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가지 범죄가 존재한다. 우리 형법전만 해도 국가적 법익을 해치는 범죄, 사회적 법익을 해치는 범죄, 개인적 법익을 해치는 범죄 등으로 나누어 제87조부터 제372조에서 수없이 많은 범죄유형을 열거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다 보니 조문수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추세이다. 이렇게 많은 범죄 유형 가운데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는 무엇일까? 자기가 당해본 범죄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래도 형량을 기준으로 보면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내란죄나 사람을 아주 망하게 한 살인죄가 중죄로 규정되어 있다, 내란죄는 표현부터가 아리송하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내란죄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는데 다시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에 처하고 중간급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며 부화뇌동한 자라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도록 하였다. 살인죄는 제250조 이하에서 규정하였는데 표현은 매우 단순하여 "사람을 살해한 자"로 되어 있고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되어 있다. 부모 등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여 매우 중죄로 다스리고 있는 반면, 부모가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즉 영아살해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다른 사람이 자살에 이르도록 꼬드긴 자도 같은 형으로 처벌한다. 그런데 과연 내란죄나 살인죄만이 그렇게 중죄인가?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갖는다. 국가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집단으로 여겨지고 사람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는 격언처럼 생명을 해치는 죄가 무거운 것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상대방의 믿음을 악용하는 범죄도 내란죄나 살인죄만큼 중하게 처벌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형법에서 말하는 사기죄이다. 특히 재벌 3세 쯤 되는 것들이 자기 집안의 위세를 배경으로 하여 주가조작을 하고 개미군단의 푼돈을 챙겨가는 것을 보면 아예 거세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주가조작도 사기죄의 표본이다.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거나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정말 짐승만도 못한 치들이 있어 바늘로 콕콕 찔러 죽을 때까지 찔러대는 형벌이라도 가했으면 하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인에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사기죄라고 피치 못할 사정이 없겠는가만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웃음을 띠고 접근하여 온갖 감언이설로 혼을 빼 놓은 다음 그 사람의 피같은 재산을 가로채는 인간은 질이 나쁜 살인죄만큼 가혹하게 처벌하여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형법 제347조에서는 사기죄에 대하여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위안을 얻는 것은 사기죄로 감옥에 들어가면 다른 죄수들에게도 온갖 구박을 받는다는 전언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리는 소문에는 감옥도 인권이 개선되어 죄수들끼리 구박하는 일이 줄었고 사기죄로 들어온 사람은 오히려 사식이니 뭐니 떵떵거리면서 복역을 한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기죄는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잘 취급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른바 민사사건이니 당신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가지고 아는 경찰에게 부탁하여 사기죄로 집어넣기 전에 갚으라고 하는 것은 공갈죄에 해당하거나 공권력 남용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갚을 의사가 없으면서도 번드레한 말로 다른 사람의 재산을 꿀꺽 삼키고도 민사문제인 양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 인간들을 보면 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채무불이행에 불과한 것이 분명함에도 악덕 추심업자가 장기포기각서까지 받거나 친척 친구들까지 엮어서 기어이 돈을 받아내겠다고 설쳐대는 것도 처벌하여야 하겠지만 선량한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소 위하적 요소가 있더라도 악덕 채무자의 선을 넘어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가혹한 처벌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기죄와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국가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를 규탄하려는 것이다. 성서의 신명기 19장 15절 이하를 보면 모세의 율법이 나오는데 우선 증인은 두세명이 있어야 증언으로서 효력을 갖는다는 점을 밝히고 이어서 위증죄 내지 무고죄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여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당시는 신정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제사장이 재판장을 겸하기도 하였고 따라서 재판장을 속이는 것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이는 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위증이라 함은 무고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성서에서는 증언이나 고소 고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올바른 판결을 하고 또 법령이 사회에서 잘 지켜지도록 하려면 일반 시민들이 자기 생업에 다소 지장이 있더라도 기꺼이 재판정에 나가 다른 사람의 범죄를 고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법정에 세우도록 단서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민주시민의 기본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칠 목적으로 거짓을 고하는 것은 정말 용서받기 어려운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위증이나 무고에 대한 처벌을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라고 규정하고 혹시 이 말의 뜻을 잘 모를까 염려되어 탈리오의 법칙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즉 위증이나 무고를 하여 다른 사람을 죽였으면 그 위증자 등도 죽이고 눈을 빼도록 했으면 눈을 빼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형법사상이 복수형이 아니라 교화형으로 바뀐 것을 고려한다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탈리오의 법칙이 무한정 복수와 그로 인한 복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하여 고안된 첨단의 형벌사상임을 고려하여야 한다. 나는 오늘날에도 다른 범죄는 모르지만 위증죄와 무고죄만큼은 복수형제도에 입각하여 형벌을 부과하여도 좋다고 여긴다. 우리 형법은 먼저 위증죄에 관하여 제152조에서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그러한 위증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무고죄에 관하여는 제156조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위증죄와 무고죄의 최고형량은 고작 10년 이하의 징역과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되어 있다. 위증이나 무고로 인하여 억울한 사람이 사형을 당해도 그 사람의 처벌은 몇년의 징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속아 넘어간 국가기관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은데 국가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고의를 가지고 그것도 국가기관을 도구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기관을 감히 속이다니 하는 괘씸죄를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범죄인의 의도가 얼마나 불량한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상에서 형법학자들이 들으면 까무라칠 주장을 한번 해 보았는데 내가 주장하는 요지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에도 정직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가치를 상실시킨 것이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정직부터 가르친다. 정직은 그야말로 철저히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기관이나 공직자가 거짓말을 하면 바로 아웃이다. 우리도 지난 번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사실 넘어가도 될 만한 사실을 감추려 드는 바람에 다 따 놓은 국무총리 자리를 놓친 안타까운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에게 좋은 교훈거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정직에 대하여 매우 둔감하고 정직 켐페인을 벌여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너무 결과와 요령만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대학교에서 조차 컨닝이 활개를 치는 마당이고 학력위조사범이 재수없는 것 정도로 치부되는 판이니 우리 사회의 정직은 아직 멀었다, 끝으로 순결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서는 간음죄를 매우 엄하게 다스린다.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던 시절에도 간음죄만큼은 당사자 모두를 돌로 쳐 죽여야 할 중죄였다, 오늘날 처럼 성도덕이 문란한 시대에는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닐까도 싶지만 이는 성경이 말하는 간음이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동일시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상징되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의로움에서 벗어난 물신주의. 향락주의 등 온갖 저급한 욕구와의 전투를 벌여야 한다. 사람이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신의 성품에 다가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하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과도 통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은 결코 피안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내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면 내가 먼저 깨끗해야 하는데 나는 보통수준이라도 되는가? 부끄러운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