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李殷相 - 언어에 담긴 생명성과 민중성
이재창 (시인)
鷺山 이은상(1903, 10, 22~1982, 9, 18)시인은 경남 마산시 상남동 출신으로 시조시인, 사학가, 수필가이다. 1923년 연희전문을 수학하다가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사학부에서 청강하였다. 1929년 귀국후 1930년대에 월간지《신생》을 편집하였으며, 이화여전 교수, 동아일보 문화부장, 월간지《신가정》편집인, 조선일보사 편집고문 및 출판국 주간 등을 엮임하였다. 일제 탄압이 극심해지자 4년여를 전남 광양 백운산에 은거하기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유치중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1921년 독우성이라는 필명으로《我聲》에「血潮」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으나, 본격적 문학활동은 1924년《조선문단》창간무렵 이었다. 그 무렵은 시와 평론에 주력하다가 1926년 후반에 시조부흥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시조를 비롯한 전통문학과 국학쪽으로 기울기 시작, 자유시와 병행하다가 1930년 후반부터 시조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1932년『노산시조집』을 발간하면서 가람 이병기와 함께 현대시조를 현대화시킨 쌍벽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집은 향수, 감상, 무상, 자연예찬 등이 주로 담겨 있는데,「고향생각」「가고파」「성불사의 밤」「봄처녀」「옛동산에 올라」등은 우리 가곡으로 불려져 많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회자되고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다. 광복후 그의 시조는 국토예찬, 조국분단의 아픔, 통일에의 염원, 우국지사들에 대한 추모 등 개인적 정서를 배제하고 사회성을 보다 강조한 작품을 발표했다. 또 그는 주요한에 이어서 양장시조를 시험하여 시조의 단형화를 시도 하기도 했다. 저서로 시조집『노산시조선집』『푸른 하늘의 뜻은』『기원』등이 있고, 수필집『무상』, 사화집『조선사화집』, 기행문집과 전기로『탐라기행한라산』『피어린 육백리』『이충무공 일대기』등 총 1백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장하던 金殿碧宇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興亡이 山中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 하여라
-「長安寺」전문
1
바람이 상기 싸늘해 다정한 햇살이 그립다
차라리 애처로와 가지를 꼬옥 잡아 보면
어느새 혈관 속으로 배어드는 백매향.
2
보면 차가와도 심장이 더운 꽃이다
전생의 기억 몽롱해도 예서 만날걸 기약했던가
귀대고 긴긴 이야길 들어보는 홍매화.
3
내 가슴 슬픈 이랑에 한 그루 심어 놓고
달빛 흐르는 밤이면 조용히 서 보는 마음
靑梅子 한 알을 따서 입에 물고 거닌다.
-「梅花詞」전문
노산은 민족정신의 발로와 조국강산에 동화된, 불교사상에 달관하고 누구보다도 그 정신을 깊게 닦고 수행한 불교 시인이다. 50여년의 시작생활 중 강산을 벗하여 자연의 품에 안긴 채 불교정신과 조화를 이뤄 왔다. 한 종족의 언어로부터 그 생명성을 이어받고, 다시 그 언어에 생명을 부여하는 정신적 수도와 그 국민의식에 가장 적합한 감정으로 그 민족의 전통을 노래한 시인은 당대의 민중 민족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노산도 자연미와 불심의 교감에서 나오는 시적 상상력이 그의 시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長安寺」는 음악화 되어 우리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며 회자된 시조이다. 비록 인간의 흥망성쇄가 세상사의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는 조국상실의 비애감이 깊은 산중의 절터에 와서도 느끼고 마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또 그의 작품「梅花詞」는 현대시조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세기말인 지금까지 그의 시조작법이 이어져 올만큼 잘 다져져 있다. 백매향과 홍매화, 청매를 통한 서정성은 시인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는 기법으로 다정하고 아름답다. 지금의 정년퇴직파 시인들의 시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훨씬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