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文學)의 성림(盛林) 인간(人間)으로 귀환(歸還)하라」
백철
인간(人間)이란 외부(外部)의 정열(情熱)을 동반(同伴)하는 현실(現實) 아래서만 살 수 있고 그 현실(現實)이 없어질 때에는 인간(人間)은 생(生)에 대(對)하야 완전(完全)히 무능(無能)무력(無力)하다고 기계적 械的)으로 이해(理解)한 경향(傾向)이 확실(確實)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금일(今日)과 같이 외부(外部)의 희망(希望)에 대(對)한 정열(情熱)이 없어진 현실(現實)에 당면(當面)할 때에 자연(自然)히 몬저 말한 바와 같은 무력(無力),절망(絶望)의 타력(惰力)이 치래(致來)될 것은 당연(當然)한 일이었다. 하나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인간(人間)이란 결(決)코 그와 같이 무력(無力)한 존재(存在) 않이! B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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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今日)은 현실(現實)로는 정열(情熱)을 일의 시대(時代)이나 거기에 실망(失望)하는 관조적(觀照的) 태도(態度)를 갖지 말고 주동적(主動的)으로 입문(入聞)의 육치(儥値)를 발휘(發揮)하는 한(限)에서 도리혀 이때에 정신(精神)문화(文化)(여기서는 문학(文學))의 왕성(旺盛)을 초래(招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문화(精神文化)의 왕성(旺盛)에 의(依)하야 반대(反對)로 실제(實際)의 현실(現實) 우에 마력(魔力)있는 색채(色彩)와 영향(影響)을 가(加)힐 수도 있다고 나는 깊히 자신(自身)하고 싶다.
요약- 이 글을 통해 그는 인간다운 인간을 통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그의 휴머니즘의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암울한 현실 속에서 프로문학처럼 정치적 우위성을 강조하는 문학을 추구하는 것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현실을 그리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그는 당시 불행한 현실 속에서 기존의 휴머니즘의 입장 위에 정신문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광(朝光)』,1936,4.
「과학적(科學的) 태도(態度)와 결별(訣別)하는 나의 비평체계(批評體系)」
백철
근년(近年)에 와서 비평체계(批評體系)의 독립(獨立)(!)을 위하야 노력(努力)해 온 것은 그 비평태도(批評態度)에 잇서 될 수 잇는대로 심정적(心情的)이고 감성적(感性的)이려는 것이엇다. 그것은 과거(過去)에 주(主)로 인간묘사론(人間描寫論) 이전(以前)에 잇서 비평(批評)에 대(對)하야 취(取)해온 태도(態度) 될 수 잇는대로 이성적(理性的)이고 과학적(科學的)이고 분석적(分析的)이려는 그것과는 반대(反對)되는 것으로 그때까지 내가 그 소위(所謂) 변증법적(辨證法的) 이해(理解)에 의(義)하야 나의 빈약(貧弱)한 비평(批評)을 구(救)하라ㅕ고 노력(努力)한 것이 얼마나 내 자신(自身)의 성격(性格)과 재능(才能)이엇는가를 기피 반성(反省)한 곳에서 결정(決定)한 태도(態度)이엇다!
요약- 백철은 카프 시절 자신이 취한 이성적이고 과학적 비평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비평이 당시 문단 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에서 발출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과학의 발달과 이성의 중시에 의해 파생된 서구 자본주의의 파행성-파시즘-을 목도하고 있었던 그는 과학과 이성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 가져다 준 폐해를 절실히 실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 추구하던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비평 태도를 비판했던 것이다.
《조선일보(朝鮮日報)》,1936.6.28.
「우리 문단(文壇)과 휴매니즘- 그 구체적(具體的) 논의(論議)를 위(爲)하야」
백철
금일(今日)의 휴매니즘이 과거(過去)의 휴매니즘의 반복(反復)이 아닌 것만은 더 말할 것도 업거니와 적어도 주류(主流)로서 두 가지 휴매니즘의 비규정적(非規定的) 성격(性格)만은 공통(共通)된 것이엇다. 말하면 중세기말(中世紀末)이나 금일(今日)과 가튼 현실(現實)가운데서 발생(發生)하는 문학(文學)은 그 주류(主流)로서 명확(明確)한 것을 가질 수 업다. 그것은 금일(今日)에 잇어 우리들이 현실(現實)에 대(對)하야 사실적(寫實的)으로 진실(眞實)한 것을 파악(把握)할 수도 업고 말래(末來)에 대(對)하야도 명확(明確)한 통안(통안)을 가질 수 업는 시대(時代)인 때문이다.
요약- 르네상스 시기의 휴머니즘과 금일의 휴머니즘을 비교하면서 휴머니즘의 지향점을 찾고 있다. 또한 그는 휴머니즘의 가장 큰 특질을 ‘무규정, 무한정서’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휴머니즘의 입장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주장하던 ‘고뇌하는 주제’에서 일보 후퇴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현 시대 자체가 불명확한 시대이므로, 이런 시대에서는 리얼이즘도 낭만주의도 그 의의를 상실할 수 밖에 없으며, 단지 막연하고 무규정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휴머니즘만이 존재하게 됨을 드러낸다.
《조선일보(朝鮮日報)》,1936.12.27.
「웰컴! 휴머니즘」
백철
주류(主流)로서 명확(明確)하고 적극적(積極的)인 것이 아니면서 일면(一面)으로는 개성적(個性的)이고 적극적(積極的)인 주류(主流)일 수 있는 것, 말하면 명확성(明確性)이 결여(缺如)되여 있는 그곳에서 도리여 일개(一個) 개성적(個性的)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금일(今日)의 그 주류가 보편적(普遍的)인 것과 개성적(個性的)인 것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 한편으로는 규정(規定)할 수 없는 것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명백(明白)히 규정(規定)할 수 있는 성격(性格)을 갖인 주류(主流)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쉽게 금일(今日) 문단(文檀)의 주(主流)로서 휴먼이즘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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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過去)의 어느 시대(時代)와 사회(社會)에 대한 추상(追想)과 향망(鄕望)이 아니고 미래(未來)에 대한 추구정신(追求精神)의 표현(表現)이다.
과거(過去)의 휴머니즘이 현실적(現實的)으로 소극적(消極的)인 문학(文學)주류(主流)인데 대(代)하야 금일(今日)의 휴먼이즘은 현실적(現實的)으로 적극적(積極的)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약- 백철은 여기서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프로 문학이 실패한 원인은 보편성과 개성을 융합하지 못한 데 있으며, 문단 주류로서 휴머니즘이 보편적인 동시에 개인으로는 개성화할 수 있는 절실한 정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패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르네상스 휴머니즘과는 달리 미래의 새로운 인간형을 탐구하는데 주력한 점을 볼 때, 그의 인간 탐구는 네오휴머니즘을 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그의 휴머니즘 운동의 의의와 목표는 전형기 한국 문단의 주류를 읽히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데 있었다.
『조(朝)광(光)』,1937. 1.
「윤리문제(倫理問題)의 새 음미(吟味)-현세대(現世代) 휴매니즘의본질(本質)」
백철
휴맨이즘의 문학(文學)은 정면(正面)으로 하나의 윤리문제(倫理問題)에 도착(倒着)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휴맨이즘을 인도주의(人道主義)로 역(譯)하고 그 중(中)에서 편의(便宜)하게 인도적(人道的) 측면(側面)을 취(取)하야 임의(任意)로 윤리(倫理)태도(態度)를 설정(設定)한 것이 아니라 본래(本來)에 잇서 휴맨이즘은 역사적(歷史的)으로 발생(發生)하는 것이 대개(大槪) 당시(當時)의 현행(現行)하고 잇는 사회적(社會的) 도덕적(道德的) 법칙(法則)에 대(對)한 반대(反對)의 요소(要素)로 표현(表現)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잇으며 그와 동시(同時)에 직접(直接)으로 금일(今日)의 문학(文學)과 윤리(倫理)문제(問題)를 볼 때에 그 윤리(倫理)란 이상(以上)에 말한 그 휴맨이즘을 발생(發生)시킨 비인도적(非人道的)인 현실(現實)에 대(對)한 도덕적(道德的) 결의(決意)를 제(除)하고 존재(存在)할 곳이 업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약- 이 글에서 휴머니즘은 비인도적 대우에 대하여 항거하는 반항이자 운동으로 인도주의와 휴머니즘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휴머니즘을 윤리문제로 보고 있으며 사회의 도덕률과 문학자의 윤리가 서로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그 차이란 사회적인 도덕률이 사회에서의 정사선악(正邪善惡)에 대한 판단으로서의 도덕적인 윤리라며, 문학자의 윤리는 자기의 품성을 일관된 진솔한 성실성으로 관철하고 통일해가는 일종의 극기정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여 새로운 문학을 탐구하고 창조하는 정신을 배양해야 함을 강조한다.
《조선일보(朝鮮日報)》, 1937.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