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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국명 : 리비아 사회주의 인민 아랍국(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 지리 및 기후지중해 북아프리카의 중앙에 위치하는 리비아는 차드와 니제르가 북쪽에 이집트와 수단이 동쪽에 알제리아와 투니지아가 서쪽에 위치한다. 미국의 알라스카보다 조금 작으며 프랑스의 세 배로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큰 나라다. 리비아는 세 개의 지형으로 구분된다.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는 북서부를 차지하고, 페짠(Fezzan)은 트리폴리아 남부의 전체지역을 차지하며, 싸이레나이카(Cyrenaica)는 동부의 절반을 차지한다. 세 개의 지역은 자체적으로 자치단체에 의해 재분할된다. 좁은 해안선지대만 충분한 강우량을 나타내 농업에 적당하며 수도인 트리폴리도 이 곳에 위치하며 인구의 90%가 거주하고 있다. 리비아의 북동부는 제벨 악다르(Jebel Akhdar) 지역(그린 마운틴으로 알려지기고 한다)은 가장 촉촉이 뒤덮인 리비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다. 반대로 내륙은 거대한 사람이 살수 없는 사막으로 오아시스 주변에 작은 거주지가 존재한다. 남단은 티베스티(Tibesti)와 중앙 사하라의 타실리 산악지역으로 거대한 지역을 차지하는 모래언덕인 칼란스시오 모래바다(Calanscio Sand Sea)가 이집트 국경의 동부지역에 위치한다. 무르죽(Murzuk)과 우바리(Ubari) 모래바다는 서쪽에 위치한다.리비아에는 영구적으로 흐르는 강이 없다. 와디스(wadis)가 비가 내리는 시기만 일시적으로 형성될 뿐이다. 남부와 남동부에서 발견된 화석 대수층으로 물을 나르기 위한 파이프라인 공사가 실시돼 해안지대의 농업과 공업을 위한 물을 보충하고 있다. 대 만-메이드 강(Great Man-Made River) 공사가 가장 큰 공사로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토목공사다. 내륙의 식물군은 오아시스 주변에 한정돼 있으며 야자수가 무화과, 협죽도와 더불어 볼 수 있다. 오아시스 외각은 아카시아 나무가 가끔 그늘진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해안지역은 일반적으로 지중해성 식물이 번영하는 곳으로 올리브와 감귤류가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환상적인 조류들을 리비아에 볼 수 있는데 리비아는 철새들의 이동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지역은 낙타가 가장 일반적인 동물이며 가젤과 야행성의 페넥(작지만 큰 귀를 가진 여우)을 가끔 볼 수 있다. 도마뱀, 뱀(일부는 독을 가지고 있음), 전갈은 일반적인 동물이다.
리비아의 기온은 남부가 사막의 영향을 받고, 북부는 지중해의 영향을 받는다. 해안지역은 온화한 기후로 트리폴리의 여름 평균기온이 30도이며 겨울은 8도다. 반 불모지가 중부의 평지를 차지하고 가뭄이 자주 발생하는 사막이 남부에 위치한다. 덥고 건조하며 기브리로 불리는 모래를 동반한 바람이 봄과 가을에 해안지대로 자주 분다. 역사로마제국이 트리폴리타니아(트리폴리 주변)를 침략한 시기는 기원전 106년이고 줄라이스 시져의 군대는 기원전 64년에 전지역을 점령한다. 로마제국의 주로 편입되면서 리비아는 번창해 기원전 2세기에는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세 개의 주요한 로마제국 도시였던 사브라타(Sabratha), 오에아(Oea), 렙티스 마그나(Leptis Magna)는 곡물과 기름과 노예와 더불어 사하라 아프리카의 독특한물품을 로마에 제공했다. 로마제국의 세력 약화로 도시들은 폐허가 됐으며 반달에 의한 북부 아프리카의 파괴가 5세기에 진행됐다. 비잔틴 제국이 6세기에 리비아를 점령한 후 고대 도시를 강하게만들었으나 폐기되기 위한 붕괴 직전의 잠시동안의 마지막 호흡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트리폴리로 남아 있는 오에아만이 살아있는 도시로 남는다.
7세기 아랍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이 전래됐으며 현재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다. 아랍의 지배는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많은 초기 이슬람 건축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특별히 남부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랍의 시리아 지배는 투르크 제국에게 패배할 때인 16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는데 지방에서 임명된 통치자는 지중해군에 사용하기 위해 모든 기독교인을 징집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은 북부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배를 시작했고 투르크 제국은 리비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 투르크가 지배한 북부 아프리카의 마지막 국가인 리비아는 이태리에 의해 결국 식민지배를 받는다. 식민지배 기간은 토종 리바아인에 대한 유린가 자행되고 대규모의 '이태리화 정책'으로 절반이상의 토착인구가 1911년부터 2차대전이 종료될 때까지 망명하거나 멸종 당했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고 지뢰가 매설됐으며 일부는 현재도 남아있다.
전후 이태리는 리비아 지배에 대한 포기를 강요받았고 싸이레나이카의 벵가지(Benghazi) 주변지역 출신의 세누시 지도자인 이드리스(Idris) 왕의 통치하에 독립을 획득한다. 왕의 지지는 싸이레나이카 지역을 제외하면 미약해 국내의 긴장이 고조돼 성장하는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해 실각 당했으며, 범 아랍주의 분위기가 아랍세계로 확산된다. 1963년 9월 1일 27살의 대위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끄는 소수 그룹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퇴위시킨다. 쿠데타 후 2차대전 후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과 미국군의 주둔지에 대한 철수와 함께 2만 5천명에 이르는 이태리 식민지배로 이주한 이태리인이 즉각 출국하도록 조치된다. 카다피 정권은 리비아의 방대한 기름 수입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수십 억 달러를 도로, 학교, 주택, 병원과 농업 건설에 투자한다. 1970년대 카다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진보적인 대안을 서술한 그린 북(Green Book)을 쓰기도 했다. 혁명을 일으켜 리바아를 자마히리야('미사곡이 국가'로 대략적으로 번역됨)로 선포하고 국가기구를 제거하고 인민위원회로 대체한다. 현실적으로 리비아 정부는 강한 군사 독재가 남아 있었다.
이드리스 왕의 통치기간 동안 외국인 소유와 통제하에 있던 리비아의 유전은 정부에 의해 소유가 바뀌고 국가의 지하자원으로 완전히 통제를 하게된다. 기름으로 생긴 이윤으로 리비아의 식량 자급을 위해 사막에 깊게 매장된 수자원을 펌프로 퍼 올려 해안지대로 흐르게 하기 위한 대 맨 메이드 강(Great Man-Made River) 건설 계획에 2백 7십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리비아는 범 아랍주의의 표방으로 '서양의 제국주의'를 비난하고 세계에서 발생하는 해방운동을 지지와 인접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무력 행사를 일삼았다. 서양국가들은 카다피의 지원과 해방 운동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으며 특히 카다피의 국제적인 테러 단체의 지원에 대한 불만이 강했다. 테러주의자들은 국제적인 기구부터 리비아의 격리된 지역까지 활동을 펼쳤다. 리비아의 정치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은 가장 먼저 미국에 의해 실시됐는데 1986년 4월 공습으로 최고점에 달해 카다피의 양녀를 포함한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리비아가 1988년 팬암 항공기를 스코틀랜드의 락커비(Lockerbie) 상공에서 폭파해 승객 259명과 지상에 있던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국제적인 고립이 이루어진다. 리비아가 항공기 폭파에 대한 계획을 수립했다고 기소되고 두 명의 리비아인이 용의자로 주목된다. 미국과 영국은 용의자에 대한 재판을 요구했으나 리비아는 이를 거절했다. 이 교착상태의 결과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리바아에 대해 국제적이 제재국가로 만든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국제 재판에서 1998년 3월 사법권에 대한 조치와 관련해 미국과 영국 정부는 두 명의 리비아인의 조치에 대한 권한을 배제하기로 결정한다. 1998년 12월 리바아 의회는 용의자를 네덜란드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스코틀랜드 법에 의해 판결을 받는다. 용의자가 범행을 자백할 경우 어디서 수감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1999년 2월까지 결정이 안 돼있었으나 카다피가 유엔이 감시하는 스코틀랜드 감옥에 수감해도 된다는 동의를 합으로서 해결된다. 카다피의 결정에 대한 조치로 유엔은 리바아에 7년 전에 발효한 제재국가의 위치를 해제한다.카다피의 리바아에 대한 통제는 국민의 불복종과 군사 쿠데타의 루머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다.
경제GDP : US$38 billion
리비아의 인구는 5백만 명 이상으로 절반 이상이 15세 이하다. 대부분의 리비아인은 아랍인(대부분이 아랍인으로 생각하고 있다)으로 인종적으로 투르크, 베르베르, 사하라 아프리카인 등이 혼합되어 있다. 가트(Ghat) 주변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투아렉족이 거주하면 마을이나 거주지에 정착하지 않고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한다. 코스모폴리탄 해안 도시를 제외하면 종족주의가 강해 가족 관계, 결혼, 사회 구조에 영향을 끼친다.
현대 리비아인은 가족 생활 주위에서 이루어지는 이슬람 사회의 전통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리바아의 인상이 기름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의 화려함보다 온화한 물질적인 평온함을 대하게 된다. 이의 결과로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흔히 요구되는 박시쉬 또는 판매 강요 같은 여행자에 대한 괴롭힘을 찾아 볼 수 없다. 작은(또는 큰) 친절함에 대한 돈의 지불은 리비아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아랍어가 리비아의 공식 언어다. 영어는 도시의 중심가에서 사업가들 사이에서 쓰이며 일부 리비아 노인들은 이태리어를 사용한다. 베르베르인은 아직도 자신들 고유언어를 사용하며, 남부에 거주하는 투아렉은 티피나그와 아랍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모든 상점과 도로 표지판과 공공 표지판은 아랍어로 쓰여져 있어 아랍어를 알고 있으면 매우 유용하다. 리비아의 종교는 수니 무슬림으로 전지역에서 이슬람을 믿고 있어 일반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아니면 외모에서부터 보수적이다.
최근 리비아의 예술이 재생하고 있는데 회화와 사립 미술관은 봄을 맞이하듯 새로운 재능으로 전시장을 선보이고 있다. 반대로 수 년 동안 일반극장이 없었으며 외국영화가 조금 상영됐을 뿐이다. 민속 문화의 전통은 아직도 생기 있게 유지되며, 리비아와 해외에서 자주 행사되는 축제에 단원에 의한 춤과 음악이 공연된다. TV에선 다양한 스타일의 전통적인 리비아 음악이 연주된다. 전통적인 투아렉 음악과 무용은 가다메스(Ghadhames)와 남부에서 인기가 높다.
이슬람(또는 하지라) 달력은 그레고리(서양) 달력에 비해 11일이 빨라 공휴일과 축제일이 매년 11일 빨리 시작된다. 4월의 라스 아스-사나(Ras as-Sana)는 이슬람 신년 축제이다. 에이드 알-아다(Aid al-Adha) 또는 위대한 축일인 타바스키는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기 위하는 순간을 위해 운집한 날로 신이 마지막 순간에 뛰어 들어 양을 대신 제물로 삼았다. 에이드 알-물리드(Aid al-Moulid)는 모하메드의 생일을 축복한다. 라마단은 모하메드에게 코란이 나타난 달을 기념하는 이슬람 달력에 의해 아홉 번째 달(12월) 기간동안 이루어지며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음식과 물을 먹지 않는 게 다르다. 라마단이 끝나는 날은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로 금식이 끝나고 많은 행사가 열린다. 리비아의 주된 세속적인 휴일은 혁명의 날로 일주일간 퍼레이드와 행사가 열린다. 민속 단원, 기수, 음악인과 다양한 군대가 트리폴리로 몰려들고 카다피는 그린 스퀘어에서 연설을 한다. 10월에는 거대하진 않지만 수확 축제(date-harvest festival)가 열린다. 공휴일 3월 또는 4월 - 라스 아스-사나, 타바스키
비자 : 아랍국가와 몰타 국적을 제외하고 모두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를 신청하기 전 반드시 여권을 아랍어로 번역해야 한다.보건위생 : 말라리아, 콜레라, 간염에 대한 미약한 위험 경비 및 환전통화 : 리비아 디나르(Dinar;LD)
리비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경비가 환율에 따라 변하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공식적인 환율과 비공식적인 환율이 6배나 차이가 난다. 만약 비즈니스용 호텔에서 자고 은행에서 환전한다면 여행경비는 제네바나 동경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돈은 비공식적으로 환전이 가능하며 할인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리비아는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며 여행자수표는 현금화할 수 없다. 현금을 소지하는데 가장 믿을만한 방법으로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 독일 마르크를 가장 선호하며 이태리 리라도 환전이 가능하다. 주요 은행과 호텔은 환전창구가 있으며 환율은 거의 동일하다.
암시장에서 환전할 때는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수크에 있는 상점주인들은 돈을 바꿔 주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경우 환전을 문의하지 않는 게 좋다. 고급 호텔과 리비아 아랍 항공과 페리 회사들은 외국인들에 대해 공식적인 환율로 경화를 지불하거나 합법적으로 환전했다는 은행 환전증을 요구한다. 북아프리카에서 흔한 상점에서의 가격 깎기는 리비아에서 필요가 없다. 팁은 일반적이지 않으며,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계산서에 서비스료가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
리비아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11월에서 3월 사이로 낮 시간의 온도가 높지 않다. 반대로 4월에서 9월 사이는 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해안의 분위기는 습하며(오후에는 55%에 달한다) 내륙의 사막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다. 가장 피해야 하는 여행시기는 늦은 봄(5월에서 6월)과 이른 가을(10월)로 남부에서 발생한 모래폭풍인 기브리가 며칠이상 지속돼 야외활동을 제한한다. 주요 여행지
아랍어로 타라부루스(Tarabulus), 고대에는 오에아(Oea)로 알려진 트리폴리는 근래에 들어 정부청사를 이주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의 사실상의 수도로 존재한다. 한때 '지중해의 하얀 신부'(의미가 무엇이건 간에)로 알려진 트리폴리는 초기의 매력을 많이 상실했지만 많은 역사적인 모스크와 생동감 넘치는 메디나가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투르크와 이태리의 식민지 지배동안에도 인상적인 도시의 건축물을 만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카다피의 혁명은 간판과 현대적인 상업도시의 특징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쉽게 눈에 띄는 트리폴리의 조형물은 붉은 성인 아사이 알-함라(Assai al-Hamra)로 북쪽 곶에 위치해 바다가 어떤 것인지를 조망하게 한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와 500m의 교정된 땅이 현재 두 개로 나누고 있다. 방대한 구조의 미로와 골목과 가옥들은 100년 이상이 걸려 전체 면적 13,000 sq 미터 이상에 건설됐다. 도시의 지배자들의 흔적을 위해 내부를 보면 투르크, 카라만리, 스페인, 몰타, 이태리와 다른 지배자들의 예술과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자마히리야 박물관(Jamahiraya Museum)의 입구는 그린 스퀘어(Green Square)로 성 옆에 있다. 환상적인 박물관은 유네스코와 함께 협의회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건설했고 선사시대부터 혁명시까지 연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모자이크, 조각과 전통적인 고대의 가공품으로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정교한 전시품이다. 메디나는 트리폴리의 심장으로 시각적으로 가장 활기가 넘치며 도시에서 쇼핑하기 최고로 좋은 곳이다. 리비아를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유용해 소크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흐르고 지방의 향기가 느껴지는 상품이 전시돼있다. 더 좋은 소식은 소크를 돌아다니면서 속임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시간이 충분하다면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트리폴리의 역사적인 모스크, 칸(여관), 함맘스와 가옥들을 보면 된다. 복잡함을 원한다면 평화로운 동물원을 방문하거나 주변에 있는 해변을 방문해라.
시르트 만(Gulf of Sirt)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벵가지는 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주요한 상업도시다. 도시에는 고대의 유적이 일부만 남아 있으며 2차대전 당시 많이 훼손 당했으며 혁명 후 기름 수출로 인해 돈이 유입되면서 일부 재건설이 시작됐다. 역사적인 매력은 결여됐으나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벵가지는 우거진 그린 산(Green Mountain) 지역과 해안을 따라 산재한 방대한 로마제국 유적을 보기 위한 거점이고 있고 선탠에 적합한 해변이 가까이 있다.걷기에 적당한 신발 몇 켤레가 있다면 중앙 벵가지 지역을 발로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지붕이 처진 스쿠는 매일 개방되지만 살아 움직이는 걸 보려면 도시 전체가 쇼핑에 몰두하는 금요일 오전이 적합하다. 가장 중요한 시장은 스쿠 알지리드(Souq al-Jreed)로 사리아 오마르 알-무크타르(Saria al-Mukhtar)에 있는데 모든 종류의 의류와 가정용품을 판매하며 보행자 지구 또는 작은 상점과 카페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로터의 중간은 주민을 위한 자유 투쟁자인 오마르 알-무크타르의 무덤으로 기념비 주변에 앉아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관찰하는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곳이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거나 멍청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른 방법으론 도시에서 가까운 해변 클럽이나 여행자 빌리지가 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가리안 투어리스트 빌리지(Garian Tourist Village)다.
오아시스 마을인 가다메스는 트리폴리의 남서쪽 650km 지점으로 알제리아와 투니지아 국경과 인접해있다. 리비아에서의 시간이 한정돼 있고 전통적인 사막을 보고 싶다면 가다메스가 적합하다. 사막 건축물로 유명한 가다메스는 '사막의 진주'라는 별명을 트리폴리 민속을 위한 관문으로 인기 있던 1950년대부터 얻고 있다. 이로부터 구지역 주변에 새로운 지역이 건설됐으며 구지역은 빛이 바라고 새로운 지역에 도보로와 백도제를 바른 진흙 벽돌 벽이 과거와 비교해 야단스럽지 않게 생겨난다. 구시가는 미로가 있고 일시적으로 천창이 위로 지나가며 사하라의 독특한 분위기를 띠는 야외 광장이 있다. 발로 둘러보기에 충분한 작은 지역으로 도착해서 하게 될 일이다(후레쉬를 준비해라).
구시가의 서쪽 입구 근처는 가옥 박물관(House Museum)으로 오래된 상인의 집이 원래의 가구와 장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버리 광장(square of the Mulberry)은 구 노예시장(많은 사람들이 노예의 후손임)으로 첨탑 정상에서 멋진 마을 전망을 볼 수 있는 지마 알-카비르 모스크(D'jmma al-Kabir mosque)가 가까이 있다.
가다메스에서 15km 차를 타고 교외로 이동하면 환상적이진 않지만 로마제국의 유적이 '유령이 나오는 언덕'인 라스 알-고울(Ras al-Ghoul)에 위치한다. 유적을 제외하고 언덕은 사막을 보기 위해서도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있는 호수는 수영과 소풍으로 인기가 있다.
리비아에서 고고학적인 장소만 보기 원한다면 렙티스 마그나가 선택된다. 지중해 지역에서 최고의 로마제국 유적으로 여겨지는 렙티스 마그나는 환상적인 건축물와 거대한 규모로 인해 유적에 관심이 없는 여행자라도 인상적인 느낌을 받게될 것이다. 도시는 원래 피노시아인 항구로 기원전 천년부터 정착이 이루어진 곳이다. 노예, 금, 상아, 고가의 금속이 주변 역의 비옥한 농지에서 보충돼서 부를 창출했다. 로마 군단은 3차 푸니 전쟁에서 카타기니인에 패한 이후 반달이란 다른 이름으로 455년까지 번영을 이룬다. 로마제국이 533년에 다시 세력을 확대해 보수를 실시하나 현지 종족은 로마를 배반하고 베르베르에 의해 지배되는 목축용의 유목생활로 복귀한다. 644년의 아랍 침입으로 로마제국의 군단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11세기에 들어 렙티스 마그나는 결국 모래 언덕에 맡겨진다.
20세기에 들어 유적 발굴이 시작됐으며 매우 양호하게 유적이 보존된 채 남아있어 고고학자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유적 입구의 옆에 커다란 박물관이 있지만 볼만한 유적은 유적지 자체에 남아있다. 가장 먼저 확인해 볼 것은 세버란 아치(Severan Arch)로 기원전 230년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 셉티무스 세버루스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건설됐다. 멀지 않은 곳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장식된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큰 하드리아닉 목욕탕(Hardrianic Baths)이 있다. 계속해서 유적을 돌아보면 님프를 숭배하기 위해 만든 님페움(Nymphaeum)을 부분적으로 건너게 되며, 로마의 포룸과 디자인이나 웅장함에서 비슷한 두 개의 거대한 포룸(Forum), 비범하게 정교한 바실리카(basilica)와 극장(theatre)을 발견할 수 있다.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700m를 가면 지역주민의 즐거움을 위해 2륜 전차 경기가 열리던 원형경기장이 나온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벵가지의 북부가 제벨 악다르로 사막에서 벗어나 신선함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아름다운 산들이 이어져있다. 그린 마운틴(Green Mountains)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리비아에서 가장 푸르고 촉촉한 지역이다. 지형적으로 크레타 섬을 닮았고 높은 제벨(산)에서도 농업이 가능하다. 이태리 식민지배 기간동안 식량 생산의 핵심적인 곳이었으며 단순하고 낮게 지은 농가들이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과일과 곡물 농장 주위에 남아있다. 제벨 악다르 전 지역은 매력이 넘치고 시골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벵가지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70km 거리인 그리스인 마을인 톡라(Tocra)는 기원전 510년에 건설된 도시다. 새로운 마을은 여행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지만 구 마을 광장과 주변지역은 둘러볼 만하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더 내려가면 톨메이타(Tolmeita)로 톡라보다 더 시골스러우며 아름다운 해변에서 스포츠가 가능하다. 동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내륙으로 들어오면 알-바이다(Al-Bayda)인데 제벨의 심장에 위치하며 싸이레네(Cyrene), 아폴로니아(Apollonia), 가스르 리비아(Gassr Libya), 슬론타(Slonta) 고대 유적지와 가깝다. 여행자 시설이 갖추어진 쾌적한 곳으로 아름다운 이태리 시대의 건물이 있고 주변에 환상적인 해변이 있다.
작은 마을인 슬론타(Slonta)는 알-바이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가야 하며 도시 자체는 별로 흥미가 없으나 이스람화 되기 전 리비아의 예술품이 유일하게 발견된 곳이다. 유적지는 숭배를 위한 곳으로 특별한 예배형식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해안에서 가까운 고대도시인 아폴로니아(Apollonia)는 싸이레네 다음으로 리비아에서 가장 그리스다운 도시로 작은 박물관과 잘 보존된 유물과 유적을 잦고 있다. 제벨 악다르의 끝 지역은 데르나(Derna)로 매우 매력적인 와디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경사진 지역은 울창한 식물군으로 채워져있다. 타운 자체도 둘러 볼 만하며 구 지구와 스쿠가 있다. 해변에서의 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타운에서 폭포(리비아에서 보기 드문)까지 한시간 정도 등산을 하면 된다.
렙티스 마그나 다음으로 중요한 싸이레네는 리비아에서 반드시 봐야하는 곳이다. 싸이레나이카에서 가장 잘 보존된 그리스 도시로 사원, 무덤, 아고라, 운동장, 극장이 델피에서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환상적인 그리스 유적을 뒤로하고도 깎아지른 듯한 고지대에 위치해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황홀하다. 도시는 방대한 크기로 아직도 일부만 발굴됐다. 낭만적인 조건은 아직 세계보호유산에 목록에서 발견할 수 없으나 모자이크가 아직도 발 밑에서 발굴되고 있고 가격을 메길 수 없는 조각들이 기어다니는 동물 밑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도시의 충분한 부분이 부활돼 여행자에게 원래의 모습이 어땠을지 충분한 느낌을 주지만 완전하게 정비되지 않은 외관으로 인해 많은 중요한 작품들이 손상을 입기도 한다 싸이레네는 아직 일부 여행자가 방문하며 여행시설도 부족하다. 하루를 쉽게 보낼 만한 곳이므로 음식을 준비해 가야한다. 레저스포츠여행자들에게 인가가 높아지고 있는 낙타 사파리는 투어를 운영하는 회사들에게 가장 큰 무기다. E-티켓을 피하고 짚 차를 직접 운전하거나 현지인 운전사와 가이드를 고용하는데 효과적이다. 일부 지역은 가이드가 없으면 출입이 제한되며 아카쿠스(Acacus) 지역은 허가서가 필요한데 적은 수수료를 내면 허가서를 발급해 준다. 리비아 해안선은 매력적인 해변들이 즐비하고 일부는 자연적이고 장식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번잡하다. 트리폴리 중심가에 가까운 곳은 난잡하지만 물은 깨끗하고 편리한 곳에 위치한다. 자연적인 위치를 원한다면 싸이레나이카의 벵가지 주변에서 모래를 만질 수 있다. 이제 생겨나고 있는 다이빙 산업은 리비아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데 렙티스 마그나와 아폴로니아 주변의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유적들이 가장 흥미 있는 다이빙 지역이다. 트리폴리의 남부의 해변에선 해양스포츠가 가능하다. 리비아 로 가는 길유엔 제재국가 조치가 해제된 후 국제 노선이 리비아로 서서히 재 취항하고 있다. 브리티쉬 항공이 가장 먼저 운항을 재개했고 로얄 요르단 항공이 뒤를 따랐다. 시간이 지나면 트리폴리는 아랍국가와 중동과 유럽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말타(Malta)를 연결하는 선박이 매일 출발하지만 요금은 편도가 US$70이다. 육로 국경은 차드와 개방되어 있으며 가장 믿을 만한 교통수단은 트럭이다. 리비아인과 차드인 만이 양국의 국경통과가 허용된다. 수단 국경도 동일하다. 이집트나 투니지아로 여행한다면 버스나 합승한 택시가 유일한 방법이다. 요금은 싸지만 운전이 상당히 이상할 것이다. 국내 교통편국제공항의 재개통과 더불어 국내노선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까지 국내선은 트리폴리 동부의 공군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철도는 1995년부터 운행이 중단됐으며 모든 시스템이 작년까지 해제됐었다.리비아의 도로 사정은 부드럽고 빠르다. 에어컨 버스와 합승한 택시가 믿을만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개인 택시는 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트리폴리와 벵가지가 비싸다. 차를 직접 운전한다면 기름 값 걱정은 없을 것이다.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렌트 회사가 있으나 짚 차는 대여가 불가능하고 대여로가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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