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갈고 닦은 재주를 자랑하는 잔치날이다.
각반 골마루 벽에는 아이들 그림, 글씨, 만들기 따위가 알록달록 뽐내며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도 고생했지만, 선생님들도 많은 수고를 하여 볼거리가 많았다. 두고두고 보려고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예정대로 9시 반부터 급식소에서 학부모들을 모셔놓고 학예발표회를 가졌다. 오늘 사회는 6학년 임수민과 김요나가 맡았다. 어제 꾸민 무대가 제법 그럴듯하다. 교실커텐을 쳐 놓으니 깔끔한 무대가 되었다. 중간에 손님들 때문에 밖으로 나와 모든 종목을 다 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보지 못한 종목은 할 수 없지만, 본 종목 중에서 인상 깊었던 몇 종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두들 잘했지만 유달리 유치원 '아기염소' 춤은 아주 인상 깊었다. 신나는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더니 무대를 열자 털옷을 입은 유치원 꼬마 여덟명이 부끄러운 웃음을 깨물고 배시시 웃으며 서 있었다. 관람석에서 즐거운 놀람 소리가 일렁인다. 음악의 분위기와는 다른 뜻밖에 꼬맹이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막의 효과가 이렇게 크게 나타나는 것은 오랜만에 본다. 무대 없이 그저 시작했더라면 이런 극적인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네명은 노란 털옷과 모자, 신발, 네명은 하늘색 털옷과 모자 신발 이 쬐그만 녀석들이 음악이 나오자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 재롱이 귀여워 모두 웃는다. 둘이서 껴안으며 뽀뽀 시늉을 할 때는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그리고 유치원 핸드벨연주도 재미있었다. 여덟명이 나와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을 울리는멋진 종목이었다. 입을 오물짝거리다가 자기가 연주할 차례면 재빨리 흔드는데 그 중 찬현이는 높은 도였다. 간혹 흔드는 차례가 나오는데 놓치지 않고 흔들었다. 구경꾼들은 신통하게 맞춰 흔드는 찬현이를 보고 덩달아 신이나서 종소리따라 웃음보를 터뜨렸다.
24번째 '흥부놀부'합창도 잘 했다고 본다. 앞줄에 서 있는 성민정, 윤화영, 김보현, 김요나의 웃음이 일품이었다. 방긋방긋 웃어가며 노래를 부르니 보는 이들도 나처럼 모두 기분이 좋았으리라 믿는다.
26번째 스포츠댄스도 훌륭했다고 본다. 무대가 꽉 차도록 열두 어린이 모두 나온 스포츠댄스는 타이타닉호의 음악과 함께 춤을 추었는데 세련되어 어른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흐뭇한 마음이 드는 것은 십여년 전만 해도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으라고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한사코 잡지 않으려고 촌티를 내는 바람에 지도교사들이 애를 먹곤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 6학년들은 어색하지 않고 남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29번째 합주하는 어린이들도 연주를 참 잘했다. 큰북을 치는 동현이는 늠름하게 서서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잘 쳤고, 옆에선 호성이와 진수는 진지한 얼굴로 작은북을 솜씨좋게 두드려 보는 사람들이 즐거워하였다. 강수희, 김용미, 윤정의 멜로디언, 박지선, 김정미의 실로폰, 박은선, 김진태의 리코더, 성미경의 심벌즈 모두 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뭇한 것은 마지막 곡을 교가로 장식한 것이다. 같이 합창하며 끝내는 것이 참 잘 되었다고 본다.
오후 민속놀이대회에도 뜻깊은 행사였다.
전체 공통 종목 제기차기와 줄넘기가 있고, 각 학년에서 선택한 두 종목이 있어서 학년마다 4개의 종목으로 종합점수를 내어 순위에 따라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받도록 하였다.
4학년 선생님이 오후 출장을 가서 대신 유치원 선생님이 대회 진행을 맡았다. 그래서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4학년을 따라 다니며 유심히 보았는데 모두 즐겁게 참여하고 있어 오늘 민속놀이대회가 성공하겠다고 미리 짐작을 하였다.
4학년 종목으로는 팽이치기를 먼저 하였다. 요즘 팽이를 치지 않던 아이들은 종목이 발표된 처음에는 매우 서툴었으나 대회날이 되자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모두 잘 쳤다. 넘어질 듯 하다가 채를 맞고 다시 살아나는 팽이는 뱅글뱅글 잘도 돌았다. 성환이가 1위를 하고, 화성이가 2위를 했다. 다음 씨름은 덩치가 큰 성환이에게 당할 자가 없을 것 같아 싱겁게 끝날 줄 알았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아니 성환이가 걱정을 하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해야겠다. 진수를 꺼리는 성환이가 엄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준영이를 문제없이 제치고 올라온 진수는 성환이와 붙자 쉴새없이 모래판을 돌며 공격을 퍼부었다. 큰 덩치 성환이가 무너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진수를 응원했다. 작은녀석이 큰녀석을 헤치우는 모습이 여간 재미가 아니었다. 80년대 처음 민속씨름경기가 시작될 때 이만기선수가 이봉걸선수를 넘어뜨리는 그런 재미였다. 그래도 너무 진수를 일방적으로 응원하기에 나는 큰소리로 '성환이 힘내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결과는 2:0 힘도 쓰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런데 세상에 그 큰 성환이를 무찌른 진수가 여학생으로 결승에 오른 화영이에게 질 줄은 몰랐다. 화영이는 진수를 모래판에 넘어뜨리자 좋아서 두 팔을 치켜 들며 팔짝팔짝 뛰었다. 여학생이 1위를 한 것이다.
화영이는 줄넘기에서도 다른 아이들을 멀찍이 물리치고 200회를 넘는 기록을 세웠으나 제기차기에서 점수가 좋지 않아 종합점수에서는 뒤졌다. 성환이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른 학년에서도 각각 특색 있는 종목을 선택하여 운동장에서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 푸른 하늘을 차고 올라가는 6학년 연날기가 무엇보다 오늘 행사를 더욱 멋지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