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현대미술의 역사와 미술시장의 역사가 짧다.
경매에서 비싸게 팔리는 작가들이라 해도 그 가격이 적절한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때 블루칩으로 칭송 받던 작가가단기간에 값이 하락하기도 하고, 또 전혀 새로운 작가가 갑자기 비싸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을 빚는다.
우리 미술시장에서 '비싼 화가'로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라면 박수근 정도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박수근이 왜 비싼 화가일까?
박수근은 2000년대 들어 한국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선도하면서 경매 때마다 최고가 릴레이를 벌여왔다.
2001년에 처음 4억6000만 원에 낙찰돼 관심을 끌고,
이후 5억 원(2002년), 9억 원(2005년), 10억4000만 원(2006년), 25억 원(2007년), 45억2000만 원
(2007년)으로 가파르게 기록을 경신했다.
박수근을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같은 비싼 미국작가들과 비교해보면 공통점이 하나 나온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일궈냈다는 점이다.
박수근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전후(戰後)의 전형적인 우리 생활상을 그렸다.
동시대 다른 화가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양미술사조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박수근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었다.
우리의 흙 느낌이 나면서 기름기가 없는 독특한 마티에르(두꺼운 질감) 화풍은
근대 작가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스타일이다.
역사가 짧은 우리 현대미술시장에서 박수근은 그나마 꾸준히 시장에서 거래가 되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격형성이 돼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비싼 작가의 조건 중 하나가 웬만큼 작품 수가 받쳐줘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수급이 꾸준히 이뤄져 가격형성이 되지 않았으면 안심하고 사고 팔 수가 없다.
너무 작품을 남발한 것도 문제지만, 몇 점 남기기 않아 시장에서 가격형성이 되지 않아도 문제다.
피카소와 앤디 워홀은 워낙 작품을 많이 남긴데다가 미술관뿐 아니라 개인에게 소장돼 있는 작품도 많기 때문에
어느 현대미술 경매 때나 작품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자연히 환금성이 높다. 박수근도 마찬가지다. 박수근 작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팔 수 있다.
이런 '환금성'은 작가의 시장적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최근 들어 위작 논란을 자주 빚는 국내 상황에서, 이중섭 등 다른 인기 화가들과 비교했을 때
박수근은 상대적으로 위작도 적고 위작이 나와도 쉽게 표가 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이른바 '내수용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해외의 어느 유명 작가 못지않게 비싸다.
이는 어느 작가나 사랑 받는 지역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고가의 그림을 사고 즐기는 층은 50~60대 상류층인데,
박수근이 담아내는 1950~1960년대 우리의 모습은 이 컬렉터층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다.
박수근처럼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에서만 비싸게 거래되는 내수용 작가는 있게 마련이고,
이들은 종종 국제적인 유명작가들보다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