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 이 서원은 한동안 조선 팔도에서 가장 위세가 당당했다. 노론 (老論)의 영수인 송시열의 은거지에 세워진 사액서원인데다 인근에 명나라의 신종(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임금)과 의종(명 나라의 마지막 임금)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만동묘라는 묘명(廟名)은 화양동의 5곡인 첨성대의 암벽에 새겨 진 선조의 친필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에서 따왔다. 이 말은 주로 충신의 절개 는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상징할 때 쓰는 말로, 곧 "대명국(大明國)" 에 대한 조선의 "신하된 도리"는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지가 얼마 안된 당시에는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이 크게 고조되어 있던 터라, 만동묘를 등에 엎은 화양서원의 처사는 무조건 옳다며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 그러자 나날 이 방자해진 화양서원의 유생들은 이른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해 관리와 백성을 불문하고 갖은 수탈과 횡포를 일삼았다. 서원 의 요구를 거역할 경우에는 가혹한 형벌이 뒤따랐다. 결국 이러한 횡 포는 훗날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는 빌미가 되었다. 파락호(破落戶) 시절 이곳을 지나다가 크 게 봉변을 당한 대원군은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도둑놈 소굴"이라면서 철폐해 버렸고, 뒤이어 다른 서 원들까지도 문을 닫게 했다. 오늘날 잡초만 무성한 만동묘와 화양서원의 옛터에는 주춧돌과 계단석, 그 리고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영화롭고도 오만했던 옛 시절을 짐작케 한다. |
이 빼어난 선유동계곡이 이어진다. 물 맑은 선유동은 탁족(濯足)이나 물놀이를 즐기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한나절쯤 쉬어가기에 아주 제격이다. 여행메모(지역번호043) 숙 식 : 화양동계곡과 선유동계곡은 속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화양동분소 ☎ 832-4347) 내에 있기 때문에 취사와 야영은 원칙적으로 지정 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계곡을 따라 음식점과 민박집을 겸한 청주식당(832-4581), 화양식당(832-4392), 정화식당(832-4310), 동원개미식당(832-4282) 등의 업소들이 들어서 있다. 음식은 주로 산채비빔밥, 토종닭, 파전, 도토리묵, 매운탕 등을 내놓는다. 전문 숙박업소로는 화양유스호스텔(832-8803), 화양파크모텔(832-5169), 화양여관(832-4365) 등이 있고, 화양동 계 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평리에는 미로모텔(832-6446)이 있다. 선유동계곡 주변에도 자연휴게 소(833-8406), 초원식당(833-8054), 화송식당(833-6954), 은선휴게소(833-3871) 등 민박을 겸한 음식점이 있다. 교 통 대중교통) 청주여객터미널(234-6543)에서는 화양동(시외버스터미널 ☎832-4552)을 거쳐 선유동입구인 청 천면 송면리(시외버스정류장 ☎833-8132)까지 운행하는 직행버스가 7:20~19:30까지 약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화양동까지는 약 1시간 10분 소요 승 용 차) 중부고속도로 증평IC→증평읍(34번 국도)→괴산읍 대사리 삼거리(19번 국도, 우회전)→문광삼 거리(49번 지방도, 좌회전)→청천면 덕평리(525번 지방도)→도원교 삼거리(좌회전)→화양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