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시간의 예술이자 동시에 공간의 예술이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공간, 이 불리한 여건에서 작품 설계자는 삶의 깊이와 철학 그리고 인생의 애환과 꿈틀거림을 무대기호로 변용시켜야 한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어떤 창의적인 공연 설계를 해야 할 것인가, 이는 극작 설계자나 무대 이미지 창조가들에게 항상 따라 다니는 최대 숙제이다.
수많은 유무형의 만남, 현실과 환상의 교차, 내면과 외면의 만남과 충돌 등 우리네 삶을 지배, 변화시키는 변수는 너무도 많다. 무대 이미지 창조 메소드의 성패는 바로 이 무형의 만남, 충돌, 변화를 고도의 상징과 비유 기법으로 담아내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래픽 예술, 섬세하고 정밀한 스크린 이미지 변환 기법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소품 이동이나 무대구조물 변환을 향한 번거로운 시간 소요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단 0.5초만에 기동력 있는 무대 변환작업 내지 이미지 변환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피디한 무대 이미지 변환 작업에 승부를 걸지 않는다면 오늘의 연극은 인근 복제예술매체에 그 설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간,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극구성 및 양식에 대한 탐색은 복제비쥬얼예술과 싸워야 하는 현대연극의 생존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불가피하다.
극작 설계 이미지와 연출 설계 이미지가 실제 현실을 꼭 빼 닮을 필요는 없다. 연극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형성된 것이지 세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 창조의 성패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느냐의 여부 특히 어떤 양식으로 표현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한 예술작품일 경우 창의적인 바라보기 방식은 양식과 기법 그리고 구조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연극일수록 다양한 양식들이 한 작품 속에 서로 뒤엉켜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무대공연에서 벌거벗은 사실주의 연극이나 순수 상징주의 연극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위대한 극작품일수록
다양한 극양식과 기법, 형식이 구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사이공>은 다양한 극양식, 기법 등이 자연스레 우러나온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희곡미학을 규명하려는 흐름은 그리 활발치 못하다. 김미도 교수의 <월남전의 비극을 심도 있게 극화한 뮤지컬>이란 글작업과 이재명 교수의 <블루사이공 해설>이란 평설작업 그리고 필자의 평문 <몽따쥬와 침묵을 통한 섬뜩한 성찰극>이 고작이다. 이재명 교수는 <블루사이공>의 특징적 극양식을 '다양한 시공간 처리', '이야기의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중시여기는 대신, 연관성이 부족한 듯한 장면을 충돌시키며 빠른 사건전환을 시도', '현실과 환상, 혹은 현실과 내면의식세계를 대비시키는 충격적인 구성법'이라고 주장, 요약함으로써 개방희곡의 양상 및 현대 서사극의 면모를 성실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여자가수를 '사경을 헤매는 김문석의 의식세계를 조종하는 비현실적인 인물'로 평가함으로써 이 뮤지컬 드라마에 '표현주의 극양식 내지 초현실주의 극양식'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김미도 교수 역시 이 작품의 도입부문을 "환상과 환청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라고 해석함으로써 초현실주의 극양식 내지 표현주의 극양식의 면모를 바라보고 있으며 동시에 무대구성기법을 "특별한 장치를 지시하지 않는 무대", "기본적으로 비어있고 열려져 있으며 급속하게 전환되는 상황"이라 해석함으로써 변증법연극 내지 개방연극의 가능성을 조심스렇게 조망하고 있다.
연극의 사회적 역할이 중시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변화되어야 할 세계'를 인식토록 유도할 처방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외세 열강들의 간섭과 침략, 분단, 월남전 문제, 고엽병 문제, 외국인 노동자 연수생 문제 등 그것의 몰가치한 상황, 문제 투성이의 쟁점 등을 지금까지의 정통 비극의 극양식과 전혀 판이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극작 설계자들로 부
터 관심과 탐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타이안 Styan교수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부조리연극>과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이란 이론서를 통해 현대 드라마에서 다양한 극양식의 동시 조망 가능성을 신중하게 예고하고 있다. 양질의 예술작품일 수록 특정 양식에 얶매이지 않고 다양한 극양식이 골고루 선을 보이며 상보적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드라마일수록 그 색채가 더욱 강하다.
<블루사이공>의 예술성은 표현주의 극양식 및 상징주의 극양식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변증법연극의 기법과 효능 마저 골고루 실현된다는 점에 있다. '실수의 축적구조', '장면의 독립성 및 인과성 탈피 구조', '사건의 미해결구조'는 변증법연극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본 논문이 규명하고자 하는 주요 영역이기도 하다. 특히 '극적 환상을 배제하기 위한 무대구성 방식', '감정의 객관화를 소품의 상징성' 등도 우리의 규명 대상에 속한다.
2. <블루 사이공>의 변증 미학
이 드라마에서 변증법 연극의 구조 및 처방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미학적 효능이 우러나오는가가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사이다. 그렇다면 변증법연극이란 과연 무엇인가?
변증법연극이란 관객의 자각을 촉구하고 현실개혁의지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반환상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극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감정교류 혹은 감정이입, 동화작용(동일시작용), 정서적 순화(카타르시스), 사건의 시작과 결말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브레히트는 연극에서 이성적 판단, 객관적 거리두기, 이화(異化)작용을 강조한다.
현대산업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문제된 이슈를 형상화하려 할 때 종전의 연극에선 이런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그려질 뿐 그러한 현상이나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이해관계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브레히트 B. Brecht는 사회의 전체적인 연관성을 묘사하고 인물들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극의 결말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회의 음영 내지 몰가치한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연극을 통한 사회 현상의 비판과 이를 극복할 변증법적 성찰 작업을 겨냥하여 왔다. 특히 브레히트의 변증법연극은 관습화된 사회의 제반 모순과 부조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본 논문에선 이런 변증법연극 강령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의할 수 없는 사건, 변화되어야 할 세계, 이를 객관적으로 성찰토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몰입구조의 차단 구성, 연극적 행위와 약속으로서 상징과 비유기호의 활용, 건너뜀을 통한 스피디한 사건 전개, 독립적인 장면구성, 미해결된 사건 구성법 등이 작품 <블루사이공>에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며 동시에 그 미학적 효능이 무엇인가를 탐색코자 한다.
2.1. 실수의 축적과 그 연극적 파장
변증법연극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 동의할 수 없는 사건, 문제 투성이의 사건들이 반복 변조된다는 점에 있다. "실수의 축적이 진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변증법연극의 강령이 이 드라마에서 올곧게 힘을 발휘한다. 이 드라마에서 비정상의 사건, 몰가치 투성이의 사건이 반복, 변조되어 나타난다. 관객은 "저래서는 안될텐데 ?"하면서 강한 이질감을 갖게되고 이를 통해 관객은 그 극복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태도로 창조적 성찰을 하게 된다. 실수 투성이의 사건을 내용별로 고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비정상의 사건, 몰가치한 사건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현장 및 불법 폭행장면을 들 수 있다.
디제이 덕의 '미녀와 야수'의 일부분인 '파티파티' 음악이 들려오는데 악덕 사업주는 불법 구타현장에서 비명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음악을 들으며 즐기고 있다.
구명전자의 창고. 짐승처럼 몰리는 기술 연수생 복의 외국인 노동자들. 사복차림의 흉기를 든 남자(인력회사 직원)들에게 무참히 폭행 당한다.
사장: 삼백 오십 달러 예치하라고 그랬지!
여권은 회사에 보관시키랬잖아!
인력1: 정문에 왜 얼씬거려? 개새끼들!
도망치려고 그랬지? 도망쳐 봐 새끼야!
얼굴 전체를 검정 가면으로 가린 인력회사 직원들, 그들이 몽둥이로 난민 연수생들을 향해 무자비한 구타를 가한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는 손길이 없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악덕 사장의 반응이다. 잔인하게 구타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고통과 비명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 전면 우측에서 악덕사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서 디제이 덕의 '파티파티' 음악을 즐기고 있다. 비정상, 파렴치함이 고발되는 장면이다.
첫 고발 장면은 빈 무대, 상징 기호로 변용된 소품들이 활용된다. 배우들이 비닐 속에 갇혀있다. 몽둥이 가격이 배우들의 몸둥아리에 이루어지기보다는 비닐을 향해 이루어진다. 퍽퍽 하는 소리, 배우들의 일관된 반응연기가 폭력의 상황을 일깨워주는데에 기여한다.
2) 방치된 고엽병 환자들, 이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 작품에서 고발된다.
고엽병으로 죽어가는 파월 장병 출신인 김문석, 그의 아픔, 절규를 듣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 불감증후군 현상, 이는 아내의 불평, 병간호에 이골난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결국 치료 불가라 판정하며 고엽병 환자들을 방치해 버리는 무책임한 상황이 고발된다.
남자: (맥없이 울며) 나 하나 죽으면 다 편안해질 텐데 ...
(까부라지며) 여보, 나 좀, 나, 아아악!
나 좀, 병원에 데려다 줘. 여보!
다신 안 그럴 게! 딱 한번만 데려다 줘, 여보!
부인: (전혀 일어설 염 없이) 어느 병원에 ...
월남 구신 내쫓는 병원 있으믄 말혀요.
가서 또 쫓겨오기 싫어요. 내가, 이구지구 끌어다 줄테니께 말혀요...
난 몰라 못가요. 난 몰라 못 가네요.
(옆으로 풀썩 쓰러진다.) 난 몰라 못가요.
살다가, 살다가, 못살면 그만이지
어떻게 죽으면 이만 못할라구요.
신창이, 우리 새끼가 밟혀 못가지 ...
남자: 여보, 아파! 여보 빨리 나 좀 병원에 ...
고엽제 판정을 보훈병원에서 마저도 좀처럼 판정을 해주지 않는다. 국내 병원 이곳 저곳을 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김문석의 고엽병을 치료해 줄곳은 하나도 없다. 아내 역시 그 남편의 병수발에 이골이 나 있다. 김문석의 고엽병은 마침내 그의 딸 신창에게까지 유전되며 김신창 역시 이 병으로 인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고엽병에 시달려 온 파월병사들, 죽어 가는 그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완벽하게 치료하지 못한다. 고엽병 환자들은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 갈 뿐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젊은 청춘을 다 바쳤건만 이제 남은 건 몹쓸 고엽병 뿐이다. 어린 딸까지 유전된 고엽병으로 고통을 겪지만 그 어디에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이렇듯 이 작품에선 문제 투성이의 상황 및 동의할 수 없는 사건이 줄곧 축적되어 나타난다.
3)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담보로 삼는 일그러진 국제 관계 체제가 비판의 대상으로 클로즈업된다.
미국자본의 유입 즉 차관도입을 담보로 우리네 젊은 장병들을 월남에 파병시키겠다는 위정자의 일그러진 행위가 고발된다.
위정자: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파병 동의안을 표결하기에 앞서 우리는 미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유사시 본토 주둔 미군이 자동 개입하도록 고쳐져야 하며 한국군 1개 사단을 베트남에 파병하는 대신,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하고 군사원조를 경제원조로 이관하려던 계획을 취소하며, 개발차관 1억 5천만 달러를 제공할 것과 미국의 한국내 군수물자 구매, 월남시장에 대한 우선권 보장이 해결되지 않는 한 파병은, (남자에게 군장을 다 차려 무대로 떠민다. 자랑스럽게 웃으며) 파병은 ...
비서: 문서번호 729-22. 외무부가 1995년 1월 비밀을 해제한 외교사료에 의하면 1961년 박정희 국가 최고회의 의장,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먼저 제의. 이에 대해 케네디 미 대통령은 베트남의 전복을 막는 것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파병의사에 감사. 선물로 61년 워싱톤 회의에서 한국은 63년에 민정이양을 완수하고 미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계속하며 유사시에 미국은 군사지원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위정자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약속?
위정자와 가수여자, 무대에 어리둥절하게 서있는 남자 양옆에 나란히 서서 부동자세를 취한다.
위정자(힘차게) 파병!
가수여자: 약속!
남자: (정신없이 따라서) 맹호! 신고합니다. 하사 김문석은 1967년 7월 1일자로 월남 파병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맹호!
경제원조를 해주지 않으면 파병은 어렵다는 한국 위정자의 흥정성 발언, 결국 미국의 군사지원과 경제원조를 조건으로 한국 위정자는 파병을 약속한다. 당시 한국과 미국간의 국제 협약이 마치 저잣거리 뒷거래 형태로 희화되어 나타난다. 동의할 수 없는 사건이 이처럼 또 다른 방식과 소재로 변조되어 나타난다.
4) 원달러에 몸을 팔며 살아가야 하는 월남여인들의 참상, 자신의 몸을 성적 노리개의 수단으로 삼아 정보를 빼내야 하는 후엔의 비정상적 상황이 고발, 제시된다.
암전 되는 무대는 붉은 등의 거리로. 월남 여자들, 아오자이의 여인들, 미니, 숏팬츠 차림의 여인들 하나씩 둘씩 거리에 들어서 흐른다. 음악도 따라서 흐른다. 여자들 노래한다.
음악 6 - <원 달라>
핏강여인: somebody anybody one dollar one dollar
nobody everybody one dollar
한 번만 나를 물어봐요 뱃속이 따뜻해져
두 번 물리면 편지 써요 고향에 편지 써요
당신 배를 타고 나는 갈 수 있어
분단장하고 가요 몸단장하고 가요
핏-강이 마르는 날 사랑할 수 있는 곳
(중략)
드엉: (후엔의 목을 잡아쥐며) 정신 차려! 오늘 일은 보고하지 않겠어!
후엔: 이젠 그만 할래 (빌며) 제발 드엉, 차라리 날 전선으로 보내라고 해.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
드엉: (팽개치며) 돌아가! 프랭크 대령, 카혼소장, 두 놈중 하나라도 건져, 안 그러면 우린 전멸이야!
미병사: (드엉에게) 원달라?
후엔: (영어) 저리가 이 돼지야!
강대국의 침공으로 인해 가족을 잃어야 했던 월남여인 '후엔', 그녀 역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미국장성 파티에 참석 몸을 팔아야 한다. 후엔은 자신의 비참한 상황,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괴로워한다.
5) 미제 물품에 현혹되어 파병된 아들의 심각함을 인식 못하는 어머니의 비정상적 상황이 희화되어 나타난다.
월남에 파병된 아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케산 전투를 맞아 불안 초조해 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 댓가, 피의 댓가나 다름없는 미제 샴푸, 양산, 양과자 등이 고향에 보내지고 이를 받아 든 고향의 어머니는 마냥 뻐기며 즐거워한다.
순박하면서도 지지리도 못난 우리네 어머니들, 목숨을 담보로 보내진 미제상품에 현혹된 모습들, 이로 인해 아들의 위기상황, 그 심각성을 인식 못하는 상황, 이를 부추기는 몰가치한 자본주의성 물량공세가 비판의 대상으로 클로즈업된다.
공의 어머니 공일병의 꽃양산을 쓰고 샴푸병을 들고 들어와서 볼에 대고 비비며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며 이미자 노래를 따라한다.
(중략)
공어머니: (샴푸를 내놓으며) 이거 써들, 쌈뿌라느만.
양,섬: 이것이 쌈뿌여유?
섬집네:이것이요? 오매 이것이 쌈뿌구마이! 근데 ... 뭣에 쓴가요?
공어미니: 양년들 영양 ... 뭐시기라는구만.
섬집네: 물구리무?
공어머니: 그려 물구리무. 아이구, 깜빡혔네.
섬집네: (애써 열어 바른다) 워치키 영양이 좋은가 미끈덩 미끈덩 허네요.
(중략)
양촌댁: 아자씨 큰일 났시유! 똥필이 엄니 바람 났시유!
모두: 호호호, 하하하!
이미자의 노래 높아지며, 박수소리 요란하게 들리며, 그 시절의 신나는 유행가 가락 울려 퍼진다.
6) 월남 케산 전투에서 사전 정보 누설로 한국병사들의 어이없는 대량죽음, 대량 몰살, 대량 패배 상황이 고발되고 동시에 이를 은폐시키려는 행위가 비판된다.
적에게 붙잡혀 사살 당할뻔 했던 김문석에게 거꾸로 일 계급 특진과 훈장을 수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고발, 제시된다.
남자: 후엔! 제발 나도 죽여줘! 난 이대로 살 수 없어! 나 혼자 돌아갈 수 없어!
(중략)
헬리콥터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온다. 헬리콥터 소리에 무전기 소리가 녹음되어 들린다.
무전기1: 여기는 날개. 생존자가 없나본데?
무전기2: 여기는 날개 잃은 새. 생존자가 있겠어? 정보가 새어 나가서 중대 전체가 작살이 났는데, 생존자가 있으면 무공훈장감이지.
헬리콥터 소리 위협적으로 들리며 무대의 휘장막들 바람에 한껏 날린다.
후엔: (남자의 다리에 총을 겨눈다. 소리지른다). 사랑하세요. 많이 하세요. 내가 많이 생각나게요! 당신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거예요!
남자: 후엔 제발 날 죽여!
후엔: 사랑해요! (총을 쏜다.)
남자: (무슨 소리라고 해야 좋을까?) 후엔!
헬리콥터 소리 멈춘 무대. 시간이 멈추어진 듯. 후엔의 고개 떨어지며 들썩이는 어깨. 총을 떨어뜨린다. 털썩 주저앉아 우는 후엔. 무대에 투사되는 대한 뉴스의 돌아오는 병사들. 돌아오는 병사에게 무공훈장증을 수여하는 장면들 투사되며 남자에게 훈장을 주는 소리가 중계방송 처럼 낭랑하게 들려온다.
대장: (소리) 무공훈장증. 성명 상사 김문석. 위 사람은 월남 참전 용사로서 케산 전투에 참여, 임전 무퇴의 군인정신을 발휘하여 세계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한 공로를 인정하여 일계급 특진과 함께 무공훈장을 수여함. 1968년 8월 6일 대통령 박정희 대독.
케산전투에서 김문석을 제외한 병사들은 사전 정보 누설로 모두 죽는다. 김문석은 혼자 살아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며 한 때 사랑했던 베트공 여인 후엔에게 죽여 달라고 요구한다. 후엔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다 김문석의 다리 쪽을 쏘아 그를 쓰러뜨린다. 혼자 살아남은 김문석은 조국으로 돌아와 훈장을 받고 일 계급 특진을 한다.
케산전투의 어이없는 패배와 대량 죽음, 이를 은폐시키려는 당대의 몰가치한 상황이 고발, 제시된다.
7) 일평생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려야하는 김문석, 이를 야기시킨 분단 구조, 육이오 전쟁 상황이 고발, 제시된다.
어린시절의 소년 김문석은 공산 인민군의 강요에 못 이겨 국군환영식에 참가했던 동래사람들을 지목하게 된다. 이로인해 무고한 동래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되고 그 사건 이후 그는 줄곧 빨갱이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한다. 아무도 그와 놀아 주지 않는다. 그는 그 이후 심한 죄책감과 더불어 진한 빨갱이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인민군: 남조선 괴뢰군 환영식에 나간 반동분자들이 누군지 말하기 힘들면 손가락질로 해두 좋아.
(중략)
작은남자 온몸으로 도리질을 하고, 인민군의 주먹이 작은 남자의 얼굴을 강타한다.
인민군: (아이의 손을 다시 들어) 누구야?
공포에 떠는 작은 남자의 손이 반동적으로 올라간다. 남자의 저지하는 손짓이 작은남자의 손가락질이 되어 작은남자가 손가락질 할 때마다 쓰러지는 사람들. 그들의 비명. 작은남자와 남자가 똑같은 동작으로 몸을 떨며 땅바닥으로 쓰러져 땅 속으로 머리를 처박듯이 짓찧는다. 후엔이 남자에게로 달려와 남자의 머리를 안아쥔다.
(중략)
남자: (서서히 깨어나 울며 몸을 떤다.) 내가 죽였어 ... ! 아버지는 나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돌아가셨어. 내가 아버지를 죽인거야!
어린 소년 김문석은 그 사건 이후 줄곧 '빨갱이'로 지탄받으며 살아야만 한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 어린 소년 김문석, 빨갱이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김문석, 그러나 그는 "고향사람 다 잡아먹은 빨갱이 귀신"으로 놀림 받으며 살아간다. 소꿉 친구 영덕이 마저 그를 빨갱이라 여기며 그와 놀아 주지 않는다.
김문석이 레드 콤플렉스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우리네 일그러진 분단현실, 동족상잔의 몰가치한 상황이 고발, 제시된다. 관객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 창출을 위해 변증법적 성찰을 하기 시작한다.
8)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마저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하는 라이 따이한 즉 월남 한국인 2세 김북청의 문제가 고발된다.
아버지의 나라에 왔지만 참다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살인범으로 전락한 라이 따이한 김북청의 비정상적 상황이 고발된다. 기술연수생으로 전락된 상황, 불법폭행을 견디다 못해 우발적 살인을 저질렀던 라이 따이한 김북청의 어이없는 상황이 고발된다.
사장: 삼백오십달러 예치하라고 그랬지! 여권은 회사에 보관시키랬잖아!
인력1: 정문에 왜 얼씬거려 ? 개새끼들!
인력2: 무조건 복종하랬지!
인력3: 누가 늬들 맘대로 월급 받으라 그랬어?
그 가운데 한 남자(라이 따이한) 조명되면 순간적으로 칼을 집어 자신을 폭행하러 덤비는 남자를 찌른다. 멈추는 동작들. 느린 동작으로 늘어지는 남자. 경찰 싸이렌 소리. 남자(라이 따이한). 사장을 낚아 채 목에 칼을 들이댄다. 조명 서치 라이트로 바뀌면.
기자: 16일 상오 2시 37분. 구명전자 창고에서 인력회사 직원들과 외국인 연수생간에 벌어진 패싸움에서 이 회사 연수생 라이따이한 김북청이 ... 라이 따이한 김북청! 그래! 월남튀기! 김북청이, 인력회사 직원인 정홍기를 살해하고 함께 싸움을 벌이던 인력회사 직원을 인질로 창고에서 경찰과 대치중. 김북청은 월남전에 참전한 아버지 김문석 상사를 찾아 94년에 기술연수생으로 한국에 와 구명전자에서 일하던 중 인력회사의 가혹한 인권탄압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인질극을 벌이게 된 것으로 봄! 요구사항?
북청: (라이 따이한- 월남어)봐! (아버지)
기자: 봐?
북청:(한국말) 아 버 지 ...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나라에 왔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나보지도 못한 채 살인자가 되어버린 라이 따이한 김북청, 고엽병에 시달리는 이복 여동생과의 만남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따스하게 맞이해 주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 무책임한 우리네 정책 현실이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된다.
2.2. 장면의 독립성, 성찰의 완결성
작품 <블루 사이공>의 장면 구성법은 기존 정통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고전극의 경우 각 장면들은 기승전결이란 긴밀한 구성 체계로 유연성있게 연결되어 있다. 극의 한 장면은 이전 장면의 결과로 나타나거나 혹은 다음 장면의 원인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타지 창출 및 일관된 극 구성 방식을 위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블루 사이공>의 각 장면들은 異化效果를 유발시키려는 목적으로 인과관계에 의해 구성되기보다는 독립적인 형식 및 병렬 형식의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 장면은 큰 전체에서 잘라 낸 작은 조각 더 나아가 고립되고 분리된 조각의 특성을 보다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구성적 특징을 알려주는 항목 및 장면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장면과 두 번째 장면은 상호 밀착된 인과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구명전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불법탄압 문제가 극의 첫 장면에서 제기된다. 이어지는 둘째 장면에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파월병사 출신 김문석이 등장하고 남편 김문석의 고통을 결국 외면하고 마는 아내의 상황이 고발된다. 이 두 장면은 인과관계를 유지하기보다는 각각 독자적인 영역, 각기 다른 사건의 일부라는 인상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 장면 구성은 병렬 형식을 취한다.
2) 케산 전투에서 어이없는 대량죽음과 몰살과정, 이를 은폐시키려는 몰가치한 상황이 훈장수여 장면을 통해 고발, 제시된다. 이와 관련된 모티브는 그 다음 장면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뒤이어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외면 당하고 냉대 받는 라이따이한 김북청의 문제가 고발된다. 이 두 장면간의 밀착된 인과관계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3) 미국 장성에게 몸을 팔아 정보를 빼내야 하는 베트남 여인 후엔의 문제나 원달러에 몸을 팔아 연명해야 하는 월남여인들의 참상 역시 특정 장면, 특정 공간에서만 나올 뿐 그 다음 장면과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발전되지 않는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서 고유한 고발 모티브 및 독자적인 영역으로 머무를 뿐이다.
4) 인민 위원장의 강압에 의해 마을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이로 인해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김문석의 상황, 일평생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상황 역시 임종 직전 및 후엔의 가족사진을 접하는 과정에서 회상되어 나타난다. 육이오라는 특별한 시간, 인민재판이 벌어지는 특수 공간, 아들의 손가락질을 저지하려다 린치를 당하다 죽는 아버지, 이는 회상이라는 특정 시공간 영역으로 머물러 있다. 이 때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아버지, 영덕이, 인민군, 그 밖 마을 사람들과의 대립 구도나 갈등 관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장면의 주요 모티브는 더 이상 또 다른 장면으로 발전, 전개되지 못한다.
이처럼 개개 장면들의 병렬구성 및 독립적인 구성방식은 몰입을 차단시켜 문제된 사건을 변증법적으로 성찰케하는데에 기여한다. <블루 사이공>은 다양한 사건의 파편이자 그 조합으로서 극 전체는 자율적인 단면들로 분리되어 나타나 있다. 개개의 각 장면들은 철저히 고발성 모티브를 가질 뿐이며 다양하게 변조된 실수 투성이의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능동적인 자세로 극복 대안 마련을 향해 변증법적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
2.3. 사건의 미해결성, 성찰의 여운
<블루 사이공>의 또 하나의 구성상의 특징은 '사건의 미해결성'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끝이 났지만 사건은 전혀 종결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정통 드라마에서 작품의 종결과 더불어 사건 역시 종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본 관객들은 종결되지 않은 사건을 접한 채 공연장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관극이 끝난 이후부터 관객은 미해결된 사건, 그 이유와 극복 처방 마련을 위해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미해결된 사건, 이를 통한 개방형식의 구성미학을 고찰하여 보기로 하자.
1) 고엽병으로 죽어 간 김문석과 그 가족들의 문제가 미해결 상태이다. 파월 병사 김문석은 당시엔 훈장을 받으며 환영을 받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그의 문제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고엽병은 그의 딸 김신창에게 까지 유전된다. 괴이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고통 당하는 김신창에 대한 해결책 역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해결작업의 몫이 관객에게 주어져 있다.
침대 위의 여자아이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한다.
여자아이: 아빠! 아파. 여기도 아프고, 여기도 아파. 아빠처럼 나도 아파. 아빠랑 똑같이 아파, 아파. 아빠! 나 아파! 아빠!
남자(김문석), 여자아이를 돌아보며 차마 두고 떠나간다.
여자아이: (침대 위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아빠 나 아파! 아빠!
여자아이의 비명 길게 ... 암전 된다.
2) 라이 따이한 문제, 외국인 연수생에 대한 불법탄압문제가 미해결 되어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 외국인 노동 연수생 신분으로 들어온 라이 따이한 김북청, 그러나 그는 불법노동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아버지를 만나 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라고 불러 보고픈 간절한 소망, 이런 그의 소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한다. 이런 라이 따이한 문제, 불법노동탄압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극이 끝을 맺는다.
북청: (손에 수갑을 차고) 우리가 아빠를 찾는 것은 괴로움을 드리기 위해서 아닙니다. 우리가 아빠를 찾는 것은 우리와 함께 살아 달라고 떼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 없는 세월이 너무 컸기에 그 한을 풀고 싶어서 입니다. 아빠는 모르실 겁니다. 한 번만이라도 아빠를 뵙고 싶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아빠 품에 안겨 보고 싶습니다.
무대 한쪽에서 소녀가 무장경찰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고, 그 건너편에 라이따이한 김북청이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서 만나는 두 사람. 경찰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숙여 외면한다.
여자아이 가슴에 김문석의 영정을 안고 있다. 라이 따이한 조심스럽게 천천히 영정에 손가락으로 김문석의 윤곽을 따라 어루만진다.
여자아이: (오빠가, 월남 오빠) 김 북 청?
북청: (고개를 끄떡인다)
여자아이: (나는) 김신창.
북청: (고개를 끄떡인다)
여자, 북청: (동시에) 아버지!
소녀의 두 손이 눈을 가린다. 들썩이는 어깨, 흔들거리는 영정. 북청, 영정을 가슴에 안고 서면 가수 여자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조곡)'를 부르며 등장한다.
라이 따이한 김북청은 이제 살인범이 되어 아버지 김문석의 영정을 마주해야 한다. 그토록 보고 싶은 아버지였건만 김문석은 이미 고인이 되어 있다. 여기에 고엽병으로 병신이 다된 이복 동생 김신창을 그는 마주해야 한다.
김북청과 같은 라이 따이한 문제, 고엽병으로 죽어 가는 파월장병과 그 가족들의 문제는 작품이 끝났음에도 결코 해결되어 있지 못하다.
관객은 무대 막이 내려진 이후에도 이런 비정상의 사건, 또 다른 미해결된 사건들을 매듭짓기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찰을 하기 시작한다. 작품은 공연장 밖으로 까지 개방되어 있다.
2.4. 반환상 무대의 파노라마
2.4.1. 앙상한 무대, 최소한의 장치
지금까지의 정통 드라마에선 무대 장치나 조명기등이 극적 환영을 살려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어졌다. 소품이나 구조물의 이동, 변화는 무대 암전 과정에서 처리되어졌다. 그러나 변증법 연극인 이 희곡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무대 장치는 극적 환상을 배제한 현실의 재현 그 자체이다. 무대는 앙상하며 최소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대 장치의 설치 과정이나 이동 과정은 관객이 보는데 에서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조명 기구 역시 투사 과정이 의도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무대 자체가 문자화되어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블루 사이공>의 공연무대는 필수 불가결한 소품으로만 한정되어 있어 가끔 앙상하게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비닐을 뒤집어 쓴 외국 노동자들, 비닐을 때리는 악당들, 퍽퍽 소리날 때 반응연기를 재치있게하는 비닐 속의 배우들, 여기에 디제이 덕 음악을 즐기는 악덕 사업주 역의 배우가 무대 우측 전면에서 이 음악을 즐긴다.
이 공연의 각 장면은 거의 대부분 빈 무대, 앙상한 무대이다. 첫 번째 장면에서도 공장 내부를 상징하는 소품이나 구조물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악덕 사장의 집무실 구조도 찾아보기 힘들다. 첫장면은 이처럼 빈 무대로 일관한다. 가수가 '불루사이공'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무대는 일시에 김문석 내부 의식 공간으로 급전된다. 다양한 과거 속의 인물들, 의식 속의 인물들이 무대를 가로지른다. 그들은 상호 마주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응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회상 속의 인물, 비현실 영역 속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악덕 사업주의 불법노동 탄압현장은 곧바로 김문석의 회상공간으로 전환된다. 빈 공간이기에 이 영역은 월남전의 실제 공간, 술집공간, 후엔과의 사랑 공간, 육이오때의 인민재판 공간으로 자유로이 변화, 교체되어 나타난다.
후엔의 집 공간은 두 사람이 밀애를 나누는 공간이지만 후엔의 노래 선율은 마음속의 과거 사연 즉 육이오 때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빈 무대공간은 현실과 환영의 교차를 자유롭게 해준다.
후엔: 누군가 그의 시체를 불태우는 모습, 불도저로 구덩이에 쓸어 넣는 모습, 그런게 자꾸 보여요. 내가 본 것도 아닌데 ... 네이팜에 화장 당하는 사람!
전쟁의 소용돌이 소음이 들리며 무대에 토막난 시체들이 하나씩 매달리며 후엔 노래한다.
후엔: 그의 귀가 잘리고 죽은 입에 꽃인 말보로 / 비 52 폭격기 또렷하게 보여요 / 산산이 부서진 그의 몸뚱아리 / 내가 본 것도 아닌데 또렷이 보여요.
어둠에 휩싸인 무대로 폭탄의 섬광 번쩍이고, 육이오 때 줄줄이 묶인 남자의 고향사람들과 작은 남자(어린 김문석)가 인민군의 손에 끌려 들어선다. 공포에 찬 눈으로 작은남자를 지켜보는 사람들. 남자의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다.
인민군: 모두 눈감아! 자 문석아, 누가 있었지? 학교 운동장에서 영덕이랑 굴렁쇠 굴릴 때 저기로 남조선 괴뢰군들이 들어왔지? 그 때 태극기를 들고 사람들이 따라왔어. 자, 누가 있었지?
남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아쥔다)
후엔의 노래 선율, B52 폭격기 소리, 이런 음량과 더불어 무대 뒤 휘장 사이사이 빈 공간에서 배우들이 등장한다. 후엔의 집 거실은 일시에 인민재판 현장으로 돌변된다.
연극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상징기호, 빈 무대는 이런 상징기호의 다양한 활용을 가능케하는데에 기여한다. 환상극을 겨냥한 무대 구성 및 장치 설계가 이 작품에선 결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빈 무대구성방식은 이 작품 전역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환영 속에 빠져들기보다는 극장 속에 앉아 있다는 느낌, 극장 속에서 사건 경위에 대한 일정한 관찰 태도, 사건을 평가할 줄 아는 신중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2.4.2. 의도적 노출, 개관적 성찰
이 연극에서 사건의 경위를 합법적으로 진행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병원 침대의 이동, 휠체어의 움직임, 헬리콥터 움직임을 알리는 대형 선풍기의 동원 상황, 사진틀을 받쳐든 배우들의 움직임, 이런 무대 설치 및 제작 과정도 암전 상태나 무대 막이 내려진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의도적으로 이루어진다.
1) 무대장치, 그것들의 짜 맞추기 과정이 의도적으로 노출된다. 각각의 독립된 부분들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무대 설비 구성, 이는 고엽병으로 죽어 가는 김문석의 병원 입원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고통을 호소하는 김문석, 죽음을 마무리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김문석, 이는 그의 다음 노래로 구체화된다.
이제 다왔나 여기가 거긴가
아주 먼 여행 이렇게 짧은 끝
누구 말을 해 줘 여기가 너의 끝
이젠 다왔다고 그만 안녕이라고
누구 내 손 잡아 줘 식어가는 체온
다시 눈뜰 순 없어도 나 웃을 수 있다고
(중략)
아직 뜨거운 내 심장 가져 가 ... 안 녕 ! (노래끝)
고엽병의 고통을 호소하며 죽기를 바라는 김문석, 결국 그는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병원이라는 구체적인 내부 시설 및 내부 공간, 사실성을 방불케하는 소품설계 작업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무대에 텅 넘어지는 남자. 급박한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남자의 거칠게 몰아 쉬는 호흡으로 바뀌어
무대에 진동하는 사이로 침대와 병원 응급실 도구들을 가지고
들어서는 여자 아이와 의사, 간호부들 소리가 병원 소음들과 함께
녹음되어 들린다.
간호부들, 거칠게 남자를 침대 올린 뒤
남자를 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겨 버린다.
병원 상황을 알리는 어나운스멘트, 응급 환자 치료를 상징하는 간호사들의 발빠른 움직임, 의사들의 날렵한 구급치료 상황, 이를 위해 먼저 병원 응급침대 움직임, 기타 양식화된 소품의 설정 상황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는 환상을 차단시켜 준다. 몰입을 방지하여 준다. 연극한다는 과정, 연극을 극장에서 보고 있다는 객관적 태도를 유지시켜 준다.
무대장치 이동의 의도적 노출은 몰입을 차단시켜 객관적 성찰과 인식자세 그리고 문제 극복을 향한 창의적 사유를 유도하는 데에 기여한다.
2) 김문석의 병원 침대는 그가 젊은 파월병사역할로 변신함에 따라 카퍼레이드를 위한 상징기호로 전환된다.
일렬 횡대로 늘어선 군인들, 맹호부대 군가를 부르다가 카퍼레이드 행렬에 동참한다. 그들은 침대를 카퍼레이드 차로 생각하고 군가에 맞추어 전진하는 움직임을 탄력적으로 만들어간다. 이런 반사실주의극적 처방은 무대 도구를 연극의 상징이자 기호로 간주하려는 변증법연극 강령이라 볼 수 있다.
죽어가던 김문석도 맹호부대 군가가 울려 퍼지자 침대에서 일어나 과거 시절로 되돌아간다. 당시의 지휘관이 나타나 김문석에게 총과 철모를 준다. 김문석은 맹호를 외치며 파병 명령에 복종한다. 당시 파월 장병들이 나타나 함께 군가를 부른다. 마침내 침대는 퍼레이드용 찝차가 된다. 찝차에 탔다는 기분으로 배우들은 반응 연기를 한다. 실제 사실주의극 환상 장면과는 너무도 다른 상징 그림이라 볼 수 있다. 관객은 최소한의 극적 장치 즉 상징그림을 마주할 뿐이다. 몰입 대신 일종의 거리감을 갖고서 관객은 무대 위의 사건을 냉철하게 인지하고 마주할 뿐이다.
'연극한다는 행위'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토록 유도하는 전형적인 변증법 연극 처방이라 할 수 있다.
2.5. 상징의 연극 기호
- 배우 언어와 소품 언어
1) 삶과 죽음 영역 사이의 경계선, 이를 상징하는 무대 뒤 휘장 구조물이 있다. 이 휘장 구조물이 들어 올려지고 주인공 김문석은 휘장 뒤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휘장 구조물 사이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휘장을 들어올리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기에 실루엣으로 나타날 뿐이다. 휘장이 내려지면서 죽은 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배우들 역시 휘장 뒤로 사라진다. 무대엔 김문석의 딸인 신창이만 홀로 남겨져 있다. '아빠, 아파, 나 아퍼, 아빠 가지마!', 이 같은 신창의 외침만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죽어가는 아빠의 시신을 잡고 오열을 터트리는 실제 그림, 이런 사실적 장면을 이 작품은 거부한다. 피안의 영역, 죽음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휘장으로 대표되는 상징 기호로 처리되어 있다.
죽어가는 사람의 내면을 클로즈업시켜 이 같은 상징기호로 표현하는 방식, 이는 반환상극적 처방이지만 오늘날 표현주의 연극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심미적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2) 비닐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이는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구속 상태, 감금상태를 알리는 상징 기호라 할 수 있다.
가면을 쓴 폭력배들이 구속된 노동자들을 구타한다. 그러나 실제 신체를 향한 구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닐을 향해 가격이 이루어진다. 퍽 소리를 내는 비닐, 그러나 비닐 안의 배우가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최소한 약속된 장치, 최소한의 양식화된 상징기호 만이 선을 보인다. 이는 반환상극적 장치이지만 상징주의 연극의 주요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비닐이라는 상징기호의 활용을 통해 연극적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반환상극적 장치, 환영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는 처방, 이를 통해 몰가치한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변증법연극 강령이 실현된다. 객관적 인식 및, 비판적 사유자세
는 자연스레 유발된다.
관객은 철저히 극장 안에서 변화되어야 할 세계를 인지, 성찰하게 된다.
3) 김문석의 죽음 장면 역시 초현실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주인공이 과거로의 여행을 다한 뒤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는 장면이 있다. 이는 실제로 권총자살하기 보다는 그 스스로의 능동적 의지에 의해 삶을 마감함을 상징한다.
이런 반 현실적 장면은 변증법적 성찰을 향한 상징 기호로서 톡톡히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4) 죽음을 맞이한 현재의 김문석과 어린 시절의 소년 김문석, 이 두 인물의 무대 공존, 이 두 인물의 만남과 대화 역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굴렁쇠를 기꺼이 건내받는 행위 역시 대단한 상징이다. 레드 콤플렉스에서 해방되어 그의 내면이 상징되는 대목이다.
빨갱이로 낙인찍힌 김문석은 그 누구와도 굴렁쇠 놀이를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와 놀아주지 않으며 굴렁쇠 놀이 파트너 역할을 하려 하지 않았다. 굴렁쇠는 그 동안 김문석에게 빨갱이 콤플렉스에 대한 상징으로 작용하여왔다. 임종 직전 굴렁쇠를 어린 소년 김문석으로부터 건네 받는 현재의 김문석, 이는 현재의 자아와 과거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자아와의 만남, 참 화해를 상징한다.
이런 반현실적 무대 그림은 환상 파괴, 거리감 유발로 이어지면서 관객의 변증법적 성찰을 야기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5) 기자의 전화보고 행위를 의미하는 타이프라이터 소리 효과, 이는 그가 신문사에 사건내용을 타전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기호이다. 실제 타이핑하는 그림은 무대에서 찾아볼 수 없다. 타이핑 소리와 더불어 보고하는 그림이 핀 조명으로 투사될 뿐이다.
아버지의 나라를 찾은 월남인 2세 김북청, 그러나 그는 불법노동 탄압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 싸이렌, 위기감, 긴박감, 스릴 및 서스펜스, 이런 극적 상황은 그 다음 장면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무대는 기자의 객관적 보고 상황만이 클로즈업된다. 다시 말해 시공간의 건너뛰기가 이루어진다.
몰입구조는 자연스레 차단된다. 여기서 실제 타이프라이터나 타이프 치는 행위, 관련 책걸상 도구의 설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상황을 상징하는 소리만으로 문제된 사건의 주요 내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6) 위정자와 미국 비서와의 협상 장면을 살펴보자. 월남파병의 조건으로 경제원조 및 군사원조를 약속하겠다는 장면, 그러나 이 장면 역시 실제 테이블 협상 그림으로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위정자: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파병 동의 안을 표결하기에 앞서 우리는 미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중략) 개발차관 1억 5천만 달러를 제공할 것과 미국의 한국내 군수물자 구매, 월남시장에 대한 우선권 보장이 해결되지 않는 한 파병은, 파병은 ...
비서: 문서번호 729-22. (중략) 파병의사에 감사. 선물로 ... 모든 지원을 한국에 약속, (위정자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약속?
위정자: (힘차게) 파병!
가수여자: 약속!
비서 역의 배우들은 미국인 복장을 한 채 무대 뒷면에 일렬횡대로 서서 조그만 종이 서류를 읽어 나가고 있다. 위정자는 무대 우측 전면에 서서 마치 백구두에 흰색 상하양복 차림 그리고 중절모를 착용하고 있다. 그는 건달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의 대화는 마치 뒷골목 건달들의 거래 장면으로 희화되어 있다. 비서나 위정자의 이름, 성격 그리고 그들의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할 복장이나 언어, 주변 소품 설정 등 사실성을 겨냥한 설계 방식은 철저히 거부된다.
단지 문제 투성이의 뒷거래 상황, 몰가치한 당대의 정치적 흥정 상황, 이를 관객은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된다. 구체적 몰입 구조, 환상 창출 과정이 배제된다. 결국 문제 투성이의 상황을 알리는 상징기호 만이 무대에 선을 보일 뿐이다. 이를 통해 변증법적 성찰작업이 실현될 수 있다.
3. 휘장과 틈새, 그 현실과 환상
한편의 드라마가 실제 공연을 통해 어떤 미학적 파장과 결실을 얻어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당대의 사회상 및 세계관 그리고 실제 풍미한 공연 기법과 양식을 점검, 확인하는 데에 대단한 도움을 준다. 97백상예술대상, 작품상, 희곡상을 수상한 김정숙의 뮤지컬 <블루사이공>은 우리 공연예술문화의 위상을 한 차원 높게 격상시켜 놓았다는 드라마학계 내지 연극학계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다.
뮤지컬 <블루사이공> 공연은 록, 랩음악 등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풍을 일단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일단의 관심을 자아낸다. 그 동안 윤조병의 <모듬내뜸부기> 공연에서 우리다운 노래극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뮤지컬 <블루사이공>의 선율은 철저히 드라마의 서사성과 회상성이라는 공존하기 힘든 부분들을 동시에 담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노래는 각 인물들의 내적 몸부림을 암시하여 줄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여 주기까지 한다. 아울러 죽음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여가수의 '블루사이공' 선율은 기괴하고 음산한 이미지를 통해 김문석의 비틀린 과거, 아픈 과거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기여한바 크다.
이 작품에선 특히 인물의 내면 및 주관이 강조된다. 죽음의 전령이 죽어 가는 인물 김문석의 침대 위에 걸터앉아 그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특히 어린 시절의 귀여운 모습을 눈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대단히 반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표현 수법은 초현실주의 내지 표현주의 연극양식이라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현실과 환상, 객관과 주관은 마구 뒤섞이어 나타난다. 어린 소년 김문석과 죽음 직전의 김문석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죽음이란 피안의 영역이 무대 뒷면 휘장 안으로 표현된 점, 그리하여 배우가 휘장 틈새를 지나 휘장 뒤쪽으로 사라지도록 만든 구성법 등은 가장 연극적인 맛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으로서 표현주의 연극 및 변증법연극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한편 '선율이 마음속의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흘러가게 만든다'는 장 파울의 낭만주의 예술강령이 힘을 발휘함으로써 이 뮤지컬은 회상극의 지평을 활짝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심미적 힘을 얻어낸 배경과 요인을 분석 규명하는 일은 차후의 연구작업으로 미루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뮤지컬 <블루 사이공>에서 변증법 연극의 묘미와 그 효능 그리고 그 요인을 고찰하여 보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변증법연극으로서의 특징은 몰가치한 세계의 반복, 변조로 요약할 수 있다.
'실수의 축적이 진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변증법 연극 강령이 완전 무결하게 실현됨으로써 자기 각성과 깨달음의 효능은 극대화될 수 있었다. 이 공연의 매력은 변증법 연극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관념성으로의 함몰을 적시에 차단시켰다는 데에 있다. 성적 욕망을 주체 못한 파월병사들의 희극적 해프닝, 미제 샴푸에 눈멀어 우쭐대는 공일병의 어머니, 이에 대한 희화적 표현방식은 휴식과 활력을 자아내 준다. 건조함, 지루함으로 빠져들 위험이 자연스레 차단되고 있다.
아울러 장면의 독자성 내지 독립성, 사건의 미해결 구조는 이 작품의 주된 구성 방식으로서 변증법연극의 주된 효능을 발휘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이 밖에 반환상극적 효능을 겨냥한 무대 장치로서 앙상한 무대 내지 최소한의 양식 무대가 선을 보였고 무대장치 설치의 의도적 노출 역시 몰입차단에 기여한 바 크다.
배우나 소품 역시 사실성 창출과는 거리가 멀게 설계되기도 한다. 이 것들이 상징 기호로 활용되어 몰입을 차단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음을 고찰한 바 있다. 상징성을 겨냥한 이런 처방은 제한된 시공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변증법연극 효능의 발현 과정과 그 배경, 원인 등을 규명하면서 우리는 이 처방이 상징주의 및 표현주의 극양식과 무관치 않음을 고찰할 수 있
었다. 양질의 연극성, 그 심미적 파장과 효능은 다양한 극양식과 이론이 상호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때 실현될 수 있음을 우린 확인할 수 있었다.
변증법 연극의 효능이 올곧게 우러나온 뮤지컬 <블루사이공>, 이를 위해 도입된 다양한 극양식의 활용은 연극 설계자들에게 창의적인 극작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 공간의 문제로 고민하는 공연 설계자들에게 상징의 극공간, 창의적인 극기호 창출에 대한 해법 마련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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