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0월이면 한반도로 납시는 일본의 신(神)?
우리 역사에서는 10월을 <시월 상달>이라 하며 일 년 중 가장 성스러운 달로 여겼다.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하며 신곡(新穀)으로 추수 감사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無天’), 마한의 ‘제천(祭天)’, 고려의 ‘팔관제(八關祭’)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동맹(東盟)이란 단어를 이두 문자로 풀이한다.
이 행사는 원래 백성들의 큰 모임으로, 햇곡식으로 빚은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밤새 노는 일종의 카니발 같은 것으로 백성의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단결도 시키는 행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위지동이전>에 ‘동맹(東盟)’이라 적고 있지만 사실은 ‘단결’, ‘결합’의 의미를 가진 ‘동여매다’라는 우리 옛말 ‘동매’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동매’는 신에게 경건히 제사 드린 다음에 자유로이 잔치를 즐기게 함으로써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동질성 확인의 대집회였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도 7세기 후반의 천무(天武)왕 떼 정월과 시월에 이와 같은 ‘동매’ 행사기록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역대 왕 가운데서도 가장 열심히 이 잔치를 베푼 것이 천무왕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는 지통여왕이라고 한다.
지통은 시도 때도 없이 단합잔치를 열었고 일본서기에서는 그 잔치를 <토요노아카리;豊明·とよのあかり>라고 밝히고 있다.
<豊(とよ)>는 ‘풍요’, ‘풍작’ 등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 ‘동이다’라는 뜻의 우리말 ‘동여’, ‘동에’가 일본화된 낱말이라는 해석이다.
추수한 낟가리를 한 묶음으로 동이는 작업을 ‘동여’, ‘동에’라고 했는데 이것이 <토요(豊·とよ)가 된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리말이 일본말이 되는 과정에는 받침이 사라져 ‘동’이 ‘도’가 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동무’의 우리 옛말 ‘동모’가 일본어의 <토모(友·とも>가 된 경우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카리(明·あかり)는?
‘아카리(明·あかり)’는 ‘밝음’을 뜻하는데 이것은 우리 옛말 ‘밝아리’가 어원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ㅂ’은 일본화되는 과정에서 ‘ㅇ’ 또는 ‘ㅎ’이 되는데, ‘밝’에서 ‘ㄹ’받침이 탈락하여 <악아리>, 그것이 <아카리>로 둔갑한 것이란다.
따라서 <토요노아카리;豊明·とよのあかり>를 우리말로 고치면 ‘동여네 밝아리’ 즉 밤을 밝히는 놀이, 이른바 올 나이트 파티다.
* 일본 고대어 사전에서 <토요노아카리;豊明·とよのあかり>는 ‘풍부한 酒食으로 얼굴이 빨갛게 되는 일..’이라고 풀이 하고 있다 한다.
작가는 지통여왕이 죽은 남편(천무왕)의 큰아들과 사랑에 빠져 요시노(吉野)를 자주 오가며 연회를 베푼 것이 이해가 된단다.
애인과 잔치를 즐긴 것도 있겠지만, 군신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란다.
천무 왕을 따르는 가신들은 지통의 반윤리적 애정행각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냥 놀고 지낸 여왕처럼 보이지만, 실은 길게 내다보는 <정치>를 하고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통의 최종 목적은 애인 <무(武>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었다.
사실 지통은 명목상의 여왕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에게 있었다.
고시(高市)는 백제계였으며, 죽은 천무왕은 가야계의 도움을 받은 고구려계, 지통 역시 가야계의 도움을 얻은 신라계, 그리고 <무(武>는 금관가야 왕족의 혈통을 잇는 신라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통은 마침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힘을 뒷받침 삼아 <무(武>를 왕으로 즉위시키려 전력투구한다.
지통 10년(696년) 7월에 고시(高市) 왕자는 급사한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8월 25일, 지통은 한 사람의 공로를 치하하며 승진시키고 후히 상을 내린다.
그 공로가 무엇이었을까?
‘혹시 고시 왕자를 암살한 공로는 아닐까?’ 하고 작가는 추리한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고시(高市)의 큰아들을 비롯한 가신들의 관직이 모두 박탈되고 드디어 <무(武>가 42대 문무왕(文武王·697-707)으로 즉위하기 때문이다.
중신들을 밤새워 놀게 하면서 그녀는 그들을 하나 하나 동지로 묶어 나갔던 것이다.
일본은 시월을 <칸나즈키(無神月·かんなづき)>라고 하는데 왜 ‘신이 없는 달’일까?
작가는 한국에서 일제히 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달이 시월이기 때문에 일본 땅에 머물고 있던 한국계 신들은 모두 제사를 받으려 고국으로 나가 버린다고 해석한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책 소개 : 매너 스쿨
해외여행 자유화가 1989년 시작되고, 단체 여행객들의 몰상식한 행동이 뉴스에 종종 보도되던 시기에 이와 같은 책자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직장에서도 외부 강사를 초청한 강연회도 종종 있었던 기억이다.
요리 연구가이던 저자 한정혜 원장은 1931년생으로 2022년 작고 하셨단다.
광고
○ 빌라 주택 광고 : 이 무렵부터 연립주택 대신 신축 빌라가 유행했다.
2021년도에도 양재동에 재건축 붐이 일어났는데 분양 광고 속 <왕조빌라>는 지금 어떨지 궁금하다.
○ 예쁜 글씨 광고 : 93년도만 해도 컴퓨터가 보급된 시기였는데 예쁜 글씨 광고가 새롭다.
80년대까지는 펜글씨 자격증도 있었고, 보고서 만들 때마다 타이피스트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차트士의 솜씨를 빌려야 할 때가 많았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필체를 가질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염려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