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4년 10월 25일
제 보 자 : 강옥림(68세, 여)
장 소 : 강옥림 선생의 댁
조 사 자 : 송기태
1936년 강진옴천 출생.
1946년무렵 - 1956년 10세~20세 부모로부터 무업을 익힘.
1956년 20세 해남 무계집안(남편 박노진)으로 시집 감.
1958년 22세 스님들 독경을 듣기 위해 해남대흥사에서 6개월 생활.
1960년 24세 나주 다도면으로 판을 사서 재금을 남.
1964년 28세 남편 박노진과 사별. 박노진과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둠.
1966년 30세 영암 갈곡으로 다시 재금을 남.
1968년 32세 악사 박주원과 결혼.
1978년 - 2004년 32세~68세 중간에 박주원과 사별하고, 지금은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박주원과의 사이에서 2남을 두었다.
추후 보강할 부분
가족관계(보충)
당골판의 형성과 관리 및 수입
굿의 수입(돈)과 변화양상
굿의 종류와 굿거리의 내용(보강)
굿의 학습과정(보강)
당골들의 예술적 분화(판소리, 악사들, 농악-당골레 걸궁)
유랑연희패, 협률사, 신청 등의 활동 및 관계
굿판에서의 다양한 경험
무업을 익히면서 터득한 노하우,
굿판의 내용별, 시대별 변화
굿판에서 이루어지는 역할분담과 각각의 호흡
다른 당골들의 굿에 대한 지식
무구에 대한 사진촬영
자녀들 보육과 갈등
무업의 자질
출생부터 현재까지 개괄
(태생지) 강진 옴천서 태어나갖고, 옴천서 살다가 스무살 먹도록 살다가 쩌리 결혼해갖고, 스물 니살 먹어서 다도로 재금을 났어요. 강진 옴천서 태어나갖고 스무살 먹어서 해남 북평으로 시집을 갔어요. 그래서 거그서 살다가 이 직업을 해먹겄다고 시어머니가 서모고, 아무것도 먹고살 기력이 없어서 내가 거그 살다가 못살겄응게 해남 대흥사를 들어가서 조금 거그서 바느질같은 것을 해주고 삼스러 거그서 듣고 뵈고, 책도 보고 뵈고, 또 시어매한테도 뵈고 그러고 해갖고 이 직업을 내가 스물 니살부터 했었어요. 전직으로 한 것은 스물 니살부터 하고, 내가 스무살에 시집을 갔는디 처녀때 시집을 안 가고 정짜 두 번 했었소. 스무살에 결혼을 해서 살다가 해먹고 산다고 우리까정 재금을 났었지라. 애기들 육남매를 키움시로. 영감은 남편이라는 사람은 집이다가 벌어다 주는 것은 없었고. 자기 쓰고 살았지. 그래갖고 삼스로 애기들 키워묵고 살았는디 인자는 즈그들 벌어묵고 산다고 나가불고 헌께 인자 늙은 말년에 이렇게 살제 어째야. (시집은) 해남 북평면으로 시집을 가갖고, 우리 신랑 된 사람이 폐가 안 좋아서 군대를 못 갔어요. 즈그 어매가 서모 밑에 삼스러. 그래서 스물 야닯에 내가 남편을 잃었어요.
(학교는 언제 들어갔어요.) 그것도 잘 모르겄소. 몇 살에 들어갔는지. 강진 옴천 초등학교배끼 안 나왔어요. 그때 나도 끼가 조금 있었던가 어쩠던가 무용과도 해보고 그랬어라. 어린것이. 그란디 애려갖고 뭔 속아지가 있었겄소. 그래갖고 이렇고 저렇고 해갖고 살어. 어떻게 산지 모르겄소.
(현재 연세는) 내가 지금 육십 야닯이요.
친정의 가계와 무업
(지모님의 가족관계는?) 내 친정이 육남맨디 3남 3녀 중에 둘째요 내가. 딸로 둘째요. 우리 언니하고 나배끼 안하요. 암도 안하고. 4남매는 다 안해요. (언니는) 강옥심이요. (연세는) 일흔 다섯이요. (지금 살아계신가요?) 예. (어디에) 영암가 계시지라. 인자 거그도 늙은게 인자 소양 없고요. (연락은) 인자 전화 있은게 가끔씩 연란 한 번 하지라. (어디에 사시는가요?) 교동. 교동일거잉만. 영암면. (자녀는) 4남 2녀 뒀소. (출가는 다 시키셨는가요?) 막둥이가 남었소.
(친정 어머니는) 최... 오래된게 잊어부렀네. 최쑥꾸라고 했닥합디다. 어머니 돌아가신지가 확 오래됐어요. (살아계시다면) 90이 훨씬 넘었어요. 인자. 근 100여살. (언제 돌아가셨는가요?) 한 20년 넘었을거입니다. (친정 어머니 고향은) 본 그 안에는 모르겄소만은 우리 나서 클때 우리 어머니가 시집을 장암 마당바우(어디 장암) 영암군 영암면 장암. 거기보고 장암리라고 한가 모르겄소 예. 거그 살으셨어요. (친정 어머니는 영암에서 계속 하시던) 예. 영암 가믄은 거 장암리 당골 그러믄 유명해요. 이 앞삼도 잘하고. 앞삼 알지라. (앞삼) 점 한거. 이 책으로 했는디 그것도 잘하고. 유명 했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하던 악사들은) 인자 장구치고, 징치고, 피리 불고. 주로 그 시가지가 목적이라. 그라고 젓대 분 사람이 있고. 그때는 아쟁이 없었어요. 최고 많으믄 삼현육갑이라고 각기 앉으믄 여섯이까지 짜고 들어가고. 글 안하믄 너이 다섯이도 가고. 서이도 가고 그랬제라. (여섯명이서 할 때는) 그라고 짜믄 여자가 둘이 찌고, 한나 장구치고, 한나 징치고, 한나 피리불고, 한나 젓대불고 그라제라. 여자가 질 되지라. 남자들은 그것만 하고. 그런 잡기만 하고 별 목을 안 쓴디, 여자는 끝나도록까지 목을 안 쓰잖소. 그랑게 잽이 부는 사람은 별도로 따로 있고, 젓대 분 사람은 별도로 따로 있어요. 다 남자라고 다 분 것이 아니라. 못 분사람은 못 불어요. 장구를 주로 한 사람은 박주원이가 제일 잘했지라. 우리 영감이. 영태가 장구도 잘 치고, 피리도 잘 불고, 젓대도 잘 불고, 아장도 잘 하고 그렇지않아요. 젓대 하시던 분은 나주 두째라는 양반이 계셨는디 그 양반도 세상 진작 버려불고. 그 양반도 100살이 헐씬 넘어불고. 이제는 없어요. 이제는 나이 묵은 사람이 필리 잘 불고, 젓대 잘 부는 사람 없어요. 다 죽어불고. 전에 했던 사람들 중에 그전에 일문이라는 사람이 젓대도 잘 불고, 피리도 잘 불고.. 죽어불고 뜨고 없고. 이제는 없어요. 없어. 이제는 저 사람 잘한다는 사람 한나도 없어요. 포도시 가서 눈대중으로 가서 누가 일 있으믄 벌어다먹을라고 그라제. 이제는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사람 없어요.
우리 친정 아버지는 50년이 다 됐을 거잉만. 우리 친정 아부지는 강길수구요. (살아계시다면) 100세가 넘어겠죠. 우리 아부지는 일찍 돌아가겠어요. 한 50살 넘어겠던가 어쩠던가 모르겄소. 내가 시방 스무살 먹던 해에 돌아가셨응게 50년 넘었구만. 우리 친정 고향은 남원이요. 우리 아버지 고향이 남원이요. 전라북도 남원이요. (남원에서 언제) 젊어서 오셔겠습디다. 우리 아버지가 젊어겠을때. 그랑게 왜 그랬냐. 이 객지를 나오셨냐 그라믄은 우리 친정 아부지 형제간이 4형제였는디 어머니가 달라요. 할머니가. 그래갖고 우리 막둥이 작은아버지는 일본으로 가시고, 우리 아부지는 요리 나와서 요 직업 한디로 따러와서 장개를 왔어. 끌텅은 아닌디. 근본은 아닌디. 우리 친정어머니 집안이 정짜 해먹는 집안이었어. 그래서 그리 장개를 가갖고 .... (친정 아버지는 잘 하시는 것이) 그래도 우리 친정 아부지가 참 똑똑했지라. 지금 생각해보믄 말도 잘하고, 참 키꼴하고, 생긴것도 잘하고, 영리했지라. 울아부지 참 영리했지라. 아 그랑게 별명이 여시 여시 그랬소. (어머님과 같이 어정일을 했어요?) 했지요. 우리 어머니랑 그때 했지라. (원래는 안 하셨는데) 원래는 끌텅이 아니지라. (그러면 누구한테 배우셨을까요?) 그것은 모르지라. 우리는. 그란게 옛날에는 배가 고팠지않아요. 그랑게 애기들 데리고 먹고 살랑께 못할것이 뭣 있겄어요. 옛날이라 시대가 어둔 시상이라 잘한지 못한지도 모르지않았소. 지금은 발달되어서 잘한지 못한지를 알지만은.
굿 수업
(친정 어머니에게 굿을) 배웠죠. 그 말. 사설을 배왔죠. 그때 이야기는 배우나 아니나 종우따 적어갖고 일함시로 어짬시로 배왔죠. 인자. 그렇고 배우다가 쪼까 슬기하면 우리 아부지가 장단 이렇고 침시로. 장단기 안 빼묵게. 그럼서 갈쳐주고 그랬어요. (어머님한테) 말을 배우고, (아버님한테) 장단 짜고. (실제로 하는것도 많이 보셨겠네요.) 그라지라. (몇 살때부터 가르쳐 주시던가요?) 그것은 어려서부터 했을 거입니다. 그래도 학교 다닐적에 국민학교 다닐적에 했을 것입니다. 중학교는 안 갔응게. 10살 넘었지라. 그때부터 쪼까썩 배웠지라. 그렇게 아그때나 애기들때는 듣고나믄 머리에 쏙쏙 들어가지 않소. 어렸을때는 오늘 저녁에 배웠다 하믄 낼 아침에 딱 보믄은 이렇게 벼랑박에나 불때믄 글씨가 착착착착 써진것처럼 그렇게 들어갑디가. 고롷고. 그란디 지금은 100번을 읽어도 안들어가요. 그때는 오늘 저녁에 배웠다하믄 낼 아침에 어디 배랑박을 쳐다보믄 글씨가 써져요. (얼마씩 배우셨는지) 긍게 몇줄썩 몇줄썩 써갖고 배웠지요. (글로 써 주시던가요?) 예. (친정 어머니가 당시에도 글을 쓸 줄 아셨는갑네요.) 예. 한글 썼지요. 우리 어머니가 부잣집 딸어었거든이라. (말로 하는 것도 있고, 노래로 하는 것도 있는데) 말로 익훠갖고 장단 섞고. 장단 짬시로. 진양 있고, 중모리 있고, 자진모리 있고 글 안하요. 거그다 장단 짜서 나가제. (일 할때) 그랑게 일 할때나 언제나 입으로 씨부렁 씨부렁 하제라. (글씨는 언제 적어주시는가요?) 보통 저녁에 많이 적제. 촌에는 그전에는 .... 막 일하고 그랬잖소. (아버님한테는 하루에 한 번씩?) 하루에 한 번씩도 아니제라. 간간히 한 번씩. 장단놓고 하면서. 시간 나믄 그렇게 해보고 그라제라. (어머님한테 시험을 보거나 그러지는..) 시험은 없었어요.
(어머님 밑에서 얼마만큼 배우셨는가요?) 이 배움이라는 것은 한계가 없지않소. 그 어린것에서부터 한 10살 넘어서부터 배워갖고, 시집 가기전에 내가 정짜판은 두 번을 가서 해보고, 시집 가갖고 그냥 거그서도 잔 일은 댕기기도 허고. 또 거그서도 구음북도 했고. 그렇게 해서 벌어묵을 용기가 생긴께 내가 재금을 났지라. (그러면 친정어머니한테 거의 다 배우셨네요.) 그라지라. 인자. 근본은 거즘 다 배왔제. (처음은) 반송정이라는 첫 번가서 헌디.... (언니도 같이 배우셨겠네요?) 언니는 시집 가갖고 했지요.
(친정 어머님한테 배울때는 순서대로 배우셨는가요?) 예. 계단있게 배웠지라. (혹시 그거 써놓은 것 있어요?) 없어요. 그거 써논것이 어디가 있겄어요. 강진 누가 가져갔을 거잉만은 누가 ... (자녀분들게 가르칠 생각은 안 하셨겠네요?) 예. 할라고 한 놈도 없고. 지금도 나보다도 못하게, 진작부터 못하게 헌디라. 인자 안해. 나도 안하고. 없어서도 안하고, 늙어서도 못하고....
영암 신당(신청)
이전에 우리 이상 컸을때 그때게 말이 거기를 듣기에 거그를 가보들은 안했는디 영암읍에 살던 당골이 있었는디 정일문씨라고 있었는디, 그 사람이 이상 멋있었어요. 남자분인디. 그분이 있는디 말 들어보믄은 우리 댕겨보믄은 그때 당시에 국악원 마냥으로 그런것이 있었던 맹입디다. 지금 생각해보믄은. 그랑게 그것이 있은게 거그를 간다 그런 소리만 들어봤어요. 가보든 안 했는디. 거그가서 논게 모타갖고 놀고 그런 거입디다. 정녕. 그때게는. 들어본게 그란 거입디다. 그란게 그것보고 뭐락하던가. 신당이락 하던가. 뭣이락 했는디 모르겄소. 잊어불어서. (영암읍 신당에서 정일문이 있었네요?) 거그 영암읍에서 짜한 당골을 봤대야. (그쪽 영암판을) 판을 지녔제. 그란디 그 양반들 진작 다 떠불고 그 집 식구는 하나도 없고. 영암가. 다 인자 내용은 죽어불고.
(정일문이라는 분과 부모님은 잘 아는 사이셨나보네요.) 예. 놈이 아니었죠. 그라고 우리 아부지 계실 때에는 손님이 겁나 많이 왔어요. (손님들 오시면) 평야 그런것 하고 놀고 그러지라. 소리도 하고. 정일문씨로, 그전에 시종 가믄 그 양반도 돌아가셨어. 인자 오래된께 이름을 다 잊어부렀어. 금바우라는 사람이 가야금을 잘 탔어. 당숙된디. 그래서 나 어려서 거그 가서 그것을 가서 배우라고 했는디 어린 속아지에 엄마 떨어지기 싫은게 내가 못갔습더이다. 그때 내가 가서 배우고 소리 공부를 했으믄 이런 세상을 안 살거인디. (정일문이라는 분도 소리 잘하셨이요?) 소리 못했어요. 멋은 있는디. 목이.. 이 소리라는 것은 좋아야 되지 않소. 목이 좋아야 사설도 맹글고, 공력도 맹글고, 이 목에서 나온 것인디 이 멋만 갖고는 안돼요. (그러면 타고하고 잽이) 예. 타고하고, 잽이 하고. (타고는) 장구.
첫 번째 결혼
(첫 남편분은) 그 사람은 못했어요. 박노진. (연세는) 6년 사이였어요. 34살엔가 죽었어라. 우리 남편이. 그랑게 내가 스물 야닯인게 6년 맞지않소. 그때 세상 떴어요. (집안에서는) 했지라. (집안에서는 했는데 본인은 하지 않으셨네요.) 예. 소질이 없어요. (박노진의 가족사항은) 우리 시어매가 난 놈이 우리 신랑하고, 우리 시아부지하고... 다 낳아서 죽고 삼형제배끼 없습니다. 딸은 없고 아들만. (삼형제 중에서) 장남이었지라. (다른 분들은 안 했는가요?) 다른 분들은 안 했는디, 우리 시아재가 쪼까 하다가.. 암끗도 아니었어라. 시아재 하나.... 우리 시아재도 죽어불고 없고. (그러면 시어머니가 하셨겠네요.) 예 우리 시어머니하고, 시아부지하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요?) 우리 시어마니는 완도 모도가 친정이라 그랍디다. .. 그라고 본 시어마니는 완도 무슨면이라고 합디다만 그것도 잊어불고. 우리 시아바니가 이상 피리를 잘 불었어요. 우리 시어마니하고, 시아바니하고 ... 인자 얻은 새 시어마니하고 나이차가 제일 많았어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성함) 우리 시아버지 성함은 박맹기, 우리 시어마니 이름은 몰라요. 아무개엄마 라고 해서.. 그거 몰라. (완도 모도에서 온 시어머니한테 배우셨겠네요.) 아 거 배운 것 없어요. (시집 가서는 바로 안 하셨을것 같은데) 그래도 얼마 안가서 그냥 했어요. (하셔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서 ... 아니면 집안 형편상) 내가 해먹고 살어야헌께 했지라. (시댁에서 농사는 안 지었어요?) 농사 지었제라. 완도 건너... 남창이라는 데서 해우도 하고 그랬제라. 그랬던가 어쨌던가 내가 해야겄다 하는 생각을 했지라. 내가 이 직업을 했응께 내가 우리 애기들 밥 믹여서 키웠제, 글 안했으믄 못 믹여키우제라. 벌어믹일 사람이 없제라. 내가 이 직업 했응게 그라제.
대흥사에서의 수업
(대흥사 가서 배운것은 사설이 부족해서 갔어요?) 아니라. 사용할라고 갔제라. 시집 건네서. (대흥사 들어가신 것은) 그것은 시어마니하고, 나하고 애기를 같이 일년에 셋을 같이 낳어요. 애기를 며느리하고 시어마니하고 같이 나댁기 했어. 어린애를. 그라니까 못살겄대요. 그래서 내가 쪼끔 가서 있었죠. (대흥사에서는 어떻게) 대흥사에서는 중들 염불소리 듣제라 그냥. 쪼깐썩 듣고 그랬제라. (사설을 다 알고 있는데) 그래도 절의 염불하고는 틀리제라. (절 염불을 배울 필요가 있으셨는가요?) 들을 필요야 없지만은 그래도 그런 말이 배워노믄 쓸수는 있는 문제 아니요. 잘 안쓴게 잊어불고 몰라요. (절에서는 그냥 계셨는가요. 아니면 사람들...) 아이고 못허죠. (배우만 하셨어요?) 예. 대흥사 절이라는 디는 누구 와서 꼽짝거리고 봐주고 그런 절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그럼 절 밑에서 사셨어요?) 바로 절에서 스님들 옷 빨아노믄 몰려노믄 개서 다려주고, 그런것 해주고 살었지라. (대흥사는 몇 살 때 들어가셨는가요?) 모르겄소. 내가 스물 둘에 들어갔던가. 셋에 들어갔던가. 그때 들어가서 살았어요. (몇 년이나 있었는가요?) 아니라. 그냥 나왔지라. 몇 달 살다가. 한 대여섯달 살았을거요. (거기서도 들으면 금방 아시겠던가요?) 예. 금새 들옵디다. (다시 나와서는 시댁에 들어가셨어요?) 예.
재금을 나고 본격적인 굿 시작
(재금은) 판 한나 사갖고 나갔지라. 인자 저 화순 다도로 사 갔지라. 화순 다도면으로 사서 갔어. (화순? 나주가 아니고?) 나주 다도면. (혼자 가셨어요?) 그때 본 남편하고 갖이 갔었지. 거그서 세상 뜨고, 나는 여기 나와서 살다가 만났지라. (24살 때) 그러제. 24살에 갔단 말씀이요. (다도면에서는 몇 년 하셨는가요?) 스물 네 살에 가갖고 서른살에 나왔어요. (서른살에 영암으로 나왔어요?) 예. (나주 다도면 들어갈 때 판을 얼마주고 사셨는가요?) 그때는 돈도 안 주고, 돈도 없고, 시아바지가 못나가게 하고 그래서 바로 남방 유월 음력 유월 스무 닷새날 이사감시로 집하고, 판하고 해서 내가 17섬에 외상으로 사갔어요. 나락 17섬에 그때. 근게 17섬이믄은 서른 니가마니지라. 그래갖고 거그서 벌어서 갚으고 그러고 살았죠. (그 정도 값이면 당시 비싼것인가요?) 안 비쌌지라. 그때. (자녀분들은 그 때 다 낳으셨겠네요?) 그때 유복자를 담고 우리 신랑이 죽었는디 그 뒤로 박주언이 만나갖고 아들만 형제 낳지라. (4남 2녀중 2남 2녀는 그때 낳으신거고, 2남은 이후에) 예. (그럼 서른살에 영암 신북 오셨을 때는 혼자 오셨다는 말이네요?) 예.
(다도에서 영암으로 올 때도 판을 사서 들어왔는가요?) 예. 여그 판을 사갖고 온 것이 아니라 저그 갈곡이라고 거그 판을 사갖고 왔었어라. (원래는 여기 안 살고, 갈곡으로 오셨네요?) 예. 그래갖고 인자 판이고 뭣이고 그런것이 없제라. (갈곡으로 갔을때는 얼마나 주고 가셨는가요?) 7섬이요. (집까지 해서) 예. 집이 짜잔했어.
(굿은 언제까지 하고 다니셨는가요?) 굿을 하기는 지금도 하고 댕기제라. 그런디 지금은 굿이 없어요. 여자들이 그냥 가서 똑딱똑딱 해불고. 그라고 특기하면야 혹시라도 남자 하나 불러서 뎃고 다니고 그란디. 지금은 굿이라고 할 것이 없어요. (요새는 찾으시는 분들이 없네요?). 별로 없고.
두 번째 결혼
(남편분은) 그래갖고 서른 시살엔가 박주원이를 만났어요. 이 사람 한나만 앉혀놓고 굿을 해도 두 사람 세 사람 앉혀놓고 허는썩이여. 박주원이요. 박주원이라 할랑가 박성동이라 할랑가 그렇게 이름을 두 번 두른 맹이다. 그 이름은 둘 부릅디다. 주원이라고 많이 부르기도 하고 그랍디다만은. 누가 알겄소. 그래갖고 그 사람이라는 사람은 이 타고같은 것, 소리같은 것을 참 잘했소. 그랬는디 술이 잠 과했습디다. 술이 좀 과해서 그랬지 술만 안 과했으믄 그렇게 세상을 뜰 사람이 아니었어요. 가정은 모르고. 그래서 참 타고같은 것, 앵이같은 것 다루믄 누구못지 않았지라. 소리도 잘했고.
영태 그것이 어려서부터 끼가 있어갖고 참 멋있는 사람이고, 잘 한 사람이여. 나이도 인자 솔찬히 먹었소만은. 그 사람들도 다 우리 밑에서 배웠지라. 박주원이라는 사람이 영태 친 작은아버지요.
(박주원 어르신과는 언제부터) 언제 만난지를 똑똑히 모르겄당게. 박정희 대통령 첫 해 되던 해여요. 첫 해 대통령 되던 해. (어정판에서 만나셨어요?) 예. 만나기 전부터 일을 했어요. 같이. (박주원이라는 분은 유명하셨겠네요.) 예. 글로는... 그랑께 뭣이 망쳤냐믄 술에.. 많이 잡샀죠. 배운것도 이상 배웠고, 그랬는디 술에 망쳤지라. 상량같은 것, 지방같은 것 잘 썼어요. 그런 것 잘 썼어요. 어디가서 축문 같은 것 잘 썼는디 술에 배렸어. 술이. (글에도 소질이 있으셨네요?) 예. 놈한테 빧지는 안했제라. (소리도 잘 하시고) 소리도 잘 했제라. 이 박주원이 고향이 진도 아니요. 영태 고향이 진도 아니요. (진도 어디서 오셨답니까?) 음.. 즈그 어무니 지그 아부지는 나 만나기 전에 다 돌아가셔부러서 잘 모르겄소만은 즈그 큰집이가 관매도여요. 관매도. 조도면 관매도. 영태도 아마 조도면 성남인가 그 어디가 즈그 고향일 거요. 똑똑히 내가 모르겄소만은. 영태 아부지 아요? 이 글씨가 아주 명필이었다요. 영태 아부지가. 어느 면서기보다 빰맞게 잘 썼다요. 어떻게 이 한문 글을 많이 배워갖고 잘 쓴지 인쇄헌디 빰맞게 잘 썼다요. (악기 뿐만 아니라 글 쓰는데도 소질이...) 그 집 내력이 다 멋있는 내력이어요.
굿의 자질과 멋
그 속멋이 있어야 그것은 하거든이라. 이 속멋이라는 것이 따로 별도가 있어야 그 맛있는 대목이 나와. 이 굿하는 자랑도 아무리 내가 사설이 좋다해도 배운것이 많하다 해도 멋으로 굿을 하지않아요. 이 멋이라야해. 이 직업을 해 먹을라믄. 멋이 아니믄 못해묵어. 멋이 들어야 재미지제. 같은 말도 어야 말 다르고, 아야 말 다르대끼 멋이 있어야 재미지게 하잖아요. 우스매 소리 한자리라도 멋이 있으믄 훨씬 맛있제. 그러는 거이여. 그랑게 아니리가 좋아야 해. 아니리를 같은 뭣한 사람은 뚝 뚝 맛없이 한디 뭣한 사람은 같은 아니리라도 훨씬 맛잇게 하지 않합뎌. 그건 멋있은게 그래. 속에. 아니리를 잘해야 해. 그라고 노래부른 사람이고, 이 굿하는 사람이고, 이 굿하는 것 보다도 탁 굿바탕에 여그 남자들이 여그가서 징 장구 친다고 주루루니 앉었어. 그라믄 우리 여자들이 굿한다고 이리 딱 스요. 그라믄 굿 하기 전에 이 바대로 한 짐 먹어야 되야. 멋으로, 뽄으로. 얼른 알어먹게 멋으로. 사람이 탁 이렇게 한복을 입고, 탁 서믄은 멋이... 노래 안 불러도 멋이 자르르 한 사람이 있거든. 그것이 신꽃이여. 신꽃. 그랑게 굿당에 굿전에 딱 스믄은 신꽃으로 한 몫 묵는다 그래. 저 사람은 신꽃으로도 한 몫 먹는다 그랬어. 신꽃이 딱 핀 사람은 딱 나서믄 한 나 못해도 잘하게 뵈불어. 노무 눈에. 이쁘게도 보이고, 바대있고, 벗있게 보여불어. 고놈으로도 한 몫 묵어. 이 말이 사설이 뭔 말을 띠어다 붙이던지. 아 그랑게 얼른 알아먹기 쉽게 말하믄 귀신 앞에 기생이랑게. 구신 앞에 기생이여. 그 말 한자리 해석만 잘 해도 답이 나오요. 요새 기생들은 사람 만 명 앉혀놓고 노래 안 부르요. 우리들은 딱 가믄은 여그 딱 사람 몇이 앉혀놓고, 귀신만 방에다 둥그라니 밥차려놓고나서 굿을 해. 그랑께 기생들은 사람 앞에서 한디 우리는 귀신 앞에서 놀아. 그래서 귀신 앞에 기생이다 그말이여.
이 소리라는 것은 굿말이나 노래부르는 소리나 헌 것은 전부 고수대감에 있잖아요. 장단에서. 그란게 소리한 사람이 다 이녁 고수가 따로 있지않합뎌. 지금 현재도 기생들. 그랑게 이 장단에 전부가 다 멋이 나오기도 하고 그러지라. 일종의 이 직업이 글자 그대로 기생놀이여. 귀신 앞에 기생놀이여. 귀신이 즐겁게 보이도록 놀지 않소. 그래서 귀신 앞에 노는 기생이여.
내가 30 넘고, 40 이짝 저짝에 있을때는 인기 좋았었소. 내가 하는 말이라도... 내가 해남 근방에 가믄은 박맹기 마누라가 온단다 그라믄은 작은종이 다 나왔어. 굿보러 온다고. (뭐가 다 나와요?) 굿보러 온다고.. 남녀노소 없이 다 나왔어. (지금도 청이...) 젊은게 그랬제라. 내가 우스매소리를 잘했거든이라. 농담을 잘했거든이라. (우스개소리는 언제 한가요?) 쉴때 하제라. (보통 어떤 우스개소리를..) 아 그것은 앵이 하나가 따라야 우스매소리가 나오제. 때에 따라서.. 거기에 판국을 봐감서 재담이 나오잖어요. 그것이 재담이여. 재담. (어디 가면 오구물림이 없는데도 있던데요?) 지금은 그렇게 많이 빼묵어불어 그렇게. 옛날굿은 한나도 안 빼묵고 했제라.
굿의 종류와 내용
(이런 씻김은 언제 어느때 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아프다 그라믄은 귀신이 들어서 굿 받어먹을라고 그란다 그라믄 그 사람 낳으라고도 가서 굿을 하고, 또 죽으믄 구신 좋은곳으로 보낸다고 또 굿 허고, 지사에도 좋은곳으로 가라고 굿한 맹이다. (아플때 하는 굿은 어떤 굿을 하시는가요?) 아플때 하는 굿은 또 .. 이 굿은 거즘 비슷하게 생겼는디 사설이 틀리제라. (따로 이름은 없습니까?) 따로 이름은 없고, 평야 굿한다고 이렇게 말하고, 곽머리 한다고 그라고, 지사물림 한다고 그라고. .. 그라고는 보통 씻김한다고 큰굿 한다고 그랍디다. (지사물림은) 지삿날. (곽머리는) 관 놔두고 하고. (날 받아서 하는 것은) 씻김이라고 해 버려요. (집을 새로 지었을 경우에는 성주굿이라고 한가요?) 응. 성주다래기. 이사가거나 집 짓었거나.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애기 못난 사람 지앙맞이 있고. 애기 낳고 터슬이 나거나 아프거나 그러믄 지앙맞이 있고, 일년에 재수 있어라고 정월에 신수독경 있고, 애기들 생일에 백살경도 읽고. 살을 이른다는 것은 백가지 살을 다 이른다른 것이여 잉. 그라고 평야 다 그런 것이제. 뭐 있다? (이 중에서 큰 굿은 어떤 것인가요?) 제일 큰 굿이라고 한 것이 곽머리굿이 제일 크다 그라요. 그라고는 씻김굿이야. 보통 씻김굿은 다 커. 곽머리나 지사물림이나 씻김이나 다 큰 굿이여. (나머지는) 잘잘한 것이고 인자.
(곽머리는 순서가 어떻게 된가요?) 방에서 안당 하고, 성주굿 하고. 그라고 밖에로 나와서 명인 앞에서 지석굿 하고, 오구 물리고, 넋 올리고, 씻기고, 고풀고, 길 닦으고, 대신몰고, 그라고 사신하고. 사신 하믄 끝나제라 인자. 그란디 섬에는 가믄 손굿이 하나 더 있음매이다. 손굿이 한나 오구물리기 전에 손굿 한 맹이다. 바깥에서. 여런데는 잘 안해. 인자는.
옛날에는 당산제 받아먹는 당산이 안 있었소. 당산굿도 있었는디 지금은 그것도 저것도 없어라 인자. (예전에는 당산굿도 많이 하셨나보네요.) 예. 당산제 받어묵는 당산 할아버지 할마니 불러서 당산굿도 힜었어. (당산굿을 하면 보통 몇 년에 한 번씩 했는가요?) 아니라. 정월 보름날이믄 꼭 하지라. (해마다) 예. (그런 마을이 많았었는가요?) 예. 잘 개려갖고. (그렇게 크게 하던 마을이 어떤 마을이었을까요?) 지금은 없습디다. 그전에는 당산제 헌 디가 꽉 찼었지라. (당산제때 지모님 모셔서 굿 하시고,..) 그 전에는 쪼깐썩 했는디 몇 년 있다가는 다 자기들이 다 차려놓고 절만 해붑디다. (예전에 그렇게 하던 마을은) 그전에 저그 저 다도면 금당리라는데가 있었어라. 그때 한 번 거기서 해봤소. 그때 맥없이 동네가 소가 죽어싸서 한 번 한다고 했었지라. 그것 하고 그래도 소는 안 죽었어.
그란께 이 굿이라는 것이 안당하고, 성주굿 하고, 지앙굿 하고, 지석굿 하고, 오구 물리고, 넋 올리고, 씻기고, 고 풀고, 사재막음 하고, 사신 하고, 그라믄 인제 없어. (사재막음 하기 전에 길닦고 대신몰고 하시겠네요?) 길닦고, 사재막음하고 대신몰제라.
(지사물림이나 씻김이나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요?) 사설이 두 개 다 비등한디.. (굿거리 순서가 다른가요?) 순서가 다르지라. (앞에는 곽머리굿의 경우고) 지사물림도 똑같애라. 사설이 틀리제. (날받이가 틀리고, 곽머리가 틀리고 그런것은... ) 그라니까 사설이 틀리제라. 신은 비슷헌디 여자 입 사설이 틀리제라. (어떤 부분이 틀릴까요?) 주로 안당부터 .. 선부리부터 다 틀려라. (선부리는 어디에 들어간가요?) 안당 다음이 선부리제라. 그랑게 굿이 열두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