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2010-10-08)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실엔 일명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넘쳐난다. 15분 이상 수업에 집중하는 것을 고문당하는 일처럼 힘들어하고, 대학입학 외에 수학이 어디에 필요하겠느냐는 ‘초딩스러운’ 질문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수학은 그저 문제풀이를 잘 하도록 훈련만 시키는 지겨운 과목이라는 인식이 수업을 힘들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효과적인 성과를 거둔 수업방법은 수학사와 수학퀴즈를 활용한 수업이었다.
수학사를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수학이 단순히 정체된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창조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원이 시작될 때 먼저 수학사를 통찰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집합’ 단원을 들어가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길이가 다른 두 선분 중 어느 쪽 점의 개수가 더 많은가?’
학생들은 당연히 “위쪽의 긴 선분”이라는 대답을 먼저 한다. 조금 뒤에는 ‘선생님이 그런 단순한 문제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꾸로 “아래쪽의 짧은 선분이 답”이라고 하는 학생이 나온다. 그러나 답은 ‘똑같다’이다.
여기서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개념과 그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한다. 이어서 영국의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패러독스(Paradox)’가 어떻게 집합론의 위기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노력을 소개한다. 결국 그러한 노력들이 미국 수학자인 쿠르트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라는 비극적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엮어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수학이 그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공식만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 냄새’ 풀풀 나는 학문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수학사를 이용한 또 다른 수업 방식으로는 △‘탈레스의 일화’ 등 유명한 예화 들려주기 △수학사 관련 활동 중심의 수업하기 △관심 있는 단원과 관련된 수학자, 수학사 등을 조사하는 리포트 쓰기 등이 있다.
수학퀴즈도 적극 활용한다. 예컨대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드는 법’을 퀴즈로 낸다. 또 낱말퍼즐 형태로 배운 내용을 확인시키거나 아래 그림처럼 칠판에 세 쌍의 말을 붙여두고 ‘옆으로 가거나 말 하나만을 건너 뛸 수 있다는 규칙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말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최소 회수’를 찾는 문제를 내고는 이것이 이차함수와 논리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수학사와 수학퀴즈를 활용한 수업 방식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에 관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학년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교사 수업평가 설문조사에서 ‘만족’이 76.0%, ‘보통’까지 포함하면 96.4%, ‘불만족’이 3.9%라는 결과가 나왔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학생들이 수학을 즐기면서 공부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수학공부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빵’을 억지로 먹는 과정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고뇌와 희열을 얼마든지 느껴볼 수 있다. 말하자면 풍미가 깊은 생크림 케이크를 즐기는 과정인 것이다. 이를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성과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수학사든 수학퀴즈든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조작적 도구나 활동에만 학생들의 주의가 집중됨으로써 중요한 수학적 개념을 오히려 놓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수업이 그렇듯 가르치는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들과 교감하며 수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수업 전 떠들고 산만한 아이들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반대로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모두 좋지 않다. 이러한 문제로 애를 먹는 교사들에게 토머스 고든의 상담 관련 저서인 ‘T.E.T(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를 추천한다. 내가 신임교사 시절 겪었던 어려움을 현재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나의 수업방식이 하나의 힌트가 된다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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