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칼날같은 강추위가 사정없이 옷깃을 파고들며
콕콕 살갗을 쪼아대던 23일(화)
수많은 소극장이 운집해있는 대학로는 연극 열풍으로
후끈 달아오를 정도다.
'거미여인의 키스'가 공연되는 아트원씨어터 매표소 앞
길게 줄서있는 젊은이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부랴부랴 일 마치고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나보다
극장 앞 커피숍에 있다 시간맞춰 도착한 극장이 거의 만석이다.
대부분 여성 관객이다. 이정도 호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
(그런데 연극이 끝나고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로 공연이 시작된다.
푸르스름한 조명, 어딘가 모르게 음침하고 무겁다.
철재로 된 창살, 간수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손바닥만한 창문,
짐짝같은 탁자는 의자로 쓰이기도 하고 식탁이 되기도 하고
편지를 쓰는 공간이기도 한다.
그리고 가로와 세로로 놓여있는 침대 두 개,
죄수 두명이 수감된 2인실 감방 풍경이다.
마누엘 푸익의 세계적인 명작을 연극화한 이 작품이
대중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는 이유는
동성애를 다루었기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자의 내면세계를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성문란죄로 잡혀온 동성애자 '몰리나'와
불건전한 정치사상범으로 혁명을 꿈꾸다 잡혀들어온 '발렌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차이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르헨티나에선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이 되기도 했지만 14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핑크빛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나온 몰리나는
모진 고문으로 힘들어하는 발렌틴을 위해
혹은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영화이야기를
시작하는것부터 극은 시작된다.
한 공간안에서 티격태격 그러는 틈틈
발렌틴의 변덕과 때론 응석같은 태도를
엄마처럼 모두 받아주는 몰리나.
그러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그 아픔이 곧 자기의 아픔이 된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철학적이며 깊고 심오하다.
책에 밑줄을 긋듯 이들의 대화 어느 구절에선
맘속으로 언더라인을 긋고 있었다.
"가슴이랑 목...
왜 슬픔은 항상 여기에만 고이는 걸까"
"내가 우는것까지 간섭하지마.
난 내가 슬프다고 느낄 때 그냥 울거야"
진짜 속마음을 다 털어버리고 나서
편지를 북북 찢어버리곤
"절망을 밖으로 드러낸건 내 잘못이니까"
더 좋았던 것은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배우와의 대화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질문을 받았지만 그것도 모르고
어안벙벙. 암튼 공연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나
다행히 이 때만큼 사진을 찍고 배우의 얼굴을
좀 더 밝은 조명아래서 봤다는것이 좋았다.
젊고 잘생겼다.
몰리나역에 이이림, 발렌틴역에 문태유가 분했다
첫댓글 같이 봤는데 어두워서인지 뜰엔비님을 왜 못 만났을까요
저 못 보셨어요?ㅎ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 하는지 ...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좀 늦게 들어갔어요
바로 자리에 앉자마자 공연이 시작되어
주변이 깜깜해서리~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죠?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거미여인의키스라 해서 무시시한 드라큐라인들의 야기인 줄 알았더니 가슴을 이야기하는 연극이었군요.
덕분에 50% 본 거 처럼 느낌표 하고 갭니다~~
100%를 채우셔야지요
밍키지기님께서 또 한번 공지 올릴 것 같습니다 ㅎ
2년 전 문학을 하는 아들이 손에 쥐어주었던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공포소설인가?하고 읽었었는데 ...
연극은 어땠는지 궁금하군요?
책이 아무래도 연극보다는
표현이라든가 행간의 느낌 등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겠지요
저는 책으로 접하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책으로 한 번 보려고요
터부시 여기던 동성애라 생각되어 관심이 없었지만
문화예술의 내공을 갖추신 해설사 선생님들의 글이
편견으로 가득한 완악한 가슴을 뒤집어 엎네요
관심이 없으면 마음도 없는 법! 관점을 새롭게 하는
그 길에 좋은 인도자가 되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그런걸요
그런데 저는 동성애 문제로만 대하지않고
하나의 작품으로만 보고 이해를 했습니다^^