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오해
임병식 bs1144@hanmail.net
착각과 오해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되어 있다기보다는 한 묶음이 아닐까. 사전 풀이를 보더라도 사물을 사실과 다르게 자각하는 착각(錯覺)이나,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오해(誤解)의 구분이 썩 명확하지 않다. 단지 해석에 따라 그 느낌이 착각은 착각으로서 그칠 뿐인데 반하여, 오해는 필연적으로 뒤탈이 붙을 것 같은 감정문제가 남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엊그제 나는 바로 이런 착각으로 인하여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같은 남도인 영암으로 문학세미나를 가는 도중, 잠깐 보성 기러기재 휴게소에 내려서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는데,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꺼내면서 매점 진열장을 보니 눈길이 가는 게 있었다. 문양석 수석인데 첩첩의 산경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얼른 시렁 위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확인했다. 삼만 오천 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의외로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애석 생활을 해온 경험에 비추어 아무리 연마석이라고 해도 그 가격은 헐값에 가까웠다.
해서, 세미나를 가는 마당에 돌을 구입할 처지는 아니나 주인에게 다가가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저 돌 팔려고 내놨습니까? 저 가격표가 맞나요?” 했더니 대답이 엉뚱했다.
“아닙니다.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가격표를 붙여놓았어요?”
실망한 투로 물었더니 대답이 그 가격표는 시렁 아래에 있는 물건의 것이고, 수석에 관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에 기망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에잇 여보시오, 그런 엉터리 대답이 어디 있어요. 가격표라면 의당 밑에 붙여야 옳지 위에다 붙여놓고 아래쪽 물건이라고 하면 누가 그리 믿나요.” 하고서 강하게 항의를 했으나 그는 오히려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표정이 내가 보기에는 또 마치 ‘넘볼 걸 넘봐야지’ 하는 것만 같아서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일정 때문에 참고 발길을 돌렸다. 다툴 일이 아닌 것이, 그가 오해를 사게 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의 착각도 컸던 것이다. 우선 턱없이 저렴한 가격이 그렇지 않는가.
오해 문제라면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30여 년 전 모 지방방송국 라디오 극장에서 단막극을 내보냈는데, 오해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극 중 주인공의 이름은 잊었지만 유명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엘리트 사원의 캐릭터였다. 거기다가 매사에 적극적이며 나름대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독심술(讀心術)을 지녔다는 청년이다. 한데, 하루는 그가 자기 회사 남자 사장의 심부름으로 서신을 들고 거래처 독신 여사장을 찾아가게 된다. 청년은 사장의 서신을 전해주며 차제에 인정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접근을 한다. 서신을 전하면서,
“사장님, 저희 사장님이 저더러 이 서신을 은밀히 잘 전하고 오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희 사장님께서 사장님을 흠모하고 계십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여사장은,
“뭐라구요? 흠모요?”하면서 매우 불쾌해 한다.
청년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사장은 봉투를 뜯어볼 생각도 않고 당장 전화기를 들어서 상대방 사장을 향해 말한다.
“여보세요 사장님, 사람을 놀리는 거예요 뭐예요. 사원한테 이따위 연애편지나 보내고 도대체 제 정신이세요?” 하고 속사포로 쏘아붙인다. 듣자하니 상대방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전적으로 오해’라며 해명을 하는 것이었으나, 이미 머리끝까지 분이 뻗은 여사장은 상대방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똑똑히 전하세요. 앞으로는 모든 거래는 이제 끝났다고요.”
물론 그것은 연서도 아니었고 거래내역이었다. 청년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내쫓기고 드라마는 막이 내려졌다. 비록 꾸며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그걸 들으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겠구나 생각하였다.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현실 아닌가. 나는 오해라는 어휘를 생각하면 지금도 버릇처럼 그 단막극이 떠올려진다. 엘리트 청년의 오버한 오해에 더하여 여사장의 흥분까지 더해 인상적으로 뇌리에 각인된 탓이다. 유사한 사례로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흔하게 착각과 오해에 부딪치고 사는가.
가령, 맨손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들고 있는 소지품을 보고,
“뭘 사 왔어, 그냥 오지.”
라고 말하기 십상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람이 혹시 나에게 욕은 하지 않는가 하고 넘겨짚어 공연히 머쓱해지거나 부아를 끓기도 하며 산다. 그러나 이런 착각과 오해는 한마디로 신중치 못한 행동에서 오는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마음 또한 상하지 않으려면 매사를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말 또한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일을 겪으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4)
첫댓글 ^^ 두 번만 생각하면 이해가 될 일인데 무려 다섯 번이나 생각을 굴리다보니 오해가 생기게 되는가봅니다.
그런데 최소 두 번은 생각할 일을 단 한 번만 생각하고 행하면 역대 어느 대통령처럼 막무가내가 되기도 하는가 봅니다^^
재주있는 사람의 경박함을 경계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이야기 자리에서 종종 인용한답니다.
산영재-이정림 08.08.11. 17:55 무슨 일에 처했을 때 미리 넘겨 짚는 것이 꼭 사단을 불러오더라고요. 전후사정을 찬찬히 살펴보아 가며 처신하는 침착한 사람들은 실수를 덜 하게 되지요. 문제는 성급함이 아닐까요(이정림선생님이 주신 글)
오해와 착각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방증하는 현상이 아닐런지요. 오해로 인해 심각한 상황까지 간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해가 없도록 말과 행동거지에 신경써야 할듯요.
념겨짚아가 흔히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를 봅니다. 행동도 조심해야겠지만 그 행동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