다시피 후회가 없기때문에 변명할 마음도 없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글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보다못한 어머니가 성적이 되는대로 문창과 정시를 알아보라고 하셔서 이리저리 알아보려 노력했으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던중에 경화가 글쓰는 학원다니는것을 기억하게 되었고 경화의 소개로 학원을 알게되었지만 내힘으로 한번더 알아보자해서 잠시 보류해둔 뒤에 114에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국어전문학원, 작문학원, 논술학원 광주시내에 있는 모든 학원을 다 알려달라고 했죠. 그러던중에 어느 한 학원을 알게되었고 정말 고마우신 원장님께서 광주여대 교수님을 소개해주시고, 또 그 교수님께서 문지원선생님, 최금진선생님을 소개해주셔서 뵙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경화가 다니는 학원이랑 같은지 모르고 상담을 받으러간 상태여서 놀랐지만 특별하다 느껴져서 기분좋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생활이 시작된거였죠.
하루에 두편. 처음에는 엥? 뭐지 하고 당황했었어요. 통과가 두편이라는걸 몰랐기 때문인거죠 ㅠㅠ 그 통과가 어떻다는걸 몰랐구요. 그래도 하루에 9시간 10시간.... 그냥 생각으로는 너무 지치고 힘들것 같은데 막상 닥쳐서 하고나니 시간은 정말 잘가요. 또 답답하기도 하죠 그 시간동안 한편도 못 완성하고 갔던 날도 있었는데...스스로 답답해서 집에서 울었던적도 많구요. 히히 ^^;그치만 신기한건요! 제가 유명한 잠퉁이거든요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자는건 지루하니까 당연한거구;; 쉬는시간에도 놀지않고 잔다고.. 그런제가 연필과 노트를 붙들고 그시간동안 잠을 자지 않을수 있었던건 뭘까요.히히~ 음 단순히 그냥 저는 재밌었어요. 제가 노력을 했기 때문이든 그냥 우연이든 제게 주어진 기회가 너무 감사했어요. 내가 쓴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수 있다는 그 상황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어요
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조바심은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처음 학원에서 제 눈을 사로잡았던것은 상장들! 지금도 많이 부러워요. 저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대회를 나갈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그때문에 실력을 확인할수가 없어 글이 어느 위치에 있는것인지 너무 늦게 와서 가능한건지조자 확신이 없어, 할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습니다. 학원생활만으로도 분명 즐거웠지만 솔직히 아버지때문이라도 저는 결과 또한 중요했거든요.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구요. 기댈거라고는 선생님 말씀뿐이었는데 칭찬받기가 하늘에 별따기잖아요^^;; 그때마다 첫날 선생님께서 시집과 함께주신 격려의 말씀을 되새겼습니다.(모두에게 주시는 관례같은 거지만....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열정없는 위대한 일은 없다' 이 말로 스스로 다독였죠. 그리고 이제는 완전 주문입니다 주문ㅋㅋ글이 막힐때도 가끔 글쓰던중에 다른 유혹에 빠질때도 ㅋㅋㅋㅋ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건 분위기에요. 글쓰는 사람들끼리 혹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저는 너무도 좋았어요. 보통의 사람과 사람사이의 무언가하고는 달라요. 주위에 글쓰는걸 말리는 사람들만 있었던 저는 단번에 알수 있었어요!! 그 아우라를...~ 히히히^^ 그 분위기 덕분에 그래도 마음만은 기쁘게 새롭게 하루하루 임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렇게 수기를 쓰고보니 대학이 결정된 결정적인 두달동안 학원과 아버지(?) 빼면 뭐가 있으려나 싶네요 하하^^;; 그 기간동안 정말 정말 무엇보다 감사하고 다행인건 제 자신이 미래에 대한 꿈과 열정을 되찾았다는것 입니다. 지금은 아버지도 많이 누그러지시고 임철우 소설가, 최두석 시인님들을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학교생활 할것을 생각하면 히히히히히 무지 좋아요^^!의욕이 불끈불끈 솟아요!! 배우고 싶던 글을 배우고, 열정을 되찾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꿈에 더 가까이 갈수 있게되고, 대학도 가고!
얻은게 너무많아요 ^^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모두들! 역시 최고인것 같아요 히히히히
참.. 자격은 있는건지 어떻게 써야하는 건지...쓰기 민망한 합격 수기! 괜스레 맘이 짠해집니다. ^^히히히 새해도 됐는데 모두들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쵸! 저는 앞으로도 꿋꿋하게 열심히 할테니 많이들 응원해주세요 ^^ 저도 항상 먼발치서나마 파이팅 외치고 있겠습니다! 서로 연락도 자주하구요 ~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선생님께서 쓰라고 하신것 같은데 ㅠㅠ
잘 모르겠지만! .... 그래도 끝났습니다!~;;하하하^^
수기 이래도 되는거죠;;;?
첫댓글 우리 하나냥, 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엉. 장난도 많이 치고, 웃음도 많은 네가 글 쓸 땐 무척이나 진지해서 되게 멋있었는데 ㅎㅎ 앞으로도 우리 열심히 글 쓰장! 아버님도 너의 글에 대한 열정만큼은 인정하실 거라고 믿엉. 울 하나 아자아자아자!!
쫌만 더 빨리 들어왔으면 더 많이 같이 글쓰고 배우고 했을텐데, 열심히 하는 하나 보기좋았어용*
하나 학원에서는 한번도 조는 것을 못봤는데 잠퉁이였구나....ㅎㅎ 너랑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진짜 재밌었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